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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암흑상단(2) (128/249)
  •  128화. 암흑상단(2)

    “…….”

    “이쪽 계열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침을 흘릴 법하잖아? 이렇게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심지어 수행원조차 대동하지 않고 찾아온 훌륭한 먹잇감이라니.”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다신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해도 되는 건가요?”

     로엘이 조금 곤란한 듯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이쪽 세계의 상단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어수룩해선 안 돼. 곧바로 잡아먹히거든. 너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종종 이런 실수를 하곤 하지.”

    “…….”

    “솔직히 이만한 규모의 거래를 제안하기에 얼마나 굉장한 거물이 나타날까 했는데, 상대가 이쪽 세상은 겪어보지도 못한 초짜라서 우리도 조금 놀랐다고?”

    “…….”

    “그래서 말인데,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잡혀 주지 않겠어? 너 정도의 외견은 정말 보기 힘들어서, 되도록 흠집을 내고 싶지 않거든.”

     로엘은 주위를 둘러싼 근육질 흉터투성이 사내들을 곁눈질하며 묘한 신음성을 흘렸다. 마치 잘못 걸렸다는 듯이.

    “일단 묻겠습니다만, 제가 이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해도 듣지 않으시겠죠?”

    “당연한 말을.”

    “이쪽 세계가 원래 이런 법이니, 원망하지 말라 이건가요?”

    “…….”

     여인은 묘한 미소를 입가에 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군요.”

     로엘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 입가에 평소와 같은 미소를 내걸었다.

    “우연이네요.”

    “음?”

    “아뇨. 사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인지라. 확실히 이쪽 세계의 일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법이니, 원망은 무의미하겠죠?”

    “……?”

    “이렇게나 생각이 일치하는 상대를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요.”

    “뭐?”

     여인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로엘의 말에 저도 모르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로엘은 여인의 의문을 풀어주는 대신, 오른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살짝 말아쥐었다.

     콰장창! 퍽!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주위에 늘어서 있던 장한들이 단체로 당황해 소리쳤다. 한 사내가 갑작스레 핏방울을 흩날리며 쓰러져 버렸으니 당연했다. 뒤쪽에서 슬금슬금 로엘을 향해 다가가고 있던 사내였다.

    “네, 네놈의 짓이냐?!”

     한 장한이 로엘에게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로엘이 그 장한에게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손가락질은 거두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지금까지와는 확 달라진 말투. 정중하고 매너가 넘치던 아까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가장 먼저 표적이 될 테니까.”

     로엘의 말과 동시에 유리창을 깨부수며 날아와 장한의 머리에 박혀 드는 탄환.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장한이 머리에서 핏방울을 흩뿌리며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정보로 접하긴 했지만, 정말로 어지간히 돈을 벌어들인 모양이군.’

     깨져나간 유리창을 보며 로엘이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주위 사방에 자리 잡은 창들이 전부 유리창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부유함의 상징.

     사실 저 유리창들은 로엘이 대량생산 체제를 갖춰 판매하고 있는 제품 중 하나였다. 물론 그가 판매하는 제품인 만큼 부유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었다. 가격이 절대 낮지 않았다.

    ‘무려 제국을 상대로 위험을 감수해가며 그 짓을 벌였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가.’

     바로 근방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 와중임에도 상당히 느긋한 생각을 하는 로엘이었다.

    “헉!”

    “흐헉!”

     여기저기서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장한들이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동안, 로엘은 손가락으로 여인을 한 차례 가리켰다. 그리곤 손을 풀고 가볍게 내저었다.

    [저 여인을 제외한 모두를 치워라.]

     -라는 의미가 담긴 신호.

    “라저.”

     건물 바깥.

     멀리 떨어진 어느 건물 옥상에서 조준경으로 건물 내부를 살피고 있던 카트리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다른 팀원들과 함께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콰장창창창!

     팍! 팍! 팍! 팍! 팍! 팍!

     직후, 사방의 유리창이 동시다발적으로 깨어져 나갔다. 빗발쳐 들어오는 탄환들.

    “악!”

    “크악!”

     탄환들은 로엘과 여인을 제외한 좌중의 모든 이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박혀 들었다. 삽시간에 로엘을 포위하고 있던 장한들이 무너져 내렸다. 몸 곳곳에 탄환이 박힌 채 신음을 내질렀다.

     로엘은 그들을 무심한 시선으로 한 차례 내려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여인 쪽을 향했다.

    “무, 무슨!”

     여인이 급히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뭐야, 대체 무슨 상황이야! 이런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로엘에게 시선이 닿자 눈을 치떴다.

    ‘인질을 잡자. 눈앞의 저 녀석이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진 녀석인진 모르겠지만, 방금의 손동작으로 지시를 내리던 모습으로 미뤄봤을 때 절대 낮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생각과 동시에 다리를 굽혔다.

    ‘인질로 삼을 수만 있다면,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초일류 검사다운 날렵한 몸놀림.

     그러나, 그런 그녀를 응시하던 로엘은 픽, 하고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레인이나 르우벤이 선보인 움직임과 그녀의 움직임을 비교하자니- 

    ‘너무 느리네.’

     -그렇게 시시할 수가 없었다.

     로엘의 신형이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경지에 이른 보법으로 곧바로 여인의 뒤를 잡고, 아공간에서 꺼내든 권총을 격발했다.

     푸슉!

    “아악!”

     여인이 뾰족한 비명을 내지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로엘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연속으로 권총을 격발했다. 단검을 쥔 양손에 한 발씩. 그리고 아직 멀쩡한 다리 한쪽에도 추가로 한 발.

    “아아악!”

     경악스러울 수준의 밀집도를 자랑하는 마력 탄환은, 일체의 저항도 없이 여인의 몸을 꿰뚫어 버렸다. 여인이 손에서 힘이 빠지고, 단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내 그녀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그렇게, 초일류 검사 한 사람이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로엘은 걸음을 옮겨 그녀의 얼굴 앞쪽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곤 오른손으로 그녀의 턱을 붙잡아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도록 만들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일에 도움을 좀 주셔야겠습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여인이 격통에 신음하는 와중에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그래 줄 리가 없지 않은가.

    “하게 될 겁니다.”

    “웃기지 마!”

     그녀가 퉷, 하고 침을 뱉었다. 그러나 곧바로 머리가 바닥에 처박힌 탓에 그것이 로엘에게 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로엘은 천천히 신형을 일으키더니 보복의 의미로 여인의 양어깨에 한 발씩 권총을 격발했다. 그리곤 비명을 내지르는 그녀를 무시한 채 기감을 넓게 풀었다.

     1층의 위장 주점으로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기척이 전해져 왔다. 계획대로 전투팀이 돌입한 것이리라.

    “…….”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여인이 혼절했다. 피를 너무 흘린 탓이었다. 죽어선 곤란했기에 아공간에서 포션을 꺼내 여인의 상처 부위에 부어 주었다.

     이후 로엘은 여인의 부하들 중 살아남은 이들을 처리했다. 이용할 가치가 있는 인물은 여인뿐이었으니까.

     그즈음에 카트리나가 2층으로 올라왔다. 로엘이 웃는 얼굴로 그녀를 치하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확인 작업은 마치셨습니까?”

    “건물 내의 인물 전원이 암흑상단의 일원임을 확인했습니다. 주점을 찾아온 일반 손님들은 방금 전부 몰아낸 참입니다.”

    “봐줄 것 없겠네요. 전부 지우도록 하세요. 한 녀석도 남겨두지 말고.”

    “예.”

     카트리나가 지시에 따라 1층으로 되돌아갔다. 이내 아래층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끔씩 큰 비명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다지 상관은 없을 터였다. 주위에서 이변을 알아채기 전에 확실하게 철수할 테니까.

    “그럼 부수입이나 챙기러 가 볼까.”

     로엘은 아까 여인이 가리켰던, 물건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던 창고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건은 확실하네.”

     창고의 문을 열자 그 안쪽에 수많은 상자가 쌓여 있었다. 로엘 측에서 준비한 막대한 보상에 걸맞은 희귀한 물건들이었다.

     그런 태도를 보인 주제에 물건 자체는 제대로 준비해 뒀었다니, 웃기는 일이었다. 막판에 로엘의 무방비한 모습을 보고 판을 깨려 들긴 했지만,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다는 것이리라.

     물건들은 딱히 로엘에게 부담이 될 정도로 값나가는 것들은 아니었다. 다만 ‘정상적으로는’ 구하기가 조금 까다로운 것들일 뿐.

     그저 일을 진행하는 김에 겸사겸사 물량을 확보할 계획을 세워 뒀던 것이었다. 말 그대로 부수입.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가져다주면 레인이 좋아하겠군.”

     로엘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상자들 아래쪽 바닥에 상당한 크기의 마법진이 출현했다. 순식간에 그 자취를 감추는 상자들.

     그가 이제는 조용해진 아래쪽에 잠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곤 느긋한 발걸음으로 방을 벗어났다.

     * * *

    “아아아아악!”

    “제, 제발! 차라리 날 죽여!”

    “어허어엉. 그만, 그만! 뭐든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 테니 제발 그만둬 주세요!”

     처절한 여인의 비명이 몇 시간이나 그치지 않고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독기에 차 있던 외침이 점차 고통 가득한 비명으로 화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울음기 가득한 애원으로 바뀌었다.

     로엘은 대기실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속으로 나름 신선한 경험이라는 감상을 내리며. 그다지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긴 했다.

     현재 로엘이 위치한 곳은 제국 소속 국가기관, 그레이본 마탑이었다. 정확히는 그 마탑 내에서도 최상층에 위치한 어느 ‘현자’의 개인 공간.

    ‘그러고 보니 탑주님을 통해 의뢰를 전달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은 처음이군.’

     이곳은, 제국에 악명이 드높은 ‘그’의 개인 작업실과 연결된 대기실이었다. 로엘이 이곳을 찾은 것은 일전에 생포한 암흑상단의 중간 간부를 써먹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였고.

    ‘계약 마법이 초일류 이상의 실력자에게까지 통하는 것이었다면 참 편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계약 마법은 초일류 이상의 실력자들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상당히 섬세한 마법이다 보니 그들이 축적한 마나로부터 비롯되는 기본적인 항마력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다. 설사 그들이 계약에 동의한다고 해도.

     일류 이하의 실력자들과 맺은 계약 마법이 그들이 초일류로 성장한 뒤까지 이어질 수는 있었다. 그마저도 그들이 초인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면 깨어지지만.

     아무튼.

    ‘상관없지. 타인의 행동을 제어하는 방법은 그 외에도 많이 있으니까.’

     사로잡은 암흑상단의 중간 간부를 제어할 필요성은 있는데 계약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곳으로 그녀를 날라 왔다. ‘그’의 힘을 빌려 그녀를 고분고분하게 만들 생각으로.

     확실히 돈을 쓴 보람이 있었다. 소리만으로도 그녀의 의지가 팍팍 깎여나가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이쪽 분야의 정점에 이른 현자의 솜씨였다.

     딱히 죄책감이나 동정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암흑상단의 구성원들은 이전에 쓸어버렸던 스콜피온 따위는 우습게 볼 정도의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이었으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료함에 못 이겨 아공간에서 꺼내 든 책을 읽고 있던 로엘이 고개를 들었다. 작업실에서 들려오던 끔찍한 소리가 멎었기 때문.

     이내 문이 열리고, 어떤 이유에선지 옷과 얼굴에 핏방울이 잔뜩 튄 노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린 곱추 노인이었다.

     어느새 가면을 착용한 로엘이 그에게 작업 결과를 물었다. 그러자 ‘무슨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클클. 케르티아 남작이라고 했던가. 앞으로 자주 봅시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로엘은 노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보수를 건넸다. 그리고 그를 지나쳐 ‘작업실’ 내부로 들어섰다.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서자, 아예 악취가 풍겨져 나왔다.

    “흐어엉. 흐어어어어어어.”

     이내 로엘은 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견은 멀쩡하건만, 눈에 초점이 없었다. 눈, 코, 입을 통해 분비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굉장히 서럽게 울어 재끼고 있는 중이었다.

     입고 있는 헐렁한 바지가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다. 악취의 근원지였다. ‘작업’에 견디지 못해 배설을 하고 만 것으로 보였다.

     로엘은 여인의 턱을 들어 올려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게 했다.

    “자. 이제 제 말을 따를 생각이 좀 드나요?”

     화장이 번져 엉망이 된 얼굴. 눈에 초점이 조금씩 돌아오는가 싶더니 그녀가 극심한 공포에 질린 얼굴로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제대로 기억해 두세요.”

     로엘은 손에 힘을 주어 고갯짓을 멈추지 않는 여인의 얼굴을 억지로 고정시킨 뒤, 나지막하게 말했다.

    “당신의 지부는 저와 충돌한 것이 아니라, 최근 급성장한 제국의 대형 상단, ‘찰O와 초콜릿 공장’과 충돌한 겁니다.”

    “……?”

    “어쩌다 보니 그 대형 상단의 중요한 기밀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충돌이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지부가 통째로 날아갔고, 당신만이 겨우 목숨을 건져 그곳에서 빠져나온 겁니다.”

    “그게 무슨.”

    “그리고 지금부터 그 기밀을, 당신은 조직의 상층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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