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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전쟁 발발(4) (80/249)

 80화. 전쟁 발발(4)

“네놈은 대체 누구냐! 왜 갑자기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냐!”

 로브인들 중 하나가 분개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들로선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셈이니 화가 나도 이상할 것이 없긴 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너흰 뭐고, 너희 조직은 왜 이 마을을 공격하려 드는 거지?”

 레인이 되물었다. 로브인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무, 무슨 소리냐!”

“의뭉 떨지 마. 너희 조직이 왜 영지전을 틈타 일반 마을을 노리냐고 묻는 거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고!”

 로브인이 금세 평정을 되찾고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맞받아쳤다. 일순 별동대 일행이 흠칫했다. 혹시 지레짐작으로 관계없는 이들을 공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어디서 개수작이야.”

 레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품속에 손을 잠깐 넣었다 빼는가 싶더니, 곧바로 손을 떨어냈다. 어느새 손가락 사이사이에 들려 있던 네 개의 비침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헛!”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긴장하고 있던 한 로브인이 곧바로 마법을 발현했다.

<화염 방패(Fire Shield)>.

 불꽃이 원형 방패의 형상을 그리며 전방을 가로막았다. 비침이 방패에 가로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고온으로 인해 붉게 달궈진 채로.

 팅, 티팅.

 땅에 떨어진 비침들이 조그마한 금속음을 냈다.

“크악!”

 동시에 방패 마법을 구현했던 로브인이 비명과 함께 어깨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비침 중 하나가 방패가 형성되기 직전에 그 구간을 통과해 로브인의 어깨에 박혀 들어 버렸다.

 미리 방어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는데도 이 꼴이다. 레인의 공격은 마법사들의 동체 시력 따위 가볍게 넘어서는 속도를 자랑했다.

“아닌 척 연기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만, 그런다고 내가 흔들리지는 않을 거다.”

 레인은 핫, 하고 웃었다.

 놈들의 몸에서 예의 그 기분 나쁜 마력이 감지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유사한 기운을 착각할 턱이 없었다.

“더 연기하겠다고 입 털다가 몇 명 더 죽어 나가줘도 고맙겠다만.”

 로브인들은 더 이상의 연기는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안 거지?”

“알려주겠냐.”

 한 로브인이 묻자 레인이 비웃음 섞인 어조로 답변했다.

“말해두겠는데, 더 이상 질문 같은 건 하지 마라.”

 레인이 손 위에 대침을 놓고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그의 시선에 멸시하는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디 쓰레기가 이 몸께 말을 붙이려 들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손에 든 대침을 전방으로 날렸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 또한 몸을 날렸다. 용병들이 그 뒤를 따라 달려들었다.

 * * *

 전투 개시.

 고용한 용병들이 달려든다.

 그에 맞서듯 마법사들의 화염 계열 마법이 작렬한다.

 작렬하는 마법을 A등급 용병이 검기를 두른 검으로 갈라낸다.

 상위 등급 용병이 뚫어둔 길을 따라 하위 등급 용병들이 질주한다.

 레인은 마법사들의 공격 중 일행이 받아내기 힘들 듯한 강력한 것들을 골라서 요격했다. 동시에 마법사들의 견제를 뚫어 용병들이 지나갈 길을 냈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현된 마법마저도 완벽하게 커버해냈다. 거리의 제약을 넘어선 초일류 검사인 그로선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화염 계열 마법사는 총 열. 이들이 전위에서 용병들의 접근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뒤쪽에서 나머지 여덟 마법사가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레인은 그것을 진작 눈치챘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그들이 무언가 하기 전에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측 화염 계열 마법사들은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거기에 연계도 좋았다.

 레인에게 있어선 한참 하수들이지만 용병들에게 있어선 그렇지 않았다. 레인이 자리를 이탈하면 필시 희생자가 생길 터.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어차피 상대가 무엇을 해도 대처할 자신은 있었다. 그래서 레인은 무리해서 그들을 처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적을 분쇄하기로 마음먹었다.

 화염 계열 마법사들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제압되었다. 아무래도 초일류 검사가 포함된 일행을 상대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무리였다.

 마지막 즈음에는 몇몇이 비장의 마법인 듯한 상당한 규모의 폭발마법을 발현했다. 그러나 적중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전에 그것을 알아챈 레인이 폭발 범위에 위치한 이들을 곧바로 빼냈다.

 그래도 그들은 시간을 벌어주었다. 뒤쪽의 마법사들이 완벽하게 마법을 구현할 시간을.

 여덟 마법사가 말에 실어 가져온 상당한 분량의 짐을 한데 모아둔 채 한꺼번에 주문을 외웠다. 화염 계열 마법사들이 벌어준 시간을 통해 마력 공명, 마나 재배치는 이미 끝내 둔 상황.

<사자(死者) 소환(Summon the dead)>.

 짐들이 풀려나며 그 안에서 거대한 뼈다귀들이 쏟아져 나왔다. 뼈다귀들은 허공에서 모이더니 차칵차칵 엉겨 붙어 두 개의 형상을 이뤘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실루엣.

 본 오우거(Bone Ogre).

 각각의 개체에 마법사가 네 사람씩 달라붙어 형성한 강력한 언데드(undead). 일반 오우거의 크기를 한참 초월한, 8미터에 달하는 거체.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두 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들린 것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은 칼날. 더불어 똑같이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어구를 둘렀다. 무릎과 가슴, 팔꿈치 등을 가리는 부분 갑주를.

 마법사들의 마력이 다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무구와 방어구였다. 지속시간은 짧지만 오우거의 전투력을 몇 단계는 끌어 올려줄 터.

 용병들이 경악하고 있는 가운데, 레인이 살짝 감탄사를 흘렸다. 이쪽에 초일류 검사가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펼친 마법인 만큼 비장의 수일 것이라 예상은 했다. 그렇긴 했지만…….

‘설마 이런 놈들이 나올 줄은.’

생각보다-

“좋은데?”

 -마음에 들었다.

“레이나.”

“네?”

 갑작스런 스승의 호출. 바짝 긴장한 채 침을 꼴깍 삼키고 있던 레이나가 반응했다.

“저거 둘 중 하나는 네가 맡아라.”

“네?”

“저건 나와 레이나가 맡지. 나머지는 물러나 있어.”

 레인은 레이나의 반응은 뒤로하고 용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스승님?”

“해 봐. 네가 벽을 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아, 알겠습니다.”

 레이나가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좌측에 위치한 본 오우거와 마주 보고 자세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레인이 오른쪽의 본 오우거를 맡았다.

 레이나는 숨을 가다듬고 배웠던 대로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했다. 그렇지만 시야는 넓게 유지하도록 의식의 한편을 상시 주위로 돌렸다.

 시이이이이!

“…….”

 뼈만으로 이루어진 신체인 만큼 성대가 없는 모양이었다. 뭐랄까, 굉장히 안쓰러운 포효를 내지르는 본 오우거.

 박력 있는 두개골의 움직임이 아까운 바람 빠진 소리였다. 레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전투가 개시되자마자 레이나는 레인 쪽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만큼 몰리게 되었다.

 압도적인 거체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박력은 초일류를 목전에 둔 그녀에게조차 벅찬 수준. 거기다 언데드인 만큼 관절이 제멋대로라 공격의 궤도를 읽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변변한 공격을 해보기도 전에 수세에 몰려 검을 받아내기 급급했다.

 그때 들려오는 스승의 목소리. 이제야 막 생각났다는 듯한 어조.

“참고로 그 녀석. 너보다 모든 면에서 한 단계 위라고 생각하면 돼. 비유하자면 검강만 형성할 수 없을 뿐인 초일류 검사라고 할까.”

“그걸 먼저 이야기해 주셨어야죠!”

 드물게 레이나가 발끈했다. 그걸 이제야 말해줘서 어쩌자는 건가.

 레인의 말이 사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검을 맞댈 때마다 묵직한 충격이 손을 타고 넘어왔다. 거기다 워낙 거구다 보니 몇 걸음만 움직여도 금세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와 버린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검(巨劍)은 검기를 덧씌운 검을 무리 없이 걷어냈다. 방어구도 마찬가지. 틈이 보이질 않았다.

 언데드라서 저돌성도 높았다. 페인트도 걸리지 않았다. 여러모로 껄끄러웠다.

 레이나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이겨!’

 -라고.

 * * *

 그리고, 약 오 분 정도 뒤.

‘……의외로 할 만하네?’

 레이나는 생각을 수정했다.

 분명 상대는 강하다. 지금의 자신보다 힘, 속도,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가 앞선 상대였다.

 그런데 어찌어찌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니, 점점 익숙해짐에 따라 여유가 생겨났다.

‘왜지?’

 분명 자신보다 위인 상대인데 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상황도 이상하지만, 상황을 낙관하는 자신도 이상하다.

 레이나는 스스로의 싸움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전투 중 객관적이고 넓은 시야를 유지하기 위한 수련은 매일같이 했으니 익숙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자신의 검이 조금씩 상대의 타이밍을, 간격을, 중심을, 그 외 여러 가지를 앗아가고 있음을.

 딱히 의식하고 한 일이 아니다. 그저 평소처럼 수련한 대로 검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검은 상대의 검을 미묘하게 ‘앞선다’. 스승이 전수해준 단조로운 검식이 상대의 검격을, 발길질을, 주먹질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억누른다.

 떠오르는 기억은, 언젠가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평가.

 스승은 자신의 재능을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 재능은 굉장히 미묘하다고. 그러나 굉장하다고.

 솔직히 지금까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스승은 자신으로부터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제인 셀린의 경우엔 그 ‘재능’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그녀는 무예에 관한 한 압도적인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솔직히,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레이나 하슨은 처음으로 자신의 ‘재능’이 어떤 것인지 인지했다. 조금이지만 이해했다. 자신의 재능과 마주했다.

 이 재능을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수련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어떤 검을 추구해야 할지 미약하게나마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굉장한 고양감.

 한없이 만족스러우면서 동시에 더욱 갈증이 이는, 그럼 감각.

 레이나 하슨은 이 순간 벽을 넘었다.

“하하.”

 그녀가 웃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거였구나.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이렇게나 간단한 것을.

 레이나는 반쯤 무아지경이 되어 검을 휘둘렀다. 어느 순간 그녀의 검에 맺힌 검기가 화라락 일어나더니 밀집, 압축되어 검의 형상을 이뤘다.

 크기는 작았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검강’. 초일류 검사의 상징과도 같은 기의 응집체.

 얼핏 보기엔 단순한 궤적을 따라 휘둘러진 검이 맞부딪혀 오는 검을 통째로 부수고 지나갔다.

 이즈음엔 마법사들의 힘이 다해가고 있었다. 마력이 응집되어 형성된 칼날은 상당히 약화된 상태였다. 칼날은 강대한 힘이 응축된 검강을 받아내지 못하고 산산이 깨져버렸다.

 검은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파편들이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흩어져 그 모습을 감추는 모습이 마치 그녀의 성장을 축복하듯 환상적이었다.

 이어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일섬.

 검이 닿기엔 거리가 멀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거리의 제약 따윈 의미가 없으니까.

 검에서 사출되어 날아간 검격이 본 오우거의 얼굴에 직격했다. 퍽 하는 소음과 함께 머리가 통째로 터져나갔다.

 머리를 잃은 거대한 동체는 이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안 그래도 부족해지던 차인 마력이다. 마력만 충분하다면 쓰러져도 얼마든지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언데드지만, 현재의 마법사들에겐 그것이 불가능했다. 본 오우거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레이나는 검을 검집으로 되돌리고 가만히 서서 여운을 음미했다. 그런 그녀의 귀에 들려오는, 스승의 목소리.

“잘했다, 레이나. 이제야 길을 찾았군. 성장을 축하한다.”

 역시 스승이었다. 자신이 본 오우거와 한참 전투를 치르고 있던 사이에 모든 상황을 종결시켜 두었다. 남은 본 오우거는 물론이고 여덟 흑마법사까지 모두 제압했다.

“네!”

 레이나는 기쁘게 웃으며 스승의 축하를 받았다.

 그렇게, 레이나 하슨은 초일류 검사의 대열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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