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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펜타트리움 아카데미(1) (152/249)

 152화. 펜타트리움 아카데미(1)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 두 초인의 대응이 살짝 늦어졌다.

 콰앙!

 먼저 플리퍼 자작과 레인이 거칠게 충돌했다. 이어 르우벤의 화염 계열 마법에 휩싸인 돌려차기가 거검과 맞부딪쳐 폭음을 자아냈다.

“크윽!”

“뭐, 뭐야! 대체 정체가 뭐냐!”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두 초인이 한껏 당황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르우벤은 그것을 비웃듯, 연속해서 공격을 이어가며 내뱉었다.

[묻는다고 알려줄 것 같나?]

 예의 그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심령을 옥죄는 음파가 사위를 휩쓸자 지원하기 위해 몰려들던 병사들이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했다.

 밀리아가 주위 병력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마법을 난사했다. 걸핏하면 범위 마법이 터져 나오니 주위 병력이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밀리아의 경우엔 딱히 힘을 절제할 이유가 없었다. 빛 계열 마법을 활용하는 현자는 그녀 이외에도 대륙에 꽤 존재했으니까.

 그 자신이 발현한 마법인지 아티펙트로부터 발현된 마법인지. 본래라면 초인들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지만 감각 교란 아티펙트는 이런 때에 쓰라고 있는 것이었다.

“······.”

 로엘은 딱히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그의 전투방식은 너무 눈에 띄어서 이런 상황에선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의 정체가 들킬 우려는 둘째치고, 그의 무구는 대외적으로 제국의 특수집단이 사용하는 물건이라고 알려질 예정이었다.

 유적에 침입한 ‘괴인’이 ‘제국’과의 연결점이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알려지는 것은 곤란했다. 그러니 그만은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상황을 차분히 관조하다가, 왕국의 병력이 빈틈을 찾아 슬금슬금 접근해 오면 그쪽을 향해 마력 압축체가 담긴 주먹만 한 구체를 슬쩍 던지기만 했다.

 물론 외견상 아무런 특색도 없는 마력 폭탄이었다. 이 정도는 사용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콰앙! 콰아아앙!

“으으.”

“저쪽에 가만히 서 있는 자가 이들의 수괴인가?”

 그런데 의외로 그런 로엘의 모습이 병사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괜히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 게, 아무리 봐도 강력한 괴인들의 수장이 여유롭게 상황을 관조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레인은 한참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몰아붙이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콰드드드드!

 레인의 검격이 자작이 휘두른 망치와 충돌해 기음을 자아냈다. 원래라면 중량 때문에라도 검이 밀려나야 하는 상황이건만,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레인의 실력이 자작에 비해 우위에 있기에 빚어진 현상이었다. 자작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문제는 시간이군. 장기전으로 돌입하는 건 곤란하다.’

 현재 상황에서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쪽의 전력이 알려진 이상, 시간이 지날수록 병력이 충원될 테니까.

 그리고 르우벤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문제였다.

 심지어 그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특색이 두드러지는 힘은 자제해가며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무려 초인을 상대로. 보니 보는 쪽이 더 신경이 쓰였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플리퍼 자작을 제거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빠르게 포기하고 길을 뚫어 달아나는 것이 옳았다.

 문제는 플리퍼 자작이 초인의 영역에 이른 무인이라는 것. 즉, 전신에 기막을 두를 수 있는 강자라는 점이었다. 손쉽게 몰아붙일 수는 있었지만 끝장을 내는 것은 시간을 조금 필요로 했다.

‘심지어 가진 힘을 제한해가며 싸우기까지 해야 하니.’

 특색이 두드러지는 무공의 활용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 그것 또한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다.

 이 시기의 플리퍼 자작은 초인의 대열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량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지만 레인 또한 스스로의 능력을 어느 정도 봉인해가며 싸워야 했기에 그것이 상쇄되어 버렸다.

‘어떻게 할까.’

 말했듯, 그냥 플리퍼 자작은 포기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렇지만 레인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는 악인인 그를 살려두는 것도 찜찜했고, 무엇보다 르우벤에게 면이 서질 않게 되니까.

‘결론은 하나인가.’

 일순간이라도 균형을 무너뜨릴 만한 변수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크레틸 자작과의 일전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단숨에 상황을 반전시킬 정도의 변수를 만들어낼 필요성이.

‘이 상황에선 순간적인 합공을 통한 균형 무너뜨리기 정도가 적당하려나.’

 생각을 마친 레인이 곧바로 주위에 시선을 돌렸다. 마침 왕국의 병사들에게 마법을 쏟아내던 밀리아와 눈이 맞았다.

 그가 눈짓으로, 그림자의 움직임으로 무언가 의사를 전하자 그녀가 그것을 알아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빛의 해일(A tidal wave of light)>.

 터져 나오는 대범위 마법. 거대한 빛의 파도가 주위를 휩쓸었다. 해일은 병사들의 진형은 물론, 레인과 자작이 맞부딪치고 있는 영역까지 단숨에 침범해 들어갔다.

“흑아.”

 미리 그것을 알고 있었던 레인은 곧바로 그림자로부터 발판을 뽑아내 신형을 띄워 올렸다. 그러나 플리퍼 자작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급히 해머를 휘둘러 마법을 받아쳤다.

 콰과과과과과!

“크으윽!”

 바로 직전까지 레인의 압박을 받아내고 있던 자작이다. 급격하게 자세를 전환하느라 마법을 수월하게 걷어낼 수가 없었다. 그가 길게 족적을 남기며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레인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천근추로 빠르게 대지에 내려서 자작의 복부를 향해 침투경. 한 번에서 그치지 않고 이격, 삼격까지.

 텅! 텅! 텅!

 자작의 허리가 확 하고 굽어졌다.

 지체 않고 연격. 우선 돌려차기로 턱을 가격해 머리를 뒤흔들었다.

“자, 그쪽은 더 접근하지 말고.”

 그 와중 눈치 빠른 로엘은 밀리아가 강력한 마법을 발현하느라 생긴 빈틈을 메웠다. 그가 마력 폭탄을 이곳저곳에 뿌려 병사들의 움직임을 저지시켰다.

“비, 비겁한!”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연격에 적중당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 자작이 이를 부득 갈며 내뱉었다.

“비겁?”

 콰앙!

 레인의 어퍼컷이 자작의 상반신에 제대로 적중했다.

“커억!”

 레인은 아예 무기를 내버린 상태였다. 자작과 같은 동공 수련자에겐 이편이 더 효율이 좋았으니까.

“2대 1이 비겁하다는 건 나도 동감하긴 한다만, 적어도 힘과 권력을 이용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는 것보단 덜 비겁한 것 같은데.”

 그가 가면 아래서 자작을 비웃었다. 자작이 그것을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무, 무슨 소릴!”

“그리고 딱히 2대 1이 아니었더라도 원래 내가 이기는 싸움이야.”

“크윽! 헛소리 마라!”

 승부의 추는 금세 기울었다.

 플리퍼 자작은 형편없이 밀려나다 결국 무기를 놓치고, 다리가 무너져 휘청였다. 레인은 그사이에 검을 다시 주워들고 그것에 검강을 부여해 크게 휘둘렀다.

 촤악!

 자작의 양팔이 허공을 날았다.

“받아.”

 레인이 자작의 배를 걷어찼다. 자작이 처참하게 바닥을 굴렀다.

 오로지 시간을 끄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전투를 진행하고 있던 르우벤. 자작의 신형은 그의 발 앞에서야 멈췄다.

[고맙다.]

 르우벤이 가면 아래서 섬뜩하게 웃었다.

 그가 주위에 강력한 방어막을 둘렀다. 그와 자작 두 사람만이 바깥과 격리된 공간 안에 남았다.

“젠장! 결계사의 이능까지 가진 녀석이었나!”

 한참 르우벤과 교전을 치르다 방어막 바깥으로 밀려난 거검의 사내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저 화계 마법을 다루는 까다로운 타입의 마검사인 줄로만 알았더니, 설마 이능의 힘까지 갖추고 있었을 줄이야!

 물론 그것은 사내의 착각이었다. 르우벤에게 이능의 힘 같은 것은 없었다.

 쾅! 쾅!

 바깥에서 장벽을 두드리는 소음이 들려왔지만 르우벤은 무시했다. 어차피 레인이 알아서 저지해줄 터.

 그의 증오 섞인 시선에는 절망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플리퍼 자작만이 담겨 있었다.

 그가 자작과 시선을 맞춰 쪼그려 앉은 채 말했다.

[원수를 갚으러 왔다.]

“무, 무슨 원수를 갚겠다는 말이냐!”

[잘 생각해 봐라. 네가 저지른 죄가 있을 텐데.]

 자작이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정말로 억울해서 짓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짐작 가는 일이 너무 많아 그중 어느 것을 말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르우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어느 병사가 놓친 창 한 자루를 바닥에서 주워들었다.

“뭐, 뭘 하려고?”

[네가 굉장히 좋아하는 일이 있지 않나. 성장하지 않은 어린 육신에, 크기가 맞지도 않는 물건을 사정없이 찔러넣는 것. 비슷한 경험 한 번 시켜줄까 해서.]

“안 돼! 제발!”

[넌 네게 납치된 어린아이들이 안 된다고 외치면 그에 귀를 기울여주었나?]

 퍼억!

 르우벤이 자작을 걷어찼다. 근력 상승 아티펙트로 인해 강화된 일격. 자작이 비명과 선혈을 뱉어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르우벤의 손에 들린 창끝에 관통 마법이 중첩되고 중첩되었다.

 그가 다리를 살짝 벌리고 팔을 뒤로 당겨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정확한 타이밍에 창을 내질러 자작을 아래에서 위까지 꿰뚫어 버렸다.

 촤아악!

 자작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목숨을 잃었다. 마치 꼬치에 꿰인 생선과도 같은 모습으로.

 잔인한 광경에 주위 사람들이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은 구석으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뱉어냈다.

 정작 당사자인 르우벤의 표정은 가면에 가려져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평소 성격을 잘 아는 일행은 그가 가면 아래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가자.]

 르우벤이 짧게 말했다. 일행이 곧바로 쐐기 대형으로 진형을 짰다. 빠르게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서.

“이, 이 악마 같은 놈들! 거기 서지 못하겠느냐!”

 뒤쪽에서 남은 초인 하나가 격분한 얼굴로 거검을 휘두르며 쫓아왔다. 그러나 그 혼자서는 가면 괴인 넷을 동시에 붙잡아 두는 게 불가능했다.

 레인이 전위에서 길을 뚫고 로엘과 밀리아가 견제. 후위에서 르우벤이 추격자를 배제하니 일행을 막아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포위망을 뚫어낼 수 있었다.

“우리보고 악마 같은 놈들이라던데.”

 레인이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그야 타국에 멋대로 잠입해서 멋대로 중요한 유적에 침입하고 나왔으니까. 정체도 안 밝히고.”

 르우벤이 피식, 하고 웃었다.

“심지어 왕국 최대 전력 중 하나를 살해하기까지 하면서 포위망을 뚫어냈지?”

 로엘이 턱을 검지로 톡톡 두들기며 맞장구쳤다.

“어라. 잘 생각해 보니까 악마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레인의 고개가 더욱 기울어졌다. 왕국에 와서 한 행동을 돌이켜 보니 정말로 악마라고 불려도 어쩔 도리가 없을 듯하긴 했다.

“그런데 이걸로 노러츠와 프레퍼가 갈등을 빚게 되긴 하려나.”

“둘이 충돌하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정체를 들키지 않은 것으로 만족하면 되겠지.”

 르우벤의 중얼거림에 로엘이 적당히 답변했다. 사실 그들이 걸친 ‘로브’는 프레퍼의 조직원들이 입고 있던 것을 벗겨낸 것이었다.

 신원을 알 수가 없는 정체불명의 실력자들. 그리고 그들이 입은 로브는 프레퍼의 것.

 굉장히 노골적이기 짝이 없는, 시시한 속임수. 그렇지만 노러츠 왕국 입장에선 정보가 없는 만큼 프레퍼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으리라.

 심지어 ‘괴인들’이 대영웅의 유적에 침입했고 왕국의 초인을 살해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그러할 터였다. 적어도 보여주기식 사건 수사라도 진행해야 할 테니.

 노러츠 왕국과 프레퍼의 충돌이 정말로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기대 정도는 해 봐도 좋지 않을까.

 우우웅!

 더 이상 추격자가 따라붙지 않는 곳까지 다다르자, 르우벤이 아티펙트에 오라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멀리서부터 와이번이 나타나 일행의 눈앞에 내려앉았다.

“키에에에에에!”

 일행이 모두 와이번 위에 올라타자 와이번이 포효를 내지르며 날아올랐다. 이내 일행은 아래에선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위치에 다다랐다.

“이제 돌아가자.”

 르우벤이 와이번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와이번이 기분 좋은 기성을 흘리며 창공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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