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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암흑상단(3) (129/249)

 129화. 암흑상단(3)

 제국의 신흥 대형 상단. ‘찰O와 초콜릿 공장’.

 이 상단에서 개발한 초콜릿과, 그로부터 파생된 각종 디저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에 와선 전 대륙적인 사업으로 발전한 형국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상단의 성장을 부러워하고 같은 사업을 벌이려고 든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쪽 세계엔 특허라는 개념이 없으니 더더욱.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가게를 내는 것도, 초콜릿을 재현하는 것도,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디저트를 개발하는 것도 모두 가능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운송’에 들여야 할 막대한 금액.

 단순히 초콜릿의 주재료인 카카오만 놓고 봐도 남부 밀림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식물이었다.

 그런데, ‘찰O와 초콜릿 공장’ 상단에선 바엘른 마탑을 끼고 그것을 제국에서도 재배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품종 개량했다.

 그로써 그들은 남부 밀림으로부터 카카오를 구입, 운송하기 위해 들여야 할 막대한 재화를 절약했다. 물론, 다른 상단들은 그 같은 절약이 불가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찰O와 초콜릿 공장’과의 가격경쟁에서 승리한 상단은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등장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근본적인 부분의 문제였다.

 그나마 대륙 남부에 위치한 몇몇 영지에선 선전하는 이들이 조금 등장했지만, 그들의 활동 영역은 딱 거기에서 그쳤다. ‘찰O와 초콜릿 공장’처럼 전 대륙적인 사업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인식이 퍼졌다.

[바엘른 마탑에서 생산, 공급되는 종자. 그 비밀을 풀 수만 있다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그 비밀을 파헤치고 싶어 하는 형국이었다. 바엘른 마탑이 강력한 힘을 지닌 세력이고 무려 제국의 국가기관이 아니었다면 이미 사달이 벌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우연히 그 비밀에 접근하게 된 인물이 등장했다. 무려 암흑상단의 간부라는 직책까지 지닌 여인이.

 상단 체계가 점조직이다 보니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연락을 취할 수단이 없었지만, 간부쯤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에게는 비상시를 대비한 전서구가 한 마리씩 분배되어 있었다.

 여인은 그 전서구를 이용해 상부에 ‘자신이 목숨을 걸고 알아낸 비밀’을 알렸다. 그에 반응할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상부의 마음이었는데, 사안이 커도 너무 컸던 탓에 최상위 간부가 직접 나서서 진위를 파악하러 나섰다.

 암흑상단의 정점에 있는 세 초인, 그중에서도 수계(水係) 마법을 다루는 현자. 올해로 44세에 이른 멀끔한 중년 사내.

 프로지란 르키벤. 조직의 두뇌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은 채 자신의 앞에 부복한 상단의 간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외눈 안경을 고쳐 쓰며.

“보고에 거짓은 없겠지?”

“물론입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상황이었기에.

 일단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기는 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선 의심의 빛이 떠나질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지만, 지금의 제국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피바람이 몰아치던 시기가 지나간 것이다.

 아직 숙청의 시기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워낙 황제의 행보가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러나 프로지란마저 그것을 모를 수는 없었다. 무려 암흑상단의 최고위 간부인 그이니만큼 국내의 정세에 굉장히 민감했다.

 그 탓에 요즈음 그의 경각심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애초에 그는 ‘더 이상 추이를 지켜볼 게 아니라 이만 제국을 떠야 한다’고 나머지 두 최고 간부들에게 역설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정황상 이 정보가 거짓인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보기엔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보이질 않아.’

 프로지란은 신중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정보력을 모두 동원해 정황을 파악해둔 상태였다. 그런 그이기에 여인이 올린 보고가 신빙성이 높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껄끄럽다.’

 분명 프로지란은 정보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했다. 암만 그라고 해도 초대형 상단을 통째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상황을 조작해 함정을 파고 있다는데 까진 생각이 닿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이 정보를 가지고 움직이는 데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시기가 너무 공교로웠다. 반대로 말하면 시기만 빼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에겐 왠지 그 부분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하게 느껴졌다.

 둘째. 하필 정보를 전해온 것이 ‘모든 수하가 전멸하고 혼자만 겨우 살아남은’ 인물이었다. 이 또한 생각하기에 따라선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프로지란은 이 부분에서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정보를 기반으로 계획을 세우고 일을 벌인다고 가정했을 때, 그로부터 얻게 될 이득이 너무 막대했다. 막대해도 너무 막대했다.

 그는 막대한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일에는 항상 막대한 리스크가 동반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여인이 구해온 정보로부터 정체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도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 두 녀석도 신중한 편이니 경거망동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간은 보려 할 것 같은데.’

 워낙 대단한 사안이다 보니 그냥 넘어가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법이니.

 프로지란은 역시 이 정보에 대한 것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직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말했듯, 그는 애초에 지금 당장 제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도 그와 같은 생각일 가능성은 낮았다. 그들은 제국에서의 활동에 아직 미련을 보이고 있던 기색이었으니.

‘그 녀석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한다.’

 그가 그런 고민을 하며 턱을 괴고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그의 앞에 부복한 여인은 요동치는 심장을 필사적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려 소속된 세력의 정점에게 거짓 정보를 고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 일을 지시한 그 인물에 대한 공포는 그보다도 더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서 눈앞의 초인에게 처단당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겪게 될 죽음보다도 끔찍한 형벌 또한 두려웠다.

 그 모순적이면서도 복합적인 두려움에 떨며, 그녀는 겨우겨우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미친 듯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끝장이다. 그녀는 눈앞의 사내가 ‘검성’이 아닌 ‘현자’임을 하늘에 감사하며, 신체의 이상을 감추기 위해 신형을 더욱 숙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프로지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여인에게 툭 하고 말했다.

“수고했다. 대단한 정보를 물어왔군. 수하들을 잃었다지만 뭐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 정보가 확실하고, 그로 인해 조직이 이득을 얻게 된다면 이후에 큰 상을 내리겠다.”

“가, 감사합니다.”

 프로지란은 여인이 한층 더 몸을 낮추는 것을 보고 휘휘 손을 내저었다. 그리곤 보고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방을 벗어났다.

“후우.”

 여인은 그 뒤로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자신의 팔에 걸린, 여러 팔찌 중 하나에 시선을 주었다.

 그것은 보통의 팔찌가 아니었다. 아티펙트였다. 자신에게 임무를 준 그 소년에게서 받은.

 이 팔찌를 통해, 그 소년은 지금까지 이 방에서 있었던 대화를 모두 도청했으리라.

 * * *

 아티펙트의 작동을 중단시킨 로엘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현재 그가 위치한 곳은, 여인이 몸을 의탁한 또 다른 암흑상단 지부 근방의 여관 개인실. 아티펙트의 도청 가능 범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곳이었다.

“일단 움직이죠.”

 잠시 후, 로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트리나가 뒤따랐다.

 여관 주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열쇠를 반납하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방을 빌린 지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묘한 웃음을 흘렸다. 남녀 두 사람이 겨우 1시간 동안 여관방을 대실해서 무엇을 했을지 제멋대로 상상한 것이리라.

“안녕히 가십쇼!”

 여관 주인의 인사를 뒤로하고, 로엘과 카트리나는 건물을 나섰다. 그리곤 인적 없는 곳에서 와이번을 불러 마탑으로 향했다.

“일이 잘 안 풀린 건가요?”

 이동 중, 카트리나가 물어왔다. 로엘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신중한 친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 수밖에 없는 미끼를 내걸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환경을 조장해 뒀건만, 반응이 예상보다 미온적이군요.”

“…….”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예?”

“사람의 마음이란 건 굉장히 간사하지요. ‘이젠 슬슬 위험하니 되도록 조심해야지’가 ‘얼마 있지 않아 지금껏 쌓아온 기반을 포기해야 할 때가 다가올 텐데,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 치고 떠야지’로 변하는 건 순식간입니다.”

 로엘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하고 웃었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이쪽이 상황을 조장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말이죠.”

“지시하실 일이 있다면 말해주십시오.”

 카트리나가 눈치 빠르게 대답했다. 로엘은 새삼 그녀의 유능함을 느끼며 살짝 웃었다.

“일단 놈들의 최고 통솔자는 그자를 포함해서 총 세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선은 나머지 둘을 자극해 보죠. 자세한 계획은 마탑에 도착해서 수립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 * *

 그 뒤로, 로엘은 갖은 수단을 전부 동원했다.

 여인으로부터 올라온 보고를 아예 나머지 두 최고 간부에겐 숨기려 한 프로지란의 의도를 무산시켰다. 그리고 그들이 미끼에 혹하도록 유도했다.

 간부 여인을 이용해 암흑상단의 중간 간부 몇 사람을 소리소문없이, 추가로 장기 말로 만들었다. 그들을 이용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고, 상단 내 여론을 몰아갔다.

 내 걸은 미끼, 그러니까 품종개량 관련 연구의 범위 확장을 위한 연구실 이전 건을 앞당겨 진행했다. 놈들이 조급해지도록. 참고로 이 부분은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어디까지나 놈들의 시선으로는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며 놈들의 탐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역시 프로지란이 문제였다.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자 때문에 중간에 일이 몇 번이나 틀어질 뻔했다. 가히 의심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암흑상단의 최고 통수권자 중 한 사람이다 보니 그의 입김은 굉장히 셌다. 그 탓에 로엘의 계획에 여러모로 제동이 걸렸다.

“쯧.”

 결국 로엘의 계획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렇다곤 해도 가장 중요한 결과는 대체로 이끌어 냈으니 상관없었지만.

 암흑상단 소속원들 중에서도 수뇌부에 속한, 뛰어난 실력자들이 연구실 이전을 위해 이동 중인 행렬을 향해 밀려 들어갔다. 정확히는 행렬을 빙자한 함정을 향해.

 그 모습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세 명의 수장들. 뭉쳐져 있지 않고 삼 방향에서 수하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황이 괜찮으면 개입하고 무언가 이변이 생기면 곧바로 몸을 뺄 수 있도록.

 물론 프로지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놈들을 한 곳에, 시선이 닿는 위치에 모이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게 어디야.”

 그리고 그들의 감각권 바깥에서, 로엘이 특수 제작한 망원경으로 그들을 살피며 손가락을 튕겼다. 로엘의 뒤편 공간이 일렁이더니-쿠우우우우우우.

 -거대한 포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포신의 크기만도 굉장하건만, 아공간 너머에 위치해 있는 동체의 크기는 대체 어느 정도일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야말로 아공간이 없다면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물건.

“이건?”

 로엘의 뒤편에 선, 풀 플레이트 아머를 갖춰 입은 가면인이 놀란 목소리를 흘렸다.

“…….”

 로엘은 묘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포신을 세 수장 중 한 사람에게 향하도록 만들었다.

 이 물건을 제작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얼마 전에 벌였던 각성자들끼리의 대련이었다.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르우벤’ 때문이었다.

 세 각성자의 대련에서 로엘은 르우벤에게 상당히 약한 면모를 보였다. 근본적으로 르우벤의 실력이 조금 더 윗줄인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상성’의 문제가 더욱 컸다.

 이유는 간단했다. 르우벤의 탱커 세트(Tanker set)에 대응할 방도가 로엘에겐 없었기 때문.

 물론 결과적으로 대련에서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것은 르우벤이었다. 그리고 로엘은 르우벤보다 오래 견디긴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난전의 변수로 인한 결과일 뿐. 로엘은 그 대련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여러모로 자각할 수 있었다.

 그때 로엘이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족한 점’으로 자각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마력포를 초월하는 고화력 무구를 제작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마력포의 위력은 절대 낮지 않았다. 웬만한 초인들에게도 통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르우벤의 아티펙트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방어력을 자랑한 것일 뿐.

 그럼에도 로엘은 이 물건을 만들었다, 한동안 자신의 개인 공방을, 그리고 그에 속한 사람들을 통째로 동원해가며. 그답지 않게 감정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본래라면 2개의 도전용(導電用) 레일 사이에서 가속 발사되는 전자포를 마력으로 구동되도록 제작한, 괴물 같은 위력을 지닌 무구. 그것이 기동을 시작하자 낮게 울리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뭐야 이거.”

 마치 무형검(無形劍)과도 같은, 아니, 그 이상의 힘이 응축되어가는 거대한 포신을 멍하니 응시하며 가면인이 중얼거렸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무슨 놈의 아티펙트가.’

 기운을 축적하는데 들여야 하는 시간이 상당했다. 한마디로 딜레이가 길었다. 검성이 무형검을 생성시키는 시간보다도 긴 시간을 요구하는 무구인 듯싶었다.

 그렇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물건은 사기였다. 가면인은 단언할 수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사히 장전을 마친 그것이- 

“먹어라.”

 -눈을 멀게 할듯한 광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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