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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수련(1) (71/249)
  •  71화. 수련(1)

     레인이 정식으로 레이나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백작 저택에 도착하고 3일이 지난 뒤였다.

     일단 명목상의 이유는 먼 길을 찾아온 레인을 배려해 여독을 풀 시간을 준 것이라나. 실질적인 이유는 수련을 위한 연무장과 기타 이것저것을 준비하는 시간인 듯싶었지만.

     똑같은 설명이라도 상대가 조금 더 기분 좋을 법한 내용을 고른다. 이런 게 귀족의 방식이군, 하고 레인은 생각했다.

     각설하고.

     수련을 위해 마련된 연무장은 상당히 넓었다. 본래는 다른 기사들이 쓰던 것을 요 3일간 깨끗하게 비웠다는 모양이었다.

     눈앞에 편한 수련복 차림으로 목검을 든 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제자, 레이나. 한데 모아 시원하게 질끈 묶은 머리칼을 바람에 나부끼며 진지한 얼굴로 타이밍을 재고 있는 중이었다.

    “부담 갖지 말고 들어와.”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대련이었다. 레인이 목검을 까닥이며 레이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앗!”

     기합성과 함께 레이나가 바닥을 박찼다. 접근과 동시에 상단 베기.

     레인은 반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만으로 그것을 회피했다. 목검이 손가락 한 마디 차이만큼을 두고 얼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연격으로 날아드는 횡 베기. 단순한 횡 베기가 아니었다. 변초를 넣었는지 검이 살짝 흔들리며 세 방위를 동시에 점하고 날아들었다.

     그것을, 레인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두 걸음 접근해 간격을 없앰으로 무력화시켰다.

    “!”

     갑작스러운 접근에 놀랐는지 급하게 땅을 박차 뒤쪽으로 물러나는 레이나.

     추격해서 몰아치면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레인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실력을 보기 위한 대련이니까.

     한 차례 숨을 고르고 다시 돌격해오는 레이나. 처음과 같은 상단 베기였다. 레인이 이건 또 뭔가 하는 얼굴로 일단 회피했다. 방금과 똑같이 뒤쪽으로 반걸음 이동해서.

     그러자 레이나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신형을 급회전시켰다. 전진하며 회전력이 실린 검격을 뿌렸다. 애초부터 물러날 것을 기다렸다는 듯 갑작스러우면서 자연스러운 태세 전환.

    “······.”

     레인이 가볍게 응수했다. 이번엔 피하지 않고 목검으로 받아냈다. 그러자 레이나가 맞부딪힌 검을 회수, 연속해서 회전하며 2격, 3격, 4격을 날렸다.

     흠잡을 데 없는 연속공격. 상당한 수련을 거쳤음이 드러나는 좋은 검격이었다. 그렇기는 한데.

    ‘너무 뻔해.’

     굳이 그 타이밍에 처음과 같은 상단 베기를 해온 것도 그렇고, 일부러 처음과 같은 대응을 하자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던 것도 그렇고.

    ‘의도가 훤히 읽히는군.’

     4격까진 목검으로 받아내 줬지만, 그 이상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레인은 레이나가 5격을 날리기 위해 몸을 회전시키는 틈을 노려 회전의 축이 되는 다리를 살짝 목검으로 찔렀다.

    “큭!”

     한순간 신형을 비틀거린 레이나가 급하게 다시 거리를 벌렸다.

    “일단 더 덤벼봐. 조금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으니까.”

     레인은 방금의 격돌로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일단 조금 더 정보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대련할 것을 지시했다.

    “예!”

     한번 숨을 고르고 힘차게 대답하는 레이나. 다시 자세를 잡은 그녀의 얼굴에서 열의가 엿보였다. 힘차게 발을 내디디며 검을 휘두른다.

     그러나, 열의와는 반대로-

    “윽.”

    “큭!”

    “으윽!”

     연신 뒤로 밀려나기만 하는 그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나는 횟수가 많아졌다.

    ‘역시 이 녀석. 너무 단조로운데.’

     검로가 단순하다던가 익힌 검법이 단조롭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검법은 충분히 다채롭고 변칙적이다.

     다만, 그것을 운용하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변초를 넣은 공격임에도 너무나 손쉽게 파악된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 필살 공격을 내지른다. 이건 마치…….

    “그냥 어디서 혼자 죽어라 수련만 한 모양이네.”

     그나마 가문의 기사들과 조금씩은 대련은 해왔는지 최소한의 검식 운용은 한다. 수련이 깊은 만큼 이 정도면 웬만한 기사들은 눌러버릴 수 있을 터였다. 효율이 압도적으로 떨어지지만.

     요컨대, 그런 것이다.

    웬만한 기사 정도는 1:1로 맞붙는다면 이길 수 있다. 그러나 페어를 짜서 2:2로 맞붙는다면, 확실하게 패한다. 물론 그녀가 속한 팀이.

     레이나는 중원의 그것에 비유하자면 심산유곡에서 홀로 수련만 하다가 막 강호에 발을 들인 신출내기와도 같았다.

     일신에 지닌 힘은 상당하다. 그런데 그것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질 못한다. 전황을 보는 눈도, 상황을 읽는 통찰력도 없다. 쉽게 말해 경험의 부재가 심각하다.

     몇 번 더 검을 맞대본 뒤, 레인은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만.”

    “예!”

     힘찬 대답. 레이나가 뒤로 물러나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

     실력을 본다고 했으니 이젠 평가를 해야 할 시간.

     본인보다 두 살 많은 소녀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인은 지금부터 잔뜩 혹평할 예정이었던 탓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가요?”

     물어오는 목소리에 조금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어쩐지 조금 마음이 약해졌다.

     레인은 생각했다. 조금은 돌려서 말하자고.

     첫 평가부터 너무 박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 의욕이 완전히 죽진 않도록, 그러면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정진할 수 있도록.

    “…….”

     젠장. 이런 건 너무 어렵다.

    “총체적 난관이네.”

     레인이 적당히 돌려서 말하려던 생각의 노선을 순식간에 갈아타는 순간이었다.

     어쩌겠는가. 그런 식으로 말을 포장하는 데엔 절망적일 정도로 재능이 없거늘.

    “…….”

    “솔직히 말하자면, 심각한 수준이군.”

    “그렇게나 부족한가요?”

    “너 외톨이지?”

    “네?”

    “네가 휘두르는 검이 딱 그 짝이더군. 난 혼자서 외롭게 검을 익혀왔어요~ 하고. 아주 선전을 하고 있다고.”

    “……”

    “혹시 자만하고 있었어? 가문의 기사들 정도는 어찌어찌 이길 실력이 되니 나 정도면 상당히 쓸 만한 실력이지 않을까, 하고.”

    “……”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모양이네.”

     레인이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피식, 하고.

    “여기까지만 하지. 오늘은.”

    “예? 하지만 아직 시작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니, 더 이상은 의미가 없어. 먼저 뜯어고쳐야 할 게 있으니까. 대신, 숙제를 주지.”

    “숙제?”

    “별로 어려운 건 아니야.”

     그렇게, 첫날의 수업은 가볍게 마무리되었다.

     * * *

    <>

     스승님으로부터 숙제를 받았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지시였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일단 따르기로 했다.

     먼저, 기사들이 한창 수련 중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어? 레이나 아가씨?”

    “검술 지도를 받고 계시던 것 아니었습니까?”

     기사들의 의아한 표정, 그리고 목소리.

     첫 수업부터 스승님께 잔뜩 혹평을 받았다고, ‘더 이상의 수업은 의미가 없다’는 말과 함께 수업이 파장 났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색한 변명을 했다.

    “숙제가 있어서요. 이전에 저와 함께 외유를 나갔던 분들을 잠시 좀 볼 수 있을까요?”

     기사들은 여전히 의아한 기색이었지만 나는 애써 그것을 흘려넘겼다. 그리고 이내 내 앞에 모인 일단의 기사들에게 물었다.

    “혹시 이전에 펠라키 산맥에서 산사태가 난 직후에 치렀던 전투. 기억하시나요?”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사들의 대표인 크레일 경이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답해왔다.

    “그럼 크레일 경. 혹시 그때 몬스터를 몇 마리나 처리하셨는지, 기억하시나요?”

    “예?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스승님이 숙제를 내주셔서…….”

    “무슨 말씀이신진 잘 모르겠지만, 대답은 해드리겠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스무마리 정도를 처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뇨. 그럼, 다른 분들은?”

    “전 아마 열다섯 마리쯤?”

    “저도 그 정도였던 듯합니다.”

    “……”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전 이만.”

     나는 여전히 의아한 기색인 기사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곤 곧바로 저택 본관에 위치한 내 방으로 직행했다.

    “아, 아가씨?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

     본관 내부로 들어서자 사용인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내게 물어왔다. 필시 내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진 탓이겠지.

     하지만, 그 염려가 담긴 질문에 나는 단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어째서?’

     머릿속을 계속해서 부유하는 번뇌가, 어쩐지 정리되질 않는 잡생각이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했다. 사고가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해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대체 무어라 정의해야 하는 걸까. 나도 모르겠다.

     그저 발걸음을 옮겨 방 안으로. 곧바로 침상으로 몸을 날렸다. 부드러운 이불에 쓰러지듯 얼굴을 묻었다.

    [아마 스무 마리 정도를 처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 질문에 가볍게 대답하던 기사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기사들에게 그 질문을 할 것을 종용한, 나보다 두 살 어린 스승님의 모습 또한.

     그래, 스승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대충 곁눈질로 살펴본 것만으로도.

     기사들이 처리한 몬스터들의 숫자가 내가 처리한 몬스터의 숫자를 가볍게 상회한다는 것을.

     왜지? 왜 그렇지?

     분명 대련을 통해 내 실력이 그들보다 윗줄임을 확인했다. 적어도 그들이 내게 일부러 져준 것이 아님은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걸까.

     오만했었던 걸까. 내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은 그저 자만에 불과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수련은 잘못된 것이었던 걸까.

     이전에 펠라키 산맥에서 난전이 벌어졌던 때. 그 당시에 이런 판단을 내렸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이 자리에서 2번째로 강력한 전력’이라고.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니. 자신이 창피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다. 나는 대체 뭘 믿고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일까.

    “…….”

     그래.

     분명 스승님이 내게 ‘총체적 난관’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은 이것과 관련이 있을 터다. 내게 무엇이 부족한지 확실하게 꿰뚫어 보고 계신 것일 터.

     굳이 기사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도록 지시하신 건, 내가 그로부터 무언가 깨닫기를 원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대체 무엇이 부족한 걸까. 하나씩, 하나씩 되짚어 보자.

     생각해 보자. 돌아보고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었는지, 그 답을 도출해 내어 내일 스승님께 보고하자. 그렇게 하면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시겠지.

     * * *

     다음 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레이나는 레인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밤새 생각했던 자신의 결점을 쏟아냈다.

     살짝 감정이 북받쳤는지 두서없이 길기만 하고 전달력은 한참 떨어지는 레이나의 이야기.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모두 덧없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두려움에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 나오곤 했다.

     레인은 그런 레이나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일체의 표정 변화도 없는 얼굴로. 간간이 ‘그런가’, ‘그렇군’ 하고 짧은 추임새만 넣어가며.

     이야기를 끝마친 레이나가 살짝 숨을 골랐다. 레인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툭 던지듯이 말했다.

    “알았으면 됐다.”

    “……”

     레이나는 살짝 서운해졌다. 자신이 그렇게나 무거운 마음으로 토해낸 말들을 너무나도 가볍게 정리해 버리는 스승님이 조금 야속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깊게 받아 들여주면 좋을 텐데.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말이 곧장 서운함을 날려버렸다.

    “알면 뜯어고칠 수 있으니까. 얼마든지.”

     그 말에 가슴 속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까지 해 온 노력을 모두 부정당한 듯한 그 감각에서 비로소 해방됐다.

     레이나는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스승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 고로, 오늘부터 특별 수업이다.”

    “예?”

     당장 수업을 시작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특별 수업이 웬 말인가.

    “과제를 주지. 과제를 완수하기 전까지는 이외의 어떤 수업도 진행하지 않을 거다.”

    “······.”

    “과제 완수 조건은 내게 습격을 가해 타격을 입힐 것.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든.”

     갑작스레 무언가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레이나는 당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과제? 거기에 대련도 아니고, 습격? 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이어지는 레인의 설명. 그것을 간추리자면 이러했다.

     습격을 성공시켜라.

     장소도, 시간도 개의치 않아도 좋다. 식사 중일 때를 노리든 수면 중인 때를 노리든 상관없다. 홀로 습격을 해도 좋고 가문의 기사들의 도움을 받아 마무리 일격만을 먹여도 좋다.

     그 어떤 수단을 써도 좋으니 자신에게 상처를 입혀라. 그것에 성공할 때까지 그 어떤 다른 수업도 진행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그것을 전해 들은 레이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농담이시죠?”

    “아니.”

     그렇게, 괴랄한 특별 수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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