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플뢰비르(2) (96/249)
  •  96화. 플뢰비르(2)

    ‘세상에.’

     카트리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시야에는 세 명의 기사가 담겨 있었다. 온몸에 침이 박힌 채 고정된 모습. 강제로 의자에 앉혀진 채 바락바락 악을 쓰는 모습이 초라하고 안쓰러웠다.

     솔직히 그녀는 로엘이 직접 앞으로 나서는 모습에 크게 당황했었다. 로엘은 대외적으론 공방 마법사라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그녀는 그가 괜한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가 저들에게 제압되고 나면 다음은 이쪽이었다. 한 번 시비가 붙고 나면 저들이 곱게 행동할 리 만무했으니.

     자신이 데려온 호위 용병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3명의 기사를 동시에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와이번이라면 능히 저들을 제압할 수 있지만, 그 큰 동체를 마음껏 움직이기엔 가게가 너무 좁았다.

     그녀가 앞으로 나선 로엘의 모습에 ‘경솔하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것이 깨어지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무슨 공방 마법사가.’

     기사들이 움직임을 인지하는 것조차 버거워할 만큼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이가 공방 마법사라니.

     물론 공방 마법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긴 하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당장 이걸 풀어라!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아는 것이냐!”

    ‘시끄럽기는.’

     한편, 하라는 답변은 안 하고 죽어라 자존심만 세우는 기사들을 바라보는 로엘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놈들은 대화가 안 통했다.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는가 보군.’

     플뢰비르의 기사들은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아니다. 제대로 된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도 없는, 그저 실력 있는 용병들에게 감투를 씌워주었을 뿐인 이들이다.

     그 원인은 역시 중앙 정부와의 갈등에서 기인한다. 영지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만큼 약간 극단적이다 싶을 정도의 방식으로 전력을 보충하는 것이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세계가 전부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머저리들의 대표격이로군,’

     로엘이 마음속으로 내뱉은 말은 상당히 격했다. 앞서 지배인을 통해 피해 보고를 전해 듣던 중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부분에서 심기가 굉장히 불편해진 탓이었다.

    “이 일을 영주님이 알게 되면 너희들은 끝장이다!”

    ‘퍽이나 그렇게 되겠군.’

     거대 상단의 장로라는 직함을 내세웠다. 가짜 직함이지만 절대 가벼운 직함이 아니었다.

     영주가 아무리 안하무인이라도 로엘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것을 이놈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영주가 평민을 향해 휘두르는 강력한 권력. 그것을 영지의 특성 덕분에 어찌어찌 등에 업고 호의호식해온 이들이다. 그것에 대체 얼마나 도취 되었길래 저리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제대로 교육을 이수 받은 기사들보다도 우월의식에 찌든 용병 출신 기사라니.’

     저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한심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이전에 잠시 함께했던 하슨 가의 기사들과 대비되었다.

     하긴, 실질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보면 이쪽은 그저 상인이자 ‘평민’이었다. 저들의 허영심 가득한 눈에 이쪽이 어떤 식으로 비쳐 보일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

    ‘지구에서도 어설픈 인간이 권력을 쥐게 되면 꼭 이런 꼴을 보이곤 하더니만.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네.’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지 마는지를 떠나, 애초에 제대로 된 기사들은 상대에 대한 견적을 제대로 낼 줄 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이들은 그 기본적인 견적조차 내리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반드시 영주님께서 너희 악적들을 벌하실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안내를 해 주십시오.”

    “……?”

    “당신들이 그렇게 애타게 부르짖는 영주님이 계신 곳으로.”

     로엘이 무료한 눈빛으로 기사들을 깔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평온한 듯하면서도 무겁기 짝이 없는 분위기. 기사들이 압도되어 몸을 움찔 떨었다.

    “당신들에 대한 처우는 영주님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절대 원만하게 넘어가게 둘 생각은 없지만.’

     로엘은 결심을 굳혔다. 지금부터 플뢰비르의 영주를 찾아가 담판을 짓는다. 아니, 그가 이쪽에 고개를 숙이도록 강요한다.

     무력이든 영향력이든 뭐든 동원해서 일단 짓누르고 시작한다. 이런 방식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들을 보아하니 이번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을 잔뜩 버리게 될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눈앞의 기사들은 십중팔구 영주에게 버림패로 쓰이리라. 그렇게나 부르짖던 영주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한 뒤에도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 * *

     플뢰비르 영지의 영주, 제이슨 발드 플뢰비르는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다.

    ‘제, 제기랄.’

     처음에 상단 고위 간부가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분명 반발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물이라는 점이었다.

    ‘바엘른 마탑 소속이라니!’

     거대 상단의 고위 간부임과 동시에 대륙에 이름이 드높은 마탑 소속. 심지어 마탑 내에서의 직분도 낮지 않은 모양이었다. (로엘은 이 시점에 공방 전체를 관리하는 다섯 실장 중 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제이슨은 비대한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로엘에게 끌려와 뒤쪽에 도열한 기사들의 얼굴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문제가 정말로 심각함을 인지한 것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상단의 고위 간부는 그래도 평민이라 무시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지만 마탑 소속 마법사의 경우엔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은 귀족과는 또 다른 구름 위의 존재들이었다.

    ‘저 분별 없는 놈들. 자극하지 말아야 할 상대를 자극해 버렸군.’

     제이슨이 속으로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상대가 거물이라면 그에 맞는 대접을 해 주면 되는 문제니 그 자체로 이렇게까지 당황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수하들이 이미 상대에게 큰 실례를 끼쳤다는 것.

     계획이 초장부터 크게 어긋나 버렸다.

     영주는 기사들을 향해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실상 상대가 거대 상단의 고위 간부였을 뿐이라 해도 대함에 있어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어야 했다. 귀족은 아니더라도 그 지닌 바 영향력이 웬만한 귀족을 뛰어넘는 인물이라는 뜻이니까.

    ‘젠장, 무지한 용병 놈들이 일을 그르쳤다.’

     이쪽에서 먼저 상대를 깔보며 한껏 욕보여 버렸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 영주는 차분한 얼굴로 차를 음미하는 로엘에게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하나 잔뜩 고민했다.

    “일단 저들의 처우를 결정했으면 합니다.”

    “…….”

    “아무래도 영주님의 가신들이니 제가 임의대로 처분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데려왔습니다. 저들을 양도해드리면 자작님께서 합당한 처벌을 내리시리라 믿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의미만 해석하면 영주를 존중해주는 것만 같은 발언. 그렇지만 영주는 그것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조금이나마 만회할 기회를 주겠다. 알아서 성의를 보여라.]

    라고.

     제이슨은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솔직히 욱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상대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곤 해도 이쪽 또한 하나의 영지를 통치하는 영주가 아닌가. 이렇게까지 위축되어야 하는가.

     그렇지만 지금은 명분상 이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영주는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기로 했다. 그는 한 차례 한숨을 내뱉곤 로엘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저들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겠습니다.”

     자작이 주위 병사들에게 턱짓했다. 그러자 기사들이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기사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자작은 그들을 외면했다. 어차피 얼마든지 새롭게 보충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

     로엘이 끌려 나가는 기사들을 슬쩍 곁눈질했다. 영주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영주가 지시하지도 않은 일을 멋대로 벌인 것도 모자라 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이들이니만큼 합당한 벌을 받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지시하지 않은’ 일을 ‘멋대로’ 말이죠.”

     말하자면 모든 죄는 저들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어느 정도 감안해 달라는 이야기.

     아마 틀린 말도, 거짓말도 아닐 터였다. 다만, 기사들이 그렇게 패악질을 벌이는 동안 영주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을’ 테지.

     말하자면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다.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서 로엘은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이렇게 되도록 의도한 건 자신이지만.

    “좋습니다. 그 부분은 일단 넘기기로 하고, 제가 이번에 플뢰비르 영지를 방문하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짚고 넘어갈 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이번에 영지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들었습니다. 우선 나름대로 수하 직원들을 통해 정보를 전해 듣긴 했습니다만, 영주님의 의견 또한 듣고 싶군요.”

    “…….”

     영주가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부분만큼은 영주로서도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갈 방도가 없었다.

     로엘은 가만히 차를 홀짝이며 영주의 표정을 감상했다. 과연 눈앞의 비만 중년인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적반하장으로 뻔뻔하게 나올 것인가, 변명을 쏟아낼 것인가, 늦은 사죄를 뱉어낼 것인가.

    ‘이왕이면 적반하장으로 뻔뻔하게 나오는 게 좋은데.’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이쪽의 수행 인원이 빈약하다는 것을 대놓고 보여주고 있으니 분명 그렇게 될 터다.

    ‘만약 일이 그렇게 진행된다면.’

     영주 저택을 세상에서 통째로 지워버리리라.

     그러나 로엘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영주는 변명을 쏟아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가장 재미없는 길을 택한 것이다. 로엘의 눈빛이 일순 무료함으로 물들었다.

    “이런 말 해봐야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으시겠지만, 저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

    “저희 영지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아실 겁니다.”

     갑자기 영주가 두서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카트리나의 미간이 약간 좁혀졌다.

    “저희 영지를 지탱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용병들입니다. 중앙 정부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용병들마저 떠난다면 저희 영지는 단숨에 무너지겠지요.”

     그렇기에 플뢰비르 영지는 용병들을 영지에 안착시키기 위해 늘 공을 들여야 했다. 용병 우대 정책, 몬스터 사체 처리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영지에 비해 월등히 저렴하게 적용되는 세율 등등.

    “문제는 용병들은 이익을 좇는 이들일 뿐, 영지의 존속을 위해 목숨을 거는 열사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평상시엔 괜찮았다. 거듭된 내전에 지친 용병들은 플뢰비르 영지의 우대정책에 반해 영지에 거취를 정하며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훌륭히 막아내 주었다.

     그런데 이번 몬스터 대침공은 평시와는 달랐다. 그 규모에서부터 영지의 존속이 위험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첫 침공을 어찌어찌 막아낸 이후, 용병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승리에 도취되어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을까? 영주로부터 지급된 특별 보상에 환성을 내질렀을까? 모두 아니었다.

     용병들은 단체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엔 정말로 위험한데? 이거 제대로 피 보기 전에 영지를 떠야 하는 것 아냐?’ 라고.

     그리고 영주에겐 퍼져나가는 불온한 분위기를, 용병들의 이탈을 막아낼 수단이 없었다.

    “저는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습니다. 용병들의 이탈로 인해 영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선.”

     그래서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용병을 제외한 영지민들을 ‘군비 확충’이란 명목을 앞세워 갈취한 것이다.

     동시에 여론을 몰아갔다.

     영주가 영지민을 대상으로 도적질을 해서 막대한 전력을 충원했기에, 적어도 ‘이번 몬스터 침공에서 영지가 무너질 일은 없게 되었다’라고.

     또한 영주가 약탈한 재화의 양이 충분하니 몬스터 침공이 끝난 뒤 용병들이 그로부터 제대로 된 보수를 지급받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아니, 오히려 특별 보상금이 지급될지도 모른다고.

     당장 용병들에게 몬스터와 싸울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지지 않는 싸움’, 그리고 ‘충분한 보수가 지급되는 싸움’을 싫어하는 용병은 없다.

     영주의 악행을 성토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그것이 오히려 홍보 효과로 작용해 영지에서 이탈하려는 용병의 숫자는 일단 급감했다.

     영주에 대한 악평 때문에 영지 전력이 분열될 상황까지 몰렸지만, 몬스터를 막아낼 최소한의 병력도 없는 상황만큼은 맞이하지 않게 되었다.

     한마디로, 민심은 잃었지만 최악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부터 용병들이 영지를 떠날 수 없도록 강제로 통제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영주에겐 그만한 힘이 없었다. 그랬다간 폭동이 일어난다.

     그러니 이런 최악의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회유할 수밖에.

     영주의 설명을 모두 전해 들은 카트리나의 표정에 의외라는 기색이 어렸다.

     생각보다 그럴듯한 이유로 일을 벌인 것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도 피해를 입은 이쪽 입장에서야 기가 찰 일이었지만.

    “사실 거대 상단까지 건드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저라고 뒷일이 두렵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그 당시엔 정말로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

    “지금만 해도 영주를 비난하는 여론에 의해 전력이 분열되기 직전까지 몰려 있는 상황입니다. ‘영주가 영지민들을 갈취하는 와중에도 거대 사업체들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여론까지 퍼졌다면…….”

     사람 심리라는 게 그렇다. 실상 거대 사업체들이 잘못한 것이 없어도, ‘내가 당하는 데 저 녀석은 안 당해?’ 라는 분위기가 퍼진다.

     영지를 위해서란 명목으로 영지민들을 갈취했는데 누군가는 예외로 친다? 특별대우를 한다? 힘이 있는 세력을 뒷배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대중이 폭발하는 기폭제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카트리나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아닌가.

     다만 로엘은 카트리나와는 생각이 달랐다. 세력과 세력의 대화에 각자의 사정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이쪽이 상대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상받는 일이었다. 한 세력의 장으로서 최우선적으로 상기해야 할 일은 그것이었다.

     로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사들의 무례가 정말로 영주가 의도한 바가 아님을, 용병 출신 기사 특유의 폭주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가 그것을 이용해 영주를 압박한 것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그렇군요. 자작님께서 저희 상단에 악감정을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이신 게 아니라는 것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저희에게 피해를 입히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잘 알겠습니다.”

    “아, 알아주시는 겁니까!”

     자작이 반색했다. 로엘은 자작을 마주 보며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그리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갑작스럽게. 그가 툭 하고 내뱉었다.

    “그렇다면 저희에게 어떤 보상을 해주실 겁니까?”

    “예?”

    “보상 말입니다. 영주께서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으’ 저희에게 피해를 입히실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계시다면. 공식적인 보상은 아니더라도 비공식적인 보상 정도는 준비해 두셨을 것 아닙니까.”

     로엘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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