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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또 다른 각성자(1) (122/249)

 122화. 또 다른 각성자(1)

 로엘은 엘리제 파르테인의 도움을 받아 12개의 전투팀을 분쟁이 일어난 지역 곳곳으로 보냈다. 무력적인 측면이 부족했던 상단이 빠르게 안정화되어갔다.

 고급 전력인 전투팀 외에 기본적인 현지 전력도 강화시켰다. 물밀듯 들어오는 수익을 투자해 현지에 보디가드를 양성시켰다.

 동시에 ‘다음’ 사업 준비도 착착 진행했다. 그 일환으로 이젠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단의 위세를 내세워 각 분야에 종사할 직원을 대대적으로 뽑았다.

 제국엔 인재가 많았다. 다른 국가에는 없는 ‘아카데미’ 제도가 갖춰져 있기 때문.

 아카데미 출신 고급 인력 중 기사, 마법사들은 금세 자리를 잡지만 행정 전문 인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이용했다. 그들을 대거 끌어들여 규모가 커질 대로 커진 상단을 안정화시켰다.

 또한 마탑 외부에서 공방 마법사와 장인을 끌어모았다. 계약 마법을 맺을 이들을.

 아무래도 마탑 소속 마법사로서 마탑 내 인물들과 계약 마법을 맺는 것은 이미지상 그리 좋지 못했다. 자존심 높은 그들이 계약을 맺으려 할 리도 없었고. 그렇기에 외부에서 인재를 끌어들였다.

 역시 돈의 힘은 위대했다. 공방 마법사를 끌어들이는 데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장인은 순식간에 정원을 채웠다. 그들 모두와 계약 마법을 맺고 본격적으로 무구 개발에 힘을 쏟았다.

 참고로 그들을 수용한 곳은 마탑 외부에 건설한 대형 개인 공방이었다. 돈이 넘쳐나는 로엘이기에 가능한 일.

 그동안 수없이 제작해온 설계도를 바탕으로 각종 무구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로엘은 적당히 일이 일단락된 지금 시점에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실의 각성자.’

 사실 그 각성자가 누구일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 또한 그저 가정일 뿐이지만.

‘얼마 뒤에 탑주님이 황제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러 간다. 그때 수행원으로 동행하면 되겠지.’

 상대가 각성자인지 아닌지 알아볼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솔직히 방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직접 물어보면 된다.’

 그쪽은 10년 전 7월 19일에 ‘각성’했는가. 이것만 물어보면 된다. 상대가 각성자라면 그에 반응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얼굴을 하겠지.

 그냥 얼굴 팔릴 것 한번 각오하면 된다. 그뿐이다. 그 정도면 가설을 확인하는 대가치곤 싼 편이다.

 * * *

 시간이 흘러, 로카인이 황제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기 위해 황궁으로 향하는 날.

 로엘은 로카인의 수행원 자격으로 황궁으로 향하기 위해 마탑 최상층으로 향했다. 중간에 승강기에서 엘리제를 만나 동행했다.

 이번 황궁행에 로카인과 동행하는 인물은 둘 뿐이었다. 로엘과 엘리제.

 로엘은 로카인에게 따로 부탁했고, 엘리제는 차기 마탑주로서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 바쁜 와중에 시간을 냈다.

“왔느냐? 그럼 가자.”

 로카인은 두 사람이 집무실로 들어서자마자 공간의 문을 열었다.

“…….”

 공간의 문을 통과하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압도적인 규모의 궁(宮)에 로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곳이 황궁. 드넓은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의 거처이자 제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장소.

“으리으리하네요.”

“헛헛. 그럴 수밖에. 무려 제국의 심장부인데.”

 로카인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궁의 입구를 지키는 기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바엘른 마탑주일세. 이건 황제 폐하께서 보내신 서신이고.”

 로카인은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에서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두루마리 서신 하나를 꺼내 들었다.

“확인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탑주님.”

 일행은 금방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역시 제국 최중요 인물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로카인과 함께 움직이니 편했다.

 입구를 지나자 마부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워낙 황궁 내부가 넓다 보니 이동에 마차가 필요한 것이다. 로카인이 공간 마법으로 오느라 따로 마차를 끌고 오지 않을 것을 예견한 황제의 배려였다.

 일행은 금세 널따란 정원을 가로질러 황실의 후원에 다다랐다. 황제와 대면하기로 한 장소였다.

 후원에 위치한 한 건물 앞에 내려선 로카인이 가볍게 말했다.

“들어가지.”

“황제 폐하께서 계시는 장소 아닌가요? 아무도 없네요.”

 정말로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은신해 있는 기척이 느껴졌으니까. 로엘이 말한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까 전 황궁 입구의 기사들처럼.

“일부러 물리신 것이겠지. 그런 성격이시니까.”

 현 황제는 허례허식을 굉장히 싫어했다. 바엘른 마탑주와의 대면에 쓸데없는 절차를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사실 로카인이 마음먹기만 하면 황제의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나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그가 굳이 황궁 정문에서부터 예까지 시간을 들여 이동한 것은, 황제의 권위를 존중한다는 일종의 표현이었을 따름이다.

“그렇다 해도 좀 극단적이네요. 위엄이라던가 하는 것과도 좀 관계가 있을 텐데.”

“헛헛. 현 제국에서 대체 누가 황제의 위엄을 낮춰볼 수 있다는 말이냐?”

“그것도 그렇군요.”

 당금 제국에서 ‘철혈의 황제’의 권위를 낮잡아볼 수 있는 자는 없다. 이 정도 허례허식의 생략 정도로는 그 누구도.

 일행은 걸음을 옮겨 화려한 전각 안쪽으로 들어섰다. 입구 근처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길을 안내했다.

‘편하네.’

 로엘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로카인과 함께 온 것이 정답이었다. 황제를 만나는 절차가 보통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을 텐데.

“폐하. 바엘른 마탑주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뫼시어라.”

“예. 폐하.”

 집사가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문을 열어젖히자 세련된 응접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석에 앉은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바엘른 마탑주.”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젊은 황제가 손을 들어 인사하자 로카인이 허리를 깊숙이 숙여 예를 표했다. 로엘과 엘리제 또한 따라서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예를 표할 것 없소. 앉으시오.”

 황제는 로카인에게 반공대를 하고 있었다. 제국의 지배자로서 그 누구에게도 공대하지 않는 황제지만, 대현자로 이름 높은 로카인의 권위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해 주고 있었다.

 이내 일행이 모두 자리에 착석했다. 유일하게 시립해 있는 인물은 상석에 앉은 황제 뒤편의 청년 기사였다.

‘아니, 청년은 아닌가.’

 청년에게선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로엘은 그의 육신이 강제로 ‘붙들려 있는’ 상태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필시 저자는 제국의 일곱 검존 중 하나이리라.

 * * *

 전 대륙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을 가진 존재. ‘철혈의 군주’라 불리며 만인에게 두려움, 그리고 경외를 사고 있는 제국의 젊은 황제.

 카르테닉스 루엘 카이엔.

 눈부신 백금발의 머리칼. 로엘과 같은 나이라는 사실에 걸맞은 어린 외견. 그 고귀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화려한 의복.

 어린 외견에 어울리지 않는, 권태로우면서도 어딘가 사나운 기운이 깃든 눈빛.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와 만인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그야말로 마주한 모든 이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게 하는 아우라가 그에겐 있었다.

 일행이 모두 자리에 앉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한 때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런가. 그런데 저쪽의 소년은 누구지? 대충 보니 짐과 동년배로 보이는군.”

 이야기는 돌고 돌아 어느새 로엘이 자신을 소개할 차례가 되었다. 로엘은 한 차례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바엘른 마탑 공방 소속, 로엘이라고 합니다. 여러 상단의 총수 역할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로엘은 담담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일체의 가감 없이. 아마 황제라면 이미 전부 ‘알고 있을’ 사실을.

“아아. 상업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킨 초신성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 그게 그대였군.”

‘들은 적 있다라.’

 역시 황제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었다. 역시 제국 전역에 그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엠페러 아이즈(Emperor Eyes)’의 주인답다고 할까.

“젊은 나이에 대단하군.”

“그저 조금 기연을 얻었기에 이 자리까지 오르기 용이했을 뿐입니다.”

“호오. 기연이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말이군. 무슨 기연을 얻었지?”

 황제가 약간의 흥미를 보였다. 그냥 가볍게 호기심이 들었을 뿐인, 미약한 흥미를.

 그리고 로엘은 지금이 그것을 말할 때임을 알았다. 그가 내심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10년 전 여름. 7월 19일에 특별한 능력을 ‘각성’ 했습니다.”

 로카인과 엘리제가 묘한 눈길로 로엘을 돌아보았다. 짧지 않은 시간 그와 교류를 나눴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황제의 얼굴을 덮고 있던 권태로운 분위기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완연한 흥미였다.

‘빙고.’

 로엘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황실의 각성자는, 다름 아닌 황제 본인이었다.

 로엘이 황제가 각성자라 생각한 데엔 두 가지 근거가 있었다. 다른 것들은 꼭 황제가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 두 가지만큼은 이질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마탑에 되돌아와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면서 느껴진 이질감. 그것을 설명하자면 이러했다.

 첫 번째는, 르우벤의 ‘어린 황제는 병약했다’는 발언.

 로엘이 알기로 ‘철혈의 황제’는 병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숨기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와 몇 번이고 직접 대면해 본 로카인을 떠본 로엘이 그것을 모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황제는 ‘본래라면’ 병약했어야 할 육신을 어떤 방식을 통해 극복했다는 말이 된다. ‘본래라면’ 작용하지 않았을 어떤 요인에 의해서.

 그래, 어느 날 갑자기 ‘각성’ 함으로써 육체적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냈다던가.

 사실 각성자는 따로 있고 그가 황제의 병약한 체질을 바꾸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듯했다.

 황실의 각성자는 명확히 제국의 힘을 키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자는 회귀자일 가능성이 높았고.

 그런 그가 어린 황제가 병사하고 나면 제위에 등극하게 될 ‘극히 유능한 황제’를 두고 굳이 어린 황제를 살리는 길을 고집했을까? 목적을 위해 제국을 피에 잠기게 만든 그 인물이?

 로엘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황제 본인이 각성자라는 쪽이 훨씬 가능성 높은 가정이었다.

 두 번째는, 황제가 자신과 같은 성별에 같은 나이라는 것.

 이 부분에 대한 것은 그냥 직감이었다. 르우벤을 보면서 느꼈던 어떠한 이질감.

 로엘은 생각한 것이다. 자신과 레인은 그렇다 치고, 르우벤까지 같은 나이에 같은 성별이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라고.

 황제가 각성자임을 확신하게 되면서 로엘은 자신의 가정을 완전히 신용하게 되었다. ‘각성자’는 아마 모두가 같은 나이에 같은 성별을 지닌 인물일 것이라는 가정을.

 어쨌건, 결론적으로 로엘의 생각은 옳았다. 확실하게 황제의 반응을 확인한 데다, 그가 이쪽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의문이 남아 있긴 했다. 정황상 황제 본인이 각성자임은 틀림없었지만, 그 가정이 옳다면 그에 따르는 모순점도 상당히 존재하게 되었기에다. 이후로 그것을 차차 물을 생각이었다.

“그대는 이 자리가 파한 뒤에 따로 시간을 내주었으면 싶군. 괜찮겠지?”

“황공하옵나이다. 폐하.”

 자신 이외의 ‘각성자’의 존재에 황제는 약간 흥분했다. 이제 와선 노골적인 흥미를 조금도 감추지 않은 눈빛으로 로엘을 응시하고 있었다.

 로카인과 엘리제는 그 반응에 살짝 놀랐다. 두 사람은 방금 전 로엘의 발언에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집사장.”

“예. 폐하.”

 일행을 응접실까지 안내해준 반백의 노인이 방 안으로 들어서며 황제의 부름에 응답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나지막한 목소리였는데 문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집사는 무리 없이 그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귀한 손님이 왔으니 만찬을 준비하게. 함께 점심을 함께할 생각이니.”

“주방장에게 일러두겠습니다.”

 집사장이 깊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리곤 이내 방을 벗어났다.

“자아. 이제 다시 이야기를 돌리지.”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리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내용 중엔 황제로서 최상위 마탑의 탑주에게나 말할 법한 ‘중요한’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알 수 있었다. 황제가 마음이 온전히 이 자리에 있지 않음을. 그의 시선이 간간이 돌아가곤 한다는 사실을.

 시선을 받는 당사자인 로엘은 그저 웃는 낯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 * *

“예?”

 이후 황제와 따로 시간을 갖게 된 로엘. 그는 황제의 폭탄 발언에 그 특유의 표정 관리조차 잊고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고 말았다.

“뭘 그리 놀라지? 그저 남들이 모르는 황실의 비사(?史)를 하나 알려줬을 뿐이건만.”

“…….”

 황제는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별것 아닌 일이다. 네 눈앞에 있는 이 머저리는 확실히 황제인 ‘카르테닉스 루엘 카이엔’이지만…….”

 우우웅.

 어느새 생겨난 것일까. 로엘과 황제, 그리고 뒤편의 기사를 감싸는 반투명한 막이 펼쳐진 상태였다.

 그리고 황제의 오른쪽 눈. 그 눈에 변화가 일었다.

 흰자위 대신 붉은자위가. 푸른 눈동자 대신 파충류의 그것과 같은 위아래로 길게 찢어진 샛노란 눈동자가. 그리고, 그 눈동자 한가운데에 또다시 섬뜩한 기운을 뿌리는 검은 눈동자가.

 사실 황제는 인간이 아닌 악마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광경. 그 섬뜩한 변화엔, 아무리 로엘이라도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의 육신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나, 바르바젠인 것뿐이지.”

절대 별것 아닌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르바젠 루엘 카이엔]

‘바르바젠’이란 이름은, 병약한 어린 황제 이후에 제위에 등극하게 되는, 르우벤이 ‘극히 유능한 황제’라고 칭송했던 이의 이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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