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각성자 vs 각성자(4)
백광과 청광이 쉼 없이 번쩍였다.
하늘에서 번개가 연속적으로 떨어져 내리고, 대지가 폭격을 맞은 듯 패여 나갔다.
마법과 검기의 잔재가 남아 이곳저곳에서 스파크를 튀겼다. 드문드문 있던 바위들이 모두 가루가 되었다.
검격과 권격이. 권격과 권격이. 음파와 음파가.
충격파가 쉴 새 없이 퍼져나갔다. 그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뒤집어엎으며.
순식간에 그 크기를 불린 전투 범위에서 벗어나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구경꾼들. 그 중 적룡대주 플레이나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건 헬튼 백작과 크레틸 자작의 전투보다도 더한데?”
“저 두 사람. 분명 동갑이었죠? 15살.”
옆에서 부대주가 같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야말로 괴수대혈전. 적어도 구경꾼들의 눈에는 두 사람의 전투가 그렇게 비쳤다.
근력 강화 마법, 가속 마법, 안력 상승 마법, 감각 상승 마법, 출력 증폭 마법 등등. 수십 개의 상시발동형 마법을 몸에 두른 채 온갖 전격 마법을 쏟아내는 르우벤.
그 모든 것을 온갖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막아내고 반격하는 레인.
좌중의 인물들은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박력이 있었다.
레인이 목울대를 크게 울렸다. 그 입이 짐승의 그것처럼 한계까지 벌어졌다.
르우벤이 귀걸이 중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그의 입 또한 한계까지 벌어졌다.
“커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자후(獅子吼)와 용의 포효(Dragon roar)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대기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대지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며 푹푹 패여 나갔다.
두 포효가 서로를 상쇄시킨 후, 곧바로 다음 행동으로 돌입하는 두 소년.
레인이 르우벤의 지근거리까지 급접근, 강기를 실은 검을 내질렀다. 르우벤이 곧바로 손을 내밀어 막았다. 동시에 마법 발현.
<용의 비늘(Dragon scales)>.
그가 내민 손이 순식간에 경화되더니 단단한 비늘에 뒤덮였다. 그가 착용한 팔찌 중 하나에 깃든 권능이다. 지금 이 순간, 르우벤의 손은 용의 발톱이 되었다.
쩌엉!
무려 강기가 실린 검을 아무런 기운도 담기지 않은 손으로 막아낸다. 레인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르우벤이 또 다른 마법을 발현했다.
<강제 복종(Forced obedience)>.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앉아.”
“?!”
발현시킨 권능은 착용한 목걸이에 깃든 강력한 언령(言令) 마법. 현시대에는 인간의 심층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가벼운 종류의 것 외에는 전부 소실된, 그런 것.
고대에 멸종한 용(Dragon)족이 즐겨 사용했다 전해지는 마법이다. 그 당시엔 상대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 그 자체를 제약했다 전해진다.
레인이 신형을 한 차례 휘청했다. 그 강대한 마법은, 무려 초인씩이나 되는 존재를 일순 휘청이게 할 정도의 강제력을 행사했다.
자세가 무너진 레인을 향해 곧바로 주먹을 내지르는 르우벤. 순식간에 주먹에 뇌기가 휘감겨 사방으로 스파크를 튀겼다.
레인이 혀를 차며 손에 들린 검을 내던졌다.
“!”
설마 검사가 손에 든 검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져 버릴 줄은 몰랐던 르우벤이 황급히 고개를 젖혀 검을 피했다. 그 사이에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레인.
하지만 르우벤은 레인이 균형을 회복하도록 그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의외의 공격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재차 주먹을 날렸다.
“뭐, 뭐야!”
그러나 르우벤은 결국 내지르던 주먹을 황급히 회수하고 뒤쪽으로 훌쩍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간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질 판이었다.
“저게 무슨.”
르우벤이 황망한 얼굴을 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끝에는 마치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레인의 검이 있었다.
“저 검, 아티펙트였나?”
“아니, 평범한 검이다. 이건 오라를 특수하게 운용해서 펼친 엄연한 기술이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묻는 르우벤에게 어느새 자세를 회복한 레인이 평온한 어조로 답했다.
이기어검(以氣御劍). 중원에서도 한계를 넘어선 이들만이 발현할 수 있었던 최상위의 기예.
압도적인 내력 운용 능력으로 몸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검조차도 손에 든 것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물론 르우벤이 보기엔 저게 뭔가 싶었지만.
“그런 게 가능한 검술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쪽 세계의 검술이 아니니까.”
“…….”
레인 또한 각성자라는 것을 상기한 르우벤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확실히 까다롭군. 상성이 맞는 아티펙트들을 모으는 것만으로 그만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줄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거든? 진짜 특이한 기술 많네. 특히 방금 전에 검을 원격 조작하는 기술은 아찔했어. 그 음파 공격도 굉장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맞받아쳐 놓고 말은 잘하는군.”
“에이, 그건 아티펙트에 담긴 마법이잖아.”
“그것도 엄연히 네 힘이지.”
경지가 오르기 전에도 검성인 크레틸 자작의 포효와 호각을 이뤘던 음공이다. 지금의 위력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것을 가볍게 상쇄시키는 마법이 담긴 아티펙트라니. 상식을 벗어났다.
“일단 실력은 대충 본 것 같은데. 더 할까?”
“물론. 이제야 네 전투 패턴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으니까.”
레인이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어 진짜? 그럼 안 되지. 패턴을 바꿔야겠네?”
르우벤이 과장스럽게 눈을 깜박였다. 그리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인벤토리 툴(Inventory Tool).”
그의 등 뒤로 수많은 선반이 재차 출현했다.
“탈착(Desorption).”
“?!”
르우벤의 몸에 걸쳐진 아티펙트들 중 일부가 해제되더니 선반으로 되돌아가 수납됐다. 갑작스레 전투태세를 해제하는 상대에게 레인이 당혹스런 얼굴을 했다.
르우벤이 큭큭 웃으며 재차 손가락을 튕겼다.
“장착(Equip).”
그리고 선반에서 다른 아티펙트들이 몇 개 날아들었다. 이전과 같이 온몸에 저절로 장착되는 아티펙트들. 이내 그는 이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온몸을 뒤덮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 풀 플레이트 아머. 그런데 그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놈의 갑주가 3미터에 가까운 크기를 자랑했다.
“엇차.”
분명 크기가 맞지 않을 터인데, 어찌 된 일인지 르우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었다는 양 가볍게 움직여 몸을 푸는 모습마저 보였다. 대체 내부 구조가 어떻게 되먹은 물건인 건지.
“아니, 뭐야 그게.”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얼굴로 레인이 중얼거렸다. 익숙하지 않게 하겠다는 게 저런 의미였던 건가.
“그보다, 전투 중에 그렇게 함부로 아티펙트를 갈아치워도 되는 건가? 분명 그 틈을 노려질 텐데.”
무언가 지적하려던 레인이 입을 닫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르우벤의 주변에 이질적인 기운의 파장이 느껴졌다.
‘어느새.’
“잠깐이지만 주위에 강력한 방어막을 생성하는 아티펙트도 있거든.”
르우벤이 씩 웃으며 답했다.
“이건 뭐 답이 안 보이는군.”
레인이 피식 웃었다. 말과는 달리 온몸에서 투기를 뿜어내며.
“그런데, 모든 아티펙트를 한꺼번에 장착하고 싸울 수는 없는 건가?”
“그게 안 되더라고. 최상위 아티펙트 중에서도 특별한 것들이 몇 개 있거든? 그것들은 상성이 맞지 않으면 서로 반발해버려서.”
“그런가?”
그렇더라도 대부분의 아티펙트에는 그런 것 없다. 그것들 중 제약이 적고 최상위의 권능이 담긴 것을 수십 개나 골라 상시 착용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번 세트(Set)도 기대해도 좋을 거야.”
르우벤이 그렇게 말하며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
생각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에 레인이 움찔, 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비켜난 공간을 순식간에 지나쳐 돌격하는 르우벤.
그런데 속도를 제어하질 못하는 모양새다. 그 뒤쪽에 있던 바위와 장렬하게 충돌했다.
콰앙!
그 방향에 위치해 있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 후에야 바닥에 길게 흔적을 남기며 돌진을 멈추는 르우벤.
그가 레인을 돌아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투구에 가려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 기색은 확연히 전해졌다.
“자아. 한 번 잘못 걸리면 골로 가는 거야. 잘 피해 다녀라?”
르우벤이 장착한 갑주에 부여된 권능은 아주 단순하다. 최고의 방어력, 그리고 출력 증폭.
여기에 보조 아티펙트가 가미된다. 각종 방어마법으로 방어력을 몇 단계 더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이요, 거기에 온갖 가속 마법으로 움직이는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인다.
탱커 세트(Tanker Set)를 갖춘 르우벤의 전투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증폭된 마법을 두르고 그저 적에게 달려들 뿐. 그것뿐이다.
그저 상시발동형 아티펙트를 제외한 몇 개만을 갈아치웠을 뿐이다. 그런데 전투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치 다른 사람 같다.
당하는 쪽에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엄청난 속도를 앞세워 죽어라 몸통박치기를 날려 오는 적. 피하는 것도 어려운데 말도 안 되는 방어력으로 인해 반격이 전혀 먹혀들질 않는다.
“이런 미친.”
레인이 연신 회피하며 나직이 내뱉었다. 몇 번 공격을 해봤는데 통하는 것이 없었다. 강기를 덧씌운 검으로도 소용이 없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예 방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경지가 오른 만큼 조금 무리하면 훨씬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
저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드는 적에게 그만한 필살 일격을 제때 정확하게 날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상대의 움직임에 웬만큼 익숙해지지 않고는 불가능할 터.
그렇다면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을 끌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분명 익숙해지기 전에 또 다른 아티펙트를 장착해버릴 거란 말이지.”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에 르우벤이 유유히 다른 세트를 장착해버리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헛웃음이 나올 만큼 결점이 없는 상대였다.
“장난이 아니네, 이거.”
레인은 새삼 ‘각성자’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존재인지 절실히 느꼈다. 로엘도 그렇지만, 이 르우벤이라는 녀석 또한 만만치 않다.
레인은 재미있다는 듯 핫, 하고 웃었다.
“좋아. 어디 끝까지 해보자고.”
* * *
“여기까지만 하지.”
두 사람의 대련은 결국 그로부터 두 시간이 지난 뒤에야 끝이 났다.
르우벤은 그동안 세 번이나 더 아티펙트를 바꿔서 장착했다. 아주 아티펙트가 썩어 넘쳐났다.
레인은 레인대로 르우벤이 경험해 본 적 없는 무공을 수없이 선보였다. 미리 흑아에게 보관하도록 해둔 다른 무구들, 그러니까 창이나 활 등까지 사용해가며.
두 사람이 싸운 여파로 주변 구릉지대가 완전히 평지가 되어버렸다.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싸움을 했다.
그것도 두 사람이 적당히 대련을 멈춰서 그걸로 끝난 것이다. 결판을 내지도 못했다. 그 이상 했다간 식사도 못 할 듯싶어서 레인이 먼저 그만두자고 제안했다.
“와.”
“재밌었다.”
구경꾼들은 하나같이 좋은 것을 봤다는 얼굴을 했다.
그들은 플로라를 제외하면 모두가 무인. 보다 상위의 경지인 레인이 온갖 절기를 날리며 전투를 치르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상당히 좋은 경험이 되었다.
뭐 그것을 제하고서라도 두 사람의 전투는 흥미진진함 그 자체이긴 했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전투였다고 할까.
“배고프다.”
레인이 중얼거렸다.
본래라면 적당히 실력만 확인할 참이었다. 그냥 호승심이 조금 들끓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맞붙어보니 흥이 잔뜩 올랐다. 그 탓에 대련이 굉장히 길어졌다.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버렸다.
“힘들어.”
르우벤 또한 피로를 호소했다.
그는 애초에 레인과 같은 초인이 아니다. 체력적인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장시간 전투를 하려면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아티펙트를 계속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아티펙트로도 피로감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몸이 지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지치는 것이다.
두 사람은 터덜터덜 걸어 구경꾼들이 위치한 곳으로 향했다. 밀리아가 르우벤을, 레이나와 셀린이 레인을 맞이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