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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인맥 형성(1) (68/249)
  •  68화. 인맥 형성(1)

     캐틀린 데이드람.

    마탑 내 최상위 실력자 중 하나. 그리고-

    ‘아마 레인보다도 윗줄의 실력을 지닌 검사.’

     -아직 전생의 경지에 다다르기엔 한참 모자라다 투덜거리던 레인과 비교했을 때, 틀림없이 윗선에 랭크될 강자. 아마 몇 년 내로 추월당하긴 하겠지만.

    ‘친분을 쌓아두면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

     무려 초인이다.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만 있다면 훗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터였다.

    ‘그걸 제하고 보더라도, 그녀가 지닌 영향력만을 놓고 보더라도 그녀와 친분을 쌓을 이유는 차고 넘친다.’

     생각을 정리한 로엘은 고개를 들고 빙긋 웃었다.

     웃는 얼굴로 예의 있게 인사해오는 상대가 싫지 않은 듯, 그녀 또한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래. 반갑군. 이름이 어떻게 되지?”

    “로엘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오. 네가 탑주님이 데려왔다는 그 녀석인가. 요즘 유명하더군. 네가 만든 물건들 중 몇 가지는 나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그럼.”

     캐틀린 데이드람은 짧게 인사를 끝마친 후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화를 길게 이어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권위적인 타입인가? 내가 귀족이나 마탑의 중역이 아니라서? 아니, 아니다. 그런 느낌은 아니야. 그보다는…….’

    캐틀린의 발걸음이 로엘의 시야에 들어왔다. 미묘하게- 

    ‘조급해 보이는데.’

     그러고 보면 분명 약재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손에 들린 저 종이 바구니에 담긴 것이 그것이리라.

     로엘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곧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 그녀를 따라나섰다. 기사들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대신했다.

     어차피 오늘 상단에 가려던 것은 따로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 아니다. 조금 미뤄도 될 것이다.

    “왜 따라오는 거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승강기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눴다. 딱히 접점도 없었던 소년이 다가와 말을 붙이자 캐틀린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혹시 그 약재를 사용해야 할 대상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 수 있을까요?”

    “…….”

     캐틀린이 곧바로 미간을 좁혔다. 로엘을 향하는 시선에 미약한 적의가 담겼다.

     또 이런 녀석들이다. 자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들을 이용하려 드는 놈들. 지금까지 이렇게 나선 녀석들 중 제대로 된 치료법을 내놓은 녀석이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능력으론 힘들겠다고 순순히 인정하고 떠나는 녀석이면 그나마 낫다. 시간을 좀 버리게 되겠지만, 상대가 아들을 위해 힘써줬다는 사실에 순순히 감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을 치료해 보겠다며 나서는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영향력에 눈독을 들인 이들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지금까지 별의별 인간군상을 다 접해왔다.

     쓸데없이 생색을 내는 인물도 있었다. 심지어 성과는 쥐뿔도 얻지 못한 주제에 자신이 힘써줬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빚을 지우려 드는 놈들도 있었다. 의외로 많았다.

    “제가 의학에 좀 관심이 있어서요. 괜찮다면 한 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 녀석도.’

     의학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 인물로 보이지는 았다. 오히려 정반대. 자신도 사용하는 물품들을 개발한 실력 있는 공방지기가 아닌가.

     이 녀석도 단지 자신과 친분을 쌓으려고 되도 않는 허세를 내세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 기색을 느낀 로엘이 곧바로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알 것 같네요. 제가 너무 제 할 말만 한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다.”

    “그렇지만 의학에 관심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반응을 보니 병에 걸린 분은 기사단장님께 중요한 분인 것 같은데…….”

    “내 아들이다.”

    “그렇군요.”

     캐틀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눈빛이 꼭 ‘정말로 몰랐나?’라고 묻는 것 같았다. 자신은 정말 우연히 상황을 접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로엘의 쓴웃음이 한층 짙어졌다. 이럴 바에야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솔직히 단장님과 친분을 쌓고 싶어서 접근한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대충 생색만 낼 생각도 없습니다.”

    “…….”

    “그러니 우선 진찰이라도 한 번 해볼 수 있게 해 주실 수 없을까요.”

     캐틀린의 눈이 한층 더 가늘어졌다. 그러나 결국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일단은 붙들고 마는 게 부모 마음이다.

    “부탁하마. 만약 아들 녀석의 병을 낫게 해 줄 수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사례하겠다.”

     그다지 크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탑주가 직접 데려온 인재라는 점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혹시, 어쩌면, 정말로 굉장한 의학적 소양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보아하니 성과도 없이 뻔뻔하게 생색을 내려 들진 않을 듯했다. 스스로 성과를 보이겠다는 선언을 통해 그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그 의기를 봐서 기회를 주는 것도 좋으리라.

     * * *

    “폐흡충증이네요.”

    “폐흡충증?”

     마탑 중층에 위치한 숙소 구역. 그 안에서도 유달리 널찍하고 화려한 어느 숙소 내부.

     로엘은 널찍한 침상에 힘없이 누워 있는 사내의 손목을 붙든 채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노심초사하며 진찰을 지켜보던 캐틀린이 곧바로 되물었다.

     들어본 적 없는 병명이지만, 일단 명확한 진단 결과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모자가 눈을 번뜩였다.

    “쉽게 말하자면 음식을 통해 섭취한 벌레가 체내에서 장기를 감염시키고 있는 겁니다.”

     로인은 모자가 알아듣기 쉽도록 간단하게 설명했다.

    “버, 벌레?”

    “민물에서 생식하는 게, 가재, 새우 같은 것을 날것으로 먹었을 때 감염되곤 하죠. 대충 6~8주 정도 잠복기간을 거쳐 발병하는 병인데 짐작 가는 원인이 있나요?”

    “3년 전 팔퍼스 협곡으로 유람 갔을 때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캐틀린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들이 앓아눕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여행이라 기억에 남아 있었다.

    “많이 힘들었겠네요.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 고통이 심할 텐데.”

     폐흡충증.

     정확히는 폐흡충 피낭유충에 감염된 게, 가재, 새우를 생식했을 때 감염되는 병이다. 병명답게 보통은 폐에 병소가 생성되지만, 다른 장기에 병소가 생성되는 경우도 많다.

     폐 이외의 장기에 병소가 생성되는 경우엔 일이 심각해진다. 뇌척수까지 침범당하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눈앞의 환자는 폐 이외의 장기에 병소가 번지진 않았지만.

     폐에 병소가 퍼진 폐흡충증의 경우 심한 기침, 피 섞인 쇠 녹물 색의 가래, 흉통, 호흡곤란이 주요 증상이다. 합병증으로 기관지염, 늑막염, 기흉, 농흉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병은 성력으론 치료가 힘들지. 이쪽 세계에선 거의 불치병이겠군.’

     현대 지구였다면 이미 치료법이 진즉에 개발되었기에 딱히 위험한 병이랄 것도 없다. 주사 좀 맞고 약 좀 먹으면 낫는다.

     그러나 이쪽 세계에서도 그럴 턱이 있나. 이쪽 세계 의원들의 평균적인 실력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안 그래도 문명이 뒤떨어지는데 직종 자체가 천시받으니 그럴 수밖에.

     어디서 성녀라도 만나지 않는 한 나을 수가 없는 병이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이렇게 악화될 때까지 효과를 보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복 받았군.’

     로엘과 같은 경우엔 매일같이 내력을 운용하며 불순물을 몸 밖으로 밀어내기에 이런 종류의 질병의 위협에선 안전했다. 그는 새삼 레인이 전수해준 ‘무공’이 얼마나 높은 가치를 지녔는지 실감했다.

     문명 수준이 중세에 그치는 세계에서 각종 질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레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치료는 가능한 건가?”

    “네. 오늘 안으로.”

    “오늘 안으로?!”

     두 모자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병을 진단해 보고서도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완치를 장담하는 인물은 처음 봤다.

     로엘은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말을 이었다.

    “다만 치료방식이 좀 독특합니다. 보고 너무 놀라시진 않았으면 싶네요.”

    “치료만 가능하다면야.”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로엘은 품에서 작은 목함, 그리고 포션을 꺼내 들었다. 이어 목함에서 세침을 꺼내 끝부분을 포션에 적신 뒤 그것을 환자의 가슴깨에 주저 없이 찔러 넣었다.

    “……그게 치료 행위라고?”

     캐틀린이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보고서 기겁해도 이상하지 않은 치료법이건만 크게 당황하거나 하진 않고 있었다. 경지가 높은 만큼 로엘의 행동에 일말의 적의, 혹은 살기도 담겨있지 않음을 한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환자인 에델린 데이드람은 얼굴에 한껏 경악이 드리워져 있었다. 솔직히 피하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

    “일단 지켜보시죠.”

     로엘은 연이어 몇 개의 침을 더 박아 넣고 환자의 아랫배에 손을 댄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가늘게 뽑아낸 기운을 에델린의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체내를 거슬러 올라간 기운이 폐 속으로 침투했다. 그렇게 길이 확보된 후론 더 많은 내력이 밀려 들어갔다. 그렇게 에델린의 폐를 로엘의 기운이 감싸 안았다.

    ‘우선 폐흡충과 충란부터 제거하고.’

     폐흡충의 유충이 폐에 정착하고 나면 6~8주의 성장 기간을 거쳐 성충이 된다. 그리고 성충은 충란을 산란한다. 쉽게 표현해 알을 낳는 것이다.

     이걸 우선적으로 전부 제거해야 했다. 그래야 재발 걱정이 없어진다.

    ‘좀 많네.’

     병을 조금만 더 오래 앓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위험했을 터였다. 번식한 폐흡충이 폐를 벗어나 다른 기관에 정착했을지도 모르니까.

     내력으로 압박해 폐흡충과 충란을 모두 기관지 위로 밀어 올렸다. 에델린이 격하게 기침을 내뱉었다.

     태워버렸다면 더 좋았겠지만, 로엘에겐 내력으로 열을 생성시키는 기예까진 무리였다. 그건 레인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기관지 밖으로 밀려 나온 폐흡충이 다시 되돌아와 폐에 정착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폐흡충증은 애초에 전염병 취급을 받았을 터였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다음으론 괴사한 세포를 떼어내고.’

     폐흡충이 섬유조직으로 발전해 생성된 충낭, 거기에 각종 염증까지. 그것들을 비롯해 상처 입은 세포들을 모조리 떼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로 포션의 기운을 인도했다.

     본래라면 시간을 들여 조금씩 치료해야 할 병이다. 그러나 포션이 있기에 과감하게 손을 쓸 수 있었다. 부족한 세포가 급속도로 채워져 갔다.

     떼어낸 세포들은 잘게 부숴 소화기관으로 인도했다. 항문으로 배출될 수 있도록.

     로엘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 * *

     모든 일을 끝마쳤을 땐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간 후였다.

     어느새 환자는 깊게 잠들었다. 생사공의 공능으로 일시적으로 생명 활동이 촉진되어 수마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끝났습니다.”

    “완치된 건가?”

     로엘이 침을 회수하며 치료 종료를 선언했다. 가만히 치료를 지켜보던 캐틀린이 반신반의하며 되물었다.

    “일단 병 자체는 완치시켰습니다. 이젠 시간을 두고 소진된 기력을 회복시키면 됩니다. 잘 먹고 잘 쉬면 한 달 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겁니다.”

    “고맙다. 정말로.”

     캐틀린이 눈시울을 살짝 붉혔다. 어미로서 지금까지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들의 겉모습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초췌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자고 있는 얼굴이 전보단 평온해 보였다.

     로엘이 되는대로 둘러댄 것이라 여겨지진 않았다. 이후에 다른 의원을 불러 확인해 보면 곧바로 들통나게 될 일인데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을 터.

    “아들이 병상을 털고 일어나기만 한다면 가능한 선에서 뭐든지 들어주마. 네가 차기 탑주 자리에 관심이 있다면 지지자가 되어주고, 주위의 견제로부터의 보호를 요청한다면 그리해 주지.”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친분을 쌓았다는 데에 만족합니다.”

     로엘은 그렇게 겸양을 떨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던가 하는 것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기회 닿는 김에 빚을 지워놓은 것일 뿐.

     어쨌든 이쪽을 지지해주는 아군을 얻었다. 로카인 이후로 가장 큰 대어였다. 인맥 한 번 제대로 쌓았다고 할 수 있었다.

     로엘은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빙긋,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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