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또 다른 각성자(2)
“이렇게 생긴 얼굴이었군. 기분 나쁠 정도로 잘 생겼는데.”
황제가 중얼거렸다.
“…….”
로엘은 그에 대꾸할 겨를도 없이 급히 시선을 황제 뒤편에 서 있는 기사에게로 돌렸다. 자신은 그렇다고 치고, 이런 이야기를 타인 앞에서 늘어놔도 좋은 것일까.
“걱정할 것 없다. 타이론은 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자들 중 하나이니.”
“…….”
황제, 아니 황제의 눈을 통해 시야를 공유한 바르바젠은 로엘의 생각을 금세 읽고 그 답변을 주었다. 기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담담한 표정을 고수할 뿐이었다.
“폐하.”
“말해두겠지만, 난 황제가 아니다. 황제는 이 머저리지. 지금의 난 존재가 은폐된 채 제국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일개 떠돌이에 불과하다. 굳이 예를 취할 필요가 없다.”
“…….”
로엘이 입을 닫았다. 충격적인 정보의 연속이었다. 제국이 괴뢰정부에 의해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인데, 정작 제국의 실질적인 주인은 아무런 권력도 없는 떠돌이라니.
“그렇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난 그 빌어먹을 예의라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전생에 어지간히 데였어야지. 애초에 성격이 그 모양인 것 같으니 존칭 자체를 쓰지 말라곤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과한 예는 삼가도록.”
“…….”
“왜. 차라리 황명이라고 못이라도 박아줄까?”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것은 없습니다.”
로엘은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그는 분위기를 읽는 감각이 뛰어난 인물.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는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 한 가지 하겠습니다.”
“얼마든지.”
“어째서 직접 제위에 오르지 않으신 겁니까?”
“그 자리가 싫어서다. 두 번씩이나 그 자리에 올라야 한다니 무슨 그런 끔찍한 일이 있나.”
황제, 아니 바르바젠은 즉답했다.
황제는 대륙 모든 이의 위에 군림하는 존재. 더불어 만인의 우러름을 받는 존재다. 그러나 바르바젠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 자리를 끔찍하다고 표현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전직 황제였던 그이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난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일개 평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누리는 지금이.”
“…….”
황제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리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로엘에게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단지 그 이유뿐입니까?”
“무슨 뜻이냐.”
“전하께선······.”
“그냥 바르바젠이면 된다. 지금은 지위도 성도 버렸으니.”
“바르바젠 님께선 미래에서 과거로 되돌아온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아시겠지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혹시 바르바젠 님께선 스스로 황위에 오르는 것보다 괴뢰정부를 세우는 게 미래를 대비하기에 더 낫다고 여기신 것 아닙니까?”
“통찰력이 쓸 만한 친구로군.”
원래의 역사에서, 바르바젠은 국정이 최고로 혼란한 시기에 등극했다. 그렇게 등극한 이후, 그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피를 손에 묻히고서야 제국을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을 제 손으로 남김없이 쓸어버렸고, 수없이 많은 부패한 귀족을 처형장으로 보냈으며, 반란에 가담한 병사의 피가 강이 되어 흐르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과정에서 바르바젠은 통감했다. 자신의 부족한 출신이 얼마나 방해되는 요소인지. 타고난 ‘혈통’이 부족하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그 대상을 얼마나 잔혹하게 몰아붙이는지.
그렇기에 회귀 후 바르바젠은 생각했다.
그 자신이 황위에 오르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앞으로 황제가 될 예정인 ‘카르테닉스’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괴뢰정부를 세우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마족의 대군이 대륙을 침공해오는 미래. 그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만, 그 방식은 전생과는 달라야 한다고.
로엘의 발언은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었다.
“일단 그런 이유도 있다고만 해두지.”
황제가 재차 킬킬거리며 웃었다.
로엘이 말한 대로 그런 이유도 있긴 했다. 마침 자신 또한 황실의 일원이었던지라 일을 진행하기도 어렵지 않았고.
그렇지만 황제의 자리가 달갑지 않다는 앞서의 발언은 정말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황제의 자리에 앉으면 움직임에 제약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자신과 같은 ‘강력한 전력’을 그런 식으로 ‘썩히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번엔 내 쪽에서 질문을 좀 하지.”
“예.”
“보아하니 너 또한 미래를 알고 있는 듯싶군. 그래서 궁금해졌다. 내 존재를 알게 되고 무슨 생각을 했지?”
바르바젠의 질문.
당연하게도 ‘놀랐다’느니 하는 감상을 표현해보라는 말이 아니었다.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 생각인지를 물은 것이지.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로엘이 즉답했다.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음?”
“각성자가 괴뢰정부를 구성해 놓은 국가라니. 마족의 대륙 침공을 대비하는 각성자들을 모아두고 성장시키기에 최적이지 않습니까.”
물론 그것은 바르바젠이 다른 각성자들을 지원할 마음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로엘은 그 부분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음에도 황위에 오르지 않았다. 권력욕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제국의 힘을 축적하고 마족의 대륙 침공을 대비하려 하고 있었다. 딱히 권력 계층이 아님에도 제국 그 자체는 놈들에게서 지켜내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을 비롯해 그 넘치는 자질을, 가능성을 가진 각성자들을 환영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모두가 바르바젠과 뜻이 겹치니만큼 더더욱.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강력한 패의 등장이다. 한마디로 기분 좋은 변수. 르우벤과 레인, 로엘이 서로를 대면했을 때 느꼈던 기분을 아마 바르바젠 또한 느끼게 되리라.
그렇다고 해도 일단 양측이 대면한 뒤에야 제대로 일이 진행되든지 말든지 할 테지만.
“잠깐, 뭐라고 했지? 각성자들?”
“예. 저희는 바르바젠 님과 같이 특수한 힘을 각성한 자를 ‘각성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각성자는 저와 바르바젠 님뿐이 아닙니다.”
“…….”
“제가 파악하고 있는 이들만 해도 둘이 더 있습니다. 그 두 사람 모두 세상에 다시 없을 인재들이며, 미래를 대비해 힘을 모으기로 결의한 자들입니다.”
“호. 그거 굉장히 마음에 드는 소식이로군.”
황제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러다 문득, 그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그렇고 제국을 각성자들이 성장하는 기반으로 삼겠다는 말을 내게 그리 당당하게 하다니. 웃기는 녀석이로군.”
“…….”
“그건 일단 넘어가지. 네 말대로라면 어찌 되었든 내 이해와 일치하는 일이니까. 어차피 지금의 나는 제국의 권력자도 뭣도 아니고.”
황제가 깍지낀 손 위에 자신의 턱을 얹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다른 질문.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하니 선심 좀 쓰지.”
“?”
“혹시 가지고 싶은 자리가 있나?”
“예?”
로엘이 고개를 기울였다. 대화 주제 전환에 맥락이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단 말인가.
‘아니, 마냥 뜬금없는 소리는 아닌가.’
로엘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워낙 갑작스레 튀어나온 말이라 그렇지, 상대가 충분히 할 법한 발언이었다.
상대는 엠페러 아이즈를 통해서 이쪽의 유능함을, 세력을 파악했다. 방금 전의 대화를 통해 이쪽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게다가 이쪽이 또 다른 각성자들과 연결점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나기까지.
그렇다면 상대가 이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이런 거대한 변수는 일단 붙들어 두는 것이 좋다’고.
물론 로엘 쪽에서 먼저 제국에서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듯한 발언을 하긴 했다. 그러나 뛰어난 정치가의 대표적인 습성 중 하나가 바로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말’은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
바르바젠은 현재 일개 평민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어쨌거나 전생에 황제였다. 아니, 현생에서도 배후의 존재가 되어 제국 권력 계층을 손에 쥐고 흔들고 있는 모양이고.
간단히 말해, 권력자가 아니게 되었더라도 그의 정치 감각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었다.
그런 바르바젠이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이쪽을 일단 얽어두려 한다.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부담 없이 말해도 좋다. 지금의 제국엔 빈자리가 넘쳐나니까.”
그야말로 파격적인 발언. 그 어떤 군주도 이렇게 가벼운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작위를 주지 못한다. 절대 황권을 구축한 ‘카르테닉스 루엘 카이엔’이기에 가능한 발언이다.
아니, 그 카르테닉스를 꼭두각시로 조종하는 막후의 인물, 바르바젠이기에 가능한 발언이다.
로엘은 생각했다. 여기선 어떤 대답이 옳은가.
‘좋아.’
오래지 않아 답은 나왔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었다. 어디까지나 심플하게.
어찌 되었든 이쪽 입장에선 그리 나쁠 것이 없는 상황이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좋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쪽에 가장 이득이 될 만한 선택을 하면 된다. 형평성을 크게 어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을 고르면 그만이다.
로엘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바르바젠 님. 제국의 어둠을 제게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암부(暗部) 조직을 이끌고 싶다는 말인가?”
이것만큼은 예상치 못했는지, 바르바젠의 반응이 일순 늦었다. 로엘은 빙긋, 하고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의 제국에 부족한 것은 그리 없습니다. 절대 황권은 완벽하게 구축되었으며, 쓸 만한 인재는 제국의 교육 시스템상 어차피 매년 쏟아져 나옵니다.”
“······.”
“정보체계는 ‘엠페러 아이즈’가 완벽하게 도맡고 있으며, 군사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적당한 자리 하나 가진다고 제국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사실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정쩡한 세력도, 권력도 이쪽엔 필요 없다 못해 거추장스러울 뿐이라는 점이지.
“그러니, 제국의 어둠을 달라?”
“예. 지금까지의 제국은 겉으로 드러난 싸움에만 집중해온 터라 그쪽의 힘은 그다지 사용할 일이 없었겠지요.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입니다.”
“…….”
“이젠 본격적으로 암부 조직도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제게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바르바젠은 제국의 어둠을 키울 입장이 아니었다. 카르테닉스가 너무 어린 나이에 제위에 등극한 탓에, 그리고 바로 최근까지 제국에 피바람을 몰고 온 입장이었던 탓에.
오히려 철저히 지워버리긴 했다. 귀족들의 뒤를 닦는 놈들에서부터 황제 직속 무력 단체까지. 황제 직속이라 하나 전 황제의 병환이 깊어짐에 따라 반쯤 귀족들에게 넘어가 버린 놈들이었지만.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숙청을 마무리하고 내실을 다질 시기에 접어든 지금, 제국은 다시 그쪽의 힘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대륙을 침공해올 마족의 대군을 맞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준비과정 중 하나였다.
상대의 의표를 찌를 암기, 그리고 내부의 방해 요소를 제거할 심판자. 머잖은 미래에 제국이 반드시 필요로 하게 될 것들이었다. 로엘은 그 점을 정확히 파고든 것이다.
“그렇게 쉽게 말할 종류의 것이 아닐 텐데. 감당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네 수완이 좋다는 건 들은 바가 있어서 잘 알고 있지. 그렇지만 ‘그쪽’ 세계는 또 다르다. 성과를 얻으면 명예와 권위가 뒤따르는 ‘이쪽’ 세계와는.”
그 세계에는 오로지 추악한 실리만이 가득할 뿐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실리면 충분하다. 허울뿐인 명예와 권위 따위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적어도 로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르우벤에게서 들은 내용대로라면 미래에 이 대륙을 침공할 적들의 전력은 그야말로 가공하다. 그 시대를 맞이하기 전까지 충분한 준비를 끝마치려면 이렇게 실리만 챙겨도 시간이 부족했다.
“좋아. 일단 맡겨 보지. 하진 그것은 단순히 선물로 주기엔 너무 중요성이 높은 자리다. 자각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후 영 시원찮다고 여겨지면 곧바로 권리를 회수할 것이다. 동시에 황제의 기대와 시간을 소비하게 한 죄를 묻게 될 테니 그리 알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바르바젠이 긴장감을 주려는 듯 짐짓 엄하게 말했으나 로엘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유지한 채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바르바젠이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네 성은 케르티아다. 중간성은 룬으로 할까. 앞으로 잘 부탁하지. 로엘 룬 케르티아 남작.”
* * *
황궁에서의 볼일을 모두 끝마친 로엘은 기다리고 있던 로카인, 엘리제와 함께 마탑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되돌아오자마자 카트리나를 호출했다.
앞으로 로엘은 암부의 일에 관련해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엘리제 파르테인에게 이동을 부탁할 수가 없었다.
이동 목적을 알리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대륙 곳곳을 돌아다닐 일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 그때마다 어영부영 넘길 수는 없으니까.
아주 급한 일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그런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 게 옳았다. 계약 마법으로 인해 정보 유출의 위험성이 없는 카트리나의 역할이 앞으로 중요해질 터였다.
그래도 이번에 향할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와이번을 이용하면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었다.
카트리나와 함께 상공을 비행하던 중, 로엘이 물었다.
“팀원들 훈련은 잘되어가고 있나요?”
“이젠 지급된 무기에는 대체로 익숙해졌습니다. 무공 쪽은 아직 성과가 지지부진합니다만.”
“무공 쪽은 조금 천천히 성장해도 괜찮습니다. 익숙해지는 데까지 최소 3년은 걸릴 거라 생각하고 있으니.”
“1팀은 최소 2년 안에 모두가 무공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겠습니다.”
“팀원들을 너무 거칠게 다루진 말아 주세요.”
로엘은 옅게 쓴웃음을 지었다.
참고로 카트리나는 순수 마법사라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와이번이라는 반칙적인 이점이 있어 지급된 무기를 이용하면 누구보다 압도적인 전투력을 뽐내긴 했지만.
‘반발이 일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정작 그 방면에 입문하지도 않은 상사가 부하들에게 성과를 강요하면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녀가 의욕이 앞서 팀원들과 불화를 일으키지 않아야 할 텐데, 하고 로엘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전에 보니까 팀원들에게서 제대로 인정받는 분위기였고. 괜찮겠지.’
로엘은 적당히 걱정을 거뒀다. 그녀는 타인을 대함에 있어 서투르지 않았다. 별다른 트러블 없이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뤄낼 거라 믿어보기로 했다.
“참, 이번에 제가 황궁에 다녀오면서 작위를 받았습니다. 이젠 남작이죠.”
“축하드립니다.”
“아마 이 이상 신분이 올라가는 일은 영영 없겠지만요.”
“네?”
“애초에 공을 세워 받은 작위가 아니라서요. 앞으로의 일에 평민이라는 이유로 제동이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건 설마.”
로엘은 빙긋, 하고 웃었다. 역시 판단력이 좋은 여인이었다. 그리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상황을 대체로 이해한 것 같았다.
“앞으로는 카트리나 양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트리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녀는 엘리제 파르테인과 로엘이 협력 관계임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아마 자신의 짐작이 옳다는 뜻이리라.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지금 저희가 향하는 곳에 무엇이 있는 겁니까?”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로엘이 지금 시점에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현재 향하고 있는 목적지가 그와 관련된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엠페러 아이즈(Emperor Eyes)의 수장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로엘의 산뜻한 답변에 카트리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