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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인맥 형성(3) (70/249)
  •  70화. 인맥 형성(3)

     로엘은 메이엘의 연구소를 나서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참고로 메이엘의 답변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였다. 로엘은 그 대답을 이미 반쯤 넘어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지만.

     로엘은 상념에 잠긴 채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 사업에 대한 생각이었다.

     생명공학은 중요한 키워드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을 통해 재배한 작물을 이용해 여러 가지 기호 식품을 만들어내야 했다.

     우선 작물을 키울 광대한 평야 지대를 매입해야 했다. 그리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지구의 기호 식품 제작법. 그것을 시행착오 겪어가며 구현해줄 실력 있는 요리사도.

     작물을 키울 이들과 그것을 이용해 판매할 제품을 대량생산할 인부도 구해야 했다. 그들을 관리 감독할 사람 또한.

     판매할 루트야 테페론 상단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개척이 가능하다. 판매 대상을 부유층으로 한정한 값비싼 기호 식품이 상품이 될 테니 판매망 구축도 그리 어렵지 않을 테고.

     문제는 시간. 당연한 말이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이익이 극대화된다.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이유도 있고.’

     아예 전 세계적인 사업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음으로 벌여야 할 사업도 많은데 이것에만 몇 년씩 시간을 투자할 수도 없다. 역시 공간 계열 마법사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했다.

    “머리 아프네.”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로엘은 승강기에서 내려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한 차례 수련(운기행공)을 하고 저녁 식사까지 마친 뒤에 다시 공방에 틀어박힐 생각이었다.

    “오늘은 못 만나나 했거늘. 이제야 오는구나.”

     그런데 마침 숙소 근처를 지나고 있는 로카인을 만났다. 보아하니 숙소까지 찾아왔다 아무도 없자 그냥 돌아가던 길인 모양이었다.

    “절 찾아오신 건가요?”

    “그래. 공방에 먼저 들렀다가 도통 보이질 않기에 숙소까지 찾아와봤다. 얼굴 보기 한번 힘들구나. 테페론 상단에라도 다녀온 게냐?”

    “그건 아닙니다. 초대를 좀 받아서 메이엘 양의 연구실을 방문하고 오는 길입니다.”

    “메이엘 플루비나 말이냐? 그 녀석과는 또 언제 친해진 건지. 어제는 캐틀린의 아들 녀석을 치료해 줬다지?”

    “알고 계셨습니까?”

    “오랜만에 인사차 찾아갔다가 직접 들었다. 깨어난 아들 녀석이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있다고 좋아하더군. 조만간 널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하더구나.”

    “치료가 잘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놈의 겸양은 시도 때도 없이 떨어대는구나.”

     로카인이 헛헛, 하고 웃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냥 한 번 얼굴이나 보려고 들렀다. 실적을 올린 것도 치하하고, 오랜만에 체스도 좀 두고, 겸사겸사.”

    “편의를 너무 봐준단 이야기가 나돌면 곤란한 것 아니었습니까?”

    “이 정도는 상관없다. 딱히 네가 내게 뭔가를 부탁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다른 제자 놈들도 가끔씩 찾아가곤 하니까.”

    “그런가요.”

    “일단 들어가자. 한 게임 하면서 이야기하자꾸나. 이번엔 나도 절치부심했으니 쉽지 않을 게다.”

    “기대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 구역을 가로질렀다. 그런 두 사람을 주위 사람들이 계속해서 곁눈질했다.

     * * *

     몇 가지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로카인이 진중한 얼굴로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분위기 자체는 가벼웠다.

     그런 와중, 로엘이 언젠가는 물어두려 했던 질문을 입에 담았다. 나이트(Knight)를 전진 배치하며.

    “혹시 차기 탑주 자리에 내정되지 않고도 공간 마법을 배울 방법 같은 건 없나요?”

    “무슨 소리냐?”

    “다른 것은 몰라도 공간 이동, 그리고 아공간. 이 두 마법만큼은 배워두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물어두려고요.”

     일단 공간 마법에 관한 문제는 그 마법을 익힌 이와 친분을 쌓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좋은 결과는 그것을 직접 전수받는 것이다. 효율성이 비교되질 않는다.

    “공간 마법은 일인 전승이다. 오로지 차기 탑주 자리에 내정된 이에게만 전수되지.”

    “예외는 없나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규칙이 깨어지진 않는다.”

    “…….”

    “다만 특수한 케이스는 있다. 공간 이동은 무리더라도 아공간 정도는 소유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아공간 마법을 배울 방법이 있는 겁니까?”

     솔직히 둘 다 안 될 거라 생각했다. 그냥 아쉬운 마음에 뱉어본 말일 뿐인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로엘의 목소리에 자연 힘이 들어갔다.

    “그건 아니다. 아공간 마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공간 마법사가 제작한 아공간의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이지.”

    “!”

    “마탑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나 큰 은혜를 입힌 자들에겐 탑주가 아공간을 내어준다. 그게 관례처럼 굳어졌으니 말이다.”

    “관례?”

    “과거 봉인에서 깨어난 마룡이 마탑을 습격했을 때, 도움을 준 용병왕에게 보답으로 아공간을 내어준 일로부터 비롯된 관례라고 하더군. 요즈음은 좀 변질되어서 부탑주쯤 되면 무조건 아공간을 받는다만.”

    “마탑에 지대한 공헌을 하면 된다라.”

    “그것도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지. 솔직히 네가 원한다면 아공간 하나쯤 제작해서 선물해 주는 게 뭐가 어렵겠냐마는, 역시 형평성이 걸려서 말이다.”

     개인의 자질에 따라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엔 한계가 있지만, 로카인 정도씩이나 되는 인물이 제작한 아공간이다. 그 크기는 거의 도시 하나와 맞먹을 정도. 일부를 떼어 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다.

     게다가 로엘에게 전수받기로 약속한 지식의 가치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아공간 정도는 선물로 내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렇지만 로엘과 로카인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로엘이 아공간을 선물받기라도 했다간 단번에 소란이 일어나리라.

    “그리고 아공간을 받더라도 내가 아닌 내 후계자로부터 받아야지. 이 늙은이가 만든 것을 써서 뭘 하겠느냐.”

    “……?”

    “현대의 공간 마법은 과거의 것에 비해 영 수준이 떨어지니 말이다. 유적에서 찾아낸 자료를 통해 복구해낸 것에 불과하니까. 아공간 마법도 마찬가지라서, 제작자가 사망하면 아공간도 함께 소멸해 버리지.”

     한마디로 로카인이 제작한 아공간은 앞으로 십수 년 내로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 또한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사람이니까.

    “어쨌든 방법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으니 됐습니다. 물어 두길 잘했네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받을 이야기까진 아니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하구나.”

    “딱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요는 마탑 소속 마법사 모두가 인정할만한 업적만 쌓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보통 그런 것을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 케이스가 있다는 설명만 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담지 않았으니까.

     다만 로카인은 그것을 달성하기 힘든 일이라 여겼고, 로엘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받아들였다. 그 차이로 인한 인식의 괴리가 일어난 것이다.

    “헛헛. 그것참. 이걸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야 할지.”

     로카인은 저도 모르게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참고로, 그날도 로카인은 패배를 설욕하지 못했다. 로엘은 자신도 바쁜 주제에 한 판 더 두자고 매달리는 승부욕 가득한 노인네를 간신히 뿌리치고 식당으로 향했다.

     * * *

     며칠 뒤, 메이엘이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표해왔다. 로엘은 그녀의 연구실을 찾아가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주기적으로 지식을 전수할 것을 약속했다.

     공증인으론 로카인을 세웠다. 지난번에 로카인이 찾아왔을 때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기에 그 부분은 빠르게 처리되었다. 메이엘이 지식만 전수받고 입 싹 씻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런데 그로부터 또 며칠 뒤. 약속대로 지식 전수를 위해 메이엘의 연구실을 찾아간 로엘은 또 한 사람의 차기 탑주 후보를 마주하게 되었다. 카른과 마찬가지로 3약에 속한 인물이었다.

     이름은 루나. 평민 출신이고 메이엘 플루비나와 같은 키메라 제작자였다. 참고로 그녀는 메이엘의 파벌에 속해 있었다.

    “반갑습니다. 루나 양. 친목회 이후로는 처음 보는군요.”

    “바, 반가워.”

     그녀가 이 자리에 나타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메이엘의 제안으로 로엘에게 가르침을 부탁하러 온 것이다.

     로엘은 살짝 놀랐다. 별다른 접점도 없었던 기존 세력이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상황이라니. 전혀 상정치 못했다.

     아무리 메이엘의 파벌에 속했다지만 마냥 상하관계인 것만도 아닐 텐데, 대체 메이엘은 그녀를 어떻게 끌어들인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이쪽에 관한 것은 어떻게 설명한 것일까.

    “이 녀석은 내 동생 같은 녀석인데, 요즘에 슬럼프거든. 혹시 가능하다면 함께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을까? 물론 네 계획에도 동참할 거야. 탑주님을 공증인으로 삼는 절차도 거칠 거고.”

    “······.”

    “어차피 나 하나로는 한계가 있잖아? 이 녀석 실력이라면 내가 보증할게.”

    “어, 언니.”

     루나가 안절부절못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꽂힌 일엔 미친 듯이 열중하는 성격이지만 그 외엔 우유부단한 면이 강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남의 위에 서기보단 아래에서 지시를 따르는 쪽이 마음에 맞았다. 후계자 경쟁이 시작되고 누구보다 빨리 메이엘의 파벌에 들어간 인물이 그녀였다.

     참고로 로엘의 생각과는 다르게 두 여인은 이해관계보단 신뢰 관계로 얽힌 사이였다. 루나는 메이엘이 내린 로엘에 대한 평가를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안 될까?”

     메이엘은 메이엘대로 아끼는 동생에게 좋은 기회를 베풀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자신이 혹시라도 후계자 경쟁에서 최종 승자가 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스스로의 역량을 높이도록.

    “안 될 것 있나요. 다만, 그 전에 루나 양의 연구실을 찾아가 봐도 될까요? 지금까지 해 온 연구를 한번 살펴보고 싶네요.”

     로엘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차피 메이엘을 시작으로 인원을 점차적으로 늘릴 생각이었으니까. 그래도 최소한의 실력 검증은 해야 하겠지만.

    “물론이지. 보면 놀랄 거야. 이 녀석, 성격이 좀 우유부단해서 그렇지 실력 하난 굉장하니까.”

     메이엘은 자신감에 찬 얼굴로 웃었다.

     * * *

     루나의 개인 연구실을 둘러본 뒤, 로엘은 첫 수업을 개시했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로엘도 처음이었기에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준비해 온 내용을 전부 가르친 후, 복습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공방으로 되돌아왔다.

    “오늘은 좀 늦었네?”

    “일이 좀 있어서 상층에 다녀왔습니다.”

     승강기에서 내린 로엘에게 인사를 건넨 것은 공방에 입문한 첫날 시비를 걸려 했던 사내였다. 지금은 로엘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져 대하는 태도 또한 크게 바뀌었지만.

    “주문한 물량은 어찌어찌 다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풍족한 보상은 사람의 인성도 바꾸는 힘이 있었다.

    “조만간 제품 두 종류 더 추가될 겁니다. 최근에 상단에 샘플을 넘겼습니다. 홍보하는 기간만 지나면 바로 대량 생산 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분들께도 전해주세요.”

    “인원이 부족할 것 같은데?”

    “추가해야죠. 지원자 좀 받으려고요.”

    “난리가 나겠군.”

     현재 공방에서 로엘에게 고용된다는 것은 돈방석에 오른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너도나도 지원하겠다고 덤벼드리라.

    “그럼, 수고하세요.”

    “그래.”

     로엘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개인 작업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최근 열심히 제작한 여러 쇳덩어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후우.”

     자리에 앉아 어제 하던 것을 이어 제작에 몰두했다. 그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완성했다.”

     로엘이 완성된 쇳덩이를 조심스럽게 진열장으로 옮겼다. 진열장엔 그 외에도 지금까지 만든 여러 쇳덩이가 들어차 있었다. 모두 그 종류가 달랐다.

     새로 제작한 무구들의 최대 강점은 역시 따로 예비 탄환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마력을 뭉쳐 물리력을 부여한 조그마한 덩어리로 금속 탄환을 대체했다.

     원리는 간단했다. 총기 내부에 새겨진 마법진이 마력 탄환을 생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통의 금속 탄환 날리듯 날리면 되는 것이고.

     그 간단한 원리를 구현화 하기가 극악이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 어려웠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다 좋은데 너무 부피가 크네. 그때그때 한두 개씩만 들고 다닐 수 있겠군.”

     로엘이 스스로 어깨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모든 무구를 상황에 맞게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으려면 역시 아공간이 있어야겠지. 특히 저건.”

     그의 시선이 그가 제작한 여러 작품을 중 하나로 향했다. 흐뭇한 감정이 담긴 시선.

     지금까지 만든 무구들 중 가장 높은 위력을 지닌 물건이었다. 그 자체의 무게만으로 100킬로그램을 넘어가는 고화력 무구.

     현대의 중화기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마력포(가칭).

    “…….”

     잠시 후 눈길을 거둔 로엘이 개인 작업실을 나섰다. 슬슬 다음 일정을 위해 움직일 시간이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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