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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수련(3) (73/249)

 73화. 수련(3)

 이어지는 습격, 습격, 습격.

 한 번 물꼬가 트인 레이나는 점차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가며 레인의 뒤를 노렸다.

“막아!”

“아가씨가 자리를 벗어날 수 있도록 시간을 끌어라!”

 습격엔 항상 가문의 기사를 대동했다. 초일류 검사와 검을 나눌 기회가 생기는 일인 만큼 기사들 또한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습격, 그리고 조금이라도 무리일 듯싶으면 곧바로 도망. 이젠 감을 잡았는지 레인에게서 도망칠 수 없게 되는 타이밍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 이전에 미리 몸을 빼는 레이나였다.

 레인이 식사하는 때도, 잠을 자는 때에도, 산책하는 때도, 심지어 개인 수련을 하는 중에도.

 기사들과 합격진을 연습해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공격을 해오기도 했다. 그들의 뒤에 숨어 암습을 가하기도 했다.

“우아아아아아!”

“!”

 심지어 어느 날은 기사들을 완전히 소모품처럼 이용하기도 했다. 아예 몸의 안전을 도외시한 기사의 육탄돌격엔 경험 많은 레인마저 순간 움찔했다.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계속해서 습격을 반복하는 나날. 그 와중에 레이나가 가진 결점은 급속도로 그 자취를 감춰갔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었다간 금세 뒤를 잡혀 정신을 잃게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항시 날카롭게 벼려진 정신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다 보니 소극적인 검을 휘두르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소극적인 행동도 일말의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법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하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가늠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전황을 보는 눈이 생겼다.

 그 외에도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바뀐 면모를 여럿 선보였다. 특별히 체내에 축적된 오라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검식을 전수받은 것도 아니지만, 그녀는 확실히 강해졌다.

 그러나 레인은 좀처럼 그녀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 습격을 가했건만 유유히 그것들 전부를 격파했다. 습격에 참여한 기사들이 혀를 내둘렀다.

 물론 레인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해전술이나 합격진에 밀린 적도 있고, 이런저런 상처를 입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레이나에게만큼은 절대 일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레이나의 입장에선 속에서 천불이 날 일이었다.

 암만 초일류의 경지에 이른 이라지만, 레인의 실력은 정말로 규격 외였다. 하슨 가의 기사들은 그것을 절절히 통감했다.

 통상의 검호들에겐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암만 검호라도 그들이 가진 오라엔 한계가 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실수하는 날도 있고.

 아니, 그 이전에 빈번한 습격에 정신적인 피로가 한도 이상으로 축적될 터였다.

 그런데 레인은 말짱했다. 내력이 고갈된 적이 없었다. 컨디션이 무너지는 날이 없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도 없었다.

 결국 레이나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하듯 물어왔다.

“스승님은 안 힘든가요? 안 지치나요? 그렇게나 습격을 받는데?”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식사와 수면을 수시로 방해받는 나날이다.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배설할 때만큼은 습격을 가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뿐.

 당하는 입장에선 정신이 갉아 먹힐 정도의 습격을 가했다. 그만큼 독하게 마음먹었다. 가진 역량을 총동원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아직까지도 과제가 달성되지 않는단 말인가.

 레인은 그녀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매일같이 습격을 받는 일상은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전생엔 이보다 훨씬 심한 상황도 수없이 겪었다.

 심지어 그의 내력량은 동급의 무인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막대했다. 영약을 매일같이 먹어 치우고 있으니까. 사실 내력량만 놓고 보면 검성이나 검존마저도 넘어설지 몰랐다.

 하루는,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그를 찾아온 일리나가 묻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레이나는 충분히 발전을 이룬 듯싶은데, 적당히 당해 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레인의 괴상한 수업방식은 하슨가 저택 내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이라 가문 내 모든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리나가 데려온 필리언 자작가의 기사들도 몇 번 레이나를 도왔다. 초일류 검사와 검을 섞어볼 기회라고 생각해 스스로 지원했다. 그 탓에 일리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았다.

 일리나는 레이나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녀가 굳이 레인의 수업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해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일부러 적당히 당해 준다니, 그런 것엔 영 소질이 없어서.”

 레인은 가볍게 대꾸했다. 그는 잘 알았다. 자신은 연기엔 소질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건 그녀의 수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수련이기도 하거든.”

“예?”

“말 그대로야. 애초에 레이나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단련하기 위한 수련이기도 하다고.”

 나날이 습격을 받고 있었다. 당연히 레인의 감각 또한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다.

 실상 그것을 위해 기획한 과제이기도 했다. 솔직히 그 본인의 감각적인 측면이 너무 무뎌진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그것을 가다듬을 기회로 삼은 것이다.

“레이나가 고생이네요.”

“그리 오래가진 않을 거야. 상당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니 조만간 성공하겠지.”

“그런가요.”

 그 말 그대로, 레인이 레이나에게 내준 과제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클리어되었다.

 솔직히 거의 우연에 가까운 성공이었다.

 앞쪽의 기사가 우연히 중심을 잃어 앞으로 엎어지며 레인의 시야를 가린 타이밍. 그 타이밍에, 레이나가 무리한 공격으로 거의 반쯤 손에서 놓친 검을 어거지로 휘둘렀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다 레인의 뺨을 살짝 스쳤다. 정말로 우연한 성공.

 그러나 암만 우연이라도, 그것은 지난 시간 동안의 발전이 밑바탕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전이었다면 설사 똑같은 우연이 일어났더라도 레인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을 터.

“…….”

 레인은 뺨에 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슥, 하고 닦았다. 그것을 혀로 살짝 핥으며 그가 선언했다.

“합격.”

 얼마나 기다려 왔던 말인가.

 레이나는 저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하, 하하.”

 복잡한 감정이 담긴, 일견 허탈하게도 느껴지는 마른 웃음.

“으아아아!”

“해냈어! 해냈다고!”

 오히려 함께한 기사들이 고조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포효를 내질렀다. 첫 수업으로부터 정확히 3개월하고도 이틀이 지난 때의 일이었다.

 * * *

 드디어 첫 과제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레이나는 정식으로 레인으로부터 무공을 전수받게 되었다.

 먼저 단전의 생성.

 오랜 시간에 걸쳐 단전을 생성했던 레인, 로엘과는 달리 레이나가 단전 생성을 위해 들인 시간은 일주일에 불과했다.

“빠르네.”

 아무런 기반도 없이 수련을 시작한 레인이나 로엘과는 달랐다. 이미 기공이 담긴 무예를 습득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단전을 생성하고 그릇을 굳히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이 굉장히 짧았다.

 그녀가 단전을 생성하는 과정은 그릇을 새롭게 생성한다는 느낌이 아닌, 그릇을 다른 모형으로 변형한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레인의 견해로는.

 단전의 생성 이후로는 내가기공을 전수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검법 또한.

“앞으로 네가 익히게 될 검법은 말하자면 효율주의 검법의 끝판 대장이다.”

 무공은 검각(劍閣)의 것을 전수했다.

 검각은 중원에서도 신비문파 취급을 받는 여검객들의 성지. 그곳의 무공은 오로지 실리성만을 추구한다. 말하자면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살인검.

“효율주의요?”

“그래. 애초에 네게는 이런 종류의 무술이 어울리니까.”

 사실 재능이 재능인 만큼 진작에 이런 종류의 무공을 익혔어야 했다. 가진 재능의 특성상 그녀에겐 단순하면서도 실리적인 검법이 어울렸다.

 실상 단순한 검법을 그 어떤 상황에도 통용되도록 수련해왔어야 하는 그녀가, 지금까진 변칙적인 검법을 상황이 조금만 변화해도 통용되지 못하도록 수련해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레인의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 이제부턴 완전히 다른 체계의 무예를 습득하게 해야 했다.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다.”

 새롭게 전수한 무공은 레이나의 특수한 재능과 맞물려 최고의 상성을 발휘할 터였다. 성별이라는 측면에서도 마침 일치되었고.

 본래 이 세계, 엘레노어 대륙의 무도가들이 익히는 기공은 중원의 그것과 같은 내가기공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동공(動功)’이다.

 중원의 무인들은 특별한 호흡법을 통해, 그리고 거기에 맞물리도록 특정한 경로로 기운을 순환시킴으로써 내력을 축기한다.

 반면 이 대륙의 무도가들은 호흡과 특정 검식을 매치시킨다. 검식 수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오라를 축적하는 것이다.

 중원의 무인들이 단전에 내력을 가둬 저장하고 있다면, 이 세계 무도가들은 온몸에 자연스럽게 오라가 분포되어있다.

 내력을 축기하기 위한 수련과 검식을 익히기 위한 수련이 따로 이루어져야 하는 중원의 무공과는 달리, 이 세계의 무공은 축기와 검식 수련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솔직히 어느 쪽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하기는 힘들었다.

 굳이 말하자면 동공은 정도(正道)요, 좌공은 사도(私道)라고 할 수 있긴 했다. 적어도 레인이 느끼기로는 그랬다.

 동공은 모든 것이 치우침 없이 고르게 성장한다. 검술도, 오라의 축적도, 기감도, 그 외 다른 모든 것들도 지닌 바 경지에 비례해서 성장한다.

 좌공은 치우침이 필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검술은 형편없는데 보행기술은 일류일 수도 있고, 내력은 넘쳐나는데 검격은 형편없이 약할 수도 있다.

 솔직히 변칙성이 높고 선택지가 넓은 만큼, 경지가 낮을 땐 좌공이 유리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도는 사도. 치우침이 있는 무공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한계를 맞이하기 마련이었다.

 어느 순간 각성을 요하는 때가 온다. 언젠가 ‘벽’에 부딪치게 되었을 때, 좌공 수련자는 동공 수련자보다 몇 배나 힘든 고비를 감당해야 할 터였다.

 레이나는 이제 완연히 좌공 수련자가 되었다. 몸 전체에 고루 축적되어 있던 오라는 레인이 전수해준 심법의 구결에 따라 성질이 변화되어 남김없이 단전 안으로 갈무리되었다.

 이제 그녀는 다시는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전신에 고루 축적되어 있던 오라를 한곳으로 몰아넣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미 한 곳에 몰아놓은 기운을 다시 신체 구석구석에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이제야, 레인과 같은 ‘무인’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뭐랄까, 굉장히 상궤를 벗어난 무술이네요.”

 레인으로부터 무공을 전수받고 그것을 익힌 레이나의 감상이었다.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여겨질 터였다. ‘이레귤러’는 이 세상이 아닌 레인이니까.

“그렇긴 하지.”

“좌공이라니, 대륙 유수 검가에서나 행한다고 들었는데.”

“뭐?”

 레인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 세계에 내가기공이 존재했다는 말인가?

“스승님의 것과는 조금 달라요. 그들의 경우엔 마법진을 통해 끌어들인 기운을 이용해 몸속에 축적한 오라에 특정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들었어요.”

 이어진 레이나의 설명에 따르면, 검가의 구성원들도 평범하게 동공을 익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좌공을 수련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속성력을 축적하기 위함인 듯했다.

 특정 검가의 구성원들은 마법진, 그중에서도 집적진으로 특정 기운을 끌어와 그것을 몸 내부의 오라와 결집시킨다는 모양이었다. 좌공을 통해서. 그렇게 속성력을 얻는다고.

 좌공이라곤 해도 체내의 기운을 순환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인 레인의 그것과는 달리, 그저 명상을 통해 외부의 기운을 체내로 끌어들일 뿐이라는 모양이지만.

‘관심이 생기는군. 검가라고 했던가. 나중에 한 번 들러 볼 가치가 있겠어.’

“일단 전수한 심법과 검법을 익히는 데에 주력해. 어느 정도 완숙해졌다고 판단되면 다음으로 넘어갈 테니. 그때부턴 급격하게 성장하게 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 두고.”

 레이나가 중원의 무공에 익숙해지면 그 뒤부턴 주기적으로 단환을 제공할 생각이었다. 그 시기가 오면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게 될 터였다.

“알겠습니다.”

 단환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레이나는 레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렇게, 레인이 들인 첫 제자의 성장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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