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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만남(2) (75/249)
  •  75화. 만남(2)

     고아원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오히려 운치가 있었다. 밖에서 본 건물의 외양을 기억하고 있는 레인에겐 의외였다.

     오랜 세월 사용했거나 버려진 것을 가져와 재활용했는지 가구들은 대체로 낡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데다 잘 관리되고 있어 허름하다기보다 고풍스럽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정도로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터. 원장이 어떤 성격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밖에서 본 건물의 외양과는 천지 차이네.”

    “지금 그 말,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아?”

     한 소녀가 레인의 말을 지적했다. 굳이 말할 거라면 집안 내부가 잘 가꿔졌다고만 말하면 그만이다. 칭찬만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앞에 사족을 붙이는 것일까.

    “그런가? 틀린 말을 하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레인이 가볍게 대꾸했다.

     정말로 감상을 이야기했을 뿐, 딱히 비꼬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화법이 조금 좋지 않을 뿐.

     지난 반년 동안 조금씩 성격이 둥글어진 레인이다. 남을 대하는 데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초면인 사람에게 존대하는 것이 가능해졌을 정도로 훌륭한 변화를 이뤘다.

     그렇지만 그뿐. 기본적인 성격은 여전했다. 남들에겐 여전히 무례해 보이는 수준이었다.

    “맞는 말이라도 입에 담으면 실례인 말이 있는 법이야!”

    “그건 그렇지.”

     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데, 내 경우엔 거의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거라서. 그러니까 알아서 걸러서 들어. 나름 고치려고 하곤 있는데 잘 안되더라고.”

     레인은 그렇게 말하며 소녀를 돌아보았다. 분명 어제 원장의 옆에서 일을 거들고 있던 그 소녀였다. 이렇게 보니 상당한 미인이었다.

     흑단과도 같은 검은 머리칼을 허리까지 길렀다. 얼굴은 조금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전체적으로 시원스런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레인에게 상당히 친숙하게 느껴지는 피부색을 지니고 있었다. 황인종 특유의 적당히 그을린 피부색을.

     아직도 일을 돕던 복장 그대로였다. 머리에는 흰 두건을 쓰고, 허름한 원피스 위에 앞치마를 두른 모습.

    “말투를 고치려는 노력을 해 보는 게 어때?”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부여한 성격이라 그게 안 돼.”

    “그건 또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레인이 어깨를 으쓱이고, 소녀는 인상을 찡그렸다. 뒤따라 들어온 원장이 그런 두 사람을 중재했다.

    “셀린. 거기까지 해 둬. 레인도 악의는 없다고 하니까.”

    “하지만, 원장님!”

    “그리고 레인도. 웬만해선 언동을 조금 주의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별로 상관없지만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레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원장은 노련했다.

     식사 시간. 레인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고기반찬이 상 위에 올랐다. 금액적인 부분은 레인이 충당했기에 문제 되는 것은 없었다.

     음식 맛이 상당히 좋았다. 레인은 이 정도라면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오랜만의 호사에 즐거워했다. 본래라면 두 달에 한 번도 먹기 힘든 고기반찬이다. 그것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들뜰 수밖에.

     레인은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리며 생각했다.

    ‘마침 치킨이 먹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좋은 곳을 찾았네. 내일쯤 재료를 가져와서 부탁할까.’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은 장소가 여의치 않았다. 백작가 내에 비치된 주방에 들락거리자니 그곳에서 일하는 하인들의 절도 있는 분위기 때문에 조금 꺼림칙했고.

     마침 잘 되었다고 레인은 생각했다. 앞으로는 로엘과 함께 해 먹곤 했던 이런저런 요리를 이곳에서 만들어 먹으면 좋을 듯했다.

     식사 후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아이들은 레인에게 호의적이었다. 아무래도 전날부터 레인 덕분에 입이 호사를 누렸기 때문.

     그렇다고 바로 막 달려들고 엎어지고 하면서 놀 정도로 친해진 것은 아니고, 아이들이 레인을 둘러싸고 질문 공세를 퍼붓는 상황이 벌어졌다.

    “저기, 레인 형은 뭘 하는 사람이야?”

    “······?”

    “보니까 형 되게 부자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을 하기에?”

     아이들 눈에는 레인이 부자로 비친 모양이었다.

    “설마 금수저? 부모님 돈 가져다 여기서 쓰는 건 아니지?”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거냐.”

     레인은 잠시 생각했다.

     일단은 백작가에서 가정교사 노릇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식 직함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했다. 그렇다고 백작가의 가신이라거나 하는 것은 또 아니었고.

     조금 생각하다 보니 자신을 내세울 직함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용병.”

    “오오오오!”

    “용병이래!”

     아이들이 환호했다. 어린아이들에게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의뢰를 수행하는 용병이라는 존재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럼, 그럼! 오빠도 유명해?”

    “혹시 적룡대와 만나본 적 있어?”

     한 아이의 질문. 의외의 곳에서 적룡대라는 이름을 들었다. 레인은 새삼 그들이 얼마나 유명한 이들인지 실감했다.

    “아니, 그다지 유명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용병으로써 활동한 시간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이.”

     아이들이 야유했다. 적룡대처럼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보통의 용병들은 관심 밖의 존재라는 것일까. 아이들은 이런 쪽에선 노골적이다.

    “그런데, 형! 용병이 그렇게 돈을 많이 번다던데, 사실이야?”

     한 아이의 질문. 무언가 굉장히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레인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먼저 원장을 곁눈질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용병계는 험난하다. 발을 들인 이들 중 몸 성히 은퇴하지 못하는 자가 7할 가까이 될 정도로. 아이들에게 쓸데없이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좋지 않으리라.

     그래서, 레인은 괜히 뚱하게 답했다.

    “돈? 벌릴 턱이 있나.”

    “엥?”

    “확실히 만지는 돈의 단위가 좀 크긴 한데, 반대로 죽지 않기 위해 필수적으로 구비 해둬야 하는 물품들도 상당해서. 한마디로 지출도 상당하거든.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치고는 메리트가 너무 없어.”

    “그런 말은 질리도록 들었어! 고리타분해!”

     레인의 말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어른들이 용병을 꿈꾸는 아이들을 만류할 때 쓰는 말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무림에 뛰어들려는 자식을 만류하는 부모. 딱 그 짝이네.’

     레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 세계나 이런 것은 마찬가지라는 걸까.

    “좋을 대로 생각해라.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벌이가 시원찮은 것은 사실이니까.”

    “그래도 착실히 일해 재화를 모은다면 남들은 평생 못 벌 돈을 만질 수 있는 건 사실이잖아?”

    “그거야 착실히 일했을 때의 이야기지.”

     착실히는 고사하고 방탕의 극을 달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막상 용병이 되어 목숨을 내놓고 각종 의뢰를 수행하고 다니게 된 이들 중 초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난 용병이 되더라도 확실히 착실하게 일할 자신이 있으니까.”

    “쯧쯧.”

     이 나이 아이들에겐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이런 점도 어느 세계나 똑같은 모양이다.

    “그래, 잘해봐라.”

     레인은 결국 한 차례 픽 웃고 손을 들었다.

    “그럼 난 이만 간다.”

     레인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벌써 간다고? 아직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밥 먹으러 온 거니까.”

    “여긴 식당이 아닌데!”

    “돈 내고 밥 먹을 수 있으면 거기가 식당이지 뭘.”

    “실례라니까!”

     레인은 낄낄 웃으며 고아원을 나섰다.

     원장은 그 뒷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봤다. 조금은 무례하지만, 그는 흔히 다른 이들처럼 동정 어린 시선이나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이들은 그리 그것을 크게 느끼지 못한 듯했지만, 원장만큼은 그것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그에게 고아원 아이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일은 없을 듯했다.

     * * *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레인은 고아원을 찾아왔다.

     옆 영지 주최 파티가 끝나고 레이나가 돌아오기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릴 예정이었다. 그래서 남는 시간마다 고아원을 찾게 되었다.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고아원 아이들도 점점 레인을 대하는 태도가 친근해졌다. 매번 레인이 들고 오는 식재료들에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만 원장에게선 주의를 받았다. 아이들이 괜히 입맛만 높아지진 않도록 조금 자제해 달라고.

     오늘도 레인은 고아원을 찾아왔다.

     주의를 받았음에도 개의치 않고 또다시 고깃덩이를 챙겨왔다. 원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것을 조리해 주었다.

     레인이 음식을 얻어먹고 기분 좋은 포만감에 취해 앞마당에 심어진 감나무에 등을 기대고 잠들었다. 자기 집도 아닌데 완전히 마이 페이스였다.

     그런 그를 아이들이 흔들어 깨웠다.

    “형! 일어나!”

    “여기서 자면 감기 걸려!”

    “난 감기 같은 것 안 걸리니까 냅둬…….”

     레인은 아이들의 손길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반쯤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말 말고! 셀린 언니도 그러다 감기 걸렸단 말이야!”

     이미 새해, 즉 1월이다. 토우런트 왕국은 일 년 내내 온화한 기온을 유지하는 나라지만, 그렇다고 해도 겨울쯤 되면 기온이 상당히 떨어진다. 아이들이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끙.”

     레인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와아!”

    “일어났다!”

     아이들이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레인은 비틀비틀 고아원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평하지 못하도록 아예 실내에서 이불 덮고 잠을 잘 요량이었다.

     결론적으로 전혀 그러지 못했지만.

    “이제 놀아줘!”

     아이들은 레인이 다시 잠들게 둘 생각이 없었다. 레인은 결국 한 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아이들에게 끌려다니는 처지가 되었다.

     역시 평소의 레인이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 로엘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라고 중얼거리며 눈을 비볐을 터였다.

    “그보다, 누가 감기에 걸렸다고?”

     레인이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셀린 누나가! 어젯밤부터 감기에 걸려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어.”

    “그래? 상태를 좀 보러 갈까?”

    “안 그러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 잠들어있으니까.”

    “이래봬도 내가 의원 노릇도 조금 할 줄 알아서.”

    “어? 형, 의원이었어?”

    “용병 아니었어?”

    “내가 좀 유능하거든. 용병 일도 의원 일도 잘해.”

    “오오!”

     레인은 아이들의 안내를 받아 셀린이 잠들어있다는 방으로 이동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있는 검은 머리 소녀가 시야에 들어왔다.

     머리 외엔 전부 이불이 덮여 가려져 있었다. 이마 위엔 물에 적신 수건을 얹어둔 상태였다.

    ‘많이 안 좋은가?’

     얼굴이 살짝 붉었다. 열이 있는 모양이었다.

     원장이 침상 근처에 의자를 놓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를 간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레인이 방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은 이내 방을 뒤로하고 나갔다. 원장으로부터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미리 주의를 받은 탓.

     레인은 곧바로 의자를 끌어와 원장의 옆에 털썩, 하고 앉았다.

    “셀…… 이름이 뭐였더라. 어쨌든, 아프다고 들어서 왔는데 한 번 진찰해 봐도 되나요?”

    “셀린이란다. 그런데, 의학에도 조예가 있니?”

    “네, 뭐. 웬만한 의사보단 나을 겁니다.”

     원장이 감탄했다. 굳이 레인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 아마 사실일 터. 어린 나이에 용병이면서 의학에 조예까지 있다니, 상당히 성실한 친구였다.

     레인은 셀린의 손목에 검지와 중지를 모아 얹었다. 그리곤 내력을 밀어 넣어 몸 상태를 체크했다.

    ‘······어?’

     확실히 감기였다. 그냥 적당히 쉬면 가볍게 나을 수준이었다.

     다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점을 발견했다. 그녀의 몸속에 상당량의 오라가 축적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체 구조에 인간과 명백히 다른 점이 몇몇 있었다. 혈도라던가 장기의 위치라던가 하는 것은 전부 같았지만, 생식기라던가 하는 것은 인간과 구조가 달랐다.

     그중에서도 특히 귀. 귀가 뾰족했다. 인간의 그것과는 명백히 다른, 살짝 길쭉한 귀.

    “셀린이 엘프였나?”

     지금까지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머리에 항상 두건을 두르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이마에 얹은 수건을 늘어뜨려 귀를 교묘하게 가린 상태였다.

    “어떻게?”

     원장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냥 손목에 손가락을 얹었을 뿐인데, 어떻게 그것을 알아챈 것일까.

    “말했듯이 실력은 좀 있는 편이라서요.”

     레인은 대충 그렇게 답했다. 이래저래 설명하자니 귀찮았고, 그보다 자신의 궁금증이 우선이었다.

    “이 왕국 내에서, 그것도 고아원에서 엘프를 볼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후우.”

     원장이 푹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사정이 있나요?”

     이런 고아원에 엘프라니. 엘프는 그들의 터전인 대수림, 혹은 제국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아니었던가. 레인으로썬 궁금증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눈치채 버렸으니 더 숨기는 것도 어렵겠지. 네가 이 아이에 대한 것을 다른 곳에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나도 네 질문에 답해주마.”

    “그러죠, 뭐.”

     레인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숨겨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원장이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보아 온 레인의 모습이 있다 보니 믿을 수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셀린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다크엘프라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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