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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영웅과 악마의 유적(6) (148/249)
  •  148화. 영웅과 악마의 유적(6)

     콰드드드득.

     장장 두 시간에 걸친 전투가 끝났다. 로엘이 마무리 일격으로 그나마 남은 언데드의 잔해를 분쇄했다.

    “후우.”

     일행이 여기저기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그래도 유적 내부인 만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한 사람씩 돌아가며 주위를 경계하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

     쿠르르르릉.

     지금은 막힌 입구의 반대편으로 출구가 생겨났다. 그리로 가면 된다는 뜻이리라.

    “조금 쉬다가 가자.”

     일행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이곳에서 체력을 비축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이만큼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기 적절한 곳이 없었기 때문.

     입구가 막혀서 언데드가 뒤쫓아올 염려도 없고, 공동의 지배자였던 가디언은 당분간 제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분쇄된 상태였다. 이만큼 조건이 충족되는 공간을 언제 다시 들르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유적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바로 컨디션 점검이다. 컨디션이 무너지면 될 공략도 안 된다.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도 중요했다. 특히 현재 공략하고 있는 유적과 같이 끊임없는 전투를 강제하는 유적이라면 더더욱.

     동체의 길이만 30미터에 다다르는 뱀을 아예 갈아버리다시피 하고서야 얻어낸 귀중한 휴식 시간. 일행은 그 귀한 시간을 이용해 먼저 식사부터 했다.

    “…….”

     물론 일행이 쓰러뜨린 뱀은 애초부터 살아있는 개체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뼈가 한데 모여 생성된 언데드였다. 유적의 자가 복구 시스템에 의해 지금도 시시각각 동체를 복구해 나가고 있었다.

     워낙 철저하게 분쇄해놓은 데다 놈의 몸집이 큰 덕분에 복구되기까지의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앞에서 식사하자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지만.

     안색에 변화가 없는 건 레인과 밀리아 정도였다.

    “얼마나 더 가야 하려나.”

     르우벤이 밀 빵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요리를 해 먹기엔 주위 환경이 여의치 않았기에 적당히 보존식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글쎄. 워낙 넓은 유적이라. 어디쯤 온 건지 감이 안 잡히는군.”

    “언데드도 이만큼 상대하고 보니 지긋지긋하다. 입맛이 없어서 지금 내가 빵을 씹고 있는지 가죽을 씹고 있는지 구분이 안 가.”

     르우벤이 질린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뼈 무더기가 여기저기 널린 데다가 공기는 퀴퀴했다. 간혹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가 하면,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유적의 마력에 노출되어 살짝 변이가 일어난 쥐가 돌아다니기도 했다.

     심지어 기둥이나 벽면에는 괴기스러운 벽화가 새겨져 있기까지. 빵이 목구멍으로 넘어 갈래야 넘어가기가 힘든 환경이었다.

    “넌 아무렇지도 않냐. 잘도 먹네.”

     그가 레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레인은 별다른 감흥 없는 목소리로 답변했다.

    “이보다 더한 환경에서 식사한 적도 많아서.”

    “전생에?”

    “어.”

    “…….”

     르우벤이 측은한 눈빛으로 레인을 응시했다. 레인의 기분이 살짝 나빠졌다.

    “그건 그렇고, 확실히 제2 유적은 제1 유적과는 다른 것 같군.”

    “그러게. 제1 유적이 그래도 공략자를 시험하기 위한 무대였다는 느낌이라면, 제2 유적은…….”

    “그냥 침입자를 걷어내려는 의도만이 가득한 것 같더군.”

     레인과 르우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로엘이 피식, 하고 웃었다.

    “대영웅도 참 번거로운 인간이야. 그렇게 게르반의 유산이 풀리지 않길 원한다면 애초에 유적을 건설할 것도 없이 그 유산 자체를 폐기 처분했으면 됐을 텐데.”

    “그도 본질적인 부분은 알고 있었던 거겠지. 정말로 위험한 것은 게르반이 가졌던 힘이 아닌, 그 힘을 휘두르는 당사자였다는 것을. ”

    “그럼에도 굳이 이런 식으로 유적을 건설하다니.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마음이란.”

    “······.”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게르반과 맞붙은 인간이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만도 아니다만.”

     말을 마친 로엘이 하품을 내뱉으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먹고 바로 움직이자. 여기선 오래 쉴 수가 없을 것 같으니. 피로도가 한계에 다다르기 전까진 공략을 끝내야지.”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레인이 남은 빵 조각을 입으로 털어 넣으며 물었다.

    “그런데 제2 유적을 돌파하면 대체 뭘 얻을 수 있는 거지?”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게르반의 유산은 흑마법의 정수가 담긴 무언가일 가능성이 높았다. 마법서든 연구일지든. 마법사라면 만금을 주고서라도 가지고 싶은 것들이겠지.

     그러나, 그렇기에, 레인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르우벤이 대체 무엇을 노리고 이 유적을 공략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전부터 르우벤은 이 유적으로부터 반드시 얻어내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말해왔다. 지금의 그가 가진 아티펙트들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흑마검사의 유산이라 해봐야 대부분은 르우벤이 제대로 써먹지 못할 물건일 것임이 분명했다. 그가 지금에 와서 흑마법을 심도 있게 파고들려 할 리도 없으니.

     대단한 아티펙트가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들이 현재 르우벤이 보유하고 있는 아티펙트를 초월할 정도일까?

     게다가 애초에 그 부분은 유적을 완전히 공략하기 전까진 확인할 수도 없는 사항이다. 전생에 르우벤은 제2 유적엔 발도 들여놓지 않았으니.

     그러니 르우벤이 얻어내려 하는, 지금까지 모아온 아티펙트들을 초월하는 ‘무언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닐 터였다. 그러면서도 이 유적에 반드시 잠들어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물건일 테고.

    “조금만 머리를 굴려 보라고. 나는 이 유적을 공략해 본 적이 없어. 그러니 어떤 보상이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내가 그 존재를 확신하고 노릴만한 물건이 뭐가 있겠냐.”

    “?”

    “왜, 있잖아. 게르반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자, 대영웅이 수많은 이종족들의 힘까지 빌려 성검을 제작하게 만든 원인.”

     르우벤은 큭큭 하고 웃었다.

    “설마.”

    “마검(魔劍)이지.”

     * * *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렇게 수천 단위의 언데드를 부리는 게 가능한 건가. 강력한 개체까지 섞인 대군을.”

     흑색 마력 갑주를 걸친 본 트윈 헤드 오우거(Bone twin head ogre). 레인이 그 거대한 동체를 진각을 밟아 통째로 분쇄하며 물었다.

     이전에 영지전을 틈타 백작령에서 학살을 일으키려 했던 프레퍼의 조직원들. 그들이 사자(死者) 소환 마법으로 불러낸 언데드는 겨우 두 개체에 불과했다. 그 숫자의 마법사들이 힘을 모았음에도.

     그런데 이곳의 언데드들은 정말로 격이 달랐다. 양과 질 모두가. 마법사 본인도 아니고 그 마법사의 유산만으로 돌아가는 유적이 이 정도라니, 기가 찰 일이었다.

     르우벤이 주위에 띄워둔 일곱 개의 검으로 곤충형 언데드를 일일이 쳐내며 답변했다.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다른 거겠지. 역사를 보면 게르반이 부린 언데드 대군은 수십만에 달했다고 하니까. 이건 오히려 약과지.”

     실제 그가 지휘한 군대는 백만 단위를 넘어섰다고 전해진다. 언데드는 언데드대로, 굴복한 인간은 인간대로 부렸으니까.

     전 대륙이 그의 손아귀에 떨어질 뻔했다는 건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하르넴이 그만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모든 왕국과 종족을 규합하는 데 온 힘을 쏟은 것 또한 괜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고.

    “그리고 현시대에도 만 개체 이상의 언데드를 부릴 수 있는 인재가 한 사람 있어. 정확히 말해서 지금은 아니고, 대충 1~2년 뒤 즈음에 그 경지에 오르는 녀석이.”

    “음?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바닥에서 몰려드는 지네형 언데드에게 산탄총을 쏴 갈기던 로엘이 반응했다.

     그만한 인재라면 일단 영입 대상으로 고려해둘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어째서 미리 이야기해주지 않은 것일까.

    “어차피 죽여야 하는 녀석이거든. 프레퍼의 간부라서.”

    “…….”

    “여기 말고도 대륙 어딘가에 게르반의 유산 일부가 잠든 장소가 있는데, 그곳을 발견했다고 했던가? 쯧, 그런 게 왜 그놈의 손에 들어간 건지.”

    “그런 건 꼭 질 나쁜 놈들 손에 들어가더라.”

    “내 말이. 심지어 재능이 넘치는 녀석이라 더 질이 나빠. 그 녀석, 나와 두 살밖에 차이 안 난다고. 난 전생에 그 녀석 나이였을 때 뭘 했더라.”

    “괜찮습니다. 그자가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여러분에게 미치진 못할 테니까요.”

     밀리아가 수십에 달하는 빛의 탄환을 사방으로 뿌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확신에 찬 어조였다.

     너무나도 진지한 그녀의 발언에 르우벤이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고마워, 밀리아. 네 말은 항상 힘이 돼.”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밀리아의 답변은 간결했다. 표정에서도 그다지 감정이 엿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르우벤은 그녀가 내심 기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행은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언데드를 격파하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길이 이리저리 얽힌 탓에 좀 헤매기도 했지만 이동 속도가 워낙 빨라 저녁 즈음에는 최후의 관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 * *

    “저 문인 것 같지?”

    “어. 제1 유적에 있던 것과 똑같은 문이네. 저 방 너머에 유적의 보상이 있을 것 같다.”

     레인과 로엘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저건 또 뭐야.”

     그 와중 르우벤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 옆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마주친 언데드들 중 가장 거대하고 위압적인 존재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 저걸 쓰러뜨리지 않으면 여길 지나가는 건 무리겠지.”

    “그러게. 저 녀석이 발꿈치만 가져다 대도 문이 완전히 가려지겠는데.”

     일행이 도달한 장소는 거대한 공동이었다. 지하 유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공간. 이렇게 깊은 지하에 어떻게 이만한 공간을 만든 것인지 놀라웠다.

     거기다 이렇게나 넓은 공동을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도 없었다. 왜 무너지지 않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분명 마법적인 조치가 되어 있는 거겠지.’

     로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공간으로부터 마력포를 뽑아 들었다. 우선 상대가 이쪽을 경계하고 있지 않은 때에 원거리 공격을 먹여볼 생각이었다.

     슈왁!

     파공음이 울렸다. 빛의 기둥이 거대한 언데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런데, 언데드에게 공격이 닿기 직전, 공격의 궤도가 휘어졌다. 무언가의 역장에 감싸여 있는 것인지, 휘어진 지점에 일렁이는 형상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콰앙!

    ‘그것’의 날개 끄트머리가 부스러졌다. 그리고, 충격에 반응한 ‘그것’이 머리를 들었다.

    ‘그것’은 일행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그리곤 포효를 내질렀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윽.”

    “으윽.”

     생각지도 못한 압박감에 일행이 모두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본래 언데드는 성대가 없어 이런 소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할 터. 확실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이전의 거대 뱀이 마력의 파장을 통해 소음을 전달했다면, 이 녀석의 것은 본질적인 부분부터가 달랐다.

    ‘그것’이 거대한 날개를 쫙, 하고 펼쳤다. 그리곤 뼈가 덜그럭거리는 불쾌한 마찰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미쳐 돌아가는군.”

     제어하는 주인도 없는 언데드의 크기가 50미터를 넘어가다니. 단순히 거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 존재감이 지금까지 접해본 모든 언데드를 통틀어 최강이었다.

     이건 게르반이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라는 반증일까, 그게 아니면 유적 제작자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장인이라는 의미일까.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것’이 방금 전의 포효와는 또 다른 기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이번엔 드넓은 공동의 바닥에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수많은 손이 바닥을 뚫고 튀어나왔다. 물론 그 모두가 뼈밖에 남지 않은, 희고 앙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이어 그들의 동체가 바닥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곱게 타일이 깔려있던 공동 내부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수많은 언데드가 전투태세를 갖췄다.

     어떤 녀석은 칼과 방패를 장착했다.

     또 어떤 녀석은 장창을 들고 주변 언데드들과 함께 진형을 짰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흑색 갑주를 착용하고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말 위에 올라 랜스를 그려 쥐기까지 했다.

     애초에 인간의 형상이 아닌 녀석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주로 대형 몬스터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그 숫자만 천이 넘어가는 대병력. 그야말로 기가 차다 못해 숨이 막히는 광경.

     모든 병력이 진형을 갖추고 서자 ‘그것’이 재차 포효를 내질렀다. 마치 군대의 사기를 높이는 듯한 행동.

     르우벤이 그 광경에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본 드래곤(Bone Dragon)에 제대로 병과가 조합된 대병력이라니. 아주 미쳐 돌아가는 문지기 군단이군 그래.”

     쿵! 쿵! 쿵! 쿵!

     대규모 병력이 진군해오기 시작했다. 열과 오를 맞춰서.

     그러자 지체 않고 마주쳐 달려 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레인이었다.

     순식간에 적진에 이른 그가 선두에 선 기병의 머리 위에 안착, 진각을 밟았다.

     콰아아앙!

     천근추로 무게를 배가시켜 기병의 동체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레인.

     굉음이 울리고 거대한 파동이 퍼져 나갔다. 근방의 기마병들이 일제히 중심을 잃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저 녀석은 세상에 무서운 게 없나.”

     르우벤이 뒤따라 신형을 날리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맞붙어야 하고 도망갈 곳도 없긴 하다. 그렇지만, 저만한 위용을 마주한 상황이지 않은가. 인간인 이상 조금이라도 위축될 법도 한데 레인에게선 전혀 그런 기색을 엿볼 수가 없었다.

    ‘저런 타입이 동료일 때엔 든든하긴 하지.’

     무모해 보였지만, 한편으론 듬직한 느낌이 들었다. 르우벤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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