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플뢰비르(4) (98/249)
  •  98화. 플뢰비르(4)

    “…….”

     로엘이 공중에서 몬스터 대군을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만들었다.

    “많군요.”

    “그, 그렇네요.”

    “대형 몬스터까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예삿일이 아닌 듯합니다.”

     수천에 달하는 몬스터가 일제히 몰려가는 광경은 일대 장관이었다. 인간의 군대와는 달리 절도고 통일성이고 그런 건 하나도 없었지만.

    “어지간히 굶주렸나 보군.”

     몬스터들은 척 봐도 굉장히 흉포해져 있는 상태였다. 펠라키 산맥에서 수없이 몬스터를 접해본 로엘은 보기만 해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쩔까. 하려고만 하면 저 중에서 마법사들만 골라 저격할 수도 있긴 한데…….’

     잠시 고민하던 로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자신이 전면에 나설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왕이면 거대한 무리에 섞인 상태에서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상대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 자신이 가진 힘의 특성을 고려해 봤을 때도 그것이 옳았다. 괜히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터.

    ‘일단 제대로 정찰했다는 정도로 만족하자.’

     로엘은 카트리나에게 지시해 다시 영주성으로 되돌아갔다. 와이번은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고 나아갔다.

    ‘확실히 비행형 몬스터를 다루는 마법사가 있으면 편하군. 되돌아가면 한 명 정도 구해봐야겠어.’

     돌아가는 와중, 로엘은 와이번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 * *

     로엘은 영지로 복귀하자마자 영주부터 찾았다.

     영주는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로엘의 재등장에 기겁했다. 그러나 이내 로엘로부터 상황을 전해 듣고 얼굴을 굳혔다.

     로엘은 영주에게 첨탑 하나를 내어줄 것을 요구했다. 중요 방어시설 하나를 통째로 내달라는 말에 영주는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그가 로엘의 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 도움이 됐으면 됐지 방해가 되진 않겠지.’

     영주는 그렇게 자기 위안을 했다.

     그렇게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방향에 위치한 첨탑 한쪽을 통째로 점거한 로엘은 바깥을 내다보며 여유롭게 침공을 기다렸다. 당장 바깥에선 온갖 소음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건만, 로엘이 위치한 공간만이 평화로웠다.

    “괜찮을까요? 규모를 보니 정말로 위험한 수준이던데.”

    “괜찮을 겁니다.”

     카트리나가 걱정을 내비치는 것을 로엘이 웃는 얼굴로 달랬다. 아마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보이는 것보다 쉽게 물리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두두두두두두-!

     캬아아아아악!

     퀘에에에엑!

     워어어어어어억!

     성벽 저편으로부터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내지르는 괴성 소리 또한.

    “후우, 후.”

    “으으.”

     성벽 위에 늘어선 병사들이, 용병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누군가는 심호흡을 했고, 누군가는 질린 얼굴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래 봐야 몬스터일 뿐이다! 성벽 안쪽에서 제대로 된 준비를 갖추고 저들을 맞이하는 우리가 질 리가 없다!”

    “놈들이 두렵다 해서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는 순간 우리의 가족 친지가 놈들에게 목숨을 위협받게 된다! 죽을힘을 다해 맞서라!”

     지휘관들이 바락바락 소리를 내질렀다. 용병들을 지휘하는 자는 그들을 안심시키는 외침을, 병사들을 지휘하는 자는 그들의 고향애를 자극하는 외침을 터뜨렸다.

     상대적으로 용병의 숫자가 더 많은 군대다 보니 아군을 독려하는 지휘관의 비율이 더 높았다. 어느 쪽이나 시끄러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참고로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전쟁엔 평범하게 공성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몬스터는 강력하지만, 그래도 마나를 다루는 녀석은 웬만해선 없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충돌이 일어났다.

     쾅! 쾅!

     키에에에에!

    “크악!”

     몬스터와 인간의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전투 전에 사기를 북돋기 위해 행하는 지휘관의 연설도, 마찬가지로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일기토(一騎討) 제안도 없었다. 하다못해 잠시간의 대치조차 없었다.

     대형 몬스터가 연달아 성벽을 두들겼다. 소형 몬스터가 필사적으로 성벽을 타고 오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인간들이 화살을 내쏘고, 바위를 굴려 가며 그들을 저지했다.

     상대는 몬스터 군단. 인간의 군대와는 엄연히 다른 성격을 지닌 집단. 그들과의 전쟁에 있어 인간의 관습이 적용되길 바라는 것은 멍청한 짓이리라.

     퀘엑!

    “막아라! 놈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해라!”

     조잡한 나무 사다리에 의지해 성벽을 오른 오크 하나가 곧바로 기사에 의해 도륙됐다. 기사가 곧바로 사다리를 밀어서 성벽에서 떨어뜨리자, 그에 매달린 오크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압!”

     한편에선 또 다른 기사가 거대한 바위를 집어 들고 성벽을 두드리는 대형 몬스터들 향해 내던졌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이들이 간이 공성 병기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마법사를! 마법사들을 노려라!”

    “저놈들이 몬스터들을 조종하고 있는 원흉일 가능성이 높다! 아군 마법사들은 저들을 공격하라!”

     화살의 사정거리 바깥쪽에서 유유자적하게 이쪽을 향해 몬스터들을 내모는 로브인들의 모습에 지휘관들이 분기탱천해서 소리쳤다.

    <화염구(Fire Ball)>.

    <얼음창(Ice Spear)>.

    <바람 칼날(Wind Cutter)>.

    <바람 탄환(Wind Bullet)>.

     성벽 안쪽에서부터 각종 원소 마법이 발현되어 로브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몇 명의 로브인들이 방어마법을 전개해 막아냈다.

     몇 겹씩 중첩된 장벽에 아군 측 마법이 완전히 상쇄되자 공격을 지시한 지휘관이 이를 갈았다. 1차 침공 당시와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빌어먹을 패턴을 어떻게 뒤집을 수가 없다는 점. 분명 저들도 몬스터들을 통제하기 위해 어느 정도 접근해야 하긴 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 범위가 화살의 사정거리 바깥이었다.

     화살에 오라를 싣는 게 가능한 실력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공격 또한 마법사들의 마법과 같이 허망하게 막혀 버리니 별 의미가 없었다. 확실한 한 수가 없는 상황.

     눈앞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존재하는데도 손을 뻗을 수가 없다니. 지휘관의 입장에서 그것이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투석기라도 있었으면.’

     안타깝게도 영지엔 공성 병기가 따로 없었다. 지금까지 쓸 일이 없었기 때문. 첫 침공이 벌어진 뒤로 공성 병기를 확보하기 위해 영지 측에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재침공이 너무 빨랐다.

     물론 공성 병기를 사용한다고 단번에 방어마법을 부수고 저들을 격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저들의 힘을 빠르게 소모시킬 수는 있을 터. 보유하고만 있었다면 그래도 상황이 지금보다는 나았을 텐데.

    “크으.”

     전황은 점차 악화되어 갔다. 상황을 보아하니 아예 밀릴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또 쉽게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리라.

    ‘아마 이번 침공은 막아낼 수 있다. 그렇지만, 공성전이 마무리된 뒤가 문제다. 이번에도 큰 피해만 발생한 채 별다른 소득 없이 흐지부지 전투가 끝나면 용병들의 이탈률이 증가하게 된다.’

     과연 저들의 침공이 세 번, 네 번이 이어질 때까지도 영지에 남아 몬스터 대군을 막아내 줄 용병이 얼마나 될까. 지휘관은 그것이 못내 걱정되었다. 그때가 되면 공성 병기가 문제가 아니게 된다.

    ‘아니, 지금은 눈앞의 전투에 집중할 때다. 그런 걱정은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

     그것도 잠시, 지휘관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병사들을 독려하는 외침을 내뱉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 순간.

     퍽!

     비교적 앞쪽에 위치해 있던 로브인 한 명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지휘관의 얼굴이 입을 벌린 그대로 일순 굳었다.

    ‘뭐지?’

     지휘관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와중, 그 현상이 또다시 반복되었다.

     퍽!

    “뭐야!”

    “누, 누구냐!”

     또 다른 로브인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주위의 다른 로브인들이 기겁해서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명백히 당황하고 있다는 방증.

    “누군가 마법사들을 제거하고 있다?”

     지휘관이 놀라서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나 누구의 소행인지를 알 도리가 없었다. 부관들을 돌아보니 다들 한 차례 어깨를 으쓱일 뿐, 그들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어찌 됐든 좋은 상황이었다. 지휘관은 궁금증을 뒤로 물리고 이 사실을 병사들을 독려하는 수단으로 써먹기로 결심했다.

    “상대측 마법사들을 차례대로 제거해나가고 있다! 모두 조금 더 힘을 내라!”

     * * *

     로엘은 1미터 50센티에 이르는 대형 라이플을 첨탑의 창틀에 올려놓고 조준경에 눈을 밀착시켰다.

     조준경을 통해 한껏 당황하고 있는 중인 로브인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로엘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숨을 가라앉혔다.

     달칵.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미약한 소음이 라이플로부터 새어 나왔다. 마력 탄환 충전이 완료되었다는 뜻. 로엘이 지체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건조한 소음이 새어 나왔다. 소음기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 전면전에서는 상대를 위압하는 효과도 있고 하니 굳이 소음기를 무기에 장착하지 않지만, 지금 로엘이 행하는 일은 암살이었다.

     3번째 로브인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지난 시간 동안 연습해온 보람이 있어서, 로엘의 사격 솜씨는 백발백중을 자랑했다.

    “오오!”

     지켜보던 호위 용병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카트리나는 아예 할 말을 잃었다.

     영주로부터 첨탑을 내어달라 했던 때엔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남의 시선이 닿지 않으면서도 전망 좋은 위치를 차지하려던 것이었다.

     역시 계속해서 같은 일이 벌어지니 상대측 마법사들이 잔뜩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동료가 원인 모를 죽음을, 그것도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데 평정을 유지하기 쉬울 리가 없겠지.

     푸슉!

     또다시 건조한 소음이 울렸다. 그리고 여지없이 로브인 한 사람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로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새삼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이 성장했다는 게 느껴졌다.

     성장이라고 하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의 내가 레인과 맞붙는다면 어떠려나.”

    “?”

    “마지막으로 봤던 수준의 레인 정도라면 이길 수 있겠지, 아마.”

     물론 정면으로 맞붙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 정도는 성장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중얼거리면서도 조준하고 사격하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생각은 생각이고, 행동은 행동이다. 또 한 사람의 로브인이 즉사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 별건 아니고 그냥 옛 친구 생각을 좀 했습니다.”

    “친구?”

    “네. 제가 고아였던 시절에 함께 살았던 친구인데, 갑자기 생각이 좀 나서요. 그 친구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죠.”

     카트리나가 살짝 놀란 눈빛을 했다. 이만한 인물이 과거에는 고아였단 말인가.

    “그 친구분과 상당히 사이가 좋으셨나 보네요.”

    “그렇습니다.”

     로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레인 그 녀석도 성장했을 거란 말이지. 솔직히 지금의 그 녀석이 어느 정도로 강해했을지 감도 안 잡히는데.’

     로엘만큼 레인의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를 잘 아는 인물은 없었다. 그가 정체되어있을 리는 없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본 그가 아닌, ‘성장한’ 그와 자신이 대련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승산이 없지 않을까. 아니, 가진 힘의 특수성이 있으니 정면 전투만 아니라면 내가 이길 가능성도 있을지도. 아공간을 완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가정하에.’

     어찌 보면 실없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로엘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레인과 헤어진 지도 꽤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이젠 그와 다시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까지 벌여놓은 사업만 적당히 안정되면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 녀석에겐 받은 게 꽤 많지. 찾아갈 땐 적당히 선물이라도 마련해서 가져갈까.’

     레인에게선 많은 것을 받았다.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준 무공에서부터 의술, 거기에 다량의 영약까지. 이쪽이 잡다한 지식 몇 가지를 전수한 대가치곤 지나치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이후에 그를 찾아갈 땐 그가 필요로 할 만한 물건을 충분히 마련해서 찾아가자. 로엘은 그런 결심을 했다.

     퍽!

    “으헉!”

    “대체 뭐야! 어디서 공격이 날아오는 거냐!”

    “방어마법! 방어마법을 맡고 있는 놈들은 뭘 하는 거냐! 계속해서 주위에 둘러쳐!”

    “둘러치고 있다! 통째로 깨부수고 들어오는 걸 어쩌라는 말이냐! 위력이 장난이 아니라고!”

     잡생각 가득한 로엘의 머릿속과는 달리, 그에게 공격받고 있는 로브인들의 진영 상황은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이미 상당한 숫자가 줄어든 탓에 모두가 극심한 공포에 질려있었다.

     로엘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라이플의 위력은 이전에 사용하던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력 탄환의 밀집도가 이전과는 비교를 불허했다.

     단기간에 보유한 무구의 위력이 확 증가하게 된 원인은, '아공간'.

     아공간을 가지게 된 이후로, 로엘은 내구도가 형편없는 대신 위력이 높은 무구를 다량으로 제작했다. 어차피 좀 고장 나더라도 여분의 무구를 꺼내 들면 그만이니까!

     그야말로 돈 많은 로엘이 아니라면 떠올릴 수조차 없는 끔찍한 발상. 덕분에 죽어나게 된 것은 로브인들이었다. 로브인들의 입장에선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었다.

    “대체 어떤 놈이 이쪽을 공격하고 있는 거냐!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좀 보자!”

     일행 중 가장 화려한 로브를 입고 있는 한 중년인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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