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수련(2)
레인은 손을 흔들며 연무장을 벗어났다. 전날에 이어 또다시 단시간 만에 끝나버린 수업.
레이나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스승에게 성토하고 불평을 제기하자니 그녀의 성격이 그것을 용납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녀는 황망한 얼굴로 레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 * *
레이나는 결국 스승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했다. 그날 오후, 적당히 길목에 숨어 있다가 습격을 감행했다.
문제가 있었다면, 초감각을 지닌 초일류 검사에게 아무런 대책 없이 습격을 가했다는 점. 그리고 주저하는 마음에 굼뜨게 움직였다는 점.
“켁.”
기다렸다는 듯 후미로 뒤돌아간 레인이 수도를 내리쳐 뒷목을 가격했다. 레이나는 그 나이대의 아가씨가 내뱉었다 보기엔 조금 안쓰러운 신음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쯧.”
레인은 쓰러진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곤 그대로 그녀의 방에 옮겨다 주었다.
그 와중 레이나의 방이 어딘지 알지 못해 사용인들에게 수차례 묻고 다녔다. 그 탓에 백작가의 사용인들 상당수가 기절한 레이나의 모습을 목격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소란이 일었다. 그러나 레인은 그 소란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양,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방으로 유유히 되돌아갔다.
* * *
수업 이틀째부터 기절해서 자신의 방으로 실려 오게 된 레이나. 그녀는 그 사실을 주위에 널리 알린 사용인들로 인해 정신을 차리자마자 부모의 얼굴부터 마주해야 했다.
레이나로부터 이 말도 안 되는 수업의 내용을 전해 들은 백작은 눈을 끔뻑였다. 백작 부인은 노성을 터뜨렸다.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스승이 어디에 있어!”
백작 부인은 당장 레인을 레이나에게서 떼어놓아야 한다며 노발대발했다. 레이나는 진땀을 흘리며 그녀를 말렸다.
백작은 백작대로 잠시 고민했다. 그러더니 이내 마음을 굳히고 어찌어찌 부인을 타일러서 일을 무마시켜주었다.
아무래도 레인이 펼친 검무를 직접 견식한 것이 그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할 특별한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긍정적인 쪽으로 사고가 흘러간 것이었다.
당장의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레이나는 다음 날도 기절한 채 실려 왔다. 결국 레인은 백작 부인의 방문을 받게 되고 말았다.
“……”
노크도 없이 벌컥 열린 문.
고운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린 귀부인.
그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용인들.
이미 그 기척을 파악하고 앉아있던 탁자에서 일어나 기다리고 있던 레인의 시야에 들어온 광경이었다.
“이봐요!”
“예, 부인.”
“대체 무슨 짓이죠?”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레이나 말이에요!”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와 레인이 앉아있던 탁자를 탕, 하고 두드렸다.
레이나와 같은 금발에 한층 성숙한 얼굴. 상당한 미인이었다. 거기에 저도 모르게 눈이 가게 되는 가슴의 거대한 융기.
외견으로 보아 이 여인이 레이나의 친모임은 확실했다. 딱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모녀가 닮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감상을 말하자면-
‘예상보다 훨씬 젊네.’
백작이 중년인이었기에 백작 부인 또한 그럴 거라 여겼는데, 잘못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귀족 여성은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자와 나이 차가 크게 나는 경우도 많았고.
백작 부인 또한 어린 나이에 백작가로 시집와 일찍 아이를 가진 케이스일 터였다. 그렇다면 15살 아이를 둔 어머니라곤 생각하기 힘든, 젊은 외견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었다.
“돌려 말하지 않겠어요. 그 야만적이고 황당무계한 수업을 오늘부로 당장 중단해 주세요!”
레이나는 오늘도 레인의 말을 충실히 따라 두 차례 습격을 가했다. 그리고 두 차례 기절했다. 친모로서 자식이 기절해 있는 모습을 두 차례나 목격하고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그건 곤란합니다. 아직 진전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보니.”
“웃기지 말아요! 레이나의 성취를 높이기는 고사하고, 그런 식으로 가혹하게 대하면 오히려 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실로 정론이었다. 그렇지만 레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몸에는 전혀 무리가 가지 않게 조절하고 있으니까.”
몇 번이고 기절시키는 것이 상대의 몸에 좋은 영향을 끼칠 턱이 없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렇지만, 그 행동을 하는 주체가 레인이다. 애초부터 힘 조절을 함은 물론이요, 기절한 그녀의 몸 상태를 매번 생사의의 비전 의술을 이용해 최상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레인이 그 설명을 덧붙이자, 백작 부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믿기 힘든 이야기군요. 거기다, 설사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딸아이가 몇 번이고 계속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광경을 내가 용납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사실 다른 이유는 다 부가적인 것에 불과했다. 애초에 백작 부인이 분노하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레이나가 앞으로 차차 요령을 터득하면 기절하는 횟수는 그만큼 줄어들게 되겠죠.”
“이봐요!”
백작 부인이 지금까지 중 가장 분노한 표정으로 노성을 터뜨렸다.
“…….”
레인은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수업 첫날 그녀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검을 맞대봤습니다.”
“……?”
“딱 보니 알겠더군요. 이 가문에서 그녀는 외톨이었다는 것을.”
“무슨 소릴!”
“그녀의 무예에 대한 관심은 굉장하죠. 누구라도 그녀를 보면 그것을 알 테고.”
레인은 피식, 하고 웃었다.
“가족들은 전혀 응원해주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건--”
“그녀의 검에는 은연중에 소극적인 기질이 묻어납니다. 딱히 실력에 자신이 없어 하는 것도 아니고, 성격이 소극적인 것도 아닌데.”
“……?”
“마치 눈치를 봐 가면서 검을 익히기라도 한 것처럼.”
“……!”
“한 소녀가 있습니다. 그녀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전혀 그것에 호응해주지 않습니다.”
“…….”
“그래도 일단 혼자서라도 노력합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그것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건설적인 일이 아니겠냐며 다그칩니다. 그렇게 위축된 채 수련을 하다 보니 그 기질이 검에도 깃들어버렸습니다.”
“…….”
“그런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외톨이라고 하죠.”
백작 부인은 입술을 깨물고 레인을 노려봤다. 레인은 담담히 그 시선을 응시했다.
“이해는 합니다. 누가 뭐래도 레이나는 백작가의 일원. 부모로서 그녀가 제대로 교양을 갖춘 ‘아가씨’가 되어 ‘좋은 혼처’를 찾아가길 바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죠.”
레인은 목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검술에 매진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은, 방해가 되었을 테고.”
“…….”
“안 됐지만 이제 레이나는 제 뜻을 관철할 수 있도록 백작님께 공식적으로 허락을 얻은 상태입니다. 이젠 그녀가 제대로 된 무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셔야 합니다.”
“그, 그건 그렇다고 해도, 그 방법에 문제가 있지 않나요! 굳이 그렇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요!”
“그녀의 검엔 외톨이의 기질이 너무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 자신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은연중에 드러나는 소극적인 기질이. 거기다 홀로 수련하면서 몸에 밴 잘못된 습관들은 앞으로의 성장에 치명적입니다.”
레인이 백작 부인의 말을 잘랐다.
“보통은 혼자 수련한다고 해서 그 정도까지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녀의 경우엔 심리적인 면이 너무 반영되어버린지라.”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오랜 시간 몸에 밴 기질을, 습관을 통째로 뒤엎어야 합니다. 그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그녀의 성장은 무립니다.”
“…….”
“그것을 위해서 조금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백작 부인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 이내 몸을 홱 돌려 레인의 방에서 벗어났다.
“가겠어요.”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레인이 뒤쪽에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백작 부인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사용인들이 허둥지둥 그녀의 뒤를 따랐다.
레인은 그녀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침대에 풀썩, 하고 대자로 쓰러지듯 누웠다.
“못 해먹을 짓이군. 이것도.”
귀족인데다가 제자의 친모이기까지 한 상대. 대하기가 너무 껄끄러웠다. 어떻게든 설득시킬 수 있었지만.
“납득한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말이지.”
아마 앞으로 눈칫밥은 죽어라 먹게 될 듯싶었다.
“피곤하다.”
슬쩍 눈을 감으며 레인이 중얼거렸다.
* * *
기묘한 수업이 계속되었다.
스승은 매일 일정한 패턴으로 생활을 한다. 때 되면 밥 먹고 때 되면 잠을 잔다.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나서고 일정한 시간에 개인 수련 시간을 갖는다.
제자는 그런 스승의 뒤를 노린다. 어느 때건, 어떤 방법을 동원하건 습격을 가한다. 그것의 반복.
“스승님.”
그런 나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레이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스승과 대치했다.
“뭐야. 습격 방식을 바꿨어?”
“아뇨, 이번엔 습격을 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과제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수업은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뭐, 좋아. 묻고 싶다는 게 뭐지?”
“스승님의 저의를 묻고 싶습니다.”
“뭔 소리야.”
“스승님께서 제게 무언가 바라시고 계심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게 주어진 과제는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비효율적이다?”
“그렇습니다. 제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루에 습격을 가할 수 있는 횟수가 너무 한정되어 있습니다. 매번 기절시켜버리시니까 말이죠.”
“그래서?”
“하루 중 정신을 잃고 있는 시간이 너무 깁니다. 그래선 스승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이끌어 내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닌지.”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레인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왜 습격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된다고 생각하지?”
“예? 그거야, 스승님께서 항상 저를 기절시키시니까…….”
“그게 문제야.”
“예?”
“왜 ‘다음을 기약한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고려하지조차 않느냐고.”
“……?”
“미주알고주알 설명해줄 생각은 없다. 네가 스스로 고민해.”
거기까지 말한 레인은 그녀를 뒤로한 채 돌아보지도 않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이내 모습을 감췄다.
“다음을 기약한다?”
레이나는 레인이 떠난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가만히 중얼거렸다.
* * *
다음 날. 백작가 저택 부지 내의 산책로를 따라 적당히 걸음을 옮기고 있던 레인을 일단의 기사들이 습격했다.
“합!”
각자 기합을 내지르며 레인을 습격하는 중무장한 기사들.
레인은 사방을 점하고 날아드는 그들의 검격을 차분히 걷어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숫자의 우위는 기사들에게 있었지만 실력 차가 너무 컸다. 레인은 어렵잖게 기사들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혼란의 와중, 은밀하게 레인의 뒤를 노리고 날아드는 검격. 기감으로 그것을 느낀 레인이 가볍게 몸을 반 회전하며 검격을 걷어냈다.
“쳇!”
기사들을 부추겨 습격하도록 종용하고 그 빈틈을 노리던 자객, 레이나가 혀를 차며 물러났다.
그녀는 몇 차례 더 틈을 노려 습격을 가하다가 일행의 체력이 다해가자 지체하지 않고 몸을 빼 달아났다. 기사들은 지친 와중에도 그녀가 달아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레인을 막아섰다.
레인은 피식, 하고 웃었다.
“이제야 좀 머리를 굴리는군.”
그렇다. 습격 횟수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횟수를 늘리면 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습격에 실패하면 도주했다가 재습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의식을 잃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 없이 계속해서 습격을 감행할 수 있다.
실상 굉장히 간단한 방법이다. 한번 습격에 실패하면 다음은 없다고, 자신이 만든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던 레이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정직한 성격이라던가 하는 부분도 상당히 작용했을 터였다.
“좋은 발전이다. 제자.”
레인은 웃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도망치게 두지는 않을 테지만.”
조금 사납게 웃었다.
생각은 좋았지만, 경험은 여전히 부족했다. 이제야 몸을 빼내다니. 빠져나가기엔 너무 늦은 타이밍 아닌가.
레인은 필사적으로 진로를 가로막고 검을 휘둘러오는 기사 중 한 명에게 되려 접근해 등을 맞댔다. 단단하고 차가운 갑옷의 감촉이 등을 통해 전해져왔다.
철산고(鐵山?).
쩌엉!
풀 플레이트 아머 너머의 육신에 직접 충격이 전해졌다. 기사가 비명을 지르며 튕겨져 날아갔다.
“후우.”
레인은 곧바로 무너진 진형 바깥으로 몸을 빼냈다. 그리곤 한 차례 발을 굴렀다.
쾅!
위력을 약하게 조절한 진각. 그 추진력으로 신형을 확 하고 날려 도망치고 있는 레이나 바로 뒤까지 순식간에 다다랐다.
“꺄악!”
레이나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레인은 그런 그녀가 휘둘러 오는 검을 가볍게 붙들고 뒷목을 수도로 내리쳤다. 결국 레이나는 억, 하는 소리와 함께 기절하고 말았다.
“이, 이익!”
분한 표정을 짓는 기사들. 레인은 그들에게도 자비 없이 돌격해 들어갔다.
“억!”
“우, 우리까지?”
레인은 기사들을 하나하나 무력화시키고 완전히 기절시켰다. 일단 자신을 습격했으니 그에 대한 ‘대가’였다. 이 또한 레이나가 고려하고 감수해야 할 ‘변수’가 될 터였다.
주위가 정리되고, 레인이 축 늘어진 몸뚱이들을 한군데로 모았다. 그리고 모조리 치료했다.
“이것도 상당히 귀찮은데.”
툴툴거리면서도 착실하게 치료하는 레인이었다. 애초에 크게 다치진 않도록 조절하며 상대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를 끝마칠 수 있었다.
레인은 레이나를 안아 들었다. 그리곤 그대로 방으로 옮겨다 주었다.
물론 기사들은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