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영웅과 악마의 유적(7) (149/249)

 149화. 영웅과 악마의 유적(7)

“온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룡(死龍)이 뿜어내는 브레스가 사위를 휩쓸었다. 일행이 일제히 흩어져 그것을 회피했다.

 치이이이익!

 브레스가 작렬한 바닥이, 벽이, 언데드들이 섬뜩한 소음과 함께 녹아내렸다. 브레스의 주축 성분이 ‘독’이라는 의미이리라.

“후읍.”

 레인이 그림자를 밟고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리곤 사룡의 날개 관절부를 향해 내력 듬뿍 실린 돌려차기를 적중시켰다.

 구우우웅!

 묵직한 파장이 사위를 휩쓸었다. 본 드래곤의 신형이 약간 기울었다.

“그나마 여기가 공동 내부라서 다행이군.”

 지하에 건설되었다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동이지만, 결국은 한정된 공간. 사룡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공중에 뜬 채로 위험천만한 공격을 퍼붓는 본 드래곤. 만일 이 녀석이 일행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상공에 뜬 채로 공격해왔다면 훨씬 더 골치 아팠으리라.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여유롭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마병의 돌진은 제가 막겠습니다.”

<빛의 사슬(Light Chain)>.

 빛으로 이루어진 사슬이 끝없이 늘어나며 달려드는 언데드 기병의 발을 묶었다.

 집요하게 다리를 물고 늘어지는 마법에 말들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진형이 무너져 내렸다.

 쿠와악!

 그 와중, 그냥은 무너지지 않겠다는 듯 일제히 랜스를 투창하는 언데드들. 밀리아가 또 다른 마법을 발현시켜 그것을 막아내려고 하는데, 그보다 빠르게 도움의 손길이 날아들었다.

 콰드드드득!

 십여 개에 달하는 검강이 단숨에 모든 랜스를 깨부숴버렸다. 수많은 파편이 비산해 허공을 수놓았다.

 사룡을 견제하고 있던 레인이 어느새 다시 내려와 밀리아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밀리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곧바로 레인이 거칠게 질주했다. 이쪽으로 달려들고 있는 대형 몬스터의 형상을 띤 언데드를 향해- 

“파검(破劍).”

 내력을 한계치까지 주입한 검을 휘둘렀다.

 압도적인 내력을 견디지 못한 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 파편 하나하나에 깃든 검강이 광범위한 영역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파검. 파검. 파검.”

 연속해서 그림자 속에서 검을 뽑아 들고 휘두르는 레인.

 지난 시간 동안 축적한 방대한 분량의 내력이 지금 이 순간 아낌없이 활용되었다. 언데드의 군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와중, 르우벤은 레인의 빈자리를 대신해 본 드래곤을 견제하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

 본 드래곤이 거칠게 신형을 뒤틀어 목 위에 올라탄 르우벤을 떨어뜨리려 했다. 르우벤은 중력 조작 아티펙트로 신형을 단단히 고정시켜 그것을 위태위태하게 버텨냈다.

“크으. 어지러워 죽겠네!”

 그가 마구 흔들리는 신형을 가까스로 바로 세우며 아티펙트를 작동시켰다.

<성격(聖擊-Holy attack)>.

 제1 던전에서 습득한, 무려 성력을 기반으로 한 힘이 내장된 건틀릿.

 본래라면 아티펙트에 절대 담길 수 없는 힘이 바로 성력이다. 새롭게 얻어낸 이 건틀릿은, 그 일반적인 상식을 통째로 파괴하는 물건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물건이 탄생할 수 있었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리라. 필시 성검을 제작하고 남은 ‘성휘’의 잔여물을 이것의 제작에 쏟아부은 것이겠지.

 한껏 성력을 머금은 주먹이 본 드래곤의 등 위로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본 드래곤은 언데드. 성력은 언데드와 상극의 힘을 지닌 힘이었다.

 본 드래곤이 마치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거칠게 몸부림쳤다. 건틀릿과 충돌한 등 한가운데서부터 광범위한 균열이 쩍쩍 번져나갔다.

 콰앙! 콰앙! 콰아앙!

 흔들리는 신형을 억지로 다잡으며 이격, 삼격, 사격.

“쳇.”

 워낙 동체를 거칠게 뒤트는 탓에 르우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본 드래곤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곤 밀리아의 뒤쪽에서 뭉그적거리고 있는 로엘에게 소리쳤다.

“인마! 넌 왜 그렇게 뒤쪽에서 뭉그적거리고 있······.”

 아니, 소리치려다가 말꼬리가 늘어졌다.

“감사합니다. 밀리아 양. 덕분에 무사히 시간을 벌었습니다.”

 로엘이 빙긋 웃으며 부서진 동체를 복구해 나가고 있는 본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에는, 일렁이고 있는 아공간이.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

 아공간으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포신.

“저게 뭐야.”

 마치 무형검(無形劍)과도 같은, 아니 그 이상의 힘이 결집 되어 있는 거대한 포신을 멍하니 응시하며 르우벤이 중얼거렸다.

‘무사히 장전을 끝마쳤군.’

 로엘이 내심 중얼거렸다.

 이번 관문에 들어서자마자 든 생각은, 무리하지 않고서는 이곳을 통과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다.

 제2 유적의 최종 관문 공략은 제1 유적의 최종 관문 공략과 그 성질이 완전히 달랐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전투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안 또한 당연히 없었고.

 그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 이 가공할 전력이 모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이쪽이 가진 최강의 패를 써먹어야 한다. 그로 인해 상당히 무리를 하게 될지라도. 적어도 로엘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래서 로엘은 다른 각성자들이 전열로 나섰을 때 밀리아에게 접근, 시간을 벌어줄 것을 부탁했다.

 다행히 이곳 공동의 넓이는 제1 유적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넓었다. 배치된 병력이 병력인 만큼.

 한정된 공간에서 몰아치는 공격을 피해 움직이느라 여유가 없었던 제1 유적 가디언과의 전투에 비하면 오히려 어떤 의미에선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밀리아의 도움이 없었다면 안전한 장전은 무리였겠지만.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밀리아가 벌어준 시간 동안 무사히 장전을 마친 그것이 눈을 멀게 할듯한 광채를 쏟아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그것을 가히 재앙이라고 봐도 좋을 광경.

 유적의 시스템에 의해 차근차근 부서진 동체를 복구해 나가고 있던 본 드래곤이 한순간에 비스듬하게 올라온 마력의 기둥에 꿰뚫려 바스러졌다.

 본 드래곤의 표면은 마력포조차 빗겨 가게 할 정도로 강력한 마력장에 둘러싸여 있었다. 웬만한 장거리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레일 건으로부터 쏟아져나온 광채는, 그쯤은 가볍게 무시해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무려 50미터에 달하는 거체의 3분의 1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리는 그 광경은, 전율이 일어날 정도의 시각적인 박력을 지니고 있었다.

“저게 바로 르우벤의 아티펙트에 대응하기 위해 제작한 그 물건인가.”

 레인이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아직 실전에서 르우벤을 상대로 써먹기엔 여러 가지 단점이 엿보였다. 그러나 로엘이라면 오래지 않아 그 단점을 어떤 식으로든 보충해낼 터.

 지금 그 누구보다 긴장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르우벤이 아닐까. 레인은 잠시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왼쪽 배부터 오른쪽 날개까지 통째로 소멸해버린 본 드래곤이 지상으로 추락해 내려왔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언데드가 지면과 충돌하며 굉음을 일으켰다. 레인이 그 광경을 보며 후, 하고 숨을 골랐다.

“해치웠나?”

“그 말만은 하면 안 돼!”

 그런데 르우벤이 갑작스레 레인을 제지하고 나섰다. 레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그러는데.”

“전생에 내가 소속된 용병단에 꼭 네가 한 것과 똑같은 같은 말을 내뱉는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그 말만 하면 쓰러뜨린 줄 알았던 상대가 멀쩡하게 부활하더군.”

“……?”

“단원들은 그 대사를 부활 주문이라 부르곤 했었지.”

 쿠르르르르르르르.

 르우벤의 시선이 향한 끝에는, 다시 움직임을 보이는 거대한 언데드가 위치해 있었다. 거의 반파되다시피 한 본 드래곤이 그나마 멀쩡한 왼쪽 앞다리를 이용해 가까스로 상체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행이 그것을 경계하며 지켜보고 있던 와중, 녀석이 거대한 아가리를 쩍 하고 벌리더니-콰직! 콰드드드드득!

 -근처에 서 있던 언데드 기사를 통째로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역시 부활 주문.”

 언데드의 군세는 어느새 본 드래곤을 호위하는 형태로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방해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콰드드드득.

 콰드드드드드드득.

 그리고 본 드래곤은, 유유자적하게 주위의 언데드 군세를 씹어 삼키며 자신의 본체를 빠른 속도로 복구해 나갔다. 대체 무슨 원리로 저것이 가능한 것인지 일행으로선 감도 잡히질 않았다.

 그리고, 본 드래곤의 동체 표면에 검은 전류가 일기 시작했다.

“야. 저거 분명.”

“흑뢰?”

 그것은, 분명 제1 유적 최종 관문을 수호하던 가디언이 선보였던 것과 같은 능력. 흑뢰(黑雷).

 그 검은 전류가 본 드래곤의 거대한 동체를 전부 뒤덮어 가는 장엄한 광경에, 레인이 저도 모르게 툭 하고 내뱉고 말았다.

“진짜 유적 난이도 한번 미쳐 돌아가는군그래.”

 * * *

“죽는 줄 알았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 제단 앞에 도착한 르우벤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 이것이었다. 그가 파김치가 되어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머지 일행 또한 그다지 상태가 좋지 못했다. 레인은 죽은 듯이 한쪽 벽에 기대고 앉아 운공으로 소모된 기력을 보충했고, 로엘과 밀리아는 각자 입은 부상을 포션으로 치료하기 바빴다.

 끝내 로엘이 일행의 엄호를 받아 재차 레일 건을 본 드래곤에게 적중시킴으로써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레일 건은 흑뢰로 감싸인 놈의 동체조차 단숨에 분쇄시켜버렸다. 아니, 오히려 흑뢰에 뒤덮여 있었기에 한계를 넘어서는 외부의 충격에 한꺼번에 바스러진 것이리라.

 상대가 학습 능력이 없는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혹은 레일 건의 각도가 조금만 어긋났더라면 절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터였다.

“너희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으면 거기서 죽었겠어. 정말로,”

 르우벤이 질린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레인이 없었다면 언데드 대군 중 강력한 개체들을 그렇게 빠르게 제거하지 못했을 터였다.

 나머지 세 사람이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이들이 아니었다면 적을 전멸시키지 못했을 터였다.

 가진 힘의 특성상 일행 모두가 비행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별다른 애로사항이 없었던 것도 컸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전투였다.

 솔직히 웬만한 초월자가 공략을 시도했더라도 순식간에 갈려 나갔을 수준이였다. 일행이 가진 힘의 이질성이 아니었다면 분명 공략을 성공시키지 못했으리라.

 정말로 네 사람이 함께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공략이었다.

“감사의 말이라면 천천히 듣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 정말로.”

 상처 치료를 마친 로엘이 아무렇게나 몸을 뉘며 말했다. 현재도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더욱 적극적이고 격렬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우.”

“…….”

 일행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이제 슬슬 여기도 쭉 돌아봐야지.”

“제1 유적과 구조가 똑같네. 여기.”

 가장 먼저 일행의 시선이 모인 장소는 역시 제단이었다. 그곳에, 새까만 검신을 지닌 장검이 한 자루 꽂혀 있었다.

“그 검은 뽑을 수 있는 건가?”

“어. 이 검은 성검처럼 주인을 가리지 않으니까. 제어하지 못하면 주인을 파멸시킨다는 모양이다만.”

“잘 해봐라.”

 르우벤의 답변엔 살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레인은 적당한 응원만 던지고 방관했다. 그가 알아서 잘할 것이라 여겼다.

“…….”

 막상 제단 위에 올라선 르우벤은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그가 레인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이거 차라리 네가 뽑는 게 낫지 않을까.”

“뭐?”

“나보단 네가 훨씬 잘 활용할 것 같아서.”

 르우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어차피 다른 이들은 검술에 조예가 없으니 논외지만, 레인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라면 르우벤에 비해 마검의 잠재성을 훨씬 잘 끌어낼 수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앞으로 대륙에 몰아칠 재앙에 맞서기 위해선 차라리 자신보단 레인이 이 검을 취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르우벤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 엄청난 출혈임에도.

“필요 없어. 애초에 자아가 깃들어 있다는 시점에서 그 검은 논외야. 줘도 안 써.”

 그러나 레인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그것을 거절했다.

 애초에 그가 ‘성검’을 뽑아볼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그가 전생에 최종적으로 이루었던 경지는, 그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의지의 개입 따위가 있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가 마검을 취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당장은 전력이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았다. 무려 게르반의 유산이 아닌가.

 그렇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놓고 보면 결국은 손해일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레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번 마검의 주인이 되면 죽을 때까지 그 검을 버리는 게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니 레인으로선 마검을 꺼림칙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담백한 레인의 답변에 르우벤이 뻘쭘해졌다. 그가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후우.”

 가만히 검을 내려다보다 심호흡을 한 차례. 이내 확실히 마음을 정한 르우벤이 긴장된 얼굴로 검 손잡이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와 동시에, 손잡이에 달린 보석이 ‘눈’을 떴다. 파충류의 그것과 같은 길게 찢어진 붉은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심령을 옥죄는 울부짖음이, 공동 내부를 크게 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