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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사업 확장(4) (94/249)
  •  94화. 사업 확장(4)

    “…….”

     로엘은 비싼 술을 병째 벌컥벌컥 들이켜는 노인을 바라보며 볼을 긁적였다.

     오늘도 퇴짜였다. 마르스는 도움을 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은 ‘위대한 지식의 복구’를 위해 노력해온 것이지, 돈 귀신에게 도움이나 주고자 연구를 해온 것이 아니라나.

    ‘쓰지도 않을 거면 뭣 하러 그렇게 연구를 하는 건지.’

     로엘은 주위에 어지럽게 늘어진 각종 연구 일지들을 훑어보며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안다. 학자의 자존심은 때로 실리를, 이해를 뛰어넘는다. 지구에도 비슷한 이들이 몇 있었고. 그렇지만 하필 그게 왜 당장 도움이 절실한 사람의 성격이냐는 게 문제였다.

     금전을 제시하면 ‘내가 돈 따윌 바라고 평생 연구에 매진해 온 줄 아느냐’며 욕을 먹었다.

     다른 이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지식을 은연중에 흘려봤더니 ‘공방지기가 뭘 안다고’로 시작하는 쌍욕을 얻어먹었다.

     애초에 마르스는 자신의 연구에 타인이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남의 도움을 받지도, 남과 공로를 나누지도 않는다는 고집을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다.

     다리를 좀 놔 달라고 로카인에게 부탁했더니 ‘그건 나라도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대놓고 질색하는 얼굴이라 더 말을 붙여보지도 못했다.

     후계자라도 있다면 그치라도 어떻게 회유해 보겠는데, 그 또한 불가능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많건만 마르스는 후계자 한 명 없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요즘은 내 뒤를 이을 만큼 정신머리가 쓸 만한 녀석이 없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솔직히 로엘이 보기엔 그야말로 외톨이의 자기합리화였다.

    ‘저 성격을 감당할 수 있고, 동시에 그 깐깐하기 그지없는 주관적인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로엘은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근성도 없고, 이상도 없고, 다들 명예나 돈에만 정신이 팔려선 마법사의 본분은 잊고서는!”

     어느새 취한 건지. 마르스가 걸걸한 목소리로 이래저래 떠들기 시작했다. 로엘은 열심히 들어주는 척 가끔 맞장구를 쳐 주었다. 실제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그러고 보면 대체 ‘요즘 젊은것들은’이란 말은 어디서부터 유래된 거지?’

     지구에서도 절찬리에 유행하고 있는 바로 그 말. 그런데 이게 기원을 따라 올라가면 상당히 오래된 유행어였다.

    ‘그러고 보면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했다지.’

    [요즘 아이들은 폭군처럼 군다. 아이들은 부모의 의견에 반대하고, 음식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을 괴롭힌다. 미래가 암담하다.]

     무려 기원전 400년에도 유행했던 레퍼토리라니. 심지어 다른 세상에서조차 똑같이 유행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로엘은 괜스레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새삼스레 사람 사는 곳은 과거나 현재나 다른 세계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사람이라면 말이야! 모름지기 이상에 도전해 봐야지! 청춘을 불살라 봐야지! 바로 나처럼!”

     로엘은 짜게 식은 눈으로 마르스를 응시했다. 입으로는 열심히 듣고 있는 것처럼 ‘네’, ‘그렇군요.’ 등의 추임새를 넣으면서도.

     잔뜩 취해서 열변을 늘어놓고 있던 마르스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에 시선이 풀려 있었다.

    ‘회유는 무리다.’

     결국 로엘은 결론을 내렸다. 온건한 방법으로 이 노인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내긴 무리였다. 곧 죽어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을 타입이었다.

    ‘엘리제 파르테인의 말마따나 어디서 계약 마법 관련 아티펙트라도 습득하지 않는 한.’

     존재하는지 어떤지도 모를 유물을 찾아 헤매는 게 차라리 나을 지경이었다. 로엘은 앞으로 관련 유물이 발견된다면 습득해두도록 상단에 지시해두자고 생각했다.

     찾기만 한다면 훌륭한 협상, 아니, 협박 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 터다. 평생 연구에 활용할 유물이 없다는 것을 한탄하고 산 노인인 만큼.

     말 그대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물건이니 큰 기대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 그냥 반쯤 포기했다고 봐야 했다.

    “정말로 제대로 된 정신머리가 박힌 녀석만 나타나면 얼마든지 내 지식의 정수를 전수할 의향이 있거늘!”

     술에 취한 노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 * *

     파티가 열렸다.

     장소는 이전에 두 파벌의 합류를 축하하는 환영회가 벌어졌던 그곳. 이번엔 환영회가 아닌, 신년맞이 겸 사업 성공 자축 행사였다.

    “오!”

    “우리 고용주께서 오셨습니다!”

     로엘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환대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건물 내 인구 밀도가 높았다. 이전보다 인원수가 훨씬 늘어난 탓. 그동안 새롭게 끌어들인 인물도, 협력 관계를 맺은 자들도 많은 만큼 당연했다.

    “어서 오십시오.”

     마침 입구 근처에 있던 칼비오 펠트만이 인사를 건네왔다. 로엘이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죠. 오히려 이전까지의 제 태도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가 로엘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은 약 3개월 전이였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파벌 구성원 전체가 로엘에게 존대를 사용함을 물론 깍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로엘과 약속한 고용 기간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지속적으로 그것을 어필해오고 있어 로엘 또한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사실 현재 칼비오의 입지가 그 누구라도 절대 내려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긴 했다. 아무리 기간제 고용이라지만 로엘은 제대로 실적을 낸 사람을 홀대하는 법이 없었으니.

     솔직히 그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도 수없이 많았다. 그가 계약 관계로 로엘과 매여 있음을 다들 알고 있는 탓이었다. 계약이 만료되고 그와 그의 파벌 구성원들이 자리에서 이탈하면 수많은 이들이 각축전을 벌이리라.

     하지만 칼비오는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난 시간 동안 정도 붙였고, 사업이 성장하는 것을 보며 성취감을 느껴오기도 했다. 이 자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칼비오는 태도를 확실히 하기로 했다. 아예 숙이고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자리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자의로 타인의 휘하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좀 그랬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는 후계자 경쟁이 끝난 이후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했다.

     참고로 약속된 고용 기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로엘이 그들을 부리면서 계획했던 대로 몇 번에 걸쳐 고용 기간을 단축시켰기 때문에.

     볼을 긁적이던 로엘이 툭 하고 말했다.

    “앞으로는 더 바빠질지도 모르겠는데, 괜찮으시겠어요?”

    “!”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칼비오가 아니다. 그야말로 고대하고 고대하던 긍정적인 답변. 그가 입가에 미소를 내걸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이후 로엘은 파티장 곳곳들 돌아다니며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성과를 치하하고 환담을 나눴다. 그 대상에는 테페론 상단의 상단주도, 새롭게 협력 관계를 구축한 다른 상단의 상단주들도 있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말고 맡겨 주십시오.”

     다른 상단주들과 악수를 나누는 로엘의 모습에 테페론 상단주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 저 정도로 거물이 될 줄 알았다면 처음 만났을 때 억지로라도 밀어붙여서 우호 관계를 돈독히 다져뒀을 텐데.’

     처음 상단을 찾아왔던 때부터 로엘은 상단과 필요 이상으로 관계를 깊게 다지려 들지 않았다. 손해 보지도 않았지만, 반대로 이쪽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단호히 거절했다.

    서로가 윈-윈 하는 가장 적절한 타협점. 로엘과 상단의 관계가 딱 그러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다른 상단들이 로엘과 계약을 맺을 때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게 되었다. 보다 오래 거래해온 만큼 조금 정도는 더 우위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별로 대단한 우위도 아닌 게 문제지만.’

     보다 오래 협력해왔다고 해봐야 몇 개월 되지도 않는다. 그게 문제였다.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젊은 마법사가 이쪽을 대함에 있어 딱 선을 그었던 이유가 이것임을. 그의 입장에선 휘하 상단들이 가진 영향력이 서로 비슷비슷한 편이 좋을 터다.

    ‘한 상단만을 휘하로 받아들일 순 없다. 급격히 사업을 키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렇다면 휘하 상단의 균형을 맞추자. 그런 생각이었겠지.’

     거기다 상단들이 알아서 경쟁할 테니 그 과정에서 이득을 뽑아먹기도 쉽다. 이래저래 로엘에겐 좋은 결과였다.

    ‘그걸 빨리 눈치채고 어떻게든 관계를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너무 쉽게 물러났어.’

     지금만 해도 이익이 굉장하긴 했다. 이익이 분산되었다곤 해도 워낙 사업이 잘 풀려서 분산된 금액조차 막대했다. 상단이 큰 성장을 이룬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 있는 딸이라도 동원해서 친분을 쌓던지 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그런 걸 생각해서 뭣 하나.’

     어차피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었다. 아무리 아쉬워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저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수밖엔.

     사실 저 철두철미한 소년이 이쪽에서 관계를 밀어붙였더라도 넘어왔을 거란 생각도 안 들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테페론 상단주는 적당히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다른 상단주들과 악수를 나눴다. 앞으로 얼굴 볼 일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사실 많은 상단을 끌어모은 것이 좋은 선택만은 아니었다.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분열이 일어나기 쉬운 집단이 탄생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저 금발 소년은 그것을 능히 통제하는 게 가능한 인물. 아마 눈앞의 상단주들과 척을 지게 될 일은 거의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우호 관계라도 다져두는 게 좋겠지.

     그런 계산을 속으로 마친 테페론 상단주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내걸려 있었다. 상인의 미소였다.

     이후로도 로엘은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디저트 사업을 관리하고 있는 루나가 다가왔을 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루나의 얼굴이 귀밑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디저트 사업의 기반이 되는 작물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메이엘에게도 같은 말을 건넸다. 그녀는 루나가 있는 쪽을 흘낏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든에겐 직접 찾아가 인사했다. 그는 칼비오와는 달리 아직 과거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방향성이 없어 방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직분에는 의외로 충실했다. 조금 늦었지만 자기 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로엘은 그 점을 높게 사고 있었다.

     참고로 엘리제 파르테인은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녀는 최근 중요한 고비라서 수련실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전의 파티도 그러했듯, 중간에 로엘이 선창을 하고 뒤따라 다른 이들이 후창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번에는 로엘도 그럴듯한 축사를 미리 준비해 왔기에 상당한 환호 소리가 뒤따랐다.

     참고로 파티의 끝엔 소소한 해프닝이 있었다. 일부 술꾼들이 로엘이 주당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대결을 청한 것이다.

     로엘은 가뿐히 그들 모두를 쓰러뜨렸다. 고급스러운 파티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모두 즐겁게 그 대결을 구경했다.

     되려 분위기가 달아올라 ‘로엘 타도’를 외치며 술잔을 들고 덤벼드는 이들이 나타나긴 했다. 그들조차 모두 쓰러져 버리고 말았지만.

     그렇게 파티의 밤이 지나갔다.

     * * *

     다음 날.

     로엘은 수련실을 찾았다. 다른 날과는 달리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은 채였다.

    “어디.”

     그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우웅!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권총 하나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로엘이 그것을 가볍게 낚아챘다.

    “음. 좋네.”

     로엘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엘리제로부터 받아낸 아공간이 제대로 작동함을 확인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현재 아공간에는 수많은 무구가 들어차 있었다. 이젠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다른 무구를 원하는 대로 꺼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전술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다. 무력 수준이 단숨에 몇 단계, 아니 수십 단계는 뛰어올랐다고 봐도 좋으리라.

     아공간은 지속적으로 증축해 주기로 했으니 점점 더 넓어질 터였다. 로엘은 앞으로는 아예 대형 전차라도 제작해서 집어넣을까 하고 잠시 실없는 생각을 했다.

    “일단 감상에 젖기 전에 수련부터 해야지.”

     새로운 힘이 주어졌으니 이젠 그것을 능숙하게 다루는 수련을 해야 했다. 전술의 폭이 넓어졌다지만, 사용자가 미숙해서야 의미가 없으니까.

    “후우.”

     로엘은 팔을 빙빙 돌리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날, 로엘의 수련실 내부에선 오전 시간 내내 쉴 새 없이 총성과 발포음이 울렸다. 바깥으로는 조금의 소음도 새 나가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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