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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사업 확장(2) (92/249)

 92화. 사업 확장(2)

 칼비오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은 로엘은 주위를 둘러보며 가볍게 음료를 즐겼다.

 구석 자리에 위치한 그리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표정이 어딘가 멍했다. 칼비오처럼 빠르게 마음을 다잡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저런 불만스러워 보이는 분위기를 내뿜을 수 있다니, 저것도 어떤 의미에선 대단하군.’

 표정은 풀려있는데 그 특유의 ‘나 기분 나쁘다’는 듯한 아우라는 그대로였다. 저 정도면 재능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지만 파벌 구성원들이 다른 이들과 교류를 나누는 것을 제지하진 않고 있었다. 평소처럼 상대의 불쾌감을 부추기는 말을 쏟아내고 있지도 않았다.

 적어도 자신의 현 위치 정도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표정 그대로 아무 생각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저 녀석에겐 빚이 있었지.’

 그가 평생 꾸어 왔던 꿈을 통째로 박살 내 버렸으니 어느 정도는 갚아줬다고 할 수 있으리라. 애초에 직접적으로 해를 입은 게 없다 보니 딱히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괘씸죄가 있으니 약간의 심술은 부릴 예정이었다. 그가 힘들여 키워둔 파벌을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흡수해 와해시켜버리는 정도?

‘그건 그렇고, 저건 저것대로 귀찮겠어.’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좋지만, 마냥 힘이 빠진 상태여도 곤란하다. 의욕 있게 일해주지 않으면 그게 손해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의욕 증진을 위해 여러 가지 밑밥을 깔아뒀으니 어떻게든 될 터였다. 이를테면 ‘3년’이라는 ‘정해진 기한’ 같은. 실적에 따라 기한을 줄여준다고 하면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되겠지.

 솔직히 3년이나 붙들 생각은 없었다. 길게 잡아도 1년 정도면 기반이 충분히 다져질 터. 그러니 여분의 ‘2년’을 협상 거리로 유용하게 활용할 생각이었다. 안 먹힌다면 하는 수 없지만.

 로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인파에 끼어들어 사람들과 교류를 나눴다. 웃는 얼굴로 여러 사람과 악수를 하고 환담을 나눴다.

 그 대상에는 예전에 친목회에서 거만하게 굴었던 카른도 있었고, 그리든의 사주를 받아 로엘의 뒤를 노렸던 로젤리아도 있었다.

 지은 죄가 있는 터라 두 사람은 로엘과 마주하는 내내 식은땀을 흘렸다. 나름 표정을 관리하는 듯싶었지만, 모두 로엘에게 간파되었다. 로엘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작게 실소했다.

‘딱히 괴롭힐 생각은 없는데. 조금 빡세게 굴리긴 할 테지만.’

 사실 그것을 세간에선 괴롭힘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로엘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편할 대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상사로서 그 정도는 해도 좋지 않겠는가. 그런 재미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순식간에 자기합리화가 이루어졌다. 로엘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그 미소에 두 사람이 괜스레 불안해져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

 그렇게 로엘이 한참 교류를 나누던 도중, 메이엘이 다시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로엘이 바라보자 갑자기 그녀가 크게 소리쳤다.

“자자, 주목!”

“?”

“여기 이번 사업의 총책임자가 한 말씀 하실 거다!”

“음?”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로엘이 의아한 얼굴로 메이엘을 응시했다.

 메이엘이 실실 웃으며 빨리 한마디 하라고 부추겼다. 이런 자리에서 총책임자가 격려 한마디 안 해서야 쓰겠냐며.

“…….”

 그렇더라도 미리 말 한마디 해주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이리 갑작스럽게 종용하는지. 딱 봐도 이쪽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듯했다.

 로엘은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한쪽 탁자로 향했다. 위스키가 담긴 잔들이 늘어져 있는 탁자였다.

 그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술잔을 집어 들자 주위의 소음이 가라앉았다.

“가볍게 선창 한 번 하겠습니다.”

 빙긋, 하고. 로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여기저기서 잔을 집어 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사업 대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간단한 선창에 이어 우렁찬 후창이 뒤따랐다.

 * * *

 환영회로부터 5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엘리제 파르테인과의 협력 관계 구축은 스무스하게 이루어졌다. 수익의 일부를 건네기로 약속하긴 했지만.

 덕분에 로엘의 사업은 급속도로 팽창했다. 엘리제에게도 중요한 시기에 든든한 자금줄이 생겨났다. 윈-윈(Win-Win)이였다.

“······.”

 현재 로엘이 위치한 곳은 마탑 최상층부에 마련되어있는 조그마한 휴게실. 간단한 다과와 각종 찻잎이 상시 구비되어 있는 차분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다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야, 마탑 내에서도 최상위 계급에 위치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간부 전용 휴게실이니까. 참고로 로엘은 초대받은 입장이었다.

 그 휴게실 내에 비치된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이 셋. 로엘과 엘리제, 그리고 로카인이다.

“이 상황에서는 폰(Pawn)을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느냐?”

“아뇨. 아무래도 그런 가벼운 견제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네요. 좌측 룩(Rook)을 전진 배치하는 게 차라니 나을 것 같습니다.”

“…….”

 로카인과 엘리제가 두런두런 의논을 나누고 있었다. 현재 로엘과 체스를 두는 중. 대전자는 엘리제고 로카인은 훈수를 두는 포지션이었다.

 본래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판의 흐름을 좀 더 잘 알 수 있는 법. 로카인의 훈수는 엘리제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1 대 2 대전이라 다른 이들에겐 조금 치사하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로카인도 엘리제도 개의치 않았다. 그야, 그렇게 하고서도 단 한 차례도 로엘을 이겨보지 못했으니까.

“역시 두 분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저라도 조금 힘드네요. 요새 점점 예상치 못했던 수를 두시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고.”

“말은 잘하는군. 그래 봤자 한 번도 안 져주는 주제에.”

 로카인이 투덜거렸다. 로엘의 입장에서야 감탄이겠지만, 이쪽의 입장에선 강자의 여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간만에 이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까 좋네요. 요즘은 정말 너무 바빠서.”

 로엘이 그렇게 말하며 탁자에 놓인 자신의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살짝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분명 몇 년 전에는 쉬엄쉬엄 살겠다는 결심 같은 것을 했던 것도 같은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네가 벌여 놓은 일이 한두 가지더냐. 바쁠 수밖에 없지.”

 로카인이 로엘의 피로 가득한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

 마침 초콜릿이 코팅된 쿠키를 한입 베어 문 엘리제가 더없이 만족스러운 기색을 흘렸다. 부드러운 단맛이 입안으로 퍼져나가자 굉장한 충족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애초에 표정 변화 폭이 큰 편이 아니었지만, 로엘은 그녀의 감정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로엘은 앞서 마력제품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전부 새로운 사업에 쏟아부었다. 바로 음식 사업에.

 처음에 로엘은 고심했다. 지구의 지식을 토대로 사업을 벌이긴 해야 하겠는데, 사업을 벌인다고 모든 사업이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던 것.

 그야, 지구인들과 이 대륙의 인간들은 의식 수준도, 지닌 바 사고방식도, 트렌드도 전부 달랐다. 성공이 완벽히 보장되는 사업을 추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가기로 했다.

 첫 번째가 편의 제품. 그리고 두 번째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거부하지 못할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음식 계열 사업. 그중에서도 ‘기호 식품’ 사업이었다.

 가장 먼저 설탕의 대량 생산에 착수했다. 남들 다 하는 식품 사업 말고 다른 쪽을 공략해야 성공률이 높아지니까.

 염전도 염두에 두었지만, 그건 포기했다. 소금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물품이라 손대기 꺼려졌다.

 제국 남부의 평야 지대 상당량을 매입, 그곳에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이쪽 세계는 땅값이 그리 비싸지 않아 초기 투자금은 의외로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에 인부들을 불러 모으고 인건비를 지급하는 데에 훨씬 많은 돈이 소모되었다. 열대지역에서만 생식하는 사탕수수를 제국에서도 재배할 수 있도록 품종개량 하는 데 쓰인 연구비 또한 막대했다.

 그리고 대륙 남부 밀림으로부터 카카오를 수입했다. 그 또한 품종개량을 통해 제국에서 재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일반인이 보기엔 뭔가 싶겠지만 아는 사람 눈에는 그야말로 위대한 업적이었다.

 그리고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초콜릿’을 만들었다. 대충 제작법만을 알던 것을 요리사들에게 지시해 시행착오를 거쳐 재현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 방면에 활용해 수많은 디저트 메뉴를 만들어 냈다.

 곧바로 대량 생산, 사탕수수 재배 기간 동안 미리 물색해둔 가게들에 보급했다. 가게들은 대륙 전역에 구해 두었다. 공간의 제약 따위 가볍게 무시하는 엘리제 덕분에 그것이 가능했다.

 곧바로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부유층 여성들의 반응이 격렬했다.

 남성들에게도 인기를 끌긴 했지만, 아무래도 여성 구매자들에 비해선 조금 떨어졌다. 아무래도 입맛 차이가 있으니까.

 이전의 아티펙트 장사가 특정 고위 귀족만을 타깃으로 한 장사였다면, 디저트 장사는 개당 판매 수익금은 좀 떨어져도 판매 계층은 좀 더 넓은, 지속적인 수익이 창출되는 장사였다.

 소모성 제품이라 창출되는 이익이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업을 개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이 추세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초기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을 듯싶었다.

 엘리제가 고심 끝에 룩을 전진 배치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또 다른 사업 준비는 어때?”

“물론 순조롭습니다. 엘리제 양.”

 로엘이 가볍게 응수하며 답했다.

 당연하지만, 로엘은 사업을 확장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음식 사업 말고도 다방면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다음으론 고급 레스토랑 사업에서부터 손목시계와 같은 귀중품 사업, 그리고 특수 원단을 개발해 의류 사업을 벌일 예정이었다. 이 사업들이 궤도에 오르면 또 다른 사업을 진행할 테고.

 이번 사업에서 뽑아낸 이익으로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개발에 개발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후로는 사업 한둘 실패하더라도 큰 타격도 아닐 테니 더욱 행보에 거침이 없어질 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지분도 있으니까, 얼마든지. 자, 네 차례야.”

 로엘은 잠시 체스판을 응시하더니, 툭 하고 내뱉었다.

“그건 별로 좋은 수가 아닌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며 비숍(Bishop)을 앞쪽으로 배치시켰다. 단번에 엘리제와 로카인이 낯빛을 바꿨다.

 그리고 약 10분 뒤.

“체크 메이트.”

 로엘이 승리를 선언했다.

“후우.”

“역시 안 되나.”

 로카인과 엘리제가 한숨을 내쉬며 판을 정리했다.

 짧은 휴식 시간이 끝을 맞이했다.

 * * *

 개인 작업실로 되돌아온 로엘은 의자에 기댄 채 상념에 잠겼다.

‘이제 슬슬 무력 집단을 창설할 때가 됐나.’

 굳이 다른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싶지 않아 그동안은 미뤄왔다. 그다지 필요하다 여기지도 않았고.

 사실 로엘이 그동안 그만한 실적을 거뒀음에도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당한 데엔 그 자신의 태도 외에 그런 이유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무력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은’ 세력의 장이었기 때문.

‘이젠 미룰 수 없겠지.’

 벌여 놓은 사업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 슬슬 마탑의 권위만으로는 사업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을 만큼.

 물론 모든 사업장은 영지나 시(市)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안정된 지역에 설립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신흥 사업의 발돋움을 시기해 수작을 부리려는 무리가 없을 수는 없는 법.

 일단은 돈을 대량으로 풀어 각 사업장에서 용병을 고용하도록 해뒀다. 최소한의 방비는 될 터였다.

 그리고 상위 등급 용병은 따로 고용해 칸테른 시에 모아뒀다. 분쟁이 일어나면 그쪽으로 바로 보낼 수 있도록. 그 부분에서 엘리제의 도움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궁여지책. 금전적으로도 효율적으로도 그다지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특수집단을 양성할 필요가 있었다.

 각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경호원을 고용시키고, 그들을 직접 양성시킨 특수집단으로 통제하게 한다. 이것이 로엘의 계획이었다.

 다만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무기를 지급해도 될 사람을 어떻게 가려내느냐.’

 고급 전력을 양성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실력 있는 무인들을 고용해 열 명 단위의 팀을 짜게 만들고, 각각의 구성원들에게 종류가 다른 무기를 지급해 특수부대로 만들면 된다.

 이쪽 세계 무도가들은 현대 지구인의 시선으로 보면 그야말로 히어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괴물들. 그들을 고용해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여주면 어렵잖게 고급 전력을 탄생시킬 수 있으리라.

 문제는 지급할 무기에 있었다. 이 무기를 외부로 유출시키는 인물이 나와선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제작 과정에 관여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작용하는 문제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구 제작만큼은 자신이 직접 손댈 생각이었다. 도우미를 몇 구할 생각이긴 했지만,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완전히 떠넘길 생각은 없었다.

 무력 증진에 관련된 아티펙트들이 유출됨으로써 일어날 파장은 다른 것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감당할 수가 없으리라.

 그러니 대량 생산은 포기할 수밖에. 애초에 그 때문에 군단이 아닌 몇 개의 무력 집단으로 만족하려고 하고 있었다.

 각설하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단순히 신뢰성 높은 인물로는 부족했다. 보다 강제적인 관계로 묶여 있을 필요가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로엘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계약의 현자.’

 바엘른 마탑의 최고 괴짜 마법사. 무력적인, 혹은 금전적인 측면과는 영 거리가 먼, ‘마법사’의 본분에 누구보다 충실한 인물. 초고대 시대 마법의 복원에 인생을 바친 진정한 학자.

‘계약 마법’의 일부를 정말로 복원해 냄으로써 비공식적으로는 ‘현자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며 존중받는 인물. 그렇지만 누구도 그 성격을 감당하지 못하기로 유명한 성격파탄자.

‘나중에 도움을 구해봐야겠군.’

 성격이 너무 까다로워 도움을 얻어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 리스크를 감수하되 최대한 주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수밖에.

 로엘은 가볍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작업실 바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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