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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대화(2) (118/249)

 118화. 대화(2)

“…….”

 로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일어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해.”

“어째서?”

“우선 첫 번째. 프레퍼는 제국에서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

 로엘이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음?”

“얼마 전까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프레퍼가 제국에서 활동량이 적은 이유는 국가 차원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단순하게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

 르우벤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반문했다. 로엘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프레퍼의 활동 목적을 명확히 알게 되고 나니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게 되더군. 사실 놈들은 굳이 제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

“어차피 현재의 제국은 죽음이 만연한 땅이니까. 굳이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수확’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곳이니까.”

“!”

 르우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확실히 ‘철혈의 황제’가 등극하면서 제국에는 피바람이 그칠 날이 없었다. 프레퍼의 시선에 비친 제국은 노다지나 다름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역시 놈들 입장에선 활동을 하는 쪽이 더 이득이겠지. 이왕이면 원념은 많을수록 좋을 테니.”

“그렇지.”

“그럼에도 놈들의 제국 내 활동이 없는 걸 생각한다면, 아마 국가 차원에서 놈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감시한 건 맞을 거야.”

“프레퍼는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견제를 뚫기보단 안전하게 떡고물이나 주워 먹자는 판단을 내렸을 테고?”

“아마도. 무조건 옳은 전제라곤 할 수 없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가정이지.”

 르우벤이 턱을 괴고 미간을 모았다. 로엘은 잠시 그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다가 두 번째 손가락을 세우고 말을 이었다.

“그럼 여기서 두 번째. 황실의 ‘각성자’가 ‘회귀자’일 가능성.”

“뭐?”

“그렇게 놀랄 것 없어. 나와 레인이 ‘환생자’라는 건 알고 있지? 환생자가 둘인데 회귀자도 둘이 아니라는 법은 없지.”

“황실의 각성자가 회귀자이기 때문에 프레퍼 놈들을 견제하는 데 힘을 쏟았다는 말을 하는 거야?”

“그래.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지만.”

 로엘은 가능성일 뿐이라고 했지만, 르우벤은 표정을 한층 더 굳힐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황실에 회귀자가 있다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자. 그는 무엇을 목적으로 두고 행동하고 있을까?”

“아마 나와 같겠지. 마왕의 침공을 막아내는 것.”

“그렇겠지.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니까. 특히 각성자가 황제 본인이라면 제국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라도 놈들을 막아내기로 마음먹었을 테고.”

“그러고 보면 제국에서 벌어지는 대대적인 숙청은 좀 심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감이 없잖아 있었지. 그것도 최대한 빠르게 제국을 정비하고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서인가.”

“자. 그렇다면 그 각성자에게 있어 프레퍼는 어떤 존재일까.”

“제국을 갉아 먹는 기생충 정도가 되려나.”

“그래. 그럼 더 나아가서, 황실의 각성자는 프레퍼를 어떻게 처리하고 싶어 할까.”

“프레퍼 놈들이 제국에서 분탕질을 치지 못하도록 최대한 견제하다가, 이후에 일거에 쓸어버리려 하지 않을까 싶은데.”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해. 하지만 내가 황실의 각성자였다면 다른 방식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을 거다.”

“다른 방식?”

“놈들의 목적도, 행동양식도, 그리고 미래에 무슨 일을 벌이는지도 모두 알고 있는데 그렇게 정석적인 방식으로만 대처하긴 아쉽지. 이왕이면 함정을 만들고 거기에 끌어들여야 하지 않겠어?”

“……!”

“생각해 보자고. 놈들이 여러 귀족들을 세뇌, 결집시켜 반란을 일으켰다고 했지. 그런데 이것을 위한 사전 준비를 언제부터 했을 거라 생각해?”

“한참 전부터였겠지. 아마 지금 시점보다도 훨씬 전부터.”

 프레퍼가 아무리 마법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어린 황제가 제위에 오르고 정국이 혼란해지고 난 뒤부터야 반란을 획책하고 그를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고 보긴 힘들었다. 시간이 부족했을 테니.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놈들은 애초부터 차근차근 제국을 뒤흔들기 위한 준비를 두고 있었다는 것. 때마침 황실에 혼란이 일면서 그 준비가 큰 성과를 거둔 것일 터였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어린 황제가 등극했다곤 해도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제국의 위상이 바닥까지 추락하는 건 정상적이지 않았지. 그 부분에서부터 프레퍼의 개입이 있었던 건가.”

“그래. 제국 귀족들에게는 애초부터 프레퍼의 손길이 닿아 있었을 거다. 현시점에도 그들에게 세뇌된 귀족이 꽤나 있겠지.”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황실의 각성자는 그들은 물론 배후의 프레퍼까지 끌어내 없애고 싶어 한다는 건가. 가만, 그럼 황제가 대대적인 숙청을 행한 이유도?”

“앞으로 제국을 뜻대로 끌어가기 위해 절대 황권을 구축하려는 게 주된 이유겠지만, 세뇌된 귀족들 중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몇 사람을 제거하려는 목적도 분명 있었겠지.”

“숙청을 진행하는 동안엔 프레퍼가 제국에서 날뛰는 정도를 조절할 수도 있을 테고.”

“세뇌시킨 귀족을 다수 잃어버린 프레퍼가 조급해지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겠지. 숙청이 마무리된 뒤엔 제국에서의 ‘수확’이 상당히 힘들어질 거란 생각에 초조해진 놈들에게 미끼를 내밀어 함정에 빠뜨린다. 그럴듯하지 않아?”

“…….”

“내 가정이 옳다면, 지금쯤 황실의 각성자는 열심히 프레퍼가 함정에 빠지도록 유도하고 있을걸. 아마 놈들이 ‘이전’처럼 알테라를 침공하게 만든 뒤 단번에 쓸어버릴 생각이겠지.”

 그렇게, 제국 내 프레퍼 관련자들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프레퍼의 전력도 크게 깎아내리고.

 원래의 역사에선 제국이 프레퍼를 정리하면서 상당한 전력을 소진하고 만다. 황실의 각성자는 그 미래를 알고 있는 만큼 정면에서 놈들을 쓸어버리기보다 놈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길을 고른 것이리라.

 다른 이가 세운 계획이라면 황당무계하다 여겨지겠지만, 황제나 황실 최고위 실력자가 계획한 일이라면 그것은 현실성을 가지게 된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르우벤이 질린 눈으로 로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면 그저 가설을 하나 세웠을 뿐이지만,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거기까지 추론이 닿는 것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레인이 말한 대로였다. 눈앞의 소년은 범상치 않았다. 범인인 자신과는 세상을 보는 시선 자체가 달랐다.

“일단 여기까지 하자고. 확실치도 않은 이야기니까.”

 로엘이 빙긋,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일단락지었다.

 그 뒤로, 자잘한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오갔다. 중간중간에 새로운 사건이 떠오른 르우벤이 로엘에게 그것을 이야기하면 로엘은 그것을 모조리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리고 자리가 파한 뒤, 로엘은 르우벤에게 정보료 및 활동 지원금이란 명목으로 다시 한번 금화와 보석이 가득 든 자루를 넘겼다.

 르우벤이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많은 유적을 털고 다닌 덕분에 알부자라고 할 수 있는 그이지만, 그럼에도 이만한 금액은 접해본 적이 없었다.

 과연 대륙 전역에 사업장을 둔 거대 세력의 총수라고 해야 할까. 스케일이 남달랐다.

 * * *

 이후 로엘은 레인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엔 르우벤이 그런 두 사람을 구경했다.

“레인. 네가 앞으로 ‘세력’을 만들 생각을 굳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많은 의식의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엔 확실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로엘이 빙긋, 하고 미소를 지었다. 르우벤은 그가 오랜 친우의 긍정적인 변화에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어진 그의 말에 그 생각이 와장창 무너졌지만.

“네가 아주 미쳤구나.”

“?!”

“네가 총수로 군림하는 세력이 아주 잘 굴러가겠다. 앙? 순식간에 말아먹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르우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태세를 전환할 줄은. 기습 공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반면 레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익숙했기 때문.

 마탑에선 이런 모습을 거의 보인 적이 없는 로엘이지만, 레인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레인에게는 이렇게 허물없이 대해왔다.

“그 점은 나도 생각하고 있었지. 그래서 여러모로 생각을 해봤지만, 답이 나오질 않던데.”

“설마 소규모 정예 용병대라도 만들 생각이었던 건 아니겠지?”

“…….”

 레인은 침묵했다.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는 이야기였다. 로엘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그 정도면 레인의 부족한 행정 능력이나 원만하지 못한 성격으로도 무난하게 이끌 수 있다. 의미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그런 건 수십의 마왕이 인간계를 침공해 들어오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 르우벤처럼 대륙 최강, 최대 규모의 용병대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고서야.”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간단해. 이런 건 정공법으로 가야지. 그쪽 능력이 부족하면 그쪽 능력을 키워야 하지 않겠냐.”

“?”

“제국 아카데미의 행정학부에 입학해라. 레인.”

 * * *

 로엘은 일단 일을 좀 정리하고 오겠다며 일행과 함께 마탑으로 되돌아갔다.

 레인, 그리고 르우벤은 수도에 남아 대련도 하고, 수련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요즘 레인은 특별한 목표가 생겼기에 영약 섭취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답례할 테니 나중에 비기스트(Biggest)를 달라고?”

“어.”

 비기스트는 공간검의 이름이다. 현재는 로카인에게 대여해준 상태였다.

“어떻게 보답할 건데? 그 검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는 너도 알 텐데?”

“어떤 식으로든. 원한다면 네게 이계(異界)의 무술을 전수하고 경지에 이르게 해 줄 수도 있다.”

“그건 좀 끌리는데.”

 르우벤의 고질적인 약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기본적인 경지였다.

 어차피 아티펙트를 사용하니 별 상관없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만도 않았다.

 로엘마저 단번에 간파한 약점. 르우벤은 장기전에 약하다.

 사실 검성과 비교해서도 그리 꿇리진 않는 수준이니 객관적인 시점에선 절대 부족하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비교 대상이 레인과 로엘이라면, 혹은 미래에 맞붙게 될 마왕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지금은 크게 두각 되지 않는 약점이라지만 앞으로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이 약점이 발목을 잡게 될 우려도 있었다. 르우벤의 무력 강화 수단은 결국 아티펙트니까.

 사실 그 때문에 초반의 몇 번 이후로는 대련에서 레인을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르우벤이었다. 레인이 그 자신의 힘을 완전히 수습하고, 르우벤이 내보이는 패턴에 점점 익숙해짐에 따라 그렇게 되고 말았다.

“…….”

 분명 아티펙트로 체력을 어느 정도 보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 바로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이었고.

“하지만 난 재능이 워낙 평범해서. 그거 좀 배운다고 확 진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 배우면 도움이 될 거다. 네겐 이쪽 세계의 무술보다 중원의 무공이 더 상성이 좋을 테니.”

 르우벤의 전투 스타일은 변칙적인 특성이 강하다. 그렇기에 중원의 무공이 어울렸다. 솔직히 이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이었다.

“재능이 부족한 것도 상당 부분 커버할 수 있을 테고.”

 레인은 르우벤에게 이계의 무공을 익히면 좋은 점을 설명했다.

 우선 곧바로 초감각을 얻게 된다는 것, 그리고 내력을 의식적으로 운용하기에 피로도를 자의로 조절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것.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이점들을.

“오오.”

 르우벤은 솔깃해졌다. 굳이 초일류에 이르지 않아도 그런 기예를 부리는 게 가능해진다는 건 정말로 굉장했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동공 수련자들에게 밀리게 된다는 단점도 있긴 했지만, 그거야 르우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그 경지까지 오를 생각도, 재능도 없으니까.

 일단 한 번 긍정적인 마음이 드니 급격히 생각이 기울었다. 결국 르우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공간검은 너무 다루기 힘들어서 그냥 포기할까 생각하던 차였다. 아군의 전력 강화, 그리고 자신의 성장 도모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좋아. 까짓, 줄게. 이왕 주는 것, 중력 조작 아티펙트까지 함께.”

 공간검을 다루기 위해선 중력 조작 아티펙트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중력 조작 아티펙트는 공간검만큼 희소한 물건은 아니라서 르우벤은 여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왕 내어줄 바엔 확실하게 내어주는 것이 좋았다. 어정쩡하게 베푸는 호의만큼 의미 없는 것이 없으니.

“그런데 어디다 쓰려고? 네가 굳이 그걸 쓰려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공간검은 강력하지만, 기공 수련자가 사용하기엔 애매한 물건이었다. 기공의 의미가 퇴색될 테니까.

“아니, 쓸 만할 것 같던데. 거기에 검강을 실어서 날리면 웬만한 현자의 대범위 마법보다도 괜찮은 범위공격이 될 것 같아서.”

“뭐?”

 르우벤의 얼굴이 요상해졌다.

 말은 좋다. 공간검에서 사출된 검강은 압축된 공간을 벗어나자마자 말도 안 되는 크기로 증폭될 테니. 그쯤 되면 재앙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

 그게 가능한 일이 아니란 것이 문제지만.

“농담이겠지? 그 검에 어떻게 검강을 구현시켜.”

 검강은 고사하고 검기를 피워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직접 다뤄 봤기에 르우벤은 확신하고 있었다.

“가능할 것 같던데. 지금 당장은 무리지만, 한 2~3년 작정하고 영약을 퍼먹으면, 뭐.”

“영약? 그게 뭔데?”

“나중에 알려주지.”

 최근 영약 섭취를 좀 등한시한 감이 있었다. 남아도는 내력을 써먹을 곳이 없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부턴 개인 수련 시간 대부분을 영약을 먹고 그 기운을 소화해내는 데 사용할 생각이었다. 경지가 오르면서 하루에 소화해낼 수 있는 영약의 숫자가 대폭 늘었으니 금세 성과가 나타나리라.

 참고로 이미 로엘에게 부탁도 해 뒀다. 계약 마법으로 완벽히 신뢰 가능한 수하를 얻으면 일부를 영약 채집에 돌려줄 것을. 로엘은 그 대가로 다른 이들에게 무공을 전수할 권리를 얻어갔다.

“??”

 사정을 모르는 르우벤만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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