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인맥 형성(2)
다음 날.
로엘은 이른 시간부터 상단을 찾아갔다. 전날 캐틀린의 아들을 치료하느라 미뤄뒀던 것을 하루걸러 바로 처리한 것이다.
새로 개발한 물품은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쓸 만하긴 하지만 이전에 내놓았던 물품들에 비해선 임팩트가 떨어진다고 할까. 그렇다고 예상되는 수입이 적은 건 아니었지만.
크게 기뻐하며 배웅하는 상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탑에 복귀한 로엘은 식당 구역으로 올라가기 위해 승강기에 섰다. 그런데 이날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과 마주치게 되었다.
바로 얼마 전에 본 얼굴이었다. 4강 중 한 명인 메이엘 플루비나. 그녀 쪽에서 먼저 로엘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 밖에 다녀온 모양이네? 어디 갔다 와?”
“반갑습니다, 메이엘 양. 일이 있어서 잠시 테페론 상단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네가 계약했다는 그 상단?”
“네.”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던 중, 승강기가 도착했다. 두 사람은 승강기에 올라 버튼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목적지가 같았다.
“식당으로 가는 거야?”
“네.”
“마침 잘됐네. 내가 좀 일이 있어서 식사가 늦었거든.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는데, 함께 가자. 괜찮지?”
“물론 저는 좋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로엘은 지체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인재와 친분을 다지는 일을 그가 마다할 턱이 없었다. 상대가 미인이니만큼 더더욱.
두 사람은 그대로 식당에 들어서 각자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그리곤 한적한 식당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메이엘이 미간을 슬쩍 좁혔다.
“굉장히 균형 잡혀 보이는 식사네. 꼭 엘리제 파르테인처럼.”
“그런가요?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 말을 몇 번 들었는데. 제 성향이 확실히 그분과 비슷하긴 한 모양이네요.”
“그래도 그 녀석보단 네가 더 낫지. 그 녀석은 인형 같다고 해야 하나. 영 재미가 없어서 말이다.”
“좋게 봐주시니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고, 메이엘 양의 식사는 굉장히 힘이 가득 찬 느낌이네요.”
고기와 야채가 적당히 조화를 이룬 로엘의 식단과는 다르게, 그녀의 접시엔 고기 종류 음식만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음식 취향에서마저 성격이 연상되었다.
“음식이라도 마음껏 못 먹으면 어떻게 버티냐~. 요즘 바빠 죽겠다 보니 이게 삶의 낙이다, 낙.”
“그러고 보니 키메라 관련 연구를 하고 계셨죠.”
그녀의 경우엔 친목회에서 자신의 분야를 여러 차례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렇기에 그리든의 경우와는 달리 특기 분야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말과 동시에 로엘의 눈빛이 일순 번뜩였다. 생각해 보니 좋은 기회였다.
그녀와 적절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다음 사업에 큰 도움이 되리라. 물론 쓸데없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후계자 경쟁과는 무관한 일이라 공언해야 하겠지만.
“왜 그렇게 빤히 봐?”
“일전에 저보고 연구실 구경 오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랬지.”
“혹시 오늘 찾아가면 실례일까요?”
“실례랄 것까지야 있나. 밥 먹고 같이 가자. 제대로 구경시켜줄게.”
“감사합니다.”
* * *
로엘은 식사를 마친 뒤 마탑 상층에 위치한 메이엘의 연구소를 찾아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온갖 복잡한 설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특히 몇 개의 거대한 시험관이 눈에 띄었다. 정체불명의 생명체와 그 생명체를 감싼 투명한 액체로 가득 찬 시험관이었다.
“여기가 내 개인 연구실이야. 단체 연구실은 보고 싶더라도 참아줘. 내 권한으로도 그곳에 외부인을 출입시킬 순 없으니까.”
참고로 공방과는 다르게 연구실은 개인 연구실과 단체 연구실이 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좋은 작업실이네요.”
“그래? 솔직히 너무 좁다고 생각하는데. 장비는 충분히 갖췄는데 공간이 영 부족해.”
“하하.”
열정이 넘치는 여인이었다. 로엘이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그로부터 대충 30분간, 로엘은 이것저것 소개받는 시간을 가졌다. 중간중간 로엘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저게 최근에 제작 중인 키메라의 연구일지인가요?”
대충 연구실을 다 둘러보고 탁자에 마주 앉아 차 한 잔을 기울이던 도중, 로엘이 구석에 놓인 종이 뭉텅이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내용은 겉면에 쓰인 글자로 대충 유추했다.
“응. 그런데 영 진전이 없어. 이론은 괜찮은 것 같은데, 실험만 했다 하면 실험체가 금세 망가져 버린단 말이지. 벌써 다섯 번째야.”
“한 번 봐도 될까요?”
“상관없어. 어차피 조만간 접을 생각이었으니까.”
로엘은 종이 뭉치를 집어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
대형견을 베이스로 삼아 제작 중인 키메라였다.
참고로 키메라는 베이스가 되는 생물이 인간을 잘 따를수록 제어하기 쉬워진다. 그렇기에 많은 마법사가 개를 베이스로 키메라를 제작하곤 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딱히 제작 과정에서 실수한 것도 없고, 이론도 잘 짠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이 부분이 문제인 것 같군요.”
로엘이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뭔가를 쉴새 없이 토로하던 메이엘이 말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바로 그녀가 벌떡 일어나 로엘 옆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느 부분이?”
“여기, 이 부분이요.”
“……?”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로엘이 손가락으로 짚은 부분을 살폈다. 그렇지만 이상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이론이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제가 마탑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돼서 마법학 쪽은 좀 약합니다. 꾸준히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 메이엘 양에 비할 바는 아니죠. 그러니 그 부분은 제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마법학과 무관한 쪽에 있다는 거지?”
“네. 문제가 되는 쪽은 개의 신체적 특징입니다.”
“그렇게 말해도 잘 와 닿지 않는데. 자랑 같겠지만, 개의 신체 구조에 대한 거라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거든.”
애초에 그러지 않았다면 키메라 제작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개라면 이미 질리도록 해부해 봤다. 마탑인 만큼 관련 자료도 수없이 많았다.
“단순히 신체 구조의 문제가 아닙니다.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는 게 문제라서.”
“호르몬?”
생소한 단어. 메이엘이 고개를 기울였다.
“쉽게 말해서 신체에 모종의 반응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문제는 이 신체 개조방식이 부신을 너무 자극한다는 겁니다. 부신피질호르몬이 과잉 분비 될 정도로.”
“?”
“아마 대소변을 보는 횟수가 이상할 만큼 늘어나고 털이 잔뜩 빠졌겠죠? 끝내는 근육이 쪼그라들고.”
“어, 어떻게 알았어?”
“부신피질호르몬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면 그렇게 되거든요. 이렇게 인위적인 조작으로 잔뜩 분비되게 만들었으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을지 눈에 선하네요.”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종이 좀 가져올 테니까! 메모 좀 하자!”
메이엘이 급히 근처에서 아무 종이나 집어다가 탁자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놨다. 그 즉각적인 반응에 로엘이 슬쩍 웃었다.
* * *
개의 신체에 작용하는 호르몬의 존재, 그리고 그 종류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다 보니 20분이 훌쩍 지나갔다.
과잉 분비되면 문제가 되는 부신피질호르몬. 역시 과잉 분비되면 뼈가 물러지는 상피소체호르몬. 반대로 호르몬 분비량이 감소되면 문제를 일으키는 갑상선 호르몬이나 인슐린. 그 외 기타 등등.
메이엘이 바쁘게 손을 놀렸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로엘은 모두 가볍게 답해주었다.
다른 이가 본다면 너무 쉽게 지식을 내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로엘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가진 지식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연구실을 둘러보고 그녀를 여러모로 지켜본 결과 협력을 맺어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이 정도 호의는 베풀어야 이야기가 쉬워지지 않겠는가.
어차피 직접적으로 그녀의 파벌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다른 후계자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터였다. 메이엘은 그 특유의 성격 때문에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는 모양이니.
애초에 공방 마법사가 그녀를 가르친다고는 생각지도 못하겠지.
물론 후계자 경쟁이 끝날 때까지 협력관계임을 외부에 공표하진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와 자주 교류를 갖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오해가 빚어질 소지가 있지만, 그쯤이야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이전처럼.
“당장 계획서를 새로 짜야겠어.”
“이번엔 성공하시길 기대할게요.”
“갑자기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뭐야? 이만한 지식을 막 전수해 줘도 돼?”
“뭘 그리 놀라시나요. 앞으로 전수해 줄 지식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뭐?”
놀라서 토끼 눈을 한 메이엘의 얼굴을 로엘이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그래도 메이엘 양이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
빙글빙글 웃는 로엘의 얼굴을 메이엘이 유심히 관찰했다. 그녀 특유의 활기찬 느낌 대신 진중한 느낌이 얼굴에 가득했다.
“사실, 제가 이번에 구상하는 일이 있는데…….”
키메라 제작 분야는 어떤 의미로는 ‘생명공학’이다. 정확히는 그 기반이 되는 학문이 생명공학이다.
그리고 생명공학은 로엘이 벌일 다음 사업의 핵심 키워드였다. 그 분야에 정통한 메이엘 만큼 로엘이 협력을 구하기 적합한 상대도 없었다.
보통 지구인이 생명공학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은 뉴스에 보도될 법한 거창한 것들일 터였다. 유전자 조작, 줄기세포, DNA 분석, 미생물학 등등.
그러나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접하는 생명공학의 정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매일같이 접하고 있지만 보통 그리 깊게 생각하진 않는 그런 것.
그것은 바로 음식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품종 개량된 음식이라고 해야 할 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96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GMO작물이었다.
로엘이 전생에 익힌 생명공학 관련 지식은 굉장히 방대하다. 윤리적, 종교적인 문제로 인해 일반인에겐 공개되지 않은 정보까지 접했으니 말 다 했다.
그 막대한 지식이 기적을 일으키는 힘인 마법에 접목된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로엘은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다.
솔직히 로엘은 이렇게 생각했다. 모처럼 마법이라는 이능의 힘이 존재하건만, 이 세계 마법사들은 생명공학을 쓸데없이 키메라 제작 따위에 낭비하고 있다고.
이유야 간단하다. 마법사들에게 있어 생명공학은 애초부터 키메라 제작을 위한 학문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복구해낸 ‘고대의 기록’에선 생명공학을 그렇게 사용했으니까.
엘레노어 대륙의 문명은 수준은 뒤죽박죽이다. 이 시대 마법사들은 문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과거 찬란했던 고대문명의 복구일 뿐이다.
로엘은 그 맹목적인 방향성을 비틀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생각이었다.
‘지식을 무작정 전수할 건 또 아니지만.’
지식을 걸러서 전수할 생각이긴 했다. 일부 작물만을 개량하도록. 주력 식품보다는 기호 식품을 우선적으로 다루도록. 그리고 마법학이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그러지 않았다간 대륙의 판도가 뒤바뀐다. 당장 주식인 밀이 현대 지구의 작물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품종 개량되었다간 대륙 전체가 물가 변동으로 몸살을 앓는다.
통제할 수 없는 변화는 일으킬 이유가 없다. 아니, 일으켜선 안 된다. 그것은 손해 보는 장사니까.
그렇기에 부유한 이들이 손을 뻗을 법한 기호 식품 쪽으로 개량 범위를 한정한다. 그마저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겠지만, 그 정도는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
‘그렇다고 주력 식품 쪽을 아예 포기하는 건 또 아니고.’
주력 식품을 다루는 것은 그 반향을 감당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진 후의 일이여야 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개량된 작물에 마법학의 굴레를 씌워 오로지 마탑에서만 생산 가능하도록 조치한다. 그것으로 오랜 시간 그 권리를 독점한다. 이 또한 중요했다.
작물이 자가 번식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따윈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현대 지구에서도 가능한 일이니 마법이 존재하는 이쪽 세계에서도 가능한 터였다. 독점 체제 구축은 어렵지 않으리라.
그것은 말하자면 혁명이었다. 이전의 전기제품, 아니 마력 제품의 개발로 벌어들인 수입 따윈 우습게 보일 정도의 재화를 벌어들이게 되리라. 이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의 영향력을 쌓게 되리라.
“…….”
로엘의 계획을 전해 들은 메이엘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건 그야말로 스케일이 다르다. 이 녀석은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저는 일반적인 학문에는 정통해도 관련 마법학은 영 부실하다는 겁니다.”
마법학에 정통했다고 해도 몸뚱이가 몇 개씩 있는 것도 아니니 협력자는 필요했겠지만.
어차피 앞으로의 일은 혼자서 다 해나갈 수 없다. 수많은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이 계획조차 그가 세운 여러 계획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내게 협력을 요청한다?”
“그렇죠. 이쪽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시니까. 여러모로 도움을 구하고 싶거든요.”
“분야로 치자면 조금 다르지.”
“큰 틀에선 벗어나지 않으니까 괜찮습니다. 조금 부족한 지식이야 제가 메꿔 드리면 그만이고. 설비도 충분히 갖춰진 것 같고. 적응 기간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그 시간이 월등히 짧으실 테고.”
그저 동물뿐 아니라 식물까지 연구 분야를 넓히면 되는 일이다. 그게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 정도의 인재라면 어렵잖게 소화해낼 수 있으리라.
이만한 인재가 없다.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위치 또한 적절했다. 그녀가 직위가 높은 간부였다면 쓸데없는 상하관계가 생겨나 불편했으리라.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좀 당황스러우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키메라 제작에서 갑자기 요상한 쪽으로 이야기가 넘어왔으니.”
“솔직히 감당이 안 되는데…….”
“딱히 키메라 제작 쪽을 포기하고 여기에만 집중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양립하셔도 좋습니다. 그쪽 분야에 관한 것도 여러모로 도움을 드릴 생각입니다. 방금처럼.”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메이엘은 질린 듯한 얼굴로 로엘을 바라봤다. 로엘은 그 질문에 주저 없이 답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마탑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공방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