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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각성자 vs 각성자(3) (109/249)
  •  109. 각성자 vs 각성자(3)

    “또 그 짓이냐?”

    “어. 유일한 취미생활이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한 동료의 말을 한참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내가 받았다.

     열중해서 종이에 무언가를 계속해서 적고 있는 사내의 이름은 르우벤. 올해로 서른 살에 이른 사내였다.

    “그것참,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특이한 취미라니깐.”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이게 의외로 재미있어.”

     르우벤의 취미는 특정한 자료의 수집이었다. 그 특정한 자료라는 것은, 말하자면 유적에 관한 모든 것.

     어떤 유적에서 초고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느니, 유적은 어떤 구조였고 어떤 식으로 파훼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정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르우벤의 취미였다.

     그러니까 남들이 다 털어가고 난 후에야 호사가들을 통해 퍼진 유적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것을 체계적으로 기록해 깔끔하게 문서로 남기기까지.

     왜 그런 것에 그렇게 열중하는지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저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어려서부터 유적에서 기연을 얻어 강해지는 영웅의 이야기를, 금은보화를 얻어 승승장구하는 트레져 헌터의 이야기를 동경해왔기에 그것이 취미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하고.

    “쯧쯧, 남들 다 장가가서 아들딸 낳고 잘살고 있는 나이에 그게 무슨 짓인지. 뭐 하긴 너 말고도 정상이 아닌 놈들이야 넘쳐나긴 한다만.”

     르우벤의 동료, 프쉬켈은 르우벤이 앉은 간이 탁자 맞은편에 적당히 앉으며 혀를 찼다.

    “우리가 연애질이나 할 틈이 어디에 있겠냐. 당장 다음 원정 때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마침 기록을 마친 르우벤이 손가락으로 펜을 빙빙 돌리며 느긋하게 대꾸했다. 프쉬켈이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극히 위험한 지역만 골라 다니는 최상위 용병대의 일원이었다. 연애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다.

     뭐 분명 그 와중에도 눈이 맞아 꽁냥꽁냥대는 남녀 단원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극소수의 승리자들. 르우벤이나 프쉬켈과 같은 단원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래도 매일매일 단장 얼굴 보는 낙은 있으니까.”

    “그렇지. 연애질 좀 못하는 정도는 그걸로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지.”

     그들을 이끄는 단장은 여성이었다. 올해로 24세. 왕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아름다움의 결정체와 같은 인물.

    “솔직히 단장의 외모에 홀려서 용병대에 들어온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지.”

    “뭘 너는 아닌 것처럼 말하는 거냐. 그치들의 대표주자인 주제에.”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은 경이적인 능력과 만인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그리고 미의 여신에 비견될 외모는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르우벤과 프쉬켈이었다.

    “절벽 위의 꽃이긴 하다만.”

     르우벤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를 사모하는 마음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목숨을 구함받은 그날, 그러니까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그녀를 뒤따른 날로부터 벌써 7년이나 흘렀다.

     그러나 르우벤의 마음이 그녀에게 닿을 수 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녀에게 르우벤은 수많은 추종자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는 지금까지 그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지조차 못했다.

     신이 내린 무재(武才)에 수많은 기연까지 얻은 그녀였다. 어린 나이서부터 초인의 대열에 들어선 규격 외의 강자. 반면 르우벤은 그저 유적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취미를 지닌 괴짜에 불과했다.

     30살의 나이에 검수(劍手)에 머물 뿐인 범재인 그는, 연심을 그녀에게 표현하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고향 땅을 좀 밟겠군그래.”

    “그러게. 우리도 참 용케 살아남아서 돌아가네. 그 지옥에서.”

     그들이 속한 용병단은 이번에 국왕의 요청으로 왕국에 드리운 거대한 암운을 몰아냈다. 무려 ‘마왕’을 쓰러뜨리는 업적을 이뤄낸 것이다.

    수많은 단원의 희생을 바탕으로 마왕과 1:1로 맞붙은 단장. 그녀는 장장 1시간에 걸친 혈투 끝에 마왕의 목을 쳐내는 데 성공했다.

    “후. 이번엔 정말로 힘들었어.”

    “누가 아니래. 솔직히 나는 우리가 여기서 전멸할 줄 알았어.”

    “지금까지 위험한 고비를 많이 넘겨오긴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이번만큼은 아니었지.”

    “어찌 됐든 국왕의 의뢰는 완수했으니까.”

    “후후,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지금까지 단장에게 내려진 명예 귀족 지위를 고깝게 여기던 높으신 분들께서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말이야.”

    “그건 나도 기대되는데. 허구한 날 단장을 불온한 시선으로 보던 잡놈들이 이젠 눈을 내리깔 때가 됐지.”

    “내일이면 왕국에 들어선다. 그때부턴 고생 끝이야.”

    “그래.”

     전쟁을 마무리한 자들이 나누는 한가로운 대화.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 용병단이 숙영지로 정한 자리 근방에 대단위의 병력이 매복하고 있음을.

     전투 중 포션이 바닥난 탓에 용병단에는 수많은 중상자가 있었다. 심지어 거기엔 단장마저 포함되어 있었다.

     신속히 환자를 운송하기 위해 용병단은 지금까지 다소 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강행군을 펼쳐왔다. 왕국을 감싼 암운은 이미 걷어낸 바,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적으로 돌아선 것은 다른 어떤 세력도 아닌 왕국 그 자체.

     왕국은, 아니, 왕국의 높으신 분들은 영웅의 용병대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의했다. 그들 용병대가 왕국에 끼치는 영향력이 너무나도 막대했기에.

     안 그래도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세력이다. 그런데 이번엔 마왕 토벌이라는 역사에 남을 업적까지 달성했다. 안 그래도 높은 인기가 천정부지로 솟아 올라갈 것은 당연지사.

     이를 시기하고 질투한 귀족들은 그들을 모함했다. 그들의 왕에게 용병단의 위험성을 역설했다. 국왕은 국왕대로 그들의 모함에 모르는 척 속아 넘어가 주었다.

     그렇게 생겨난 척살 부대. 총사령관은 제2 왕자 유스타시아.

     왕국은 용병단을 쓸어버리고 그들의 전공을 가로챌 계획을 세웠다. 그 영광의 주인공으로 발탁된 것이 바로 유스타시아였다.

     제2 왕자가 이끄는 군대는 용병대를 세상에서 지운다. 그리고 제2 왕자는 ‘마왕에게 몰살된 용병대’를 대신해 영웅이 되어 왕국에 귀환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

     사실 왕자는 과거 몇 차례나 ‘영웅’에게 구애를 한 이력이 있었다. 무려 국가 차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심상치 않을 정도로 민중의 지지를 받는 그녀를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었으니까.

     물론 왕자 개인적으로도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녀의 외모는 그 어떤 남자라도 맥을 출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했으니.

     그러나 그녀의 답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왕국은 손에 올려놓고 굴릴 수 없는 그녀의 세력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했다.

    “크악!”

    “어, 어째서 왕국군이!”

     왕자가 이끄는 군대는 용병단을 습격, 압도적으로 몰아붙였다. 부상자의 비율이 높은 데다 오랜 강행군으로 지쳐 있던 용병대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단장은 그 정도가 더했다. 무려 마왕에게 입은 부상을 안고 전투를 치러야 했으니까. 웬만한 포션이나 사제의 성력(聖力)으로도 치료되지 않는 지독한 부상이었다.

     적어도 대도시의 신전에나 있는 대신관 정도가 아니면 치료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중상. 그런 부상을 입고서도 운신이 자유로울 리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기습으로 용병대의 사기는 최저치. 반대로 상대는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나타나 착실하게 용병대를 유린했다.

     그렇게 파국이 찾아왔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눈부신 활약을 선보이며 분투하던 단장이었지만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에게 최후를 선사한 인물은, 바로 왕국의 이름난 기사인 플리퍼 자작.

     콰앙!

     그가 휘두른 거대한 해머에 직격당해 피를 흩뿌리며 튕겨 나가는 단장. 체내의 마나가 역류해 내장이 뒤틀렸다. 단숨에 빈사 상태로 몰렸다.

     그 근방에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사투를 벌이고 있던 르우벤은 얼떨결에 그녀를 받아내게 되었다.

    “어?”

     그리고 그 순간, 르우벤은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듯한, 끔찍한 감각을 느꼈다.

     접촉은 고사하고 말을 섞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단장이 품 안에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처참한 모습으로.

     그녀와 이어지는 망상을 수없이 해왔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이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가 가늘게, 곧 숨이 끊어질 것처럼 호흡하고 있었다. 그 모습마저도 아름답다고, 르우벤은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숨이 이내 끊어졌다.

    “…….”

     르우벤은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휘청, 하고 쓰러질 뻔했다가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바로잡았다.

     그녀의 호흡도, 맥박도, 살아있는 그 어떤 징후도 감지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닿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항상 되뇌어 오던 상대였다. 그런데도 마음이, 심장이 통째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상실감은 이내 슬픔으로, 그리고 슬픔은 이내 거대한 절규로 뒤바뀌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르우벤은 목청이 찢어지도록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를 토해냈다. 토해내고 토해내도 가슴속을 짓누르는 그것은 더욱 무거워져만 갈 뿐, 조금도 나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동경이 유적에 관한 소문을 수집하는 취미로 이어졌다?

     아니었다. 그 취미는 그런 이유로 가지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 취미는 눈앞의 여인을 동경하면서부터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녀가 얻은 수많은 기연을 부러워했다. 자신도 그런 기연을 얻어 그녀의 옆자리에 당당하게 서고 싶었다.

     그러나 르우벤 자신은 범부에 불과했다. 기연을 얻을 일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니, 있다고 해도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그렇게나 광적으로 매달린 것이리라. 괴짜라는 말을 들어가면서까지 그 취미에 몰두한 것이리라.

     그저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기 위해서. 그것에 몰두하고 망상함으로써 한심한 현실의 자신을 일시적이나마 잊기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외면했던 본심인데. 어떤 마음으로 포기했던 연심인데!

     이건, 이런 결말은 너무하지 않은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르우벤은 그녀를 붙들고 한참을 울부짖었다. 척살대에 포함된 기사 하나가 자신의 목을 쳐내기 직전까지도 울부짖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그날, ‘영웅’ 세이라 실린 플리아스 명예백작이 이끄는 무적의 용병대는, 단 한 사람의 생존자도 남지 못하고 전멸했다.

     * * *

     미래의 르우벤, 그러니까 기억을 각성하지 않은 르우벤은 본디 적당한 재능을 지닌 검사였다.

     아주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단한 재능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한 번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그는, 그저 나름 상위의 실력을 지닌 검수였을 뿐이었다. 딱 그 정도였다.

     그런 그가 미래의 기억을 간직한 채로 과거로 돌아왔다.

     그에겐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해져야 할 이유가.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의 재능은 딱 ‘검수’라는 경지까지. 딱 거기까지였다. 그 경지 이상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었다.

     그는 그저 범부일 뿐이었다. 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재능’이 절망적으로 부족했다. 그 빈약한 재능으로는 그가 원하는 경지에 시간 내에 다다르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미래의 기억’이라는, 자신에게 밖에 주어지지 않은 어드벤티지를. 그 누구의 그것보다도 압도적인 강점을.

     원래 오타쿠라는 족속은 형제자매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해도 자신이 열중하는 분야에서만큼은 최고의 기억력을 자랑하는 이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도 정도가 심한 이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라면 인물부터 세계관까지, 사소한 설정 하나하나조차 전부 꿰고 있는 자들이.

     르우벤이 바로 그러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열광했던 ‘유적’에 관한 정보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 기억을 토대로, 그는 수많은 유적을 털고 다녔다. 다른 이들에 의해 그 유적이 발굴되기 전에.

     모든 기억이 완벽하지도 않았고, 알고 있던 정보가 잘못된 경우도 있었다. 수많은 목숨의 위기를 넘겼고, 허탕도 수없이 쳤다. 그럼에도 그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에 이르러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강자가 되었다.

     그의 힘은 검술에서 기원하지도, 마법에서 기원하지도 않는다. 정령술이나 이능력은 더더욱 아니다.

     그의 힘은 그의 힘이되 그의 힘이 아니다. 그의 힘은 그가 미래의 지식을 기반으로 정복한 수많은 유적의 유물들로부터 기원하니까.

     수많은 최상위 아티펙트들. 초고대 마도문명의 정수가 깃든, 현시대의 문명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도구들.

     그것들 중 상성이 좋은 것들을 모아 세트(Set)를 만들어 장착한다. 그리고 모든 아티펙트를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해 전투에 임한다.

     단지 그것만으로, 그는 초인에 비견되는 압도적인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했다.

     촤악!

     레인이 달려듦과 동시에 검강을 발출했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르우벤이 작게 중얼거렸다.

    <뇌격(Lightning)>.

     그가 차고 있는 팔찌 중 하나가 푸른 광채를 뿜어냈다. 그 안에 내재된 권능은, 가공할 위력의 전격 마법.

     압도적인 출력을 자랑하는 마법이 단숨에 검강을 깨부수고 레인을 향해 밀려갔다.

     르우벤은 곧바로 ‘청룡’을 모토로 조합한 아티펙트들(Blue Dragon Set)을 일제히 기동시켰다. 그리곤 전방으로 확 하고 몸을 날렸다.

    “후읍!”

     밀려드는 마법을 걷어내고 있던 레인에게, 르우벤이 뇌기(雷氣)가 가득 실린 권격을 내질렀다.

     강렬한 청광이 사위를 뒤덮었다.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인 마냥 압도적인 기운이 웅장하게 몰아쳤다.

     쾅! 콰가가가각!

     그것을 거스르듯, 마찬가지로 검격을 내질러 받아내는 레인. 그 검에 어린 백광이 청광과 맞붙어 격렬하게 스파크를 튀겼다.

     아티펙트 콜렉터(Artifact Collector). 그리고 이계의 무공을 수련한 검성(劍聖).

     두 각성자가 지금,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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