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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또 다른 각성자(3) (124/249)
  •  124화. 또 다른 각성자(3)

    “만나서 반가워. 폐하께 연락은 받았지.”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라일리아 렌 에드리아 백작님.”

     로엘은 눈앞에 선 매혹적인 수인족 여성에게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카트리나가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훨씬 젊고 잘생긴 소년이었네. 난 또 그만한 상단을 만들어낸 사람이라기에 좀 더 나이 있고 노련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저 또한 백작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엠페러 아이즈의 수장께서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분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서로를 칭찬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저 인사치레일 뿐, 두 사람 모두 진심은 아니었다.

     라일리아는 로엘이 어린 소년임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녀의 정보력은 그렇게 얕지 않았다.

     로엘이야 입바른 말을 하는 덴 도가 튼 인물이었다. 그 자신의 말과는 달리 눈동자에는 조금의 동요도 담기지 않았다.

    ‘위험한 부류로군.’

     로엘은 내심 살짝 긴장했다. 보는 순간 그녀가 어떤 타입인지 대충 감이 왔기 때문이다.

    ‘겉과 속을 완전히 분리시켜 행동하는 게 가능한 여인이다.’

     어찌 보면 거대 정보조직의 수장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능력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타인에게 건네는 ‘정보’를 마냥 신용할 수만은 없겠다고, 로엘은 생각했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 너도 ‘이쪽’ 사람이 된 모양이니. 서로 협력해야지.”

     라일리아 백작이 고혹적인 미소를 흘렸다. 육감적인 몸매에 더없이 어울리는 미소였다. 흑단 같은 웨이브 진 검은 머리칼 위에 비죽 솟아올라 있는 고양이 귀가 쫑긋거렸다.

     어떻게 보면 청초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색기가 넘치는, 매혹적인 얼굴.

     그리고 터질 듯한 몸매를 한층 더 강조시키는, 머리색과 대비되는 새빨간 드레스.

     몸 전체를 둘러싼 나른하면서도 유혹적인 분위기.

     그런 그녀가 눈웃음치며 상대를 응시하는 모습은 가히 아찔하다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다. 로엘은 빙긋 웃는 얼굴로 그녀의 말에 답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작님.”

     라일리아의 입가에 걸릴 미소가 짙어졌다. 적어도 간단한 유혹 따위에 흔들리는 한심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 그런데.”

    “?”

    “일단 이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지. 앞으로 협력 관계는 분명 구축해야겠지만, 설마 대등한 관계가 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첫 번째 테스트는 넘어갔으니 이번엔 두 번째 테스트.

     상대는 이제 막 이쪽 세계에 들어온 인물이다. 어떤 기반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앞으로 만들 세력이 황제 직속 정보단체인 엠페러 아이즈와 대등한 위치에 설 수는 없었다.

     카트리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로엘 뒤쪽에 교묘하게 서서 라일리아에게 표정이 보이진 않게 했지만.

     엠페러 아이즈의 수장은 대놓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알아서 모셔라] 라고. 로엘 휘하에 속한 이로써 카트리나의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당분간은 대등하지 않은 관계더라도 그다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로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답변했을 뿐.

    “당분간은, 이라는 말은 이후엔 대등한 관계가 될 거라는 뜻인가?”

    “…….”

     로엘은 그저 빙긋, 하고 웃어 보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라일리아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두 번째 테스트도 통과였다.

     쓸데없이 감정적이지도, 자존심을 세우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무시당할 정도로 그것들을 죽이지도 않는다. 이쪽 세계의 인물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 로엘이 다짜고짜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김에 열람하고 싶은 정보가 좀 싶습니다.”

    “······?”

    “물론 황제 폐하께는 윤허를 얻었습니다. 협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 * *

     현시점에서, 로엘이 일궈낸 세력은 완전히 궤도에 올라섰다. 다달이 벌어들이는 돈은 천문학적인 수준이었고, 갖춰진 인재도 충분했다. 최근엔 무력적인 측면까지 완벽하게 보강했다.

     그런 로엘의 세력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보체계’였다. 아무래도 급성장한 세력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로엘은 급격히 사업을 키우기 위해 오로지 판매층을 부유 계층으로만 좁히는 전략을 사용했다. 판매층을 점차적으로 넓혀가며 자연스레 정보체계를 갖추는 여타의 상단들과는 달리.

     그렇기에, 로엘은 ‘이쪽’ 세계로 들어온 것을 기회로 삼을 생각을 했다. 물론 그것은, ‘엠페러 아이즈’의 정보력을 염두에 둔 생각이었다.

     물론 엠페러 아이즈의 수장이 호구도 아니고 그들의 정보체계를 멋대로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똑같이 황제 직속인 데다 ‘이쪽’ 부류다 보니 정보를 전해 받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았다. 대가를 지불해야 함은 물론이겠지만.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이점이었다. 비록 제국 내에서만 활동하는 세력이라지만 이만한 정보조직의 도움을 얻을 권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황제 아래로 들어간 보람이 있었다.

     물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로엘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정보일 경우에 한했다. ‘황제’의 의사에 따라 정보를 요청하는 경우엔 무조건적인 협력을 얻어낼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프레퍼의 활동에 관한 정보들은 이게 전부입니까?”

    “그래.”

     참고로 라일리아는 로엘에게 거침없이 하대했다. 로엘은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카트리나는 미약하게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남작이라지만 정식 귀족인 로엘에게 너무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카트리나의 생각이 바로 그러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녀가 라일리아라는 인물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것이었다. 실상 라일리아가 로엘에게 하대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라일리아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사실 그 내용물이 70대의 노인이었다. 노회한 육신을 남부에 전해져 내려오는 수인족 전용 주술로 억지로 되돌려 놓은 것일 뿐.

     제국에 헌신해온 기간이 웬만한 중신들을 가볍게 넘어서는 그녀다. 심지어 그녀의 작위는 ‘일’의 특성상 올라가지 않은 것일 뿐, 실질적인 지위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 그녀가 이제 막 귀족의 세계에 발을 들였을 뿐인 로엘을 하대하는 것이다.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다는 것이니 카트리나가 불편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의외로 외울 것이 많지는 않군요. 하긴, 놈들은 제국에서의 활동이 영 부진한 편이니.”

    “외울 것이 적다고?”

     라일리아의 표정이 살짝 미묘해졌다. 로엘의 눈앞에 쌓여 있는 두루마리의 분량은 절대 적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제국에서의 활동이 미진하다곤 하나, 이들은 황제가 관심을 둔 이들이다. 황제 직속 정보단체인 엠페러 아이즈가 그들을 얼마나 집요하게 파고들었겠는가.

     세세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놈들의 정보를 모아두었기에 정보의 분량은 상당했다. 그 모두를 속독으로 훑어보았을 뿐인 자가 내용을 전부 기억했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니 의아해질 수밖에.

    “그럼 다음으로 인재 관련 정보들을 좀 열람했으면 합니다.”

    “15세 소년들 중 상식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자, 혹은 특이한 이력을 지닌 자들이랬나?”

    “예.”

    “그런 정보는 왜 찾는 건지.”

    “굉장히 중요합니다. 폐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시고요.”

     중요했다. 또 다른 각성자의 존재 유무를 파악하는 일이니까. 로엘의 등장으로 각성자가 여럿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바르바젠이 그에 신경을 쓰게 된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 이유는 말할 수 없을 테지?”

    “폐하께서 그것을 원치 않으시니 저로선 어쩔 수가 없습니다.”

    “…….”

     그런 것치곤 전혀 아쉬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물론 라일리아도 딱히 이런 떠보기 정도로 숨기고 있는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러 하위 조직원들이 날라다 준 정보를 쉴 새 없이 들여다보던 로엘이 한 부분에서 시선을 멈췄다.

    “혹시 이 카트란이라는 자에 대한 정보, 더 없습니까?”

    “카트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인데. 잠시만.”

     로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이들에 대한 정보는 그리 눈에 차는 것이 없었지만, 이 ‘카트란’이라는 소년에 대한 정보는 눈길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확실하진 않았다. 긴가민가했다. 그렇기에 추가적인 정보를 요청했다.

    “여기 있네. 확실히 특이한 녀석이지.”

     로엘은 라일리아가 건네는 두루마리를 받아들었다. 내용물을 살피니 기대대로 ‘특이한’ 이력이 적혀 있었다.

    “…….”

     그렇지만 여전히 확실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긴가민가한 느낌이 한층 강화되기만 했다.

    “분명 실력은 초일류에도 다다르지 못한 인물인데, 강력한 세력 몇 군데가 무너진 일에 그가 관련되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된다라.”

    “굉장히 이력이 특이해서 나도 기억하고 있지. 꼭 피해자의 입장에서 놈들의 일에 말려드는데, 결론적으로 그 녀석은 살아남고 가해자 측은 전멸하더군?”

    “그게 한두 번이면 우연이겠지만, 대여섯 번 이상 벌어진 일을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겠죠.”

    “그렇지.”

     엠페러 아이즈가 초일류에도 이르지 못한 소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신상을 털어 봐도 아무것도 나오질 않는 녀석이라 더 이상했지. 수하들을 접촉시켜 그 조직들을 어떻게 무너뜨린 것인지 은연중에 물어도 매번 모르쇠로 일관했고.”

    “자기도 모르게 흘린 정보 하나 없다는 겁니까?”

    “오히려 수하들이 더 어리둥절해 하더군. 숨기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기색이었다고.”

    “그가 정말로 연기에 굉장히 능하거나, 정말로 우연히 몇 번이나 그런 경우를 겪었을 뿐이라는 결론이겠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로엘은 우연이라는 단어를 그리 신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자가 더욱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여겼다.

     엠페러 아이즈에선 그가 초일류에도 이르지 못한 어정쩡한 실력자라는 사실 때문에 긴가민가한 모양이었지만, 로엘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다른 관점에서 이 소년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본신의 경지가 낮음에도 이 소년과 엮였다는 조직들 정도는 일거에 쓸어버리는 것이 가능한 인물을 로엘은 한 사람 안다. 바로 얼마 전에 만난 르우벤이 바로 그러했다.

     이 소년이 각성자고, 르우벤처럼 평상시엔 자신의 힘을 얼마든지 숨길 수 있는 인물이라면 이 정보에서 비롯되는 모순점이 모조리 해소된다. 그렇기에 로엘이 이 소년의 정보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각성자치곤 평상시의 생활이 너무 평범하긴 한데.’

     소년은 몇몇 적당한 실력의 동료들과 적당한 의뢰를 해결하며 적당한 생활금을 벌어 사는 전형적인 용병이었다. 그 이상의 생활을 영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순히 자신이 각성자임을 숨기기 위해서라기엔 조금 이상했다. 각성자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과 가진 능력을 숨기는 것은 다르다.

    ‘가진 바 능력으로 얼마든지 더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게 가능할 텐데 어째서?’

     역시 각성자가 아닌 것일까. 물욕이 없고 일상적인 생활을 즐기는 유형의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여타 용병들처럼 씀씀이가 헤픈 편이었다. 그만큼 평범하게 재물 욕심도 있는 듯했고.

    ‘역시 직접 확인해 봐야 하나.’

     로엘은 추가로 라일리아에게 15세 소녀 인재에 대한 정보도 부탁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각성자 전원이 15세인 것은 우연일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 모두가 남성이라는 점은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었다. 아직까진 1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확률이 아닌가.

     그러나 수고가 무색하게도, 여성 인재 쪽에선 이렇다 할 소득을 얻지 못했다. 로엘은 모든 정보를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니. 황제 폐하의 의사가 들어간 일인 만큼 당연한 일이지.”

    “아 그리고.”

    “?”

    “이걸 받아 주십시오.”

     로엘은 아공간에서 상당히 큰 자루를 꺼내 들었다. 물론 그 안에는 금화와 보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답례? 이런 건 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아니, 뇌물인가?”

    “둘 다 아닙니다.”

    “?”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오늘부로 엠페러 아이즈의 활동 범위를 확장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그것을 위한 자금입니다.”

    “그런 것치곤 양이 적군.”

     로엘이 꺼내든 금액은 웬만한 귀족들도 눈이 돌아갈 만큼 막대했지만, 엠페러 아이즈의 활동 범위를 늘리는 데 사용하기 위한 자금으로는 부족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라일리아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황제가 지시한 ‘확장’이 가벼운 의미가 아님을. 제국을 넘어 전 대륙을 아우르는 정보체계를 구축하라는 의미임을.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조직을 완전히 안정화시키실 때까지 지속적으로 자금을 지원해드릴 겁니다. 이건 초기 자금에 불과합니다.”

    “그걸 왜 네가 건네는 건지 물어도 될까.”

    “물론 제 휘하 상단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기 때문입니다.”

     라일리아는 과장스럽게 이마를 짚었다. 곧바로 상황을 알아채고 말았다.

     지금의 제국엔 엠페러 아이즈의 확장을 위해 대량의 자금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 물론 그 이유는 현재 제국이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이전부터 엠페러 아이즈를 확장시키고 싶어 했다. 그리고 제국을 안정화시키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적기. 그러나 자금이 발목을 잡았을 터다.

     그리고 눈앞의 소년이 황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겠지. 자신이 자금을 대겠다고. 그리고 황제는 그것을 허락했을 테고.

    ‘그렇다 해도 쉽게 허락을 내리셨을 리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허락을 받아낸 거지.’

     국가가 아닌 개인으로부터 이렇게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지원자의 입지가 굉장히 높아질 수밖에 없으니.

     지원을 받는 입장에선 그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엠페러 아이즈를 예로 들자면, 상대가 개인적으로 요구하는 정보들을 웬만해선 내어주어야 하게 된다던가.

     황제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겨우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는 이유 하나로 눈앞의 소년에게 그럴 권리를 넘겼다? 그건 아닐 터였다.

    ‘무언가 내가 모르는 내막이 있다.’

     라일리아는 부러 퉁명스레 내뱉었다.

    “감당할 수 있겠어? 초기라면 몰라도 몇 년 뒤엔 지금 네 세력이 벌어들이는 돈의 여유분 정도로는 감당이 힘들게 될 텐데.”

    “얼마 후에 사업을 한 번 더 확장시킬 생각입니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익을 벌어들이게 될 거라 예상합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

     라일리아는 사업 성공 여부는 고려하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로엘의 행적을 모조리 꿰뚫고 있는 그녀는 그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앞으로 자주 찾아올 겁니다.’

     로엘은 빙긋, 하고 웃었다. 이쪽으로서도 상당히 빠듯한 투자다. 그만큼 뽑아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엠페러 아이즈의 정보력을 등에 업게 되면 앞으로의 행보는 탄탄대로이리라. 지출이 좀 크긴 하겠지만 이후 엠페러 아이즈가 전 대륙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거듭나면 오히려 남는 장사가 될 테고.

    “그럼, 전 이만.”

     로엘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방을 벗어났다. 그가 방을 나서고 문이 닫히자 라일리아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 * *

     A등급 용병 카트란은 한창 의뢰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의뢰 내용은 인물 호위. 어느 부유층 자제를 특정 지역까지 데려다주면 되는 일이었다. 마침 인원수도 맞아 평소 함께 움직이는 동료들과 같이 의뢰를 받았다.

     호위 대상인 부유층 자제는 나름 한 미모 하는 소녀였다. 그녀가 마차에 탑승하고, 용병들이 주위에 늘어서 천천히 이동했다.

    “하암.”

     옆에 선 동료 용병이 하품을 내뱉었다. 도적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순조롭게 이동하고 있는 중이라 긴장감이 많이 옅어져 있었다.

    “너무 긴장감을 잃진 마세요.”

    “어차피 웬만한 강도가 나타난대도 대체로 막아낼 수 있잖아. 무려 A등급 용병께서도 여기 계시고.”

    “…….”

     카트란은 살짝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자신은 실력 있는 A등급 용병이 맞았다. 그렇지만 그게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 시점의 제국에는 도적이 들끓고 있었다. 숙청된 영주의 사병이 심심찮게 도적으로 직종을 갈아탄 탓이었다. 최근엔 제국이 안정화되어가고 있어서 그런지 그 숫자가 좀 줄긴 했지만.

     어쨌든, 문제는 도적이 된 사병들 중 간혹 실력 있는 기사들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A등급 용병일지라도 호위 의뢰를 진행하는 동안엔 목숨을 마냥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알았다, 알았어. 긴장 풀지 않을 테니 넌 표정 좀 풀어라. 실력도 있는 녀석이 걱정은 제일 많아선.”

     동료 용병은 피식, 하고 웃으며 한 차례 기지개를 켰다.

    “어차피 네가 감당 못할 수준의 도적은 웬만해선 잘 마주치지 않으니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말이지.”

     카트란의 실력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만일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면 가볍게 동년배들 중 수위권을 차지하리라.

     그 정도 실력이면 정말로 기사급 실력자와 조우하지 않는 이상 그리 꿇릴 게 없었다. 최근 제국이 좀 그렇다지만 그래도 그만한 실력자와 맞부딪치게 되는 상황은 웬만해선 일어날 리 없었고.

     그런데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앞서가며 정찰하던 동료 용병 하나가 급히 달려와 경호성을 발했다.

    “도적떼다! 숫자가 상당해! 대략 30여명 가량!”

    “뭣?!”

     현재 의뢰를 수행하고 있는 용병들의 숫자가 10명이였다. 30명이면 이쪽의 3배나 된다.

    “일반적인 도적이냐 아니면 사병이냐! 그중 실력자는? 몇이나 되지?”

    “복장으로 미뤄봐서 사병일 거라 짐작된다! 거기에 기사로 보이는 녀석이 둘이나 있었어!”

    “허어.”

     용병들이 단체로 전의를 잃은 표정을 지었다. 카트란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마차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내 도적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주위를 포위했다. 사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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