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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공방(2) (64/249)
  •  64화. 공방(2)

     공방으로 들어선 로엘은 우선 개인 작업실로 가서 준비를 마친 뒤 곧바로 사람을 찾았다. 거듭 말하지만, 인맥을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관련자로부터 소개받는 것이다.

    ‘칼벤 씨의 개인 작업실은…… 21호실이라고 했었나.’

     걸음을 옮겨 21호실 앞에 선 로엘이 문을 두드렸다. 이내 부스스한 몰골의 칼벤이 힘없는 손짓으로 문을 열었다.

    “누구야?”

    “오랜만입니다. 칼벤 씨.”

    “무슨 일이야. 이렇게 다 찾아오고.”

    “전에 말씀드린 대로, 실적을 가져왔습니다.”

    “?”

     칼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 대화를 나눈 날로부터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 실적을 가져왔다?

    ‘어정쩡한 결과물을 들고 온 건 아니겠지?’

     칼벤이 눈을 가늘게 뜨고 로엘을 방 안으로 들였다. 방 안쪽은 그야말로 난장판. 수많은 종이가 나뒹구는 것은 예사요, 각종 실험 도구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로엘은 되도록 바닥에 늘어진 것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똑같은 작업실인데도 깔끔한 자신의 작업실과는 대비되는 광경.

    ‘내 경우엔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 게 편해서 그런 거지만.’

     딱히 칼벤이 주변머리가 없다고 여겨지진 않았다. 그저 성향 차이일 뿐. 사실 작업실만 깔끔하지 지난 두 달간 자신의 몰골은 전혀 돌보지 않았던 로엘이었다.

    “앉아.”

     칼벤이 방 한구석에 놓인 탁자에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로엘이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그가 차를 준비했다. 이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그래서, 무슨 실적을 가져온 건지 한 번 볼까?”

    “우선 이걸 봐 주시죠.”

     로엘은 빙긋 웃는 얼굴로 가져온 자료를 내밀었다. 칼벤이 찻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칼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로엘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이거, 진짜야?”

    “시제품을 제작해 뒀습니다. 부피가 작은 것들밖에 가져오지 못했지만, 나머진 나중에 제 작업실로 와서 확인하시죠.”

    “진짜 말도 안 되는 녀석이었구나. 너.”

     칼펜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탁 소리 나게 탁자에 내려놓았다.

    “실적을 보이라고 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굳이 이걸 내게 가져온 이유가 있는 거겠지? 단순히 자랑하러 왔다고 보기엔 사안이 너무 큰데.”

     남에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리스크를 짊어져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다. 굳이 직접 찾아온 이유가 있을 터.

    “곧바로 상황을 짚어내 주시니 편하네요.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바라는 게 있습니다.”

    “내게 바라는 일이라. 역시 내 영향력인가? 부족한 네 입지를 내 영향력을 빌려 메꾸려고?”

    “네. 방금 상단과 판매 계약을 마치고 오는 길입니다. 이젠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춰야 하는데, 도움을 줄 공방 마법사분들이 딱히 없어서요.”

    “그렇다고 곧장 날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원래 일을 하다 막히면 그 일에 정통한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 법이죠. 물론 맨입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건 아닙니다. 확실하게 대가는 지불할 생각입니다.”

     큭큭 하고 웃은 칼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네 작업실로 이동하자.”

    “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가져온 물건도 있는데 그것부터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그냥 자리 옮겨서 한꺼번에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쩐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알겠습니다.”

     로엘이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두 사람은 작업실을 나서 단체 작업실 외곽을 따라 이동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목적지는 로엘의 개인 작업실인 37호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

     걸음을 옮기던 도중 칼벤이 운을 뗐다.

    “아무리 내 영향력을 이용한다고 해도 네게 제대로 협력하려 드는 녀석은 적을 거야. 아무래도 네 이미지는 그다지 좋은 편이 못 되니까.”

    “그렇겠죠.”

    “내가 조금 강경하게 밀어붙인다면 돕는 시늉은 할 테지만 그뿐이야. 제대로 된 효율이 나올 턱이 없어. 웬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뭔데?”

    “이번 일에 한해서 물건을 판매한 수익 중 일부를 도움을 준 전원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할 생각입니다. 정해진 급여가 아닌, ‘총 판매 수익의 몇 퍼센트’를 지급하는 거죠.”

     칼벤이 눈을 크게 떴다. 상당히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이만한 물품을 개발해놓고 그런 손해 보는 계약을 맺겠다고?”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기 위해 끌어들여야 할 마법사가 한둘이 아니다. 그들 모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려면 최소 전체 수익의 3할, 최대 5할은 포기할 결심을 해야 한다.

     웬만한 물건이면 말을 안 한다. 이렇게 대박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물품 제작비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니. 자신이라면 개발에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그렇게는 못 한다.

    “참고로 칼벤 씨에게 지급될 금액은 전체 수익금의 1할입니다.”

    “!”

     칼벤이 저도 모르게 걸음을 우뚝 하고 멈추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늘 그렇듯 빙글빙글 웃는 낯을 한 로엘이 서 있었다. 여전히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

    ‘무슨 생각이지?’

     파격에도 정도가 있다. 물론 혜택을 받을 마법사들이야 환호하겠지만, 고용주인 로엘은 굉장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만한 손해를 아무런 대가 없이 감수한다는 게 가능한가?’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관심을 두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탑주 경쟁에 참여해 온갖 상황을 겪어본 그다. 대가 없는 호의에 기쁜 마음보다 경계심이 먼저 고개를 쳐들었다.

    “…….”

     이내 칼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고개를 쳐드는 의구심은 일단 뒤로 미루기로 했다. 우선은 시제품의 확인이 우선이다.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로엘이 생각했다.

    ‘뭐 지금으로썬 이게 최선이지.’

     자신은 입지가 조금도 다져지지 않은 신입이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선 이 정도 파격은 선보여야 했다.

     시간을 들여 입지를 쌓은 후에 물품을 선보이고 제작에 돌입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그렇게 하면 그냥 평범하게 급여를 지급하면 되니 큰 금액을 절약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방식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아웃이었다. 지금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빠르게 입지를 높여야 했다. 그래야 ‘다음’이 편해지니까.

     이번 한 번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수많은 물건을 개발하게 될 테고, 수없이 많은 사업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 텀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이후 얻게 될 이익의 크기에 직결되겠지.

     칼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지만,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내다보는 미래와 로엘이 내다보는 미래는 그 스케일이 다르니까.

    ‘내게 쏟아질 관심을 분산시킨다는 의미에서도 이러는 게 좋을 테고.’

     입지가 얕다는 것은 견제가 들어오기 쉽다는 뜻도 된다.

     지금까진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해왔으니 별다른 견제가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렇지는 않을 터.

     견제가 들어오면 올수록 심력을 소모하게 된다. 시간을 버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다. 그것을 최소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에서 ‘이번에 신입과 그를 도운 공방 마법사 집단이 큰 이익을 얻었다’로 인식을 전환시킴으로써.

     거기에 칼벤과 같이 영향력 있는 인물이 포함되면 금상첨화다. 금전을 나눠 가지는 대신 그로 인한 반동도 나눠서 해소한다. 그것만으로도 성과급 지금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완전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의외로 이 정도만 해도 가해질 제약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터다. 자신에 대한 불만도 어느 정도 잠재워질 테고.

    ‘그렇게 의심하고 경계할 것 없습니다. 그쪽에게 나쁜 일은 없을 테니.’

     로엘은 칼벤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작게 웃었다.

     * * *

     칼벤의 요청에 따라 로엘의 개인 작업실로 모여든 마법사, 그리고 장인 집단. 그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격렬했다.

     마법사들은 말도 안 되는 효율성을 자랑하는 기기들을 분석하고 싶은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마찬가지로 장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기술이 집약된 기기들을 살펴보며 넋을 잃었다.

     그런 와중, 로엘이 손뼉을 짝짝 두드리며 자신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참고로, 물품의 설계도는 전부 공개할 생각입니다. 그 이전에 그것을 그대로 베껴 상업적인 용도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해 주셔야 하겠지만요. 탑주님께 공증인이 되어줄 것을 부탁드릴 겁니다.”

    “!”

     일행의 눈빛에 일제히 열망이 깃들었다. 굳이 상업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마법사의 호기심에 불이 붙은 차였다. 이렇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선언이라니.

     또다시 파격적인 선언을 하는 로엘을 바라보는 칼벤의 시선이 묘해졌다. 그가 약간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괜찮겠어?”

    “네.”

    “난 네가 각자에게 일부의 지식만을 전달하는 식으로 일을 분담시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면 효율이 떨어지잖아요. 그리고 그런다고 해서 보안을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끝내 알아낼 테니 시간문제죠.”

    “그렇다고 해도 너무 지식을 쉽게 내준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 일로 널 쉽게 보는 사람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럴 테면 그러라고 하면 됩니다. 상관없으니까.”

     로엘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 답했다. 최종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자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계도를 공개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설계도는 그저 제작 방법이 담긴 종이 쪼가리일 뿐. 제작의 원리가, 기반이 되는 방대한 지식은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저들이 설계도를 통해 얻는 것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될까. 오히려 자신이 가진 지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접하고 혼란에나 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설계도를 공개하면 그것을 제대로 분석해 자신도 비슷한, 혹은 더욱 뛰어난 제품을 개발하겠단 의욕을 불태우는 이들이 분명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마법학보다도 다른 학문에 더 중점을 둔 기기의 설계도를 마법사들이 완벽히 이해한다? 그것도 현대의 지식이 기반이 되었는데? 그야말로 난센스지.’

     로엘은 여유롭게 웃었다.

     설사 웬 말도 안 되는 천재가 나타나 설계도는 물론 그 기반이 되는 원리까지 모두 파악해낸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즈음의 자신은 훨씬 앞서 나간 뒤일 테니까.

    “탑주님이 직접 데려온 데다 개인 작업실까지 내준 이유가 있었군.”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물건들을 제작할 수 있는 거지?”

     그다지 좋지 못했던 로엘에 대한 평판이 급속도로 호의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본질적으로 로엘의 이미지가 좋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다른 마법사들에게 있어 타인이기 때문.

     자신과 아무런 접점도 없는 타인이 자신의 생활영역에서 이유도 없이 우대받으면 당연히 질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게 사람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지금 깨졌다.

     이제 로엘은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파트너가 되었다. 우대받은 이유는 실적으로 입증했다. 이젠 그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타인이기에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쉽게 평판을 뒤집긴 쉽지 않았으리라.

    “신입 주제에 기고만장해선.”

     간혹 질투심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는 무리도 있었다. 몇몇은 남들 들리지 않게 불평스런 어조로 중얼거렸다.

     초감각을 지닌 로엘은 그 목소리를 전부 들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말은 저리해도 이 방을 박차고 나가거나 하는 이는 없다. 저들도 내심으론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 * *

     얼마 있지 않아 대량 생산을 위한 준비가 완전히 갖춰졌다. 로엘은 상단을 찾아가 단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상단주는 로엘이 정말로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로엘이 가벼운 어조로 경위를 설명하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드디어 일단락 지었군.”

     마탑으로 돌아가는 길. 로엘이 크게 기지개를 켜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뒤론 자신이 손댈 영역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생산자인 공방 마법사들과 장인들, 그리고 판매자인 상인들에게 맡겨야 했다.

    ‘당분간은 시간이 남겠네. 판매 루트를 개척하고 제품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기까진 시간이 걸릴 테니.’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념을 이어갔다.

    ‘수익금이 쏟아져 들어오는 건 적어도 한두 달 뒤이려나. 바로 다음으로 넘어갈 순 없겠지. 그럼 그전까진 뭘 해야 하나.’

     미리 생각해 둔 일은 있었다. 슬슬 무력 기반을 한층 더 성장시킬 때가 되었다. 앞으로의 행보를 위해서라도.

    ‘딱 좋은 때네. 하는 김에 인맥도 좀 쌓고.’

     슬슬 기반도 다질 필요가 있었다. 굳이 마탑까지 와서 인맥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어디서 인맥을 만들겠는가.

    “다 좋지만 일단 잠부터 좀 자야겠군.”

     그렇지만 그보다도 며칠 정도 휴식을 취하는 게 우선이다. 최근에 너무 과로했다. 조금 쉬어 줄 필요성이 있었다.

     * * *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

     로엘이 개발한 제품들이 귀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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