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정비(2)
레인과 12사도 1팀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 뒤를 로엘과 마탑 인사들이 따라붙었다. 나머지 인원은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대련에는 흥미가 없었던 탓에 백작성에서 먼저 식사하기로 했다.
다만 셀린과 레이나, 그리고 플로라는 따라붙었다. 레인의 제자 두 사람이야 무예 수련의 일환이었고, 플로라는 로엘과 붙어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널찍한 공터 중앙에 레인이 자리를 잡았다. 1팀 팀원들은 각자 공터 바깥쪽 엄폐물에 몸을 은신했다. 카트리나는 와이번에 탑승해 하늘에서 레인을 내려다봤다.
“시작할까?”
그들이 모든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 레인이 물었다. 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가장 귀찮을 것 같은 녀석부터.”
촤악!
레인의 그림자로부터 검은 줄기가 뻗어 나왔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흑아는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출력을 자랑했다.
줄기를 발판삼아 도약, 도약, 도약. 순식간에 카트리나가 위치한 곳에 다다랐다.
“꺄악?!”
기겁한 카트리나가 급히 와이번을 조종하려 했으나, 레인이 한발 빨랐다. 그의 발길질이 와이번의 턱을 가볍게 두드렸다.
“쿠엑.”
그 가벼운 일격에 와이번이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와이번과 카트리나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꺄아아악!”
다행히 바닥에 충돌하기 전에 흑아가 그들을 받아냈다. 그러나 카트리나는 그와 동시에 무기를 강탈당하고 말았다. 전투력을 상실한 것이다.
탕!
곧바로 저격이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레인이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휘둘렀다. 마력 탄환이 검과 충돌해 터져나가며 조그마한 파쇄음을 토해냈다.
“너무 생각대로의 타이밍에 노려 와서 김이 새는데.”
레인은 피식 웃었다. 저격한 당사자는 의표를 찔렀다고 생각했겠지만, 레인이 입장에선 경계심이 가장 높은 타이밍에 날아든 공격일 뿐이었다.
콰아아앙!
레인이 자리를 훌쩍 벗어나자 곧바로 그 자리에 포격이 날아와 꽂혔다.
레인은 물러남과 동시에 연사용 소총을 들고 슬금슬금 접근 중이던 한 팀원에게 접근했다. 그리곤 그의 품속으로 쏙 들어가 등을 기댔다.
“으억?!”
등 뒤로부터 기겁해서 내뱉는 외침이 들려왔다. 곧바로 철산고(鐵山?).
쩌엉!
“크억!”
뒤쪽으로 훨훨 날아가는 상대의 외침을 뒤로하고, 레인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방금 전 포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그 방향에 자리 잡고 있던 팀원은 총 셋. 그들이 당황하며 분분히 무기를 겨누는데, 레인이 곧바로 진각을 밟았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터어어어엉!
진각을 중심으로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그보다도 훨씬 거대한 파장이 주위를 잠식해 들어갔다. 팀원들이 일제히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으헉!”
“이 미친?!”
그리고 레인은 곧바로 그들에게 접근, 차례차례 무력화시켰다. 한 사람은 뒷목을 내리쳤고, 한 사람은 턱을 가격했으며, 나머지 한 사람에겐 가슴에 일장을 먹였다. 와중에 날아든 저격도 격추.
직후 어느새 접근한 한 팀원이 산탄총을 갈겼다. 그러나 레인은 가볍게 그것을 회피, 그의 배후로 돌아가 무릎 뒤쪽을 걷어찼다.
“악!”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상대에게서 무기를 빼앗아 한쪽에 휙 하고 던져둔 뒤, 날아드는 저격을 다시 한번 검으로 쳐냈다. 그리고 곧바로 저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커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지고, 레인이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렸다.
압도적인 음량에 구경꾼들마저 귀를 막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당장 그것을 맞받게 된 1팀 팀원들의 안색이 핼쑥해 졌다.
곧바로 몸을 뒤틀어 크게 검을 휘두르는 레인. 다수의 검강이 발출되어 세 명의 팀원이 은신한 나무들을 밑동만 남기고 베어버렸다.
쿠구구궁!
통째로 쓰러지는 나무 위쪽에서 급히 뛰어내린 팀원들을 맞이한 것은 레인의 이기어검(利己語劍).
검이 저 혼자 허공에 뜬 채로 압도적인 기파를 뿜어내며 공격해오니 팀원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그들 또한 얼마 있지 않아 모두 제압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둘인가.”
레인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남은 두 사람이 손을 들고 항복을 외치고 있지만 않았다면.
사실 레인이 사자후를 터뜨렸을 때부터 남은 팀원 전체가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중 셋은 항복 의사를 표하기도 전에 레인이 제압해 버렸지만.
“이제 막 창설되어서 그런지 연계가 영 별로로군. 대충 어떻게 훈련시켜야 할지 감이 잡히네.”
레인이 검을 털어내며 가볍게 평가를 내렸다.
* * *
“미치겠네. 저게 말이 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지켜본 메이엘이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칼비오 녀석이 요즘 왜 그렇게 자격지심을 느끼나 했더니만.
“그런데 너, 괜찮겠냐? 저런 인간하고 척을 져도 되겠어?”
“…….”
메이엘이 그리든을 돌아보며 장난스레 물었다. 그리든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져 있었다. 특유의 오기로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네가 괴물이라고 하기에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가 했더니만, 저건 진짜 규격 외인데?”
“무, 무섭네요.”
메이엘이 로엘을 돌아보며 감탄 섞인 어조로 말했다. 루나는 약간 겁에 질려 있었다. 파르엘은 아예 한쪽에 무릎을 붙들고 앉아 덜덜 떨고 있었다.
“대단한 녀석이죠.”
로엘은 픽 하고 웃었다.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 * *
이후 백작가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레인은 음식에 수시로 조미료를 뿌려가며 먹었다. 레이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스승님. 요즘 그 조미료를 꽤나 많이 사용하시는데, 그건 무슨 종류의 조미료인가요?”
음식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조미료를 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레인의 답변이 가관이었다.
“독.”
“네?”
“독이라고. 물에 타서 한 모금 마시게 되면 내장이 녹아내리는 종류라던데.”
“뭐, 뭐라고요!?”
레이나가 기겁해서 조미료가 담긴 통을 빼앗으려 들었다. 레인이 슬쩍 팔을 뒤로 물려 그것을 피해냈다.
자리의 모두가 경악해서 레인 쪽을 돌아보았다. 태연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로엘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 ‘독’을 마련해다 준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괜찮아. 난 먹어도 안 죽어.”
“대체 왜 그런 걸…….”
“내성 좀 키우려고. 이거 말고도 먹어야 할 것들이 많아.”
“세상에.”
“뭘 그리 놀라. 나중에 너하고 셀린도 다 먹어야 해.”
“?!”
셀린이 한참 음식을 씹다 사레가 들렸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기침을 내뱉는 것을 옆에서 플로라가 다독여 주었다.
레인은 진심이었다. 그가 목적하는 바는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가 되는 것. 물론 통상적으로는 완성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신체다. 레인이니까 쉽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
막대한 내력에 사천당문의 비전심법, 그리고 온갖 종류의 극독이 갖춰져 있어야만 시도라도 해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레인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던 로엘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초감각은 이미 지니고 있으니 독에 대한 완벽한 내성만 갖추면 암습에선 웬만해선 자유로운 레인이다. 이것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더욱 힘이 실릴 터였다.
“안 먹으면 안 되나요?”
“안 돼.”
레인은 단호했다. 레이나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
“여러모로 인상적인 친구네.”
메이엘이 오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마탑 인사들이 다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후 레인과 로엘은 르우벤, 그리고 카트란과 따로 자리를 가졌다.
“그러니까, 그 자신이 각성자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어.”
“저기, 대체 그 ‘각성자’란 건 무슨 의미인지…….”
카트란이 쭈뼛쭈뼛 손을 들고 질문했다.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말 편하게 해. 다들 동갑이니까.”
“으, 응. 알겠어.”
“일단 그건 직접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지.”
레인은 가볍게 말했다. 로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레인이 휙 하고 신형을 이동하더니 카트란의 뒷덜미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으왓!”
“이 녀석, 잠시 데려간다.”
“대련이라도 해 보려고?”
“어.”
“저기. 내 의사는?”
“다녀올게.”
“잘 다녀와라.”
한 사람의 조심스러운 의사 표현이 있었으나 그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레인이 자리를 떠나자 로엘이 르우벤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따라가서 지켜봐 줬으면 해. 구경하러 왔다고 하면 레인도 별말 하지 않을 거야.”
“왜?”
“어쩌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레인이 위험에 처할 정도라는 거야?”
“확언은 못 하겠다. 그래도 이왕이면 만약을 대비하는 게 좋겠지. 너도 그걸 한 번쯤은 봐둘 필요가 있을 테고.”
“좋아.”
르우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을 향했다.
일행이 백작 저택으로 복귀한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 르우벤이 혼절한 카트란을 짊어지고 있었고, 레인은 상당히 지친 기색으로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어땠어?”
“굉장하더군. 만일 이 녀석의 경지가 초일류의 영역에 다다른 상태였다면 정말로 위험했을지도 모르겠어.”
레인이 드물게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어. 뭐랄까,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녀석이었어. 통제도 안 되는 것 같고.”
“초인의 정신력을 그렇게까지 침범하는 건 놀랍던데. 자신은 강화시키고 상대는 약화시킨다니, 그야말로 이상적인 능력이더라고. 거기다 그 힘이 상대의 숫자에 상관없이 적용된다는 점이 가장 무서워.”
르우벤이 거들었다. 좋은 구경 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상당한 격전이었으리라.
“이야기는 나중에 계속하자. 생각보다 힘들어서 좀 쉬다 와야겠어.”
“그래.”
일행은 일단 자리를 파하기로 했다.
* * *
휴식을 취하고 다시 모인 각성자들은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카트란은 여전히 혼절한 상태라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얼마 뒤에 백작령으로 크레틸 자작의 여식이 찾아올 거다.”
“크레틸 자작? 아, 그 검성이라던? 그자의 여식이 구음절맥이라 치료해 줬다고 했었지?”
“어. 그녀가 도착하면, 네가 데려가라.”
“내가?”
“분명 이후에 도움이 될 거다.”
“좋아. 그렇게 할게.”
로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구음절맥에 대해선 잘 알았다. 어린 시절 레인이 내가요상술을 전수하면서 설명한 적이 있었으니까.
“오늘 대련은 어땠어? 1팀 말이야.”
“쓸 만한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보다 약한 이들은 쉽게 학살하겠지만 반대로 강자 한 명에겐 약한 면모가 있는 것 같더라고. 아니, 마법사를 상대로는 꽤 쓸만할 것 같기도.”
1팀이 만일 제대로 손발을 맞춰 로테이션을 돌려가며 레인을 압박했다면 아무리 레인이라도 그렇게 간단하게 그들을 제압하진 못했을 터였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터.
현재 그들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은 ‘조직력’이였다. 아무래도 조직이 창설된 지 오래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이외의 문제점은 무공의 경지가 낮다는 점 정도일까.
“약점을 극복하고 무공에 능숙해지면 지금보다 몇 배는 강력한 전력이 될 테지. 내 제자들을 그 녀석들과 맞붙게 만드는 것도 괜찮은 훈련이 될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잘 부탁해.”
“어.”
“그런데, 황실의 각성자는 확인했어?”
르우벤이 불쑥 물었다.
“확인했지.”
로엘은 황궁에 다녀온 일, 그리고 제국이 괴뢰정부로 인해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 거기에 각성자가 황제를 꼭두각시로 부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전해 들은 르우벤의 표정이 볼만해졌다.
“말이 안 나오네.”
“그런데 르우벤.”
“응?”
“‘바르바젠 루엘 카이엔’은 너보다도 오래 살아남았던 모양이야. 네가 죽은 뒤의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들었지.”
“그래. 무슨 일이 있었대?”
“제국이 멸망했다더군.”
“…….”
르우벤이 할 말을 잃었다.
제국이, 그 강대한 제국이 멸망했다는 말인가. 짐작 가는 이유가 있기에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였다.
“역시 마왕의 침공 때문인가.”
“어. 제국의 힘을 최대한 결집시켜 놈들을 막아내고 몇 명의 마왕을 죽이기까지 했지만, 결국 무너졌다고 하더라고. 바르바젠 본인도 마지막 결전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
제국은 명실상부한 대륙 최강국이다. 그런 제국이 멸망했다는 것은, 아마-
“원래의 역사에서, 대륙은 마왕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건가.”
“그렇겠지.”
새삼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훗날 마왕이 침공해오기 전까지 최대한 준비를 마쳐둬야 한다는 생각이 한층 더 확고해졌다.
“듣고서 느꼈어. ‘그 시기’가 오기 전까지 최대한의 준비를 해 둬야 해. 각자의 무력 증진은 물론, 강대한 세력도 구축해야만 하고.”
“로엘 네 경우엔…….”
“그래. 원래 있던 세력을 더욱 확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거다. 상업적으로도, 무력적으로도. 동시에 제국의 이면(裏面)을 관장하기도 하면서. 르우벤 너는 네가 뜻하는 대로 밀어붙여.”
“그래.”
르우벤은 전생의 자신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과 같은 대륙 최강의 용병단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 규모와 질이 전생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할 예정이긴 했지만.
그가 수차례 위기를 넘겨 가며 왕의 유적((The remains of the king)을 공략한 것은 바로 그때를 위해서였다. 수많은 아티펙트를 축적하고 있는 것도 그때를 위해서였고.
“그리고 슬슬 네 사람을 끌어들이도록 해. 일단 정비 기간 동안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해 둬. 도움을 줄 테니.”
도움이란 엘리제 파르테인의 공간 마법을 뜻했다. 오는 길은 몰라도 가는 길은 공간 마법을 이용하게 해 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단축되리라.
“그리고 레인.”
로엘이 레인을 돌아보았다. 레인이 목 뒤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어.”
“넌 목표부터 확실하게 설정하는 게 좋겠다.”
“거기에 대해선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해 봤지. 결국 내가 목표로 세울 만한 것은 하나뿐이겠더군.”
“?”
레인은 살짝 눈을 내리깔며 툭, 하고 내뱉었다.
“검가(劍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