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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바엘른 마탑(2) (141/249)
  •  141화. 바엘른 마탑(2)

     레인이 검을 내던졌다. 검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 로카인의 배후를 노렸다.

     로카인이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 지난번에도 보았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기예였다.

     공간역장을 염두에 둔 것인지 검을 중심으로 막대한 기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로카인은 검이 자신을 찌르기 전에 손가락은 한 차례 튕겼다.

     우웅!

     검 바로 앞쪽에 검은 구멍이 생성됐다. 검이 그 안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르우벤의 뒤쪽에 생성된 검은 구멍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우왓!”

     르우벤이 기겁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공간의 현자가 힘을 행사하는 장면을 직접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 그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다행히 레인이 검을 제때 멈췄다. 검이 르우벤의 얼굴 코앞에서 우뚝 정지했다.

     로엘이 포격을 날렸다. 로카인이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포격이 로카인의 앞쪽에서 빨려 들어가 등 뒤에서 재출현했다. 그 방향에는 르우벤이 위치해 있었다.

    “이것들아! 좀!”

     콰드드드득!

     르우벤이 급히 전격 마법을 발현했다. 포격이 마법과 거칠게 충돌해 소음을 일으켰다.

     그 와중 레인이 로카인에게 접근해 검격을 내질렀다. 달려드는 속도를 이용한 찌르기. 로카인이 그것에 반응해 또다시 공간의 문을 열었다.

    “윽.”

     로카인을 향해 찔러 넣은 검이 갑자기 눈앞에서 튀어나왔다. 레인이 억지로 고개를 뒤틀어 검격을 피해냈다. 뺨에 생채기가 생기고 피가 흘렀다.

     곧바로 검을 빼낸 레인이 재차 그것을 휘둘렀다. 그러자 또다시 검이 휘둘러진 경로로 검은 구멍이 생성되었다.

     이번엔 레인의 대처도 기민했다. 곧바로 반대쪽 손으로 세침을 떨어냈다. 세침이 검을 쥔 오른팔 관절에 박혀 들었다.

    “크읍.”

     레인의 관절이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였다. 궤도가 틀어진 검이 공간의 문을 비껴 지나갔다. 곧바로 검을 회수해 사선으로 휘두르는 레인.

     검 표면에 폭급한 기운이 결집 되어 또 다른 검의 형상을 이뤘다. 백열하는 검이 로카인의 몸을 통째로 훑고 지나갔다.

    “!”

     레인이 신형을 한 차례 휘청거렸다. 인간의 몸을 베었다면 응당 있어야 할 ‘저항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그가 급히 로카인이 서 있는 자리를 확인했다. 그러자 놀랄 만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검으로 베인 부분에 상처 대신 일렁이는 형상이 남아 있었다.

     초인의 감각을 지닌 레인은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로카인은 환영 같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저 광경은 대체 뭐란 말인가.

     딱.

     로카인이 씩 하고 웃는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레인의 눈앞에 사람 얼굴 크기의 ‘균열’이 생겨났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중에, 마치 유리가 깨진 것만 같은 균열이.

    ‘이건!’

     레인이 급히 몸을 뒤로 뺐다.

     이 또한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기술이었다. 이전에 펠라키 산맥에서 암살자들을 상대하면서 사용했던 마법. 다만 균열의 크기가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대폭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폭발에 직격당하진 않았으나 그 여파에 휘말린 레인이 훨훨 날아갔다. 한참을 날아가고서야 그림자에서 솟아올라온 줄기를 발판 삼아 대지에 내려섰다.

     그 사이 르우벤이 주위를 통째로 휩쓰는 범위 마법을 발현시켰다. 화염의 파도가 주위 사방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러나 화염의 파도는 로카인의 주위만큼은 침범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침범해 들어간 화염이 로엘의 머리 위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로엘이 신형을 빼내며 라이플을 격발했다. 최근 또다시 개량한 물건으로 그야말로 한계까지 압축한 마력 탄환을 격발하는 물건이었다.

     그만큼 내구도가 형편없기에 두어 발만 격발해도 망가져 버리는 물건이기도 했다. 재고는 충분히 비축해 뒀기에 그 부분은 상관없었지만.

     공격 범위는 별로지만 힘의 밀집도가 높았다. 착탄 지점에 적용되는 위력만큼은 포격조차 넘어섰다. 심지어 무색 무형이라 상대가 알아차리는 것조차 힘들었고.

     워낙 은밀한 공격이라 로카인조차 대처가 조금 늦었다. 다른 대응을 할 틈이 없어 신체를 둘러싼 공간역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쩌저저저저적!

     강화된 역장에 사정없이 금이 갔다. 그러나 그뿐. 정작 로카인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로엘이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곧바로 로카인의 보복 공격이 이어졌다. 그가 손가락을 연속해서 튕겼다.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콰광! 콰과쾅! 콰과과과과과과과광!

     로엘이 지그재그로 신형을 움직이며 연속해서 따라붙는 균열들을 회피했다. 아슬아슬하게 폭발 범위 사이사이를 넘나들었다.

     * * *

     세 소년과 로카인은 격렬하게 맞붙었다. 주로 소년들 쪽이 위기 상황을 겪는 일이 많았지만, 모두가 초인의 영역에 다다른 강자인 만큼 잘 견뎠다.

     세 소년이 계속해서 치고 빠지면 로카인이 그것을 막아내고 반격했다. 그 박진감 넘치는 장면은 10분이 넘도록 계속됐다.

     그러나 세 소년이 필사적으로 유지해온 ‘균형’은 아차 하는 순간 깨져버리고 말았다.

     르우벤이 용의 비늘(Dragon Scale)에 둘러싸인 손으로 공간역장을 내려찍었다. 레인의 투창이 반대쪽에서 로카인을 노렸다.

     로카인이 손가락을 좌에서 우로 한 차례 그었다. 그러자 창이 모종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 르우벤의 손과 거칠게 충돌했다.

     카드드드득!

     그렇게 대치 상황을 형성시킨 뒤, 로카인이 연속해서 손가락을 튕겼다. 순식간에 르우벤의 주위 사방을 ‘균열’이 포위해버렸다.

    “젠장!”

     르우벤이 창을 쳐내고 곧바로 방어벽을 둘렀다. 본래라면 다음 세트를 착용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최상위 아티펙트를 동원해서.

    “…….”

     방어벽은 연속된 폭발 속에서도 르우벤을 확실히 지켜냈다.

     그러나 르우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한정된 아티펙트를 제때 적절히 사용하지 못한 탓에 당분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르우벤의 빈자리를 메꾸듯 레인이 거칠게 달려들어 검격을 쏟아냈다. 작정하고 날린 검격이 수없이 공간의 문에 빨려들어 레인의 급소를 노렸다.

     그러나 레인은 그 모든 검격을 피해 가며 꿋꿋이 공격을 감행했다. 가히 신들린 듯한 몸놀림. 이전에 니에라 공작을 상대로 보였던 움직임과 비슷한 감이 있었다.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피해내진 못한 탓에 레인의 몸에 상처가 늘어갔다. 반대로 로카인 쪽도 모든 공격에 반응할 수는 없었는지 일부의 검격이 공간역장을 두드리는 데 성공했다.

     로엘이 멀찍이서 지원 사격을 가했다. 공간역장에 난 균열이 빠른 속도로 그 범위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로카인이 헛헛, 하고 웃었다.

    “조금 더 복잡하게 가자꾸나,”

     그가 손을 저었다. 그러자 공간을 압축, 분사하는 마법이 재차 발현되었다.

     이번엔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다. 대신 그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십여 개에 달하는 초승달 모양의 공간 압축체들이 죽 늘어나며 레인을 노렸다.

    ‘이 정도의 공격을 병행할 수 있을 정도로 여력이 있었나.’

     안 그래도 눈이 핑핑 돌아가는 공방을 주고받던 와중이건만 새로운 패턴의 공격까지 추가될 줄이야. 레인이 내심 혀를 찼다.

     암만 레인이라도 별수 없었다. 그가 급히 몸을 빼내 회피에만 주력했다. 그럼에도 몸에 자잘한 상처가 늘어났다.

    ‘장난이 아니군.’

     레인은 예전에 로카인과 처음 대면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 당시 레인은 로카인을 중원의 ‘10대 강자’에 비견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오산이었다. 로카인의 무위는 그치들을 가볍게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러있었다. 본인을 제외했을 때,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레인이 접해본 이들 중 최강이었다.

    “대체 어떻게 타격을 입혀야 할지 도저히 감도 안 잡히네, 진짜.”

     르우벤이 투덜대며 권격을 내질렀다.

    <뇌격(Lightning)>.

     전격에 휩싸인 주먹이 스파크를 튀기며 로카인의 배후를 노렸다. 로카인이 그를 힐끗 돌아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

     르우벤은 갑자기 발밑이 푹 꺼지는 감각에 기겁해서 급히 신형을 바로잡았다. 디디고 선 바닥에 공간의 문이 열려 있었다.

     다행히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 불상사는 면했다. 그 전에 몸을 빼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세가 무너진 탓에 기껏 발현시킨 마법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르우벤에게 거대한 공간 압축체가 날아들었다. 곧바로 신형을 띄우는 르우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그의 주변을 공간의 문 십여 개가 포위했다. 그리고 그 문으로부터 비틀린 공간을 ‘덧씌운’ 바늘들이 튀어나왔다.

    “젠장, 또냐.”

     르우벤이 재차 방어막을 둘렀다. 이전처럼 막아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옳지 못했다.

     바늘들은 재차 생성된 공간의 문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방어막 안쪽에서 다시 튀어나왔다. 르우벤이 기겁해서 마구잡이로 마법을 방출하고 온몸을 뒤틀었다.

     푹. 푹. 푹.

    “크악!”

     당연한 결과라고 할까,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순 없었다.

     공간이 덧씌워진 바늘의 관통력은 절대적인 수준. 급소는 면했지만, 왼쪽 손목과 손바닥, 그리고 오른쪽 발목이 꿰뚫리고 말았다.

     다행인 점이라면 그 면적이 극히 작기에 포션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일까. 물론 로카인이 위력을 조절한 덕분이었다.

    “크으.”

     르우벤이 항복을 선언했다. 더 이상 전투를 속행할 수가 없었다. 치료가 되기 전까진 한쪽 손과 발을 못 쓰게 되어버렸으니 당연했다.

     잠시 전투가 중단되고 르우벤이 공간 마법을 통해 관객석으로 이송됐다. 그 뒤에 다시 대련이 재개되었다.

     사실 레인이 강해지기 위한 정석적인 방법을 밟았다면 르우벤은 편법으로 강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특성은 로카인을 상대로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 되었다.

     즉, 르우벤은 상성상 로카인에게 약할 수밖에 없었다. 르우벤이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물론 편법으로 강해진 것은 로엘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줄타기에 능했다. 애초에 전위를 보조하는 쪽으로 자신의 역할을 특정시킨 것도 컸고.

     이후의 대련은 치열하게, 그러나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레인이 전위를, 로엘이 후위를 맡아 분투했으나 로카인은 여유롭게 그들의 합공을 받아내고 반격했다.

     워낙 준족이 빠르고 능력이 출중한 두 소년인지라 오래 버티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근본적으로 경지가 떨어지는 두 소년은 로카인에게 확실한 피해를 입힐 방법이 전무했다.

     폭음이 울리고 섬광이 터졌다. 주위 지형이 계속해서 뒤틀리고 엎어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소년이 눈에 띄게 지쳐갔다. 그에 비례해 상처도 늘어났다.

     * * *

     결국 로엘이 먼저 전투 불능이 되어 관객석으로 실려 나갔다. 남은 것은 레인 한 사람뿐.

    “이제 슬슬 끝내자꾸나.”

     로카인이 손을 크게 저으며 말했다.

    “특별히 내 비장의 기술을 보여주마. 마음에 들 게다.”

     거대한 마력의 파장이 사위를 휩쓸었다.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펼쳐질 것임을 직감한 레인이 그림자에서 검 한 자루를 더 뽑아냈다.

     이기어검도 불러들였다. 무려 빌헬름 공작이 쏟아낸 의형강기마저 받아냈던 삼검술이 재현되었다. 웬만한 공격은 전부 막아낼 수 있는, 레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어 자세.

     물론 마냥 방어적인 자세만 취한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제대로 마법을 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 비장의 마법을 발현하도록 그대로 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레인이 그렇게 나올 것은 이미 예상한 것일까. 공간역장이 한계까지 강화된 상태였다. 로카인은 그 안쪽에서 차분한 눈빛으로 마법을 발현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레인은 지체 않고 역장을 두드렸다. 강력힌 힘이 깃든 검격이 쉴 새 없이 역장에 작렬했다.

     조금씩 역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균열은 점점 더 그 크기를 불려 나갔다.

     마침내 두세 차례만 더 두들기면 역장이 깨어질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마침내 로카인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고대의 마법인지 시동어가 현대 대륙어가 아닌 룬 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레인으로선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마법을 발현시킨 로카인이 곧바로 이어서 레인을 견제해 떨어뜨렸다. 레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나 주위를 경계했다. 피부가 아릴 정도로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레인의 시야에 비친 온 세상이 검은 구멍으로 뒤덮였다.

    “미친.”

     레인이 욕설을 내뱉었다. 로카인과 레인이 위치한 드넓은 투기장을 통째로 뒤덮은, 자그마한 공간문의 향연.

     심지어 발밑까지도 공간문이 수두룩했다. 발 디딜 곳마저 부족했다.

    “자아. 받아내 보거라.”

     로카인이 자신의 앞쪽에 열린 공간문으로 바늘통에 담긴 수천 개의 바늘을 통째로 쏟아부었다.

     그리고, 지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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