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정비(1) (131/249)

 131화. 정비(1)

 로엘은 바엘른 마탑에 캐틀린을 내려준 뒤, 곧바로 그레이본 마탑을 찾아갔다. 그리고 곱추 노인에게 암흑상단의 두 수장을 맡겼다.

 다시 바엘른 마탑으로 복귀한 뒤엔 이번 임무에 동원된 1, 2, 3팀을 제외한, 각지에 미리 퍼뜨려둔 모든 전투팀에게 전서구로 지시를 내렸다. 암흑상단 하부 세력을 순서에 따라 밀어버릴 것을.

 이후론 카트리나에게 지시해 주기적으로 그레이본 마탑을 찾아가 뽑아낸 정보를 받고, 그것을 전투팀에게 전달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놈들의 세력을 일소하고 재산을 환수하는 데에 주력했다.

 완벽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프로지란이 끝끝내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탓에 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 되어 있던 몇몇 지부는 금세 제국을 떠버렸다. 재산을 환수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로엘은 그에 분풀이하듯 그레이본 마탑에 그를 조금 더 혹독하게 다뤄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일단 대부분의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로엘은 일이 일단락되자, 곧바로 그것을 보고하기 위해 황궁을 찾아갔다.

 * * *

“생각보다 일찍 임무를 완수했더군. 케르티아 남작.”

“약간의 문제가 있어 완벽하게 임무를 끝마치지는 못했습니다.”

“그 정도는 문제없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의 성과를 보일 줄은 나도 예상치 못했다. 골칫거리가 하나 줄었군.”

 로엘은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객관적으로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의 일 처리는 완벽 그 이상이었다.

‘일부’를 놓쳤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대부분’은 완벽하게 처리했다는 뜻과도 같았다.

 무려 ‘점조직’인 거대세력, 암흑상단을 쓸어버리는 일이다. 수뇌부를 모조리 제압하고 하부 조직을 격파하고, 심지어 재산까지 환수하는 게 간단한 일일 턱이 있겠는가.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당장 제국 역사서만 봐도 로엘이 행한 일에 비견될 만한 사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로엘의 전생의 무대, 지구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번 일은 바르바젠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흡족해할 만한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그 본인이 직접 나서서 처리하는 것보다도 나은 결과였다.

“오히려 임무 완수에 대한 보상을 내어주어도 부족하지.”

“감사합니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묻지. 내게 받고 싶은 것이 있나?”

 황제는 상벌이 확실했다. 그것은 그를 근처에서 지켜보는 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보통 상대에게 이렇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묻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은 황제가 임의로 결정해서 내려줄 뿐.

 쉽게 말해, 황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굉장히 특수한 케이스였다. 그것은 로엘이 그만큼 황제의, 아니 바르바젠의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도 있었다.

“뭔가 보상을 주려고 했는데 굉장히 어려운 문제더군. 막상 주려고 보니 죄다 의미가 없어서.”

 재물을 주려고 보니 상대는 이미 재물이 넘쳐나는 인간이었다.

 권한, 권력을 주려고 보니 상대가 ‘그쪽’ 인물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여자를 주려고 보니 안 그래도 알아서 잘 해먹을 얼굴이었다. 사내의 정복심을 부추기는 지위 있는 여성의 경우엔 마찬가지로 로엘이 ‘그쪽’ 인물이라 논외였고.

 그나마 황실 보고에 잠든 귀한 아티펙트를 내어준다는 게 조금 그럴듯했다. 그러나 그 또한 상대가 ‘아티펙트 콜렉터’와 연결점이 있다는 시점에서 만족도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매번 이렇게 보상을 내어주지는 않을 거다. 첫 임무 성공을 기념해서 이쪽도 나름 출혈을 감수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관계도 좀 더 돈독하게 다질 겸.”

“…….”

 그런 내용까지 굳이 입으로 꺼낼 필요는 없을 텐데. 참 직설적인 어법이었다.

“흔치 않은 기회이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기탄없이 말하도록. 무엇을 원하지?”

 로엘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렇게 빠르게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황실에 각성자가 존재함을 알게 되고,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로엘은 그 각성자로부터 얻어내길 원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힘이니 권력이니 하는 것이 아니었다.

 힘이고 권력이고 여자고 고대의 유물이고. 굳이 황실의 권력자에게서 얻지 않아도 어디서든, 어떻게든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굳이 다른 이에게서 받아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원한 것은 오직 하나.

“그렇다면 바르바젠 님. 제게 정보를 주십시오.”

“정보? 미래에 대한 정보를 말하는 건가?”

 황제가 피식, 하고 웃었다.

 바르바젠은 회귀자였다. 그러니 로엘이 그에게 ‘정보’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그가 전생에 얻은 정보인 것이 당연했다. 적어도 바르바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로엘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미래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로 원하는 정보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

“바르바젠 님께서 전생의 경험을 토대로 현생에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계시는지. 제가 궁금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로엘이 빙긋, 하고 웃었다. 그리곤 이전엔 분위기를 맞추느라 묻지 못했던 그것을, 입에 담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혹, 계획하고 계신 일이······.”

 황제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동시에,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 * *

 각성자들은 내년, 그러니까 성년이 되어 레인과 르우벤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다음 해까지 정비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로엘은 주어진 일을 일단락 짓고 다시 레인과 르우벤을 찾아왔다. 이번엔 하슨 백작령으로 찾아왔기에 적룡대와 재회할 수 있었다.

 플로라가 로엘의 눈부신 성장을 목격하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인사를 건넸다.

“오, 오랜만이야. 로엘.”

“네. 정말 오랜만입니다. 플로라 양.”

 로엘이 반가운 마음에 빙긋, 하고 웃었다. 플로라가 일순 멍하게 풀린 눈을 했다.

“저것 좀 봐.”

“저거, 저거. 다시 보자마자 내숭이 아주 그냥.”

 뒤쪽에서 다른 적룡대 대원들이 수군거렸다. 플로라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있는 레인이 살짝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플로라가 그들을 째릿 하고 뒤돌아 노려봤다.

[쓸데없는 소릴 했다간 죽인다.]

 눈빛에 담긴 그녀의 의사가 확실하게 전해져 왔다. 적룡대원들이 딴청을 피웠다. 레인은 마침 자신과 르우벤을 찾아온 마탑 인사들과 적당히 인사를 나눴다.

 이번에 로엘은 여러 사람을 대동했다. 로엘의 ‘옛 친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은 칼비오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칼비오가 요즈음 로엘을 따라 외유를 다녀오더니 갑자기 무언가에 불붙은 듯 자기 개발에 힘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관심이 몰릴 수밖에.

 그런 연유로 이번엔 그리든, 루나, 메이엘이 함께 왔다.

 사실 가장 의욕적이었던 것은 메이엘이었다. 루나, 그리든은 그냥 관심이 있는 정도였는데 메이엘이 ‘혼자서는 어색하다’며 반쯤 강제로 끌고 왔다.

 참고로 카트리나와 그녀가 이끄는 1팀, 그리고 파르엘과 카트란도 동행했다. 상당한 대인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엔 로카인과 함께 오지 못했다. 오는 길에는 공간 마법으로 건너왔지만 가는 길은 그럴 수가 없었다. 되돌아가기 위해선 카트리나의 와이번이 필요했다. 카트리나를 동행시킨 것은 그런 연유였다.

 1팀의 경우엔 겸사겸사 초인의 지도를 받게 할 겸 데려왔고, 파르엘은 사색이 되어 싫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왔다.

“만나서 반갑다. 네가 로엘이 말하던 그 ‘괴물’이로군.”

 그리든이 고압적인 인사를 건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입장에선 평범한 인사였으나 레인의 시선엔 오만하게 비쳐 보였다.

 그리고 레인은 이런 타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볍게 무시했다.

“…….”

 그리든의 이마에 살짝 힘줄이 돋았다. 그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무시하지 마라. 검사 따위가.”

 그리든은 불편해진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로엘이 ‘괴물’이라 평가했으니 눈앞의 소년은 분명 상당한 재능을 지닌 자일 터였다. 미래에 검성, 혹은 검존이 될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가 지금 시점에서 초인일 리는 없을 터. 나이로 미뤄봤을 때, 눈앞의 소년은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일류의 경지에 불과할 것이라 여겨졌다.

 아니, 정말로 세기의 천재라면 초일류의 경지에 발을 들여놨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그 수준이라면 자신이 최근 개량한 연기 계통 마법으로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쉽게 말해 그의 입장에선 자신보다 못한 이가 자신을 무시한 상황. 그가 도발에 곧바로 도발로 응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뭘 믿고 이러지?’

 물론 레인의 시선에 비친 그리든은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 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쯧쯧.”

 로엘이 슬쩍 그쪽을 곁눈질하며 혀를 찼다. 누가 성격 나쁜 두 사람 아니랄까 봐 첫 대면부터 충돌이 일어나려 했다.

“만나서 반가워. 너도 생긴 게 장난 아니구나. 거의 로엘과 맞먹는 수준인데? 대체 뭘 해야 그런 외모가 되는 거야?”

 메이엘이 슬쩍 끼어들어 그리든을 뒤로 물렸다. 능숙하게 화제 전환. 레인도 굳이 더 날을 세우지 않고 가볍게 그녀의 물음에 답변해 주었다.

“수련하면 돼.”

“……?”

 외모 향상에 수련은 무슨 놈의 수련이란 말인가. 메이엘이 예상치 못한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레인과 르우벤은 마탑 인사들과 차례대로 인사를 나눴다. 르우벤은 손쉽게 그들과 친해졌지만 레인은 그러지 못하고 주위를 겉돌았다.

 그러던 중, 레인의 시야에 한쪽에 죽은 듯 숨어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로엘이 억지로 끌고 온 인물, 파르엘이었다.

“호오.”

 레인은 섬뜩하게 웃었다. 우연히 시선이 마주친 파르엘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인 위기감에 파르엘이 등을 돌리고 달아났다. 그러나 몇 초 지나지 않아 기겁해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흐억!”

 대체 어느새 자신의 앞쪽까지 다가온 것일까. 거리가 꽤 떨어져 있던 상태였거늘.

“이거 정말 반가운 얼굴이잖아.”

“…….”

 파르엘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는 그동안 로엘에게 상당히 시달려온 탓에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그가 뭐라고 말은 못 하고 눈동자만 열심히 굴리고 있을 때였다.

“레인. 잠시만.”

 그런 와중 로엘이 다가오더니 레인에게 뭔가를 속닥거렸다. 가만히 그것을 듣던 레인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벗어났다.

 와중 파르엘을 향해 피식, 하고 웃어 보이는 레인. 파르엘은 일단 안도하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로엘이 레인에게 친근하게 구는 광경을 메이엘이 신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로엘이 ‘가면’을 쓰지 않고 대하는 상대는 처음 보았기에 그 와중, 로엘이 레인에게 따라붙으며 말했다.

“저쪽에 무기 든 녀석들 보이지?”

“어. 네가 말한 그 녀석들?”

“그래. 12사도 중 1팀이지. 말했던 대로, 부탁 좀 할게.”

“그래.”

 레인은 로엘에게서 무력 조직 창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훈련에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한 일이 있었다. 그들이 중원의 무공을 익히게 되는 만큼 자신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전에 로엘이 가져왔던, 그리고 이번에도 가져온 ‘선물’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었다. 물론 로엘이야 나쁠 것 없으니 거절하지 않았다.

 앞으로 12사도는 임무가 비는 시간에 로테이션을 돌아 레인을 찾아오게 되어 있었다. 정비 시간 내로 전부가 두 번은 레인의 지도를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말 나온 김에 한 번 실력 좀 볼까.”

“그럴래?”

 마침 1팀 팀원들이 어색하게 한쪽에 저들끼리 서 있는 중이었다. 멀뚱멀뚱 애꿎은 주변 건물들만 둘러보고 있었다. 적룡대원들을 힐끔힐끔 돌아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카트리나.”

 로엘이 1팀 팀장을 호출했다. 카트리나가 곧바로 다가왔다.

“이쪽은 레인이야. 내 오랜 친구지. 이번에 너희들의 수련을 지도해 줄 사람이기도 하고. 실력을 보고 싶다고 하니 준비해.”

“……알겠습니다.”

 카트리나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레인에 대한 생각은 그리든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실력이 있다 해도 1팀 전체가 덤벼들면 질 리가 없다 생각했다. 일단 전부터 로엘이 주지시켜둔 바가 있어 얌전히 따르긴 하겠지만.

‘일단 두고 보면 알겠지.’

 카트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팀원들을 호출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자만이 깨어지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