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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미래(1) (111/249)
  •  111. 미래(1)

     레인과 르우벤은 곧바로 백작성으로 복귀해 식사부터 했다.

     식사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다른 이들은 둘째치고 두 소년에겐 특히나.

     두 사람은 다른 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도 계속해서 식사를 했다. 아무래도 격렬한 전투를 치른 후라 허기짐이 다른 이들보다 심했다.

    “그러고 보니, 대체 몇이나 되는 유적을 털고 다닌 거야.”

     식사 와중 레인이 물었다. 르우벤이 입에 물고 있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글쎄, 지난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유적만 탐색하고 돌아다녀서. 솔직히 이젠 몇 개나 돌았는지도 가물가물한데. 대륙 전역을 돌아다녔거든.”

    “장난이 아니군.”

     레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5년 전이면 르우벤이 10살일 때다. 그 나이 때부터 유적을 공략하러 다녔단다. 그야말로 무서운 집념이었다.

     그런데 르우벤은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모자라. 이 정도로는 안 돼. 내가 원하는 만큼의 힘을 갖추려면.”

     지난 시간 동안 수없이 유적을 털고 다녔다.

     우선적으로 공략 방법이 쉬운 유적부터 돌았다. 함정의 패턴을 숙지하고 있거나, 특수한 공략법이 있는 유적을 택했다.

     초기에 공략한 건 아니지만, 자이언트 플랜츠(Giant plants) 유적이 그런 케이스에 속했다. 유적 내 생명체들을 물리는 물약의 제조법을 알고 있던 르우벤은 손쉽게 유적을 공략했다.

     그렇게 기반을 다진 후, 난이도를 높여가며 더 많은 유적을 털었다.

     용이 존재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고대 용인족들이 힘을 합쳐 설립한 신전, 드래곤 레어(Dragon lair)도 털었다.

     과거 대수림 내 모든 엘프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영웅 플루넴을 지원했던 요정 여왕 크리스타니의 유산도 얻었다.

     단지 재미를 위해 한 나라를 통째로 멸망시킨 미치광이 마검사 바르티나움의 저주받은 유적 또한 격파했다.

     심지어 고대 근위 마법기사단의 유산이 잠든 왕의 유적(The remains of the king)에서 대량의 유물을 습득하기까지 했다.

     하루 만에 공략한 유적이 있는가 하면 몇 달에 걸쳐 공략한 유적도 있었다. 비교적 간단하게 격파한 유적이 있는가 하면 위기란 위기는 모조리 맞이한 유적도 있었다.

     특히 왕의 유적 같은 경우, 본래 국가에서 직접 파견한 초대형 탐사대가 털었어야 할 유적이었다. 그것을 단둘이서 공략하느라 몇 번이고 죽을 뻔했다. 공략 기간도 4개월이나 되었고.

     그럼에도 부족했다.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목표하는 경지에 다다르기엔 부족했다. 적어도 르우벤은 그렇게 생각했다.

    “부족하다고?”

     레인이 방금 전의 대련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족하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필시 ‘미래’의 그가 겪은 일과 관련이 있는 발언일 터.

    “분명 회귀하기 전에 비해선 강해졌다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뿐이야. 머지않은 미래에 찾아올 재앙에 대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어.”

     르우벤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며 숟가락을 내려놨다. 그리곤 한 차례 기지개를 켜며 말을 이었다.

    “밀리아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말 한 적 없는데. 같은 각성자가 상대라 정신병자 취급당할 걱정은 없어서 좋네.”

    “?”

    “마왕이 대륙을 침공할 거야. 차원을 넘어서.”

    “뭐?”

     갑작스런 발언에 레인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르우벤이 길게 하품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마왕이 이 세계를 침공해올 거라고.”

    “확실히 정신병자 취급받을만한 발언이긴 하네.”

     이런 말을 누가 믿겠는가. 레인이 계속 말해 보란 뜻으로 턱짓했다. 르우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회귀하기 전엔 상당히 잘나가는 용병단의 일원이었거든? 무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영웅’이 이끄는 용병단. 왕국 차원의 의뢰를 받아서 마왕을 토벌하러 나서기까지 했다? 그런데…….”

    “마왕과 맞부딪쳐 전멸했다. 뭐 그런 건가?”

    “아니. 마왕은 쓰러뜨렸어. 수많은 단원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 단장께서 시원하게 목을 날려버렸지. 네 말대로 용병단이 몰살당하긴 했는데, 그건 높으신 분들이 뒤통수를 쳐서 그런 거고.”

    “……?”

     레인이 살짝 인상을 썼다. 이야기에 모순이 있었으니까. 마왕의 침공을 대비한 준비를 해야 한다더니?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토벌은 된다는 거 아닌가?”

    “물론 그걸로 끝이라면 내가 이럴 이유가 없지.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

    “?”

    “그때 그 마왕 녀석이 그러더라고. 자신이 죽더라도 남은 71명의 마왕이 있다고. 너희는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레인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뭐야, 그 밑도 끝도 없이 절망적인 전개는.”

    “내 말이.”

     르우벤이 한숨을 내쉬었다.

    “참고로 말해서 그 당시에 내가 소속되어있었던 용병대의 단장은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강한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이 아주 근소한 차이로 마왕 하나를 쓰러뜨린 거야. 이해하겠어?”

    “…….”

     가진 힘에 만족하지 못한 이유가 이것이었던가.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필요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 이유라면, 나도 힘을 더 길러야 한다는 결론이 되나.”

    “이해가 빨라서 다행이야.”

     르우벤이 씩 하고 웃었다. 솔직히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래를 전해 들은 이상 자신과 힘을 합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솔직히 또 다른 각성자가 있다는 것은 정말 생각지 못한 사태였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 지금은 전력이 하나라도 더 필요하니까.”

    “그건 각성자 모두가 마왕에게 대항하는 데 협조적일 때나 할 말 아닌가? 모두가 그럴 거라고 어떻게 알고?”

    “싫어도 해야 할 거야. 그놈들의 목적은 인류의 멸절이니까. 인간뿐 아니라 아인종까지.”

    “선택지가 없다는 말이군.”

    “그럼 그놈들이 차원을 넘어서까지 대륙을 침공하려는 이유가 인간과의 공존이겠어? 그 탐욕스러운 녀석들이 인간과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려고 할 리가 없지.”

    “…….”

     레인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두들기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누가 더 있지? 아까 말한 대로 네 동료에게만 털어놓은 건가?”

    “어.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고 싶어도 못 하지. 이런 걸 믿어줄 사람이 어디에 있냐.”

     애초에 르우벤의 인간관계가 굉장히 좁기도 했다. 날마다 지역을 옮겨 다니며 유적공략에 힘쓰는데 그 와중 주위 사람들과 친교까지 다지는 게 어디 쉽겠는가.

    “네 동료는 잘도 믿어줬군.”

    “아. 그녀는 특별하거든.”

     르우벤과 밀리아의 관계는 굉장히 특별했다. 유적, 드래곤 레어(Dragon liar)를 공략한 르우벤이 그 심장부에 잠들어 있던 그녀를 깨워 동료로 삼았다.

     깨어남과 동시에 르우벤에게 종속된 그녀는 그의 말에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지금에 이르러선 르우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상대로 자리매김했다.

    “이 사실, 내 친구에게도 전할 생각인데 상관없겠지?”

    “또 다른 각성자라는 그 친구? 나야 환영이지.”

     로엘에게는 되도록 빠르게 알리는 것이 좋을 터였다. 그는 특별하니까.

     딱 보니 르우벤의 성향도 그리 계획적이거나 해 보이진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로엘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그라면 일신의 무력을 증진시키는 데에나 초점을 맞춘 자신들보다 훨씬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 놈들의 침공을 대비할 터였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춘 사람이 적어도 한 명쯤은 필요했다.

    “그런데 그 녀석, 지금 제국에 있어서 지금 편지를 보내면 두어 달 뒤에나 도착할 텐데. 혹시 이런 때에 유용한 아티펙트는 없는 건가?”

     이런 일은 되도록 일찍 알릴수록 좋은 법이다.

    “음? 아. 있긴 해. 과거 공간의 현자가 만든 유적도 털었거든.”

    “공간의 현자? 공간 계열 마법사를 말하는 건가? 그건…….”

    “초대 바엘른 마탑주가 이미 관련 유적을 털지 않았느냐고?”

     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사실은 잘 안다. 암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해도 지인에 대한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별것 아니야. 그 위인이 제작한 유적이 하나가 아니었을 뿐이지.”

    “허어.”

    “내가 턴 유적은 초대 바엘른 마탑주가 턴 유적과는 다른 유적이야. 내 쪽엔 마법 관련 자료가 아니라 그가 제작한 아티펙트가 비치되어 있었지만.”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현시대엔 공간 계열 마법이 담긴 아티펙트가 전무하다고 했던가. 보통은 관련 아티펙트가 마법서와 함께 출토되기 마련인데 공간 마법이 발굴됐을 땐 그런 게 없었다고 했다.

     사실 아공간 마법이 적용된 아티펙트는 아주 간혹 출토되곤 했지만, 그 마법은 이미 완벽하게 복구된 뒤라 논외였다.

    “어쨌든 잘됐네. 부탁 좀 하지.”

    “맨입으론 안 되는데.”

    “뭐?”

    “아니, 그게. 그 배달용 아티펙트는 일회용이거든. 딱 세 개밖에 없고.”

     고대 공간의 현자는 그리 많은 아티펙트를 남기진 않았다. 그나마도 영구적인 마법이 새겨진 물품은 하나뿐. 나머지는 전부 일회용 물품이었다.

    “그래서?”

    “배송비 좀 받자.”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네가 만족할 만한 액수는 가지고 있지 않은데.”

    “아니, 애초부터 돈으로 받아낼 생각은 없었어.”

     르우벤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애초에 금전은 충분했다. 왕의 유적을 발굴하면서 상당한 액수의 보석과 금화를 독식했다. 웬만한 귀족은 발아래로 볼 수준의 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신 당분간 오늘처럼 대련이나 몇 번 더 해줬으면 해.”

    “대련?”

    “어. 내가 지금까지 유물을 모으기만 했지 그것들을 완숙하게 다루기 위한 연습은 좀 등한시해왔거든. 이젠 기억 속에 있는 유적은 대체로 정복했으니 휴식기를 가지고 정비할 때가 됐어.”

    “그러니 힘을 완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상대를 해달라?”

    “그렇지. 너 정도 수준의 대련 상대를 구하는 게 어디 쉽겠냐. 사실 얼마 후에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유적 하나가 열리거든. 그 유적에 도전하기 전까지 최대한 역량을 올려둬야 해.”

    “그런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하지.”

     마침 이쪽도 막 경지가 오른 탓에 정비 기간이 필요했던 차였다. 레인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잘 부탁해.”

    “이쪽이야말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씩 하고 웃었다.

    “차 한 잔 마실 생각 있나?”

    “어. 녹차로 부탁해.”

     레인이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을 불러 식탁 위를 치우고 차를 내어올 것을 지시했다. 이내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는 찻잔이 각각 두 소년의 앞에 놓였다.

     레인이 차를 한 모금 넘기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배신당했다고 했던가. 어느 왕국이지?”

    “노러츠. 대륙 전체를 통틀어 상층부가 썩었기로는 제일인 나라지. 동부에 위치한 소국이야.”

    “그러냐. 그럼 일단 물어보겠다만.”

    “?”

    “복수할 생각이냐?”

     만일 복수할 생각이라면 레인은 한 손을 보태줄 용의가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르우벤은 두 제자를 위기에서 구해준 은인이었다. 은혜는 확실하게 갚을 생각이었다.

    “…….”

     르우벤은 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글쎄. 그게 상당히 애매한 문제거든? 분명 배신당하긴 했다만, 그게 현시점에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라서.”

    “그것도 그런가.”

    “애초에 내가 몸담았던 용병단은 현재는 존재하지도 않으니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복수를 하자니 좀 껄끄럽지. 나도 사람이라서 그리 이성적이지만은 않다만…….”

    “하긴.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딱히 우리 용병단의 뒤통수를 친 일이 아니더라도 천벌 받아 마땅한 놈들이긴 한데. 왕국 하나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니 얼마나 시간이 잡아먹힐지 감도 안 잡혀서.”

    “한정된 시간을 그놈들을 상대한다고 써먹자니 아깝다는 거로군.”

    “기회가 닿는다면 한 차례 뒤집어 놓을 생각이긴 해.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우선 계획한 대로 강해지는 데 우선순위를 둘 생각이야.”

     레인이 재차 찻물을 입에 머금었다. 르우벤이 따라서 찻잔을 기울였다.

    “그건 그렇고, 너 굉장히 특이한 의술을 익혔던데. 그것도 다른 세계의 의술이야?”

     전쟁이 끝나고 레인이 부상자를 치료하는 장면을 수많은 사람이 목격했다. 괴이한 치료법임에도 그 효과가 탁월해 주위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 인물 중엔 르우벤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 그쪽 세계에선 ‘내가요상술’이라고 부르는 치료법이지.”

    “그 치료법은 그쪽 세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통해?”

    “최상위. 치료하지 못할 부상이나 병이 웬만해선 없지.”

    “그래? 질병엔? 질병에도 강해?”

     레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런 걸 묻는지는 모르겠다만, 대신관이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이라도 대체로 치료하는 게 가능할 거다.”

    “딱 좋네.”

     르우벤은 한 차례 씩, 하고 웃었다. 마침 잘 되었다는 듯.

    “?”

    “크레틸 자작의 여식이 괴이한 질병을 앓고 있다던데. 한 번 치료해 보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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