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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영지전(5) (85/249)

 85화. 영지전(5)

 그것은, 사자후(獅子吼).

 남만야수궁(南蠻野獸宮)의 유일한 음공. 역대 궁주(宮主)들의, 그러니까 야왕(野王)의 독문무공으로 알려진 초상승의 공부.

 오로지 짐승의 포효를 본떠 만든 그 음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중원의 이름난 음공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강력한 위력의 음공으로 평가받는다.

 콰콰콰콰콰콰!

 레인과 크레틸 자작 사이에서 맞부딪힌 기파가 폭음과 함께 수십 단위의 소규모 폭발을 일으켰다.

 경지는 크레틸 자작이 윗줄. 그러나 그는 그저 음파에 오라를 실었을 뿐이다.

 내력을 조작할 수 있는 레인은 음파를 몇 배 이상 증폭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그의 포효는 자작의 포효를 무리 없이 걷어냈다.

“제법이잖아!”

 백작이 반색하며 자작에게 접근, 단숨에 십여 개가 넘는 검강을 뿌렸다.

“크윽!”

 자작이 급하게 그것을 걷어냈다.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만한 음파 공격이 견제조차 되지 않을 줄은.

 포효에 쏟아부은 오라가 만만치 않았다. 곧바로 충분한 기운을 검에 불어넣지 못한 탓에 연신 뒤로 밀려났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레인이 자작의 배후로 돌아갔다. 자작이 바쁜 와중에도 뒤쪽으로 내지른 검격을 회피, 단번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려 쥔 주먹을 갑옷 상체에 살짝 가져다 댔다.

“?”

 자작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인이 자작에게 제대로 타격을 입히기 위해선 최소한 검강을 사용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충격량을 지닌 공격을 먹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작의 기막을 뚫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을 알기에 자작은 레인이 간격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굳이 더 무리해가며 저지하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손발이 어지러웠다.

 어차피 상대는 타격을 입히기 위해 조금 큰 동작을 취할 수밖에 없을 터. 그 순간만 노리면 될 테니 간격 정도야 허용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소년은 별다른 공격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가볍게 주먹을 갑옷 상체에 가져다 댔을 뿐이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빤히 보이는군.”

 짜증 가득한 어조와는 달리, 레인의 얼굴엔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그야, 자작이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 예상하고 그것을 노린 것이니까.

‘먹어라.’

 레인이 진각을 밟았다.

 곧바로, 붕권(崩拳).

 쩌엉!

“커헉!”

 격공의 묘리가 깃든 강력한 파장이 자작이 입은 갑주를 넘어 그 안쪽의, 단련된 신체에 직접 타격을 입혔다. 내장까지 뒤흔들었다.

 자작이 입에서 선혈을 흩뿌리며 튕겨 나갔다.

“윽.”

 동시에 레인 또한 부상을 입었다.

 역시 검성이라고 해야 할까. 타격을 받은 직후 곧바로 보복해왔다. 큰 기술 후에 이어진 잠깐의 딜레이를 노려서.

 다행히 치명상은 피했지만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길게 베였다. 옅게 베인 검상에서 피가 배여 나왔다.

“나머진 맡기겠습니다.”

 레인은 무리하지 않고 곧바로 몸을 빼냈다. 부상도 입었겠다, 더 이상은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완전히 몰려버린 자작이 분을 참지 못하고 아예 이성을 놔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땐 백작은 몰라도 자신은 정말로 위험해진다.

 자작에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고 백작이 건재했다. 이젠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완전히 승세가 기울 터였다. 더 이상은 무리해서 초인에게 덤벼들 이유가 없었다.

“크하하핫!”

 레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두 초인의 전투 영역을 빠져나갔다. 뒤쪽에서 백작이 광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레인은 곧바로 아군 진형으로 복귀했다.

“스, 스승님!”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던 레이나가 기겁하며 다가와 레인의 상처에 포션을 들이부었다. 레인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자신은 괜찮다는 듯.

 가벼운 부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굉장히 심각한 부상도 아니다. 포션으로 인해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갔다. 레이나가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플레이나가 물어왔다.

“잘 됐어?”

 레인은 씩 하고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웃음의 의미는 명백했다. 플레이나가 따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하네.”

“이것으로 이번 영지전은 완전히 백작가 측에 승기가 기울게 되겠네요.”

 레이나가 일방적으로 유린당하고 있는 자작군 진영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상당한 피해를 입은 자작군은 한참을 밀려나서야 어찌어찌 후퇴할 수 있었다.

 무너진 대열을 수습하고 진영을 정비하고 군영 막사를 설치하는 등. 다시 진지를 구축하는 데 이틀을 소모했다.

 백작군 측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차근차근 자작군을 추격했다. 그렇게 자작군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피해가 상당한지 자작군 측은 진지를 다시 구축하고 난 후론 덤벼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 * *

 셀린은 스승의 부름으로 그가 사용하고 있는 막사로 향했다.

 막사 안으로 들어서니 눈꼴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스승이라는 작자가 제자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운공을 하는 모양. 사형인 레이나가 어딘가 즐거운 얼굴로 스승의 머리칼을 쓸고 있었다.

 아주 자기들이 커플이라고 선전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꼴 보기 싫은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셀린은 눈살을 찌푸리며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뭐야 사부. 연애하는 거 자랑하려고 부른 거야?”

 그러자 레인이 내력을 갈무리하고 눈을 뜨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레이나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

 아무리 연애 초기라지만 타인이 눈앞에 있는데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레이나의 얼굴에 드러난 알기 쉬운 표정을 보고 셀린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왔냐.”

“사부가 불렀잖아.”

“어, 그랬지.”

“전할 말이 있다며. 뭔데?”

“다 모였으니 말해야지.”

 레인은 한 차례 하품을 내뱉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이제 너희는 백작성으로 돌아가라.”

“뭐?”

“말 그대로다. 너희 두 사람은 이제 백작성으로 복귀하라고.”

 그 말에 셀린뿐 아니라 레이나까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째서?”

“어째서인가요? 스승님.”

“어째서고 자시고, 애초에 너희는 ‘경험을 쌓기 위해’ 이 전쟁에 참여한 거야.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듯싶으니 돌아가라는 거고.”

“하지만.”

“말해두겠지만 백작님의 의향이기도 해. 애초부터 레이나 네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달갑잖게 생각하고 계셨으니까.”

“그건 그렇죠.”

“어차피 내가 보기에 너희 두 사람은 이번 영지전을 통해 얻을 만한 것은 대체로 다 얻었어. 굳이 영지전이 종결될 때까지 여기 묶여 있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 이제 돌아가.”

 레인이 재차 하품을 내뱉었다. 그리곤 슬쩍 머리를 레이나의 어깨에 기댔다. 셀린이 그 광경에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레이나 너는 이번에 경지가 올랐으니 가서 차근차근 새로 얻은 깨달음을 정리해둬.”

“……네.”

“그리고 셀린 너도 이제 슬슬 영약을 먹어야 할 주기가 돌아오잖아. 너도 돌아가야 해.”

“알겠어.”

“그렇다면 스승님은?”

“나는 남을 거고.”

“전황도 안정됐겠다, 이젠 스승님이 빠져도 괜찮지 않을까요?”

“적룡대가 누구 인맥으로 여기 참전했는지 잊었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별 이유도 없이 전선을 이탈하면 그건 예의가 아니지.”

 레이나의 반론은 가볍게 무산되었다.

“일단 돌아가 있어.”

 레이나는 레인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셀린은 모처럼 익힌 무공을 펼쳐볼 무대를 금방 떠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아쉬워했다.

 그러나 스승의 말이었다. 그런 가벼운 마음을 앞세워 거부할 수는 없었다.

“보아하니 영지전도 금방 끝날 거 같아 보이고, 나도 곧 돌아가게 되겠지. 그때 다시 보자고.”

 두 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전달 사항은 끝. 이제 돌아가 봐도 좋아. 참고로 너희들을 데려갈 병력과 마차는 내일 온다고 하니까 준비 마쳐두고.”

 레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자리에 누웠다. 물론 레이나의 무릎을 베고.

 셀린은 눈살을 찡그리며 막사를 나섰다. 그 분홍빛 기류가 흐르는 막사 안에 굳이 남아있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았다.

 그녀는 성큼성큼 레인의 막사를 나서 자신에게 배정된 막사로 향했다. 그리고 묵묵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두 제자는 레인이 말한 대로 다음 날 전선을 떠나 백작성으로 복귀했다.

 * * *

 제자들이 떠나고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전선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자작가 측은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침공해온 사실이 무색하게 아직까지도 공격해오지 않고 있었다.

 헬튼 백작은 그런 자작가 측을 비웃었다.

“그렇게 대판 깨졌으니 내분이 일어나기라도 한 모양이지. 계속해서 영지전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갑론을박이라도 벌이고 있으려나.”

 너무나도 억지스러운 명분으로 일으킨 영지전이다. 자작가 측 스스로도 그것을 자각하고 있을 테고. 분명 처음부터 영지전을 반대해온 무리가 있었을 터였다.

 막대한 피해를 동반한 패배는 분명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백작은 그렇게 추측했다. 그렇게 생긴 의견 불일치가 아직까지도 저들이 재공격을 해오지 않는 이유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백작뿐이 아니었다. 베테랑 용병대인 적룡대도 같은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 탓에 상당히 풀어졌다. 현재는 배정된 막사에 둘러앉아 카드놀이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레인이 끼어 있었다. 한 치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베팅하는 모습이 제법 그럴듯했다. 게임 규칙은 돈 좀 잃어가며 배웠다.

“받고, 2골드 더.”

 심상치 않은 금액의 베팅. 다른 대원들이 모두 포기 선언(die)을 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플로라가 식은땀을 흘렸다.

“어, 얼마?”

“2골드 더.”

 레인은 눈가의 근육 한번 실룩이지 않고 무표정하게, 가볍게 플로라의 말을 받았다.

“무리하는 것 아냐?”

“…….”

 뭐 그런 쓸데없는 것을 묻느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 플로라는 그로부터 일말의 정보도 얻어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이마에 골이 패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플로라는 결국 포기 선언(die)을 했다. 가진 패에 비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레인은 당연히 챙겨가야 할 것을 챙겨간다는 얼굴로 가운데에 쌓인 판돈을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플로라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그것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패를 가졌기에 그렇게까지 베팅을 한 거야?”

 레인의 옆자리에 앉은 플레이나가 궁금증이 일었는지 레인이 내려놓은 패에 손을 뻗었다. 레인이 눈을 흘기며 그녀를 타박했다.

“돈도 안 내고 왜 남의 패를 멋대로 확인합니까?”

“에이, 쩨쩨하게. 이미 끝난 판인데 뭐가 어때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결국 플레이나는 레인의 만류를 한 귀로 흘리며 패를 확인했다. 레인이 구시렁대는 것은 가볍게 무시했다.

“뭐야.”

 그리고, 굳었다. 보고 또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비고 다시 패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반복하길 몇 차례.

 그녀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노 페어(No Pair)였어? 이 자식, 순 공갈꾼이네 이거?”

“제멋대로인 아줌마 같으니.”

 레인이 혀를 찼다.

“노 페어라고? 이런 젠장!”

 그리고 격앙된 목소리가 하나.

“?!”

 모두의 고개가 목소리의 진원지로 홱 하고 돌아갔다. 시선의 끝에 위치한 여인, 플로라는 ‘어? 어?’ 하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는 이내 이 자리에 레인이 있음을 떠올리곤 심히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라.’

 레인이 예상치 못한 플로라의 상스러운 발언에 멍해졌다.

‘이 녀석, 이런 녀석이었던가?’

 플로라는 한참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다 결국 이미 엎어진 물이라고 판단한 것인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로엘과 아직 연락하고 있다면 이건 비밀로 해줘.”

“…….”

 레인은 할 말을 잃었다.

 자그마치 일 년 육 개월이다. 적룡대와 레인, 로엘이 헤어진 후로 지나간 시간이.

 초짜 용병이였던 플로라는 이젠 베테랑이 되었다. 제대로 된 최상위 용병으로 거듭났다. 그 험한 용병계에서 구를 만큼 굴렀다.

 그래, 그 험악한 용병계에서.

 로엘에겐 안 된 일이지만, 이제 그가 기억하고 있는 플로라는 세상에 없다. 어딘가 순박한 매력이 있었던 플로라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입이 걸은 최상위 용병만이 있을 뿐.

 일 년 육 개월은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기에 충분한 긴 시간이었다.

‘역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는 법이지.’

 레인이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 순간, 그의 세상에 대한 불신이 한층 깊어졌다.

“저기…….”

“말 안 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레인이 알겠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반대쪽 손으로 뒷목을 꾹꾹 누르며.

“풉, 큭큭큭.”

 플레이나가 고개를 돌리고 입을 가렸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 레인은 굉장히 심란한 기분으로 가만히 카드를 섞다가 잠시 마음속으로 로엘에게 묵념했다.

 그리고 다시 게임 재개.

 초반의 가벼운 베팅과 함께 플레이나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자작군 측은 언제쯤에야 행동을 취하려나.”

“아무래도 그냥 회군하지 않을까요? 그만한 피해를 입었는데. 거기다 영지전을 반대하는 세력이 지금쯤 한참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테고요.”

 특기자 적룡대원이 플레이나의 말을 받았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외부적인 요인도 크겠지만, 그보다도 내부적인 요인 때문에.

 전쟁을 치름에 있어 ‘명분’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괜히 선인들이 ‘명분’을 어떻게든 갖춰가며 전쟁을 치른 것이 아니다.

“그런가요. 어쩐지 폭풍 전의 고요라는 느낌인데.”

 레인이 은근슬쩍 베팅 금액을 높이며 끼어들었다.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이야?”

“그냥 감입니다.”

“정황상 그럴 것 같진 않은데…….”

“틀릴 수도 있겠지요.”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다음 패를 확인했다. 패는 순조롭게 원하는 대로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노리는 것은 플러시(Flush). 현재 네 장이 모였다. 앞으로 한 걸음.

 레인이 패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플레이나와 플로라가 가벼운 어조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자작군이 다시 전쟁을 재개하려고 든다고 해도 문제는 없겠지. 전력은 이쪽이 우월하니까.”

“균형이 기울어버린 지금이라면 그렇겠죠.”

“최근 자작군 진영이 어수선하던데 조만간 무언가 반응이 있겠지.”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요. 전쟁.”

 이내 마지막 패를 돌렸다. 히든카드(Hidden Card).

 레인은 어디까지나 살짝, 카드의 오른쪽 끝부분만을 확인했다. 숫자는 아무래도 좋았다. 무늬만 확인하면 그만.

‘젠장.’

 패를 확인한 레인이 속으로 크게 실망했다. 원하는 무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표정은 어디까지나 아무렇지도 않게. 카드를 덮고 다른 사람들의 안색을 살폈다.

 가만히 주위 여성진의 얼굴을 살피길 잠시, 레인은 곧 이 판을 체념하기로 마음먹었다. 본인의 카드를 뒤집으며 포기 선언.

“꼭 히든에 패가 휴짓조각이 된다니까. 이런 게 제일 기분이 나빠.”

 레인은 살짝 불쾌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엎어진 카드를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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