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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미래(2) (112/249)
  •  112. 미래(2)

     레인과 르우벤은 전날 맞붙었던 장소에서 다시 서로를 마주했다.

    “그게 네가 말한 세트냐?”

    “어. 현재 가장 다루기 힘든 세트지. 솔직히 너무 까다로워서 그냥 포기할까 고민하고 있어. 일단 연습 좀 해 보려고.”

    “…….”

     르우벤의 차림새는 말하자면 용병 같았다. 너무 화려해 보인다는 점만 제외하면.

     중요 부위를 가리는 부분 갑주에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상하의. 그리고 높이 3미터에 폭 50센티미터에 이르는 대검.

    “검이 너무 큰 것 같은데.”

     아마 완력을 높이는 아티펙트를 착용하고 있을 테니 드는 것 자체가 힘들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다루기 힘들어 보이는 무기였다.

    “진실을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걸.”

    “?”

     르우벤이 묘한 얼굴로 답변했다. 그가 의아한 표정의 레인에게 검을 겨눴다. 그리고, 돌진.

     촤악!

     거검이 시원하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냈다. 공격 반경이 상당히 넓었다. 레인이 뒤로 물러나며 회피했다.

     보통의 검사라면 리치가 긴 무기를 활용하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오히려 거리를 줄이려 들었겠지만, 레인은 이미 거리의 제약을 초월한 실력자였다. 가볍게 물러서고 곧바로 검강을 사출했다.

     콰앙!

     르우벤은 거검을 전면으로 늘어뜨렸다. 검강이 거검에 부딪쳐 소음을 일으켰다.

     콰앙!

    “오.”

     거검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딱히 오라를 두르지도 않았다. 특수한 기운을 발현시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거검은 멀쩡했다.

    “튼튼하네.”

     레인이 연속해서 검강을 사출했다. 경지가 오른 만큼 복수의 검강을 자유자재로 발출할 수 있었다.

     르우벤이 검을 살짝 손에서 놓았다. 그러자 검이 살짝 떠오르는가 싶더니 바닥에 푹 하고 박혀 들었다. 그 뒤편에 르우벤이 몸을 숨겼다.

     쾅! 쾅! 쾅! 쾅! 쾅!

     검의 너비가 넉넉했기에 세로로 서면 완벽한 엄폐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검강은 전부 거검에 명중해 소멸했다.

     한차례 공격이 지나가자 곧바로 르우벤이 다음 행동을 취했다. 자리에서 도약, 검 손잡이를 움켜쥐고 그대로 그것을 뽑아 레인을 향해 내던졌다.

     레인이 공격을 피해 옆으로 물러났다. 거검은 레인이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로 맹렬히 날아들다 우뚝, 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곧바로 자신도 몸을 날렸는지 어느새 검 손잡이를 다시 붙잡은 르우벤이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대충 봐도 상당히 무거운 일격.

     레인이 검을 들어 올려 그것을 막으려 했다. 떨어져 내리는 검의 무게를 감안해 상당한 수준의 힘을 집중시켰다.

    “억?!”

     그러나, 그것으로는 검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해도 무려 초인의 방어거늘!

     상상 이상으로 압도적인 무게. 레인이 드물게 기겁한 얼굴로 급히 검을 기울였다.

     막아내는 것을 포기하고 흘려내는 데에 집중했다. 이를 악물고 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텼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찰나의 판단이 빛을 발했다. 갑작스레 대응 방식을 변경하느라 몸에 상당한 무리가 갔지만,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르우벤의 검은 굉음을 내며 바닥에 파묻혀 들어갔다.

    “…….”

     레인이 곧바로 훌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겨우 한 차례 충돌로 뼈에 금이 간 자신의 왼쪽 손목을 내려다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거.”

     분명 무겁게 생긴 검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다. 초인의 완력으로도 전혀 감당이 되질 않는 무게를 자랑하는 검이라니.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났다.

     애초에 검이 지면과 충돌한 것치곤 충돌음이 너무 거대하다. 무슨 운석이 충돌한 것만 같다. 대체 저런 말도 안 되는 물건을 어떻게 휘두르고 있는 건지.

    “어이없지? 이게 또 상당히 괴상한 방식으로 제작된 물건이라서.”

     레인의 표정을 감상하며 검을 회수해 어깨에 짊어진 르우벤이 낄낄 하고 웃었다.

    “애초에 그 크기에 가능한 질량이 아니던데. 무슨 태산이 통째로 떨어져 내리는 줄 알았다.”

    “그렇겠지. 애초에 이건 보이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물건이니까.”

    “?”

    “이게 그거거든. 공간의 현자가 제작한 아티펙트.”

    “그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레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저 무식한 거검을 제작한 인물이 공간의 현자라니. 솔직히 믿기질 않았다.

    “어. 사실 이거 원래는 길이만 300미터에 이르는 물건이야. 영구적으로 공간을 압축시키는 마법이 내장돼서 이 정도로 크기가 줄어들었을 뿐이지.”

    “미친.”

     레인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터무니없는 이력을 가진 아티펙트였다. 태산에 비견되는 무게라고 생각했더니 진짜 태산이 떨어져 내린 것이었을 줄이야.

     왜 오라를 검에 두르지 않나 했다.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었다. 알맹이가 길이만 300미터에 다다르는 검이니까. 전체 면적이 대체 일반적인 검의 몇 배란 말인가.

     저런 검에 오라를 암만 쏟아부어 봤자 검기가 형성될 턱이 없다. 르우벤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기막히다는 얼굴로 덧붙였다.

    “솔직히 나도 무게가 감당이 안 돼. 중력 조작 아티펙트를 동원해서 들어 올리고 관성으로 휘두르는 것뿐이거든. 공격 패턴이 단순해질 수밖에 없어.”

    “확실히 의외성은 높네. 아무 생각 없이 공격을 받아냈다간 순식간에 골로 갈 테니.”

    “대신 상대가 결점을 알아채는 순간 끝장이지. 대처 방법은 간단하니까.”

    “그렇겠지. 그냥 전부 회피하기만 하면 될 테니.”

    “일정 경지를 넘어선 상대에겐 두 번 이상은 통용되지 않을 무기야. 너처럼 임기응변으로 대처해 버리면 어떻게 더 해 볼 게 없어.”

    “왜 다루기가 힘들다고 했는지 알겠군.”

     레인이 검을 바닥에 박아 넣고 품속에서 포션과 몇 개의 침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곧바로 침 끝에 포션을 묻혀 왼쪽 손목 군데군데에 찔러 넣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제작한 거야, 그거. 애초에 마법을 이용하는 것 이전의 일이잖아. 300미터에 다다르는 철제 검을 어떻게 만들어.”

    “불가능한 게 거의 없었던 시대라고 하니까. 어떻게든 했겠지? 그냥 철제 검인 것도 아냐. 항마장벽처럼 충격 감소 마법이 중첩되어 있어서 흠집도 잘 안 나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제작한 놈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침을 손목에 박아 넣고 뽑아내길 몇 차례. 동시에 내력을 움직여 치유력을 높였다.

    “왜 그런 걸 만든 거지 대체.”

    “그건 나도 궁금하다.”

     이내 침을 회수해 품에 갈무리한 레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르우벤이 피식, 하고 웃으며 아티펙트를 바꿔 장착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다. 다른 걸로 가자.”

    “그러던지.”

     레인이 완치된 왼쪽 손목을 털며 다시 검을 손에 쥐었다.

     * * *

     쉼 없이 빛이 번쩍였다. 폭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일단 힘을 좀 뺀 채로 진행하는 대련이라 두 소년 모두 여유가 있었다.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래서, 그 조직은 대체 뭔데?”

    “말하자면 인류의 기생충 같은 놈들이지. 제 놈들은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 힘을 기르는 거라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다닌다만.”

     레인이 휘두른 검격을 회피하며 르우벤이 답했다. 그리고 곧바로 반격. 사슬낫이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레인을 향해 쇄도했다.

    “종말? 그거 혹시…….”

    “어. 놈들도 알아. 그놈들 대가리가 마도 부흥기 시대에 ‘운명의 현자’가 세운 유적을 털었거든. 거기 적힌 예언을 읽었다나.”

    “운명? 그건 또 뭐야.”

    “초고대 마도시대엔 별의별 것을 다 마법으로 관장했다고 하더라고. 시공간 조작부터 운명 엿보기, 심지어 등가교환을 통한 물질 창조까지도 가능했다던가.”

    “허.”

    “그 시대의 유산이 가장 활발하게 발굴됐던 시기니까. 운명의 현자가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지. 야, 잠깐만. 조금만 템포 좀 낮춰봐. 연습이잖아.”

    “쯧. 그런데 그 조직은 미래에 어떻게 되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륙에 온갖 혼란을 몰고 오지. 그러다 결국 제국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통째로 쓸려나가고.”

     사슬낫이 빛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불타올랐다. 다만 불꽃이 붉지 않고 검었다. 지옥불처럼 타오르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었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굽어져 궤도를 예측할 수 없는 공격들. 레인은 그것들을 오로지 육감에 의지해 모조리 받아쳐 냈다.

    “그냥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자멸한다는 건가.”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냐. 제국이 움직이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니까. 그때 가선 늦어. 먼저 없애둬야 해.”

    “?”

    “제국이 나서서야 정리되었다는 건, 다른 국가로선 감당하기 힘든 세력이라는 뜻도 돼. 단순 전력 비교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을 없앨 ‘여력’이 있는 나라가 제국밖에 없다는 말이지만.”

    “그렇게나 조직 규모가 큰가?”

    “어. 마법사를 찍어내듯 생산하는 놈들이니까. 최상위 간부 정도 되면 죄다 검성, 혹은 현자에 준하는 실력자들이고.”

     사슬낫과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타는 듯한 기운이 팔을 타고 밀려 올라왔다. 레인이 일단 살짝 거리를 벌리고 음한기공을 운용했다.

     쩌저적.

     검 표면에 서리가 끼었다. 경지가 오르면서 그저 혈도에 영향을 끼치는 수준이었던 음한지기가 물리적으로 표출될 정도로 그 수준이 올라간 것이다.

     이후로는 날아드는 공격을 전부 가볍게 걷어냈다. 사슬낫을 감싼 겁화는 레인을 조금도 위협하지 못했다.

    “피해 규모가 상당했겠네. 제국은 왜 그렇게 늦게 나선 거지? 놈들이 제국에선 활동을 안 한 건가?”

    “아니. 제국에서도 똑같이 활동했어. 단지 제국 내부 사정이 복잡해서 토벌이 늦어진 거지.”

    “내부 사정?”

    “사실 황제는 놈들의 구축에 적극적이었어. 지닌 바 능력도 굉장했고. 다만 그가 서자 출신이라 황권이 안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 결국엔 절대 황권이 구축되긴 하는데, 그땐 이미 너무 늦어 있었지.”

    “조직이 온갖 패악질은 다 벌인 뒤였다는 건가.”

    “심지어 조직의 전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화되거든. 그 당시 조직을 괴멸시키면서 소모된 전력이 상당했어. 검존도 두 사람이나 죽었고.”

    “그랬군.”

    “현생에는 제국의 동향이 그때와는 이상할 만큼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서 상황이 똑같게 흘러갈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그래서 이번엔 제국이 나서기 전에 직접 조직을 칠 생각이냐?”

    “어.”

    “그만한 규모의 조직을 어떻게?”

    “나중에 밝혀진 일인데, 놈들의 조직은 보스의 목만 쳐내면 무너질 사상누각이었다고 하더라고. 최고 간부를 제외한 마법사들의 힘은 전부 그놈으로부터 기원한 거라고.”

    “그래서, 보스만 없앨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된다?”

    “어.”

    “무슨 계획이 그렇게 적당하냐.”

     레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로엘이 필요했다. 이 녀석은 판을 짜는 데는 영 소질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장담하는데, 그런 식의 작전은 절대 성공 못 해. 애초에 그 보스라는 놈이 바보도 아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게 뻔하잖아.”

     레인은 확신했다. 머리만 쳐내기는 불가능하다. 르우벤의 작전이 그렇게 말처럼 쉬웠다면 전생의 레인이 무림공적으로 몰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긴, 르우벤 입장에서도 이 이상의 계획은 수립하기 힘들었을 터였다. 애초에 그가 회귀할 것을 알고 미리 착착 준비를 마쳐뒀던 것도 아닐 테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별수 있냐. 일단 부딪쳐 봐야지.”

    “그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지.”

     레인은 일단 로엘과 연락이 닿은 후로 이야기를 미루기로 했다.

     * * *

     레인은 대련을 마치고 땀을 씻어낸 뒤 크레틸 자작을 찾아갔다.

     르우벤의 말에 따르면 크레틸 자작은 딸의 죽음 이후로 완전히 실의에 빠져 폐인이 된다. 이후 조직에게 이용당해 대참사를 일으키고.

     그것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딸을 치료해주는 것이었다. 그것을 제안하기 위해 자작과 대면했다. 물론 공짜로 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

    “네 딸. 내가 치료할 수 있어.”

    “무슨 소리를 하려나 했더니.”

     자작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었어야 믿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이용하려는 무리는 굉장히 많았다.

     심지어 상대는 초일류 검사였다. 의학과는 영 관련이 없어 보였다. 자작의 그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패장이라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줬으면 싶군. 그런 식으로 우롱하려 들지 마라. 애송이.”

     자연 말이 거칠어졌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이용하려 드는 상대를 곱게 볼 수 있을까.

     애초에 아무런 사전 설명도 없이 불쑥 본론부터 꺼낸 레인의 잘못이었다. 이런 반응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움츠러들 레인이 아니었지만.

    “네 딸이 겪고 있는 증상을 여기저기서 좀 주워들었지. 그랬더니 당장 연상되는 병명이 하나 있더군.”

    “…….”

     자작이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레인을 마주 봤다.

    “일단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머리가 백발이 됐나?”

    “!”

     이어진 레인의 발언에 곧바로 안색을 굳히는 자작.

     마지막으로 전서구를 받았던 그때, 딸아이의 머리칼이 완전히 탈색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확인한 것은 자작 본인뿐.

    “선천적으로 타고난 병이라든지. 체온이 그냥 내려가는 정도가 아니라 몸이 그냥 얼음장이라든지.”

    “?!”

    “나이가 들수록 증상이 심해진다던가. 따뜻한 곳에다 둬도 도저히 체온이 오르질 않는다던가. 직접 살펴보니 몸속 이곳저곳에 이상하게 냉기가 뭉쳐진 덩어리들이 있다던가.”

    “그걸 어떻게…….”

     자작이 경악했다.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다니, 마치 직접 그녀를 진찰한 것만 같다. 그게 아니면 가족, 혹은 전속 의원에게 직접 전해 들었다거나.

     하지만 그랬을 리가 없다. 영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소년이 수도에 다녀왔을 리도 없고, 백작가의 정보원이 그만한 고급 정보를 취득했을 리도 없다.

    “표정을 보아하니 맞는 모양이네.”

    “설마.”

    “마지막으로 묻는 건데. 확인된 냉기 덩어리는 총 아홉 개인가?”

    “…….”

    “확실하군. 구음절맥(九陰切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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