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암흑상단(4) (130/249)
  •  130화. 암흑상단(4)

     그것은, 레일 건(Rail gun).

     본래라면 막대한 전력을 소모해야만 하는 강력한 무구.

     로엘은 이 무구를 사용하기 위한 전력을 마력으로 대체했다. 이 세계에서 일반적인 레일 건을 재현해내기엔 애로사항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문제가 되는 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마력 집적진으로는 그 막대한 에너지를 채워 넣을 수가 없다는 점. 그것을, 로엘은 우연히 손에 넣게 된 고대의 마력 집적 아티펙트로 해결했다.

     그런 탓에 로엘이 재현해낸 레일 건에는 사소한 문제점이 있었다. 마력 집적 아티펙트가 제작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추가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조작으로 마력 충전 시간을 줄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디까지나 그 부분은 아티펙트의 성능에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무구는 압도적인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가히 전략 병기라고 불려도 좋을 정도.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동안 로엘이 열심히 수련해온 기예. 초일류 이상의 마법사들만이 구사하는 것이 가능한 ‘영역 지배’.

     그 영역 지배를 통해 아공간의 입구를 넘어 그 안쪽에 비치된 레일 건을 원격 구동시킨다. 그렇게 한계까지 마력을 집적시키고 집적시킨 레일 건을, 발포.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윽.”

     일순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오자 가면인이 눈을 가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물론 예상하고 있었던 로엘은 이미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그 와중 유유히 가면을 착용하기까지.

     표적이 된 이는 암흑상단 세 간부 중 화염계 마법을 다루는 현자, 루데바른.

     그는 갑작스레 ‘영역 지배’로 인해 활성화된 감각을 침범해 들어오는 막대한 기운에 기겁했다. 그야말로 아닌 하늘에 날벼락.

     그가 현자가 아닌 검성이었다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었으리라.

     육체의 활용이 극에 이른 검성이라면 감각을 침범해 들어오는 압도적인 기운을 느끼자마자 신형을 날려 그것을 피해냈을 터였다. 후폭풍만도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공격이다 보니 피해를 입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루데바른은 ‘현자’. 그는 검성의 그것만큼 섬세한 종류의 것은 아니더라도 방대한 영역을 자랑하는 감각권을 지녔다. 그렇지만 그 감각에 상응하는 반응속도와 육체 스펙은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루데바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현자가 가진 문제점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현자들은 두세 개 정도의 ‘아티펙트’를 이용해 그 단점을 메꾸곤 하고.

     우우우웅!

     삽시간에 루데바른의 전면에 방어막이 생겨났다. 위급 상황에 자동으로 발동되는 종류의 아티펙트였다. 벌이고 있는 일의 특성상 자주 접할 수밖에 없는 장물 중에서 고르고 고른 물건.

     이어서 영역 지배를 통해 활성화시킨 아티펙트들이 추가로 방벽을 형성했다. 그가 직접 마법을 발현해 불의 장벽까지 솟아올랐다.

     일반적으로 고대의 아티펙트를 전투에 활용하는 이들은 대부분이 마법사다. 유적 공략자가 유물을 처분하는 곳이 주로 마탑인 탓에 아티펙트를 접하는 빈도수가 높다는 이유도 있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육체의 활용이 극에 이른 무인들은 웬만한 종류의 것이 아닌 이상 아티펙트의 활용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냥 본인이 가진 힘을 활용하는 데 집중하는 것 이상의 효율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쪽 세계의 검성, 검존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체에 가깝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마법사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마법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치우침이 굉장히 심한 능력.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고대의 아티펙트를 이용해 그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 넣곤 했다.

     무인과는 기본적인 반응속도가 다르니 그들에 비해 아티펙트의 활용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수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영역 지배’라는 마법사 특유의 기예가 있으니까.

     루데바른 또한 그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아티펙트로 채워 넣은 인물이었다. 그가 선택한 아티펙트들은, 가장 심플하면서도 효율적인 방어 계열 마법이 담긴 것들.

     그가 한순간에 생성해낼 수 있는 중첩된 방벽의 위력은 초월자의 기습마저도 한두 번 정도라면 막아낼 수 있는 수준.

     그러나, 이번만큼은 상대가 좋지 못했다. 그의 감각이 닿지 않는 초장거리에서, 통상적인 ‘기습’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의 공격을 날려오는 상대였으니까.

     그가 세운 방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투명한 방벽부터 그가 마지막에 생성한 불의 장벽까지. 한순간에.

     거대한 빛의 기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경로에 놓인 나무, 바위, 대지의 융기는 물론, 무려 초인의 경지에 이른 마법사까지 단숨에 증발해 버렸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아니, 공격의 여파만큼은 남았다.

     자욱한 연기가 일고 먼지가 날렸다. 폭발의 진원지에 마력의 폭풍우가 일었다. 짙은 마력의 잔향이 남아 그 광경을 지켜본 모든 이들의 모공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이게 대체.”

     아연한 얼굴로 주위 사람들이 재앙이 일어난 장소를 돌아보는 가운데, 살아남은 암흑상단의 두 수장이 곧바로 움직임을 보였다.

     프로지란은 달아났고, 나머지 한 사람, 드레비안은 공격이 날아든 장소로 신형을 날렸다.

    ‘저건 뭐야!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더라니!’

     프로지란은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그렇게 발을 빼야 한다고 했건만, 결국은 욕심이 화를 자초했다. 최대한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반면, 드레비안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분명 방금 날아든 공격은 말도 안 되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그는 막상 위급 상황이 닥치자 평점심이 무너진 프로지란과는 달랐다. 되려 차분하게 판단했다.

    ‘언뜻 나도 달아나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대는 분명 현자. 그렇다면 내가 제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현자와 검성이 맞붙게 되면 검성이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의 출력의 문제가 아닌, 종합적인 전투 능력의 차이다.

     물론 로카인과 같이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서는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도 있다. 대규모 군대의 지원을 받는 현자가 전쟁터에서 선보이는 신위는 무인에 비할 바가 아니고.

     그렇지만, 소수끼리 맞붙는 전투라면 웬만해선 검성이 현자에게 패할 일이 없다. 그러니 자신은 달아나는 게 아니라 되려 놈에게 접근해야 했다.

     물론 상대가 바보도 아니고 전위를 맡아줄 호위는 있겠지. 그렇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이쪽에는 비장의 수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수하에게도, 동료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숨겨왔던 비장의 수. ‘암흑정령’. 그 힘을 활용한다면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황을 보아하니 이미 완벽하게 함정에 빠졌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그렇게 신중하게 확인하면서 움직였거늘. 젠장, 프로지란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가 빠르게 자리에서 이탈하고 있는 프로지란을 힐끗 돌아보았다. 살짝 미안해하는 얼굴로.

    ‘달아나려고 해도 그게 가능할지, 그 뒤에는 어떻게 될지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선 이 판단이 옳다. 최악의 경우에도 저 녀석이 달아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겠지.’

     두 수장이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마치 어디 소설에 나오는 책사와 장군의 모습과도 같았다. 로엘이 그것을 망원경을 통해 지켜보며 피식, 하고 웃었다.

     아공간이 일렁이며 거대한 포신이 그 모습을 감췄다. 안 그대로 딜레이가 길건만, 한 번 사용하면 대략 10분 정도의 대기시간까지 필요했다.

     아직은 여러모로 단점이 많은 시험작이었다. 기껏 제작했건만 레인이나 르우벤을 상대로 사용하기엔 여러모로 부적합했다.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개량할 수 있겠지.’

     로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망원경을 내던지고 아공간에서 무기를 뽑아 들었다.

     마력포로 포격을 가하고, 그 중간중간에 라이플로 은밀한 공격을 섞어 넣었으며, 연사용 소총으로 견제했다.

    ‘무슨 생각으로 되레 달려드는 건지는 대충 알겠지만.’

     놈의 판단은 틀렸다. 그야 로엘이 일반적인 현자였다면 놈의 판단이 옳았겠지만, 그는 레인에게서 생사공을 전수받은 최상위 좌공 수련자.

     애초에 초장거리에 자리 잡은 채 유리한 전투를 시작한 이상, 아무리 상대가 검성일지라도 그가 패할 일은 없다.

     다가오는 만큼 물러서며 초장거리 공격을 날린다. 그로써 상대의 힘을 소진시키는 반면 이쪽의 체력은 온존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상대를 말려 죽이는 데에는.

     상대의 입장에선 아무리 달려들어도 감각에조차 걸려들지 않는 적이니 그야말로 악몽이다. 정신적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악랄한 전투법.

     그렇게 천천히 요리하다 힘이 빠진 순간 제압하면 상황 종료다. 시간은 좀 걸려도 확실하게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그 방식을 쓰진 않을 거지만.’

     로엘은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놈을 계속해서 견제했다. 놈과 로엘의 거리가 착실하게 좁혀져 갔다.

     놈의 체력은 그 거리를 좁히는 데에만도 상당히 소모되었다. 어쩔 수 없이 고화력 포격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몇 번이고 생겨났는데, 그때마다 막대한 오라가 증발했다.

     그러나, 그 정도면 근거리 전투에 약한 현자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수준.

    “하압!”

     결국 로엘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놈이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러왔다. 그리고, 로엘은 그것을 살짝 피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부탁합니다.”

     말과 동시에 급가속. 로엘의 신형이 상대를 순식간에 지나쳐, 방금 전 프로지란이 달아난 방향을 향했다.

    “어딜!”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드레비안이 곧바로 로엘을 추격하려고 했다. 순식간에 짓쳐 든 가면인의 검격에 곧바로 몸을 되돌려야 했지만.

     콰앙!

     검과 검이 맞붙은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폭음이 울렸다. 자세가 조금 어정쩡했던 탓에 주춤, 하고 물러난 드레비안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검성?”

     가면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기세. 그것은 드레비안의 그것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그의 것을 살짝 능가할 정도로 굉장한 것이었다.

    ‘최악이다.’

     드레비안이 검 손잡이를 세게 쥐었다.

     방금 전 자신을 지나쳐간 그 현자의 견제를 뚫고 이곳까지 오느라 이미 상당한 힘을 소진한 상황.

     그런데 상대가 현자가 아닌 검성이라니. 이젠 암흑정령의 힘을 빌리더라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어졌다.

    “뭘 하고 있나.”

     가면인이 입을 열었다. 뜻밖에도, 여인의 목소리였다.

    “덤비지 않고.”

    “…….”

     이내 두 사람이 맞붙었다. 두 초인이 쏟아내는 강기가 사위를 휩쓸었다.

     * * *

    “쿨럭!”

    “수고하셨습니다.”

     바닥에 엎어져 구속된 채로 거친 숨을 내뱉는 프로지란. 로엘이 무구를 아공간에 수납하며 땀을 닦는데, 카트리나가 다가와 물을 건넸다.

     프로지안이 달아난 방향에는 로엘이 매복시켜둔 전투팀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이 시간을 끌어준 사이, 로엘이 프로지란을 쫓아와서 급습을 가했다.

     프로지란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제압되었다.

     로엘의 능력은 방어력이 높은 이쪽 세계의 검성에게는 조금 상성이 좋지 못했지만, 마법사를 상대로는 천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높은 효율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전에 엘리제가 대련 중에 판단을 내렸듯이.

     아마 마법사를 상대하는 것에만큼은 로엘이 다른 각성자들보다도 더 뛰어난 효율을 보일 터였다.

    “감사합니다.”

     로엘이 빙긋 웃으며 물을 받아들었다. 그리곤 가면을 살짝 들어 올린 채 그것을 마셨다.

     이후 로엘은 암흑상단의 조직원들을 제압한 전투팀들을 데리고 드레비안과 가면인이 전투를 벌인 장소로 향했다.

     그쪽의 전투도 끝이 나 있었다.

     승자는 가면인. 드레비안은 비장의 수인 암흑정령까지 동원해가며 분투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갑작스런 전투패턴의 변화에 일시적으로 가면인이 몰리는 모습이 연출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로엘의 전투팀이 지원에 나서자 결국 추가 기울었다.

    “수고하셨습니다.”

    “…….”

     가면인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살짝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애초에 가면을 착용한 이유가 적에게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닌, 로엘의 전투팀원들에게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목소리를 냈다간 말짱 도루묵이지 않은가.

    “그럼 돌아가죠. 저희는 먼저 가도록 하겠습니다.”

     로엘은 암흑상단의 두 수장, 카트리나, 그리고 가면인과 함께 와이번에 탑승했다. 탑승 직전 전투팀원들을 돌아보고 치하의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2팀 팀장에게 미리 포상금을 전해두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마음껏 먹고 마셔도 좋습니다.”

     전투팀원들이 짐을 챙기다 말고 로엘의 선언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이번이 이륙하고, 창공을 가로질렀다.

     이동하는 도중 로엘이 가면인에게 다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었는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이 정도는 네가 해 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가면인이 답변했다. 그리곤 가면을 천천히 벗었다. 카트리나의 경우엔 애초에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따로 얼굴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문득, 그녀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갑자기 제국의 어둠을 도맡게 되었다며 찾아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로엘이 가면을 벗으며 빙긋, 하고 웃었다. 도저히 ‘그쪽’ 세계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신 미소였다.

    “쯧쯧. 얼굴이 아깝군.”

    “…….”

     여인이 중얼거리자 카트리나가 옆에서 저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로엘이 어색하게 웃었다.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또 불러다오. 얼마든지 도와주마.”

    “예. 감사합니다.”

     여인의 의례적인 발언에 로엘이 곧바로 대답했다. 거절하지 않는 것이 그다웠다.

     그가 여인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캐틀린 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