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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영웅과 악마의 유적(1) (143/249)

 143화. 영웅과 악마의 유적(1)

 두 현자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고 며칠이 지났다.

 적룡대가 도착했다. 그녀들이 데려온 식솔들은 로엘이 미리 준비해 둔 숙소에 들어섰다. 그리고 일행은 본격적으로 정비 기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레인의 제자들과 적룡대, 그리고 로엘의 전투팀과 르우벤이 끌어들인 인재들. 그들이 주기적으로 서로 대련을 벌였다. 레인을 비롯한 강자들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다.

 레인은 각성자들과 주기적으로 대련을 벌이는 한편 르우벤에게 무공의 기초를 가르쳤다. 그리고 로엘이 붙여준 가정교사와 함께 행정학부에 입학할 준비에 열중했다.

 기본적으로 그의 머리는 굉장히 비상했다. 그 머리를 ‘무공’이라는 측면 이외로는 굴리길 싫어해서 그렇지. 작정하고 학문에 매달리면 평균 이상의 결과는 낼 수 있었다.

 르우벤은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입학을 위해 공부에 힘쓰면서 가끔씩 외출을 다녔다. 인재 영입을 목적으로. 그가 움직이면 항상 밀리아가 따라붙었다.

 참고로 그는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아티펙트를 이전보다 훨씬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주기적으로 강자들과 대련을 하다 보니 절로 숙련도가 늘었다.

 그는 가끔씩 노러츠 왕국을 살펴보러 가곤 했는데, 얼마 뒤에 열릴 대영웅의 유적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최종적으로 얻어내야 할 아티펙트가 있었다.

 로엘은 사업을 두 차례에 걸쳐 더 크게 확장했다. 그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동시에 황제의 지시에 따라 제국의 뒷세계도 여러 차례 돌아다녀야 했기에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참고로 플로라는 결국 로엘의 수행원이 되었다. 그녀의 결정에 적룡대원들은 야유하면서도 격려해 주었다. 애초에 용병이 자신의 직업을 관두는 일은 흔한지라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카트란은 내면의 자아와의 소통이 점점 원활해져 갔다. 최근엔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그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아를 침식당할 위협에선 벗어났다. ‘그자’ 또한 애초에 주된 인격이라 할 수 있는 카트란을 존중하고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와중이었다.

 * * *

“너희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어.”

 르우벤이 불쑥 말했다. 레인과 로엘이 한참 카트란을 상대로 자극(괴롭힘)을 가하고 있던 와중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이전해 말했잖아. 도움을 구할지도 모르겠다고.”

“유적 공략?”

 분명 르우벤이 이즈음에 대영웅의 유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고 했었다. 레인과 로엘은 그 사실을 상기해 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 많이 흘렀군.”

 레인이 르우벤과 처음 대면한 날로부터 벌써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각성자들 모두가 16살, 즉 성년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얼마 있지 않아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될 터였다. 정비 기간 동안 워낙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 감각이 희미해져 있었다.

“너 혼자서는 공략이 힘들 것 같아?”

“전생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까진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그 ‘다음’이 문제일 것 같아서.”

 원래의 역사에서 대영웅 하르넴의 유적을 정복한 것은 르우벤이 속한 용병대였다. 자신이 열광하는 분야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여정이었기에 르우벤에게 있어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이었다.

 사실 그 당시의 르우벤은 굉장히 흥분해 있었다. 초인적인 기억력을 발휘해 유적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기록하고 그것을 전부 암기하기까지 했다.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참고로 그 당시 유적을 공략함으로써 용병단을 이끄는 아름다운 단장은 ‘성검’을 획득했다. 그로 인해 ‘영웅’이라는 칭호가 따라붙게 되었고.

“물론 도와주면 대가는 확실하게 지불할 거고.”

“난 네게 빚이 있으니 도와야지.”

 먼저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르우벤에게 제자들의 목숨을 구함받았다. 그가 르우벤의 부탁을 거절할 리는 없었다.

“좋아. 대영웅의 유적은 나도 관심이 많으니까. 성과물 배분만 제대로 해 준다면야.”

 로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이런 좋은 경험을 놓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무려 대륙의 역사서 한 페이지를 장식한 영웅의 유적이 아닌가.

“언제 갈 건데?”

“모레 출발할 거야. 준비물은 딱히 필요 없으니 그냥 가면 돼.”

 정말로 준비물이 필요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 르우벤이 축적한 방대한 아티펙트라면 그 모든 준비물을 대체할 수 있을 뿐.

 레인과 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카트란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아니, 난 안 갈래.”

 카트란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내면에 잠든 힘은 분명 강력하지만, 상대가 생명체가 아니라면 무용지물이었다. 유적은 그와는 영 상성이 좋지 못했다.

 * * *

 세 각성자와 밀리아가 와이번의 등에 올라 노러츠 왕국을 향했다.

“그래서, 유적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 건데?”

“조금 귀찮은 장소에.”

“?”

“노러츠 왕국의 수도에 대영웅 하르넴을 기념하는 기념비와 동상이 세워진 공원이 있어. 유명한 관광 명소지. 그 정중앙에서부터 은폐된 유적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내거든.”

 일국의 수도. 심지어 유명한 관광 명소라니. 그런 곳에 생긴 유적은 필시 국가의 통제를 받는다.

“원래의 역사에서 노러츠 왕국은 수차례에 걸쳐 탐사대를 파견하지만 모두 실패하게 돼. 그리고 이후에는 누구든 유적을 탐사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물론 그 개방이라는 건 국가에 허가를 받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겠지?”

“뭐, 그렇지.”

 뻔한 이야기다. 무려 대영웅의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을 공략자에게 흔쾌히 넘길 국가가 있을 턱이 있나.

 열심히 유적을 공략해 봐야 그 탐사대는 이후 ‘왕국 소유’의 유적이라는 명목하에 대부분의 유물을 강탈당할 터다. 국가 상층부가 썩을 대로 썩은 노러츠 왕국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원래 역사에선 네가 속한 용병단의 단장이 그 유적을 공략했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단장도 허가를 받고 들어갔지. 그것 때문에 유물을 대부분 강탈당했고.”

“그런데 성검은 빼앗기지 않은 건가?”

“성검은 스스로 주인을 정하는 물건이거든. 단장이 그대로 소유할 수밖에 없었지. 단장의 성검 소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귀족 놈들이 지었던 표정이 가관이었는데.”

 르우벤은 큭큭 하고 웃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도 왕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나?”

“그럴 리가. 그 빌어먹을 놈들 배 불려줄 일을 왜 하겠어?”

“그럼?”

“당연히 무단침입해야지. 막아서는 놈들은 강제로 뚫어내고.”

“그럴 줄 알았다.”

 이전부터 노러츠 왕국 상층부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한 르우벤이었다. 전생에 그의 용병대를 몰살시킨 놈들이니 당연했다. 이렇게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 가면 막아서는 놈들도 몇 없을 거야. 정확히 유적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에 맞춰서 도착할 테니.”

“빠르게 털고 빠지자는 이야기군?”

“그렇지. 이거 하나씩 받아.”

 르우벤이 일행에게 하나씩 무언가를 내밀었다.

“가면?”

“우리 정체는 숨겨야지. 일단 떳떳한 일을 벌이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알록달록하냐.”

 레인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취향과는 영 거리가 먼 가면이었다.

“…….”

 로엘은 로엘대로 굉장히 미묘한 표정이었다.

 각각 빨강, 노랑, 초록, 파란색을 띤 가면. 색색의 바탕에 눈가는 검은색으로 치장된 가면을 보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파O 레인저?’

 솔직한 감상으로 굉장히 착용하기 싫었다. 그나마 분홍색 가면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러나 르우벤은 진지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품이 넉넉한 로브까지 네 벌이나 꺼내 들었다.

“다들 이것도 걸쳐. 이왕이면 완벽하게 가려야지.”

‘그나마 쫄쫄이 슈트는 아니라서 다행이군.’

 로엘은 로브를 받아들며 그런 생각을 했다.

 * * *

 대영웅을 기리는 비석과 동상이 세워진 유명한 관광지, 세르시움 공원.

 관광객, 연인, 장사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그곳에 이변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갑작스러운 지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당황해 주저앉았다.

 그리고, 공원의 중앙.

 비석과 동상이 세워진 바로 그 장소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기겁해서 그 장소로부터 달아났다.

 균열은 이내 거대한 구멍으로 화했다. 그 위에 놓인 비석과 동상. 거목과 관광안내문 등이 전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

 우우우웅!

 구멍으로부터 마법진이 떠올랐다. 무려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마법진이.

 마법진은 세차게 발광하더니 이내 쩍 하고 금이 갔다. 그리곤 순식간에 형체를 잃고 구멍 속으로 다시 흡수되듯 사라졌다.

 쿠구구구구궁!

 잠시 멈췄던 지진이 다시 일어났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거대한 구멍을 지켜보는 가운데,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이 구멍으로부터 지상으로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수명을 다한 마법진. 그로 인해 은폐되어있었던 유적의 입구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내 건축물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그그그긍.

 그리고 그 정면에 마치 ‘출입구’처럼 보이는 거대한 문이 열렸다. 돌벽이 혼자서 옆으로 밀려나는 광경에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유적!”

“유적이다!”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유적이라면……!”

“하르넴! 대영웅 하르넴의 유적이다!”

 사람들이 경악에 찬 탄성을 토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의 병력이 소란스러운 군중을 뚫고 나와 유적을 둘러쌌다. 기사로 보이는 이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사태의 중요성을 인식한 상부에서 곧바로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공중에서 그 장면을 담담히 응시하는 네 사람.

“왜 기다리고 있어? 더 병력이 충원되기 전에 진입하는 게 낫지 않아?”

“안타깝게도, 아직 유적이 완전히 개방되질 않았어.”

“음? 저기 출입문 열린 것 아닌가?”

“문이야 열리긴 했지. 그런데 내부 장치는 하나도 작동하지 않고 있어. 이대로 진입해 들어갔다간 유적이 구동하기 전까지 지하 통로 입구에 가로막힌 채 왕국 병사들과 교전을 치러야 해.”

“그런가. 그럼 그 ‘구동’ 여부는 어떻게 파악하는데?”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 마침 시작하는군.”

 르우벤의 말에 레인이 유적을 집중해서 살폈다.

 우우우우우우웅.

 이내 레인은 유적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유적의 표면에 은은한 빛이 어리고 있었다.

“이제 진입하면 돼.”

 르우벤이 곧바로 와이번을 조종했다. 와이번이 기성을 내지르며 지상으로 착륙하기 시작했다.

 * * *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유적을 둘러싼 병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었다. 갑작스레 위협적인 몬스터인 와이번이 등장한 것만 해도 당황스러운 일인데, 그 등에서 네 인영이 내려서기까지 했으니 당연했다.

“키에에에에!”

 르우벤은 병사들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와이번을 날려 보냈다. 이후 자신이 부를 때까지 적당히 숨어 있도록 지시했다.

“정체를 밝히라고 했을 텐데!”

 한 기사가 앞으로 나서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일행 중 그 기사의 외침에 반응해주는 자는 누구도 없었다.

 일행이 곧바로 유적 내부로 진입하려 하자 기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곧바로 동료 기사 셋이 따라붙었다.

 기사들이 뽑아 든 검에는 완연한 검기가 맺혀 있었다. 그들이 제대로 된 실력자임을 증명하듯 강맹한 기파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상대가 좋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앙!

 붉은 가면을 착용한 괴인이 뒤돌아 진각을 밟았다.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묵직한 파장이 퍼져나갔다. 기사들이 일순 신형을 휘청거렸다.

 촤악!

 이어서 저 홀로 공중에 떠오른 검이 네 명의 기사를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헉!”

“아티펙트?!”

 기사들이 들고 있던 검이 일제히 반 토막이 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기사들이 기함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네 기사를 무력화시킨 검은 유유히 허공을 유영해 붉은 가면을 착용한 괴인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

 붉은 가면의 괴인이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곧바로 신형을 돌렸다. 그와 교대하듯 옆에 서 있던 푸른 가면의 괴인이 슬쩍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그가 소매 안쪽을 잠시 만지작거렸다. 다른 이들에게 보이진 않았지만,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쓰다듬은 것이었다.

 괴인이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마치 쇠를 긁는 듯한 거북한 목소리였다.

[우리를 쫓지 마라. 너희 따위가 쫓아 와봐야 개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우르르르릉.

 괴인의 목소리에 담긴, 마치 심연의 악마가 속삭이는 듯한 압박감이 기사들과 병사들을 짓눌렀다.

 그 말만을 남기고, 네 명의 괴인은 유적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누구도 그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기사와 병사,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괴인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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