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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영지전(1) (81/249)

 81화. 영지전(1)

 레인은 마법사들 중 넷만을 살려두고 나머지는 모두 베어 버렸다. 살려둔 마법사는 백작성으로 이송시켰다.

 바로 백작성으로 복귀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2차 습격을 대비해서. 실제로 이전에 일리나와 함께 이동하던 때엔 2차 습격을 받았었다.

 그렇게 마을에서 그대로 4일간 머물렀다.

 주로 레이나와 대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이제 막 벽을 넘은 탓에 깨달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대련 상대가 절실했다. 원하는 만큼 대련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4일이 지난 다음 날 아침. 레인은 전령으로부터 모종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는 마을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

 전령이 전한 소식은 이러했다.

1. 

[습격은 예상 습격 후보 마을 4군데에서 모두 일어났고 모두 확실히 격퇴되었다.]

2. 

[본 전쟁, 그러니까 영지전 자체는 의외로 밀리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상할 정도로 숫자가 많은 자작령 측 마법사다.]

 두 소식 모두 상정 외의 사태였다. 레인은 곧바로 일행을 소집해 마을을 나서며 생각했다.

‘4군데 동시라니, 완전히 작정을 했군.’

 이전의 필리언 자작가 때와는 양상이 달랐다. 이번엔 아예 백작령을 초토화시키기라도 할 생각이었던 걸까.

 이렇게 되면 2차 습격을 기다릴 의미가 없어진다. 지난번과는 달리 4군데에서 동시에 습격 실패 보고가 놈들의 상층부에 전해질 테니.

 암만 정보 교류가 신통찮은 점조직이라도 그 정도면 상황을 알아채겠지. 더 이상의 전력 파견은 없다고 봐도 좋을 터였다.

‘이상할 정도로 많은 자작가 측 마법사. 그들도 분명 그 조직과 관련 있는 자들이겠지.’

 따로 마을을 습격할 부대를 편성하고 본대까지 지원했다니. 어지간히 마법사가 넘쳐나는 모양이었다.

‘그보다도, 역시 모르겠군.’

 여전히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 같긴 한데, 대체 그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일까.

“일단 본대에 합류해야겠지.”

 어차피 더 이상 생각해 봐야 답이 나오지도 않는다. 일단 문제 해결을 위해선 부딪쳐야 한다.

 레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나를 호출했다.

 * * *

 삼 일 뒤.

 레인은 양측 병력이 대치 중인 대초원에 도달했다.

 수비하는 측에서 왜 성을 버려두고 굳이 초원까지 병력을 끌고 나와 대치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양상은 당연했다. 백작성은 ‘항마장벽(抗魔障壁)’이 아니니까.

 이 세계엔 바위를 두부 썰듯 하는 검사가 존재한다. 물리법칙을 초월한 기적의 힘을 발현하는 마법사가 존재한다.

 일반적인 석제 성벽은 전쟁에서 크게 의미가 없다. 특히 양측에 ‘검성’이라는 전력이 가세한 작금의 상황엔 더더욱.

 보통 전략 거점엔 항마장벽을 쌓는다. 원리는 단순하다. 그저 항마의 마법진이 새겨진 벽돌들을 수없이 쌓아 올리면 되는 것이다.

 엄청난 숫자의 벽돌에 일일이 새겨진 마법진을 중첩시키고 중첩시킬 뿐인 단순하고 비효율적인 작업. 그것을 통해 그 어떤 마나의 힘도 통하지 않는 강력한 장벽이 형성되는 게 가능하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새겨진 마법진이 부식된다. 그러나 그런 뒤에도 말도 안 되는 규모로 중첩된 항마의 힘은 수백, 수천 년 가까이 유지된다.

 그런 항마장벽이 두 영지에 있을 리가 없다. 전략 거점은커녕 그저 시골에 불과한 두 영지다. 그런 것을 쌓을 이유가 있을 턱이 있나.

 그러니 전쟁이 이뤄지는 장소는 평야일 수밖에 없다. 쓸데없이 성벽까지 적들을 끌어들이면 재산 피해만 나고 이득은 눈곱만큼도 못 얻는다.

 양측은 각각 평야 지대 동쪽과 서쪽에 진지를 펼쳐두고 있었다. 한바탕 전투를 치렀는지 양측 모두 진지가 어수선했다.

 레인은 동쪽에 위치한 백작군 측 진지에 들어섰다. 그리고 곧바로 병사의 안내를 받아 지휘관 막사로 향했다. 다른 별동대들은 모두 이미 본대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레인은 레이나와 함께 다른 막사들보다 훨씬 그 규모가 큰 지휘관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곧바로 적룡대원들, 그리고 셀린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레이나가 셀린에게 살짝 눈인사를 건넸다. 셀린이 눈인사를 받았다.

 지난 일 년 동안 부쩍 친해진 두 사람이다. 서로가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음을 확인하고 동시에 빙긋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있었다.

 이 자리의 중심에 위치한 인물.

 백작이 막대한 금액을 들여서 수도에서 초빙했다는, 현 백작군 최강자.

‘검성’. 베이런 엘드 헬튼 백작.

귀족가 방계 출신. 그 실력을 높이 산 국왕으로부터 중간성과 백작위를 하사받은 초강자. 왕국 내에 채 열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초인’.

과연 검성이라고 해야 할까. 좌중의 인물 중 독보적인 박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짙은 회색빛 머리칼을 올백으로 빗어 넘겼다. 더불어 고집이 세 보이는 부리부리한 눈썹. 약간 치켜 올라간 눈매가 날카로운 인상을 더 했다.

50대라고 알려진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동안 외모. 초인의 영역에 이르러 육신의 노화가 상당히 느려진 덕분이었다. 겉보기론 3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왕국 유일의 ‘검존’이자 초인 중의 초인인 ‘니에라 필 빌헬름 공작’은 괴물 같은 육체 제어 능력으로 80대의 나이임에도 20대 초중반의 외견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헬튼 백작은 양반이리라.

“어서 오게.”

 백작이 먼저 레이라와 레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네가 하슨 백작의 장녀를 가르치는 검술 스승인가?”

“그렇습니다. 레인이라고 합니다.”

“그래. 레인이라는 이름이었지.”

 백작은 이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뒤쪽의 아가씨가 하슨 가의 장녀겠군.”

“레이나 하슨이 백작님께 인사드립니다.”

“만나서 반갑다.”

 백작은 거기까지 말한 후 좌중의 인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모인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지.”

 곧바로 회의 시작. 시국이 어수선하니 인사치레 따위에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었다.

“우선 전황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쪽의 열세다.”

 백작은 그렇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헬튼 백작과 크레틸 자작이라는 두 초인은 초장부터 맞붙었다. 실력은 호각.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밀어붙이거나 밀리거나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다 할 전과는 서로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전쟁의 향방은 초인 이외 전력들에게 맡겨지게 되었다고.

 본래라면 백작 측이 우세해야 했다. 폼으로 작위가 한 단계 더 높은 것이 아니니까. 전력상의 우위는 백작 측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만 아니었다면.

 자작군 측에서 모습을 드러낸 일단의 마법사들. 파악된 숫자만 해도 수십에 달하는 정체불명의 무리.

 그 정도면 그냥 병단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들로 인해 전황은 백작군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레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그 숫자의 마법사라면 위험하다.

 사실 마법사뿐이라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마법사들이 ‘군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

 전위를 내세운 마법사와 그렇지 않은 마법사는 성가심의 정도가 다르다. 애초에 마법사는 소규모 전투보다 대규모 전투에 어울리는 족속이고.

“그 외 전력은 전체적으로 이쪽이 우위라서 당장 완전히 밀리거나 하진 않고 있지만, 그래도 열세인 것은 틀림없다.”

 헬튼 백작은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에 조금 짜증이 어려 있었다.

“어디서 그렇게 마법사를 끌어온 건지.”

“그렇다면, 그들만 없어지면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겁니까?”

“전쟁에 무조건이라는 것은 없지만, 아마 그렇겠지. 그들만 아니라면 백작군이 밀릴 이유가 없으니.”

“그럼 할 일은 정해져 있겠군요.”

“무슨 복안이 있나?”

“복안이라고 할까. 솔직히 작전이라고 하기도 뭣한 단순한 계획이라서.”

“이야기해 보게.”

“별것 아닙니다. 새롭게 별동대를 구성, 적진으로 침투해서 적측 마법사들을 없애버리면 됩니다.”

“호오.”

“어차피 지금까지 저희 없이도 완전히 밀려나거나 하진 않은 전황이니 당장 저희가 전열에 나서진 않아도 되겠죠. 그러니, 저희가 놈들의 진형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마법사들을 요격하겠습니다.”

 헬튼 백작이 흥미로운 기색을 얼굴에 띄웠다.

“따라붙는 문제가 좀 있을 텐데?”

“그렇겠지요. 일단 지금까지 별동대에 포함되어 있던 일반 용병들은 실력이 안 되니까 제외합니다. 전력은 최소 초일류, 그리고 그들을 뒷받침하는 게 가능한 이들로 한정해야겠죠. 단숨에 적진을 돌파할 수 있도록.”

“그리고?”

“마법사들이 위치한 곳은 제가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을 특정해서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백작이 감탄사를 흘렸다.

 기실 레인이 내세운 작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마법사들과의 숨바꼭질. 수십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알아서 자신들을 표적으로 삼아달라고 눈에 띄게, 혹은 뭉쳐서 있을 리가 없다.

 국가 간의 대규모 전쟁이라면 아군의 확실한 비호 아래 병단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다르다. 심지어 검성이라는 변수까지 있다.

 당연히 그들은 수천에 달하는 군세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니 별동대를 투입해도 마법사들을 특정해서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마법사들을 찾아내기도 전에 우왕좌왕하다가 적들에게 포위되어 전멸되겠지.

 그런데 그 문제를 가볍게 해결할 방안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관심이 확 쏠렸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지?”

“그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모두가 똑같은 기운을 몸속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특정해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

“제 초감각 영역은 상당히 넓은 편이니 전부 찾아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겁니다.”

“모두 똑같은 기운을 몸속에 내재하고 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백작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모든 사람은 각각 다른 성질의 마나를 몸속에 내재한다. 사람마다 육체적, 마나적성적 특성이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설사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수련을 통해 마나를 몸속에 축적한 이들이라도 마찬가지. 절대 같을 수는 없다.

“저도 그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만, 그렇습니다. 그 마법사 집단은 이상할 정도로 모두가 같은 종류의 기운을 몸속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건 조금 신경이 쓰이는군.”

 백작이 침음을 흘렸다.

“어찌 됐든 상당히 가능성 높은 작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전이라기엔 너무 단순해서 조금 그렇습니다만.”

“아니, 확실히 지금 상황에선 가장 좋은 의견인 듯싶군.”

“감사합니다.”

“성공 확률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웬만해선 실패하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단 별동대에 포함될 초일류급 전력만 여섯이니까요.”

“확실히.”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전력이라면 적진을 꿰뚫는 창으로는 충분하다.

“응? 여섯?”

 플레이나가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 용병대에 검호가 셋. 거기에 플로라와 레인 너까지. 다섯은 알겠는데, 남은 하나는 누구지?”

“레이나입니다. 며칠 전에 벽을 넘은지라.”

“?!”

 플레이나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셀린 또한 마찬가지.

 반면 헬튼 백작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경지가 경지인 만큼 애초부터 레이나의 역량을 짐작했다. 그래서 여섯 명이란 레인의 발언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레이나 아가씨가 17살이라고 했었지?”

“그렇죠.”

“너무 진경이 빠른데?”

“그 정도의 재능은 가지고 있습니다. 괜히 제자를 들인 게 아니죠.”

“그 재능이라는 건 대체 어떻게 알아보는 거야?”

 플레이나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계속하고, 지금은 작전 논의를 마저 하지.”

 백작이 손바닥을 한 차례 짝, 하고 마주치며 화제를 전환했다.

“일단 레인 자네의 작전은 수용하는 것으로 하지. 다음 교전이 아마 며칠 내로 벌어질 테니 그때 곧바로 작전을 실행해 주게.”

“알겠습니다.”

“나는 확실하게 전열에서 미끼 역할을 하면 되겠군.”

“미끼라니, 당치 않은 말씀을…….”

 레이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왕에게 직접 귀족위를 하사받은 백작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표현한 말 치곤 조금 그렇다.

“너희가 측면에서 놈들을 들이치는 데 용이하려면 내가 앞쪽에서 최대한 자작군의 주의를 끌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백작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걸 또 레인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백작은 푸핫, 하고 웃었다.

“전장에서의 활약을 기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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