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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정비(5) (135/249)
  •  135화. 정비(5)

     백작령으로 되돌아가는 길.

    “그런데, 그냥 그렇게 자유민으로 풀어주는 정도로 괜찮아?”

    “어. 그 녀석들은 알아서 성장할 거야. 분명. 그 뒤에 다시 찾아가려고. 설사 내 생각이 빗나가더라도 상관없고. 전생에 신세 진 것 갚았다고 생각하지 뭐.”

    “그런가.”

     겨우 두 사람을 자유민으로 풀어주기 위해 수십이나 되는 노예를 구매한 르우벤이다. 그만큼 돈이 깨졌다. 상회의 판매 규칙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에선 한 점 후회도 엿보이지 않았다.

    “너는? 좋은 물건 좀 구했어?”

    “어. 구했다고 해 봐야 토우런트 왕국에 설치해둔 상단 지부를 통해 미리 의뢰해뒀던 것을 수령 했을 뿐이지만.”

    “그렇군. 그건 그렇고.”

     르우벤은 백랑족 소녀와 레인을 번갈아 보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레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이런 꼬맹이가 취향이었어?”

     레인의 발길질이 급소로 날아들자 르우벤이 급히 회피했다.

     그러나 곧바로 2차 공격인 눈 찌르기가 날아들었다. 르우벤이 비명을 내지르며 와이번의 등 위를 나뒹굴었다.

    “그거야? 레이나나 셀린과 같은 재능을 발견한 건가?”

    “재능이라고 보기엔 조금 애매하지. 성향이라 하는 게 더 정확하려나.”

    “?”

     로엘은 이해할 수 없는 레인의 답변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 개의치 않고 레인이 로엘에게 물었다.

    “계약 마법을 익혔다고 했었지.”

    “어.”

    “이 녀석과 내 사이에 계약 마법을 걸어줘. 지금 여기서.”

     로엘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제자로 들일 생각으로 데려가는 녀석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가 제자에게서 생사여탈권과 자유의사권을 박탈할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 일단 걸어줘.”

    “그러지.”

     로엘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했다. 그가 그 자신의 돈으로 구입한 노예인데 자신이 왈가왈부해서 무엇할까.

     이내 로엘은 소녀와 레인 사이를 잇는 계약 마법을 걸어주었다. 레인은 마법이 확실하게 적용되었음을 확인하고 소녀에게 말했다.

    “내가 네게 내릴 명령은 단 한 가지다. 내 주위 사람들에게 위협을 끼치지 말 것. 그 외엔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겠다.”

     소녀가 멀뚱히 레인을 올려 보는 가운데, 로엘이 기막히다는 얼굴로 물었다.

    “야, 그게 일곱 살 꼬마에게 할 말이냐? 왜 애를 잠재적 위험분자로 몰아가?”

    “잠재적 위험분자 맞아.”

    “뭐?”

     레인의 즉답에 로엘이 혼란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그런 와중,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던 소녀가 레인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주인님의 ‘주변 사람들에게’ 위협을 끼치지 말라는 게 명령의 전부라면, 주인님 본인에게는 위협을 끼쳐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어.”

    “제가 주인님의 목숨을 노린다고 해도 괜찮다는 거죠?”

    “어. 그게 가능하다면.”

    “?!”

     어딜 봐도 일곱 살 아이가 물어볼 만한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레인도, 백랑족 소녀도 그것에 대해 아무런 이질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로엘은 물론 르우벤과 밀리아의 얼굴까지 혼란에 물들었다.

    “다행이네요. 그마저도 안 된다고 했으면 삶의 의욕을 잃을 뻔했는데.”

    “그럴 거라 생각해서 허락한 거다.”

    “잠깐, 잠깐!”

     르우벤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레인과 소녀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왜.”

    “너희 대화가 뭔가 이상하지 않아?”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기엔 이상하겠지.”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그래야 하는 상대니까.”

     레인의 답변은 간결했다. 너무 간결해서 르우벤이 그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대체 그 꼬마의 정체가 뭐기에?”

     로엘이 소녀를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귀여운 외견의 수인족 여자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세계에선 어떨지 모르겠다만, 중원에선 이런 성향을 지닌 자가 한 세기에 한 명 태어날까 말까 했지.”

    “아니, 왜 이야기가 거기로 되돌아가. 역시 이 애도 희대의 재능을 가졌다거나, 그런 거야?”

    “아니.”

    “그럼 뭔데?”

    “말했잖아, 성향이라고. 정확히는 천살성(天殺星)이라고 불리는 성향을 타고난 녀석이지.”

    “천살성?”

     천살성(天殺星).

     그 성향을 타고난 이는, 타고난 살(殺)에 대한 갈망이 만인이 지탄하는 연쇄살인마의 그것조차 아득히 초월한다고 한다.

     그들은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고 그에 복수하는 자들이며, 그들의 성향을 되돌릴 방법 같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후천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성향이었다면 애초에 천살성이라는 명칭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럴 수 없으니 천살성인 것이다.

     천살성을 지닌 자가 중원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면 항상 대규모 혈겁이 동반되곤 했다. 레인이 소녀를 두고 ‘잠재적 위험분자’라고 평가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레인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난 후, 르우벤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아니, 그렇다면 제약이라도 완벽하게 걸어두던가.”

    “로엘 녀석이 그랬잖아. 상황을 가려가면서 전력을 모을 때가 아니라고. 그리고, 어차피 제약은 그렇게 오래 못 가.”

     반면 로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대신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그런 녀석을 굳이 데려가려 하다니, 너답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로엘은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싶었다.

    “이상하네요.”

     오히려 고개를 갸웃, 하고 기울인 것은 백랑족 소녀였다. 르우벤이 그녀를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

    “뭐가?”

    “보통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지 않거든요. 질색하는 사람도, 벌컥 화를 내는 사람도 많았어요. 제 부모님과 친구들마저 그랬죠. 그래서 버림받았고.”

    “…….”

     르우벤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풀어내는 소녀도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 확실히 눈앞의 소녀는 일반인과는 정신구조가 다르게 생겨 먹은 존재였다.

    “딱히 이상할 것 없어.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너보다 덜 특이한 녀석은 없으니까. 질색하거나 화를 낸다고 네 성향이 변할 리도 없고.”

     레인이 가볍게 대답했다. 백랑족 소녀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그저 눈을 깜박였다.

    “그보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전 노예인데요? 그냥 편한 대로 부르시면 되지 않나요?”

    “이름 짓기 귀찮아.”

    “…….”

     그야말로 레인다운 이유였다. 백랑족 소녀가 무표정을 깨고 작게 실소했다. 웃는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루미아. 제 이름은 루미아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주인님.”

    “그래. 그리고 주인님이라는 호칭은 쓰지 마라. 앞으로는 스승님이라 불러.”

     루미아는 잠시 의아한 기색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의 네 번째 제자가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 * *

     영지로 되돌아온 뒤, 레인은 제자들을 먼저 찾았다. 한차례 땀을 쭉 뺀 레이나와 셀린이 새롭게 제자가 된 일리나의 운공을 지도해 주고 있었다.

    “인사해. 새로운 제자다. 너희들에겐 사제고.”

    “네? 이 애가요?”

     제자들은 루미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대화 몇 마디가 오가고 나자 루미아를 제외한 나머지의 얼굴에 굉장히 미묘한 기색이 흘렀다.

    “스승님. 이 애 조금…….”

    “그냥 그러려니 해. 원래 그런 성향이니까.”

     레인은 가볍게 일축했다. 그리곤 제자들에게 지시했다.

    “앞으로 일리나와 루미아는 내게 따로 지도받는다. 레이나와 셀린은 이미 실력이 궤도에 올랐으니 타인과의 대련 위주로 가기로 하고.”

     레이나와 셀린의 실력 향상은 눈이 부신 수준이었다.

     특히 셀린의 성장이 놀라웠다. 지난 영지전을 통해 상당한 자극을 받은 듯했다. 조만간 초일류의 경지에 들지 않을까 예상되었다.

     그런 제자들인 만큼 더 이상의 세세한 지도는 필요치 않았다. 대략적인 지침을 정해주면 알아서 쑥쑥 성장할 터였다.

    “대련이라면?”

    “상대는 많아. 나나 르우벤, 로엘도 있고, 로엘 녀석이 데려온 전투팀도 있고. 저기 오늘의 일일 대련 상대를 맡아줄 상대가 오는군.”

     레이나와 셀린의 고개가 돌아갔다. 한 여성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육감적인 몸매, 그리고 머리칼 위로 솟아오른 한 쌍의 뿔이 눈에 띄었다.

    “밀리아 님?”

     레이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셀린 또한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그녀들은 밀리아의 실력을 두 눈으로 직접 견식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얼마나 굉장한 강자인지 잘 알았다.

    “뭘 놀래.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대련하는 일엔 익숙하잖아.”

    “그건 그렇죠.”

     그녀들의 대련 상대는 지금까지 레인이었다. 레인에 비하면 오히려 밀리아는 수월한 상대이리라. 그렇다 해도 초인의 영역에 근접한 그녀에게 고전할 것임은 명약관화했지만.

    “잘 부탁할게.”

    “제가 타인을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데까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인 님.”

     레인과 밀리아가 잠시 인사를 나눴다.

     그 와중에도 레이나와 셀린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목숨을 구함받으면서 그녀의 압도적인 무위를 뇌리에 새겼던 탓. 심리적인 압박감이 컸다.

     두 제자가 밀리아를 따라 영주성 바깥으로 나가고, 레인은 남은 두 제자를 가르쳤다. 일리나에겐 생사공을, 루미아에겐 마공을 

    “그런데 스승님. 이 ‘소수공(素手功)’이란 거, 제게 가르친 무공과는 전혀 그 체계가 다른 것 같은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별것 아니야. 네가 익힌 것은 정종심법(正宗心法)이고, 이 녀석이 익히고 있는 건 마공(魔功)이라서 그런 거지.”

    “마, 마공이요? 이전에 말씀하셨을 때, 마공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제어가 조금만 어긋나도 광인이나 마인이 된다고.”

     일리나는 레인에게서 무공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전수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분명 마공은 높은 확률로 자아, 혹은 목숨을 잃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긴 하지.”

     마공을 익히면 속성으로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마공을 연성하는 과정에서 십중팔구는 마기에 취해버리고 만다. 자아가 침식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위험한 무공을 제자에게, 그것도 이렇게 어린 소녀에게 가르칠 생각을 하다니. 일리나는 일순 레인이 제정신인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위험한 무공을 왜…….”

    “그냥 위험한 수준이 아니지. 소수공은 그런 마공들 중에서도 그 위험성이 정점에 달한 무공이니까. 그만큼 빠르게 익힐 수 있지만.”

     안 그래도 속성으로 익히는 게 가능한 마공이다. 그런데 소수공은 그 사이에서도 정도가 심했다.

     무공 자체도 굉장히 파괴적인 특성이 강하기까지 했다. 제대로만 익히면 몇 년 내로 레이나나 셀린의 경지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걸 익히다가 루미아의 정신이 침식당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요?”

     일리나가 짐짓 화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이 꼭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침식되긴 뭘 침식돼. 침식되는 것도 대상이 평범한 인간일 때나 가능한 거지.”

    “네?”

    “이 녀석에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레인은 그렇게 말하며 루미아의 머리칼을 쓱쓱 쓰다듬었다. 그러자 루미아가 거추장스럽다는 듯 손톱으로 할퀴려 들었다.

     레인이 빠르게 손을 빼내며 말을 이었다.

    “암만 마기에 침식되어 미쳐 날뛰는 놈이 있다고 해 봐야 그놈 정신상태가 천살성만 할까.”

     컵에 담긴 물이 투명하다면 회색 물감을 몇 방울 떨어뜨리는 정도로 순식간에 변색 될 터다. 그렇지만 애초에 새까만 물이 담긴 컵에 회색 물감 몇 방울 떨어뜨린다고 변화가 있겠는가.

     루미아는 마기에 잠식될 위험으로부터 안전했다. 아니, 정확히는 마기에 잠식되는 상황 따윈 코웃음 치고 넘길 정도로 애초에 정신상태가 망가져 있었다.

     마공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걸려 죽는 이가 부지기수라곤 하지만, 그 또한 루미아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건 대체로 마기에 잠식되어 자신을 잃어가는 끔찍한 감각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낀 이들이 내력을 억지로 조정하려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마기로부터 자유로운 루미아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그러니 루미아를 성장시키는 데엔 마공이 효율적이다.

     안 그래도 속성으로 연성할 수 있는 최상위 마공. 심지어 중원의 여느 마인들이 그러하듯, 마기에 침식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주의해가며 연성할 필요조차 없다. 그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메리트다.

     아마 성장 속도만 놓고 보면 초기에는 레이나나 셀린조차 압도할 터다.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정종심법을 익힌 두 사람에게 밀리게 되겠지만.

    “이 녀석에 대한 건 네가 그렇게 걱정할 것 없어. 걱정은 오히려 내가 해야지. 이 녀석이 힘을 가지고 나면 가장 먼저 내 목숨을 노릴 테니.”

     엄밀히 말해 루미아에겐 레이나나 셀린이 가진 것과 같은 찬란한 ‘재능’은 없다. 그러나 어쩌면 그 재능을 압도할지도 모르는 ‘자질’이, 그녀에겐 있었다.

     그 자질을 개화시키고 나면 백랑족 소녀의 손톱은 누구를 향하게 될까. 당연하게도 레인이 그 대상이 된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게 상황을 몰아갔으니.

     그녀에게 매여진 제약, 다른 이에게라면 몰라도 그녀 자신에겐 끔찍한 저주와도 같은 제약을 해제시킬 유일한 방법은 레인을 죽이는 것뿐. 이후로 보일 그녀의 행동 패턴은 뻔했다.

     그것을 모두 감당할 자신이 있기에, 코웃음 치며 흘려낼 자신이 있기에 레인이 그녀를 제자로 들인 것이었지만.

    “…….”

     설명을 전해 들은 일리나가 기막히다는 얼굴을 했다. 그것이 르우벤의 얼굴과 완전히 매치되었다. 옆에서 루미아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경 쓰지 말고 네 수련에나 집중해. 이 녀석 일은 이 녀석이 알아서 할 테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

     일리나는 그냥 얌전히 수긍하기로 했다. 레인의 발언을 모두 듣고서도 반발은커녕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백랑족 소녀를 보니 괜스레 기분이 으스스해졌다.

    ‘이 사람들 이상해.’

     일리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 * *

     다음 날.

     레인과 로엘, 르우벤이 또다시 모였다. 이전과 같이 대련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 파르엘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세 소년도, 그리고 멀찍이서 이를 구경하고 있는 마탑 인사들도, 그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연습도 한 번쯤은 필요하지.”

    “그렇지. 특히 프레퍼와 맞붙게 되면 그 와중에 민간인이 말려들게 될 경우가 꽤 있을 텐데, 그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전투도 무리 없이 수행하려면 연습은 필수지.”

    “연습 중에 도우미가 좀 다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스스로 지원한 거니 감수하고 있겠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특히 마지막 발언은 폭거에 가까웠다. 스스로는 무슨 얼어 죽을 스스로란 말인가.

     그러나 완전히 기가 질린 상태인 파르엘은 세 사람의 발언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파르엘을 괴롭히기로 작정한 세 사람이 그의 항변 따위를 들어줄 턱이 없기도 했고.

     르우벤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굉장히 재미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말리기보단 오히려 동참하는 성격에 가까웠다.

    “자아. 시작할까?”

     레인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의 등 뒤 그림자로부터 또 다른 검 하나가 은밀하게 밀려 올라왔다.

     로엘과 르우벤도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세 사람은 누군가 신호라도 보낸 듯 동시에 움직임을 보였다.

     촤악!

     레인의 이기어검이 파르엘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슈왁!

     로엘의 포격이 파르엘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화르륵!

     르우벤의 타깃 지정 마법이 파르엘을 집어삼켰다. 타깃만 정확히 골라서 태우는 불꽃이었기에 파르엘에겐 그다지 위험할 것이 없었지만, 시각적으로 상당한 위기감이 선사 되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만! 그만둬! 이 미친놈들아!”

     간이 콩알 반쪽만큼 쪼그라든 파르엘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공허한 외침이 세 각성자가 충돌하는 소음에 파묻혀 덧없이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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