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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서장 (126/249)
  •  126화. 서장

     로엘은 다시 황궁을 찾아갔다.

     이젠 로카인과 동행하지 않아도 바로 황제의 집무실로 찾아갈 수 있었다. 황제에게서 그럴 권리를 받았으니까.

     로엘은 이번엔 황궁 정문이 아닌, 황도 어딘가에 위치한 지하 통로 입구를 찾아갔다. 바르바젠에게 언질 받은 장소였다.

     그곳에는 평범한 창고가 세워져 있었는데, 무려 초일류 검사가 일반인으로 위장한 채 그 내부를 지키고 있다가 로엘을 맞이해 주었다.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사내는 로엘이 내민, 고대의 유물을 가공해 제작한 특수한 인장을 확인한 뒤 창고 한쪽 바닥을 들어냈다. 그러자 지하로 향하는 돌계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참고로 로엘은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쪽’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사소한 일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물론 가면뿐 아니라 초감각을 지닌 자들의 이목을 흐리기 위한 감각 교란 아티펙트도 착용하고 있었다.

    ‘구조 자체는 심플하군.’

     지하로 내려서자, 오로지 일자로만 나 있는 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황궁으로 향하는 비밀통로인 만큼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꼬인 길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건만.

     벽면에 드문드문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지하 통로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리라.

     한참 통로를 주파하다 보니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었지만, 로엘은 당황하지 않고 미리 언질 받은 대로 왼쪽 벽면에 새겨진 마법진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그그긍.

     그러자 막혀 있던 전면의 벽이 옆으로 밀려나며 빛이 새어 들어왔다. 로엘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통로 바깥에 발을 내디뎠다.

    ‘본 적 있는 장소로군.’

     이전에 로카인과 함께 찾아왔던, 황궁 후원의 별관. 그 별관 1층 복도가 분명 이런 형태를 띠고 있었다.

     로엘이 자신이 건너온 통로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그그긍.

     아름다운 여인이 그려져 있는 거대한 액자가 옆으로 움직여 로엘이 지나온 통로를 가리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돌아갈 때 사용할 마법진은 저기에 있군.’

     액자에 그려진 여인이 착용하고 있는 서클릿. 그 서클릿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그림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확실하게 그 존재를 인지하고서 찾지 않으면 그것이 진짜 마법진임을 알아채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던 로엘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이거 너무 무방비한 것 아닌가.’

     이전에 황궁을 방문했을 때도 황제가 머무는 장소를 지키는 병력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황제가 꼭두각시라지만, 그래도 그 중요성이 낮지는 않을 텐데.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나기로는 그랬다는 것이지만, 그것도 보안에 있어 그리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난 존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억제력이 되니까.

    ‘이 비밀통로도 그렇고.’

     통로의 존재도, 숨겨둔 방식도, 그리고 그 통로의 구조도 너무 심플하기 그지없었다. 그 존재가 황제를 적대하는 이들에게 넘어가면 바로 악용될 우려가 있을 정도로.

     황제가 자주 머무는 공간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동시에 바르바젠이 확실히 그 존재를 파악하고 있는 통로치고는 너무 허술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적어도 로엘의 시선으로 보기엔 그러했다.

    ‘그가 그렇게까지 허술한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로엘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바르바젠은 능구렁이 농축액을 트럭째로 들이켰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심계가 깊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왜 손에 들린 가장 중요한 패의 안전에 이렇게까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타이론……. 이라고 했던가. 그 기사를 그만큼 신용하는 건가.’

     황제를 항시 수호하고 있는 제국 최강의 기사, 타이론 드 엑스페리온. 확실히 그를 감당할 존재는 제국은커녕 전 대륙을 뒤져봐도 몇 되지 않긴 했다.

     그만한 강자와 암중에서 호위하는 특수집단이 힘을 합쳐 황제를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웬만해선 황제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존재가 없긴 했다.

    ‘뭔가 석연찮은데.’

     그럴듯하긴 하지만, 이 또한 허점이 많은 가정이었다. 로엘은 잠시 더 머리를 굴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한 차례 내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일이지.’

     그가 발걸음을 옮겨 이전에 황제를 만났던 장소, 응접실로 향했다. 황제는 분명 그곳에 있을 터였다. 이 시간대엔 항상 그곳에 있다고 했으니.

     * * *

    “폐하. 케르티아 남작께서 오셨습니다.”

    “들라 하라.”

     응접실에 다다르자 예의 그 집사가 로엘의 방문을 알렸다. 로엘은 어느새 가면을 벗어 아공간 속에 보관해둔 상태였다.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인지. 응접실 내부로 들어서니 타이론과 마주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황제가 시야에 들어왔다.

    “와서 앉지. 집사. 차를 한 잔 더 내오도록.”

    “예. 폐하.”

    “…….”

     이전에도 그랬지만, 격식과는 상당히 멀어 보이는 태도를 고수하는 황제였다. 호위 기사와 티타임을 가진다는 것도 그렇고.

     사실 그 모두가 ‘조작된’ 행동이라는 게 기가 막히는 일이지만.

    “폐하께서 내리신 임무.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결과를 들어볼까.”

     금세 황제의 주변에 차단막이 둘러쳐졌다. 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로엘은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계획한 대로 엠페러 아이즈와 접촉한 일. 그리고 그곳에서 얻어낸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각성자’, 아니 각성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발견해낸 일까지.

    “각성자로 추정되는 인물이라.”

    “…….”

     황제는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건의할 것이 있다고 했었지. 들어볼까.”

     드디어 본론이다. 로엘은 빙긋, 하고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우선 바르바젠 님이 주신 선물에 대한 답례를 좀 드리고자 합니다.”

    “답례?”

    “차후에, 제가 직접 제작한 아티펙트로 무장한 특수집단을 제국 각 군사요충지에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바르바젠 님께서 따로 사용하실 인원 또한 추려두도록 하겠습니다.”

    “구미가 당기는군.”

     황제는 슬쩍 웃으며 한 차례 찻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살짝 목을 축인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들이 사용하는 아티펙트의 유출 문제가 있지 않나? 그 때문에 지금까지 만들어낸 전투팀의 구성원 모두에게 계약 마법으로 제약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 엠페러 아이즈의 정보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적어도 제국 내에서만큼은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고 보아야 하리라.

    “설마 네 말 한마디면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하는 꼭두각시들을 제국 곳곳에 배치시켜 놓겠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닐 테지?”

     그것은, 어찌 보면 딜레마.

     로엘의 입장에선 그 본인이 직접 제작한 아티펙트로 무장한 집단에 제약을 걸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제약은 바르바젠의 시선으로는 껄끄럽고 불쾌한 종류의 것. 그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 이전의 문제였다.

     어차피 로엘 입장에서 전투팀을 내어놓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제국의 전력 강화는 둘째치고, 그 본인을 위해서도.

     그런데 보안을 위해 걸어둔 그 제약이, 이 일에 대해서 만큼은 오히려 발목을 잡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어찌 보면 난처한 질문을 받은 상황임에도 로엘의 표정은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야 예상한 질문이었으니까.

     그가 떠올린 이 문제의 해결방안은 굉장히 심플했다.

    “그들은 저와 계약 마법을 맺는 동시에, 바르바젠 님과도 계약 마법을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런 수가 있었군.”

     그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간단한 해답이지만, 로엘 본인이 계약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전제부터가 성립될 수 없는 해답이기도 했다. 로엘이 내심 르우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좋다. 사양하지 않고 받도록 하지.”

     황제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더니, 툭 하고 그 뒷말을 이었다.

    “그저 받기만 해서야 내 체면이 서질 않으니 보답을 해야겠지. 네가 조직을 구축하고 안정화시키면 적당한 선물을 보내겠다.”

    “감사합니다.”

     로엘이 만족스럽운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제멋대로에 잔혹하기로도 유명하지만, 자기 사람에게 화끈하기로도 유명하다. 그가 내어주겠다고 한 ‘보답’은 절대 작지 않으리라.

     어차피 이쪽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전투팀은 제국에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존재가 로엘이 구축한 상단, 그리고 제국의 어둠에서만 드러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두 집단의 관계를 의심하는 자가 등장하게 될 테니까.

     전투팀은 ‘로엘이 가진 힘’이 아닌 ‘제국이 가진 힘’이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래야 로엘의 운신이 자유로워질 터였다.

    “또한 네가 운영하는 상단은 앞으로 제국 황실이 그 뒤를 봐주게 될 것이다. 마음껏 판을 키워보도록.”

     이어진 황제의 발언 또한 파격적이었다. 무려 제국 황실이 뒷배가 되어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물론 아주 거저는 아닐 터였다. 이를 빌미로 황실, 아니 바르바젠이 상단에서 뜯어가는 부분도 상당하겠지.

     그렇지만 황실의 지원을 바탕으로 앞으로 얻게 될 이득에 비교하면 그런 것은 문제도 아닐 터였다. 말하자면 윈-윈 이였다.

    “감사합니다.”

     로엘이 재차 고개를 숙이려 했다. 그러자 황제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과한 예는 집어치우도록. 그 같잖은 격식 속에 비수를 품고 있는 놈들을 전생에 어지간히 만났어야지.”

    “예.”

     그러고 보니 원래 역사에서 황제의 위에 등극하는 ‘바르바젠 루엘 카이엔’은 등극과 동시에 서자 출신이라는 약점, 그리고 최악의 주위 환경에 한참을 시달렸다고 했던가.

     그가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 전생의 경험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로엘은 그 사실을 한 차례 속으로 되뇌며, 다음으로 해야 할 말을 머릿속으로 골랐다.

    “그리고 각성자들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을 조만간 모두 제국으로 끌어들일 생각입니다.”

    “전부터 묻고 싶었던 것이다만, 가능하겠나? 각자 출신 국가가 다를 텐데. 그 새롭게 발견했다던 각성자야 제국 출신이라지만…….”

    “가능할 겁니다. 저와 같은 환생자인 레인의 경우엔 딱히 토우런트 왕국에 큰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회귀자인 르우벤의 경우엔 출신 국가에 아예 악감정을 지니고 있는 형국입니다.”

    “흠.”

    “다만 조금 걸리는 점이라면, 레인의 경우 왕국에 소속된 특정 영지와의 관계가 깊다는 건데, 이 부분에 대해선 이후에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나야 환영할 일이겠지. 그 가증스러운 마족 놈들의 침공으로부터 제국을 지켜내기 위해선 인재는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니까.”

     황제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로엘에게 전해 들은 바로, 각성자들은 하나하나가 차후 강력한 전력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한 이들. 바르바젠의 입장에선 아군으로 삼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래야 할 이들이었다.

     단순히 전력상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그들이 바르바젠과 같은 미래를 내다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대비해나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중요했다.

     이 부분에서 바르바젠과 로엘의 생각이 일치했는데, 각성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국가에서 활동하는 것은 곤란했다. 각각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가 서로 충돌하게 될 우려가 있었으니까.

     각자가 그리는 미래가 작다면 모를까, 그 규모가 거대한 만큼 그렇게 되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었다. 서로의 이익이 부딪치는 상황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

     마족의 대륙 침공 전까지 인류는 최대한 전력을 비축해놓아야 했다. 그에 있어, 각성자들끼리의 충돌은 필시 큰 손해로 작용할 터였다.

     그러니 이왕이면 그들을 하나의 국가에 모아두는 것이 좋았다. 한 테두리 안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했다.

     무려 각성자로 인해 괴뢰정부가 구성된 제국은 그들을 포용할 국가로 안성맞춤이었고.

     그리고 각성자들을 끌어들이기 가장 좋은 시점은, 바로 지금이었다. 아직 바르바젠과 로엘 이외의 각성자들은 본격적으로 세력을 구축하지 않은 지금 시점.

    “그들이 제국으로 망명한다면 충분한 지원을 약속하지. 그들에게도 전하도록.”

    “예.”

     그렇게 각성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당히 마무리 지은 두 사람은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와중, 로엘이 약간 조심스러워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례한 질문일 수 있으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원래의 역사에서 제국은 마족의 침공에 무너졌습니까?”

    “그렇다.”

    “……!”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엘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답변이었음에도 살짝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제국은 대륙 최강국이다. 다른 어떤 국가의 국력도 제국의 그것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런 제국이 무너졌다는 건…….

    “내 사후의 일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원래의 역사에서 대륙은 마족의 손아귀에 떨어졌겠지. 분명히.”

    “…….”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로엘은 이 이상은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직감적인 판단을 내리고 입을 다물었다.

     황제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너머에서 그를 조종하고 있을 바르바젠의 속마음마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몇 분간. 응접실 내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찻잔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소리만이 주위를 울렸다.

     먼저 다시 입을 연 것은 황제였다. 그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 녀석이 업무를 볼 시간이 다가오는군.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하도록 하지. 아, 케르티아 남작.”

    “예.”

    “전에 말했었지. 그 자리의 중요성이 굉장히 높은 만큼, 그냥 선물로 줄 수는 없다고. 능력을 입증해야 할 거라고.”

    “……?”

    “자리를 내준 자의 권한으로 임무 하나를 주지. 제국 내에 존재하는 암흑상단을 모조리 쓸어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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