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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마탑 입문(2) (62/249)
  •  62화. 마탑 입문(2)

    “공방?”

    “이건 또…….”

     각양각색의 반응.

     예상치 못했다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멸시하는 시선을 보내오는 이도 있었다. 대놓고 흥이 식었다는 표정을 짓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되레 눈빛을 빛내는 자도 있었다.

     공방 마법사는 같은 마법사들 사이에선 경원시 되는 존재들이다. 말하자면, 돈을 추구하느라 진리를 탐구한다는 본분을 잊은 변절자들.

     마법 용품은 간단한 것이라도 그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이 대부분. 그것들을 찍어내듯 생산하는 공방 마법사가 부유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마법의 발전을 추구하는 다른 마법사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이상을 추구하길 포기한 낙오자들이다.

     그래도 연배가 높은 이들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각화되어 그런 경향이 덜하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제자들은 모두가 높은 이상을 가진 소년 소녀들.

     대부분의 제자들은 공방 마법사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모두가 탑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들이기에 더욱 그런지도 몰랐다.

    “…….”

     모두가 빠르게 로엘에게서 관심을 거뒀다. 그를 향하던 경계심이 대폭 줄어들었다.

    ‘호오.’

     그러나 다른 제자들과는 명백한 차이를 보이는 이들이 셋. 각자 눈을 빛내고, 경계하고,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남 일녀.

     4강중 하나인 엘리제 파르테인. 마찬가지로 4강인 칼비오 펠트만. 그리고 3중에 속한 칼벤.

     엘리제는 남몰래 웃음을 흘린 로카인을 목격했다. 칼비오는 너무나도 손쉽게 좌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로엘을 되레 경계했다. 칼벤은 ‘자신과 같은’ 길을 추구하는 로엘에게 흥미가 일었다.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어.’

    ‘그래도 스스로 중립을 선언했으니 일단은 두고 봐야 하나.’

    ‘앞으로 볼 일이 많겠군.’

     세 사람은 각각 다른 생각을 하며 로엘을 응시했다. 로엘은 그저 담담히 웃으며 모든 반응을 가볍게 흘려 넘겼다.

     * * *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친목회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빼곤 굳이 입을 열지 않고 주위를 관찰하기만 한 로엘. 그는 속으로 가볍게 이 자리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개판이네.’

     친목회라더니 친목을 다지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그야말로 로엘에게 있어선 알맹이는 없는, 시간만 죽이는 자리였다.

     뭐 저들이 말하는 ‘실적’이 조금 특이하긴 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각자의 마법적 성취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기초를 얼마나 충실히 다졌느냐는 정도.

     그저 자신이 작성한 연구 일지, 혹은 논문에 관한 이야기, 뜻을 함께하기로 한 인물, 그리고 그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마탑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 그런 것들이 주된 내용이었다.

    ‘하긴, 마법적 성취는 후계자가 되는 순간 보장받게 될 테니.’

     차기 마탑주로 인정받은 이는 공간 마법을 전수받는다. 그러니 굳이 지금은 실력 증진에 힘을 쏟지 않는 것이리라. 아무리 익혀봐야 공간 마법을 배우게 되면 쓸모가 없어지게 될 테니.

    ‘탑주님은…… 지루해하고 있군.’

     중재자인 로카인은 이미 흥미를 거둔 채였다. 아예 이쪽엔 관심도 두지 않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나마 정보라도 얻지 못했다면 나도 저렇게 마냥 지루해하고 있었겠지.’

     그나마 얻은 소득을 꼽자면 저들의 체제를 대강 알 수 있었다는 점. 그러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명확히 파악했다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제자는 로엘을 제외하면 열 명. 그중 네 명이 실세. 세 명은 중견. 그리고 남은 세 명이 약세였다. (파르엘은 가출 중이기에 논외로 뒀다.)

     실상 탑주 자리는 실세인 네 명 중 하나로 결정될 듯싶었다. 중견 셋은 혹시 어부지리로 자신에게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 뿐인 자들.

     거기에 약세들은 이미 모두 실세 휘하에 줄을 선 듯했다. 처음에 로엘을 비웃었던 카른이 이에 속했다. 그는 4강인 칼비오의 심복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탑주 자리에 가장 근접한 인물은 엘리제 파르테인임이 분명했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다지 자신을 내세우는 데 힘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장 경계 받고 있었다.

    ‘슬슬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목적은 다 이뤘다.

     후계자 자리를 공식적으로 걷어찼으니 앞으로 다시 이런 자리에 참석하게 되는 일은 없을 터. 이 시간만 넘기면 그만이었다.

    “우습군. 그걸 실적이라고…….”

    “말 한번 곱게 하는군그래.”

    “탑주님 앞에서 분란을 일으킬 셈이 아니라면 그쯤에서 관두지.”

    “……”

     로엘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한 귀로 흘리며 한쪽 벽면에 걸린 시계를 무료한 표정으로 빤히 응시했다. 어쩐지 시간이 굉장히 더디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 * *

     친목회를 마친 날로부터 대략 보름간. 로엘은 로카인에게 공방 마법사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을 모두 배웠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빠르게 전수가 끝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로엘은 압도적인 천재성으로 교육 시간을 대폭 감소시켰다. 가르치는 로카인이 혀를 내둘렀다.

     이제 남은 것은 독학으로 커버해야 했다. 로엘은 일단 마탑 하층에 비치된 서재를 드나들며 지식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또다시 일주일이 소비됐다.

     그리고, 공방에 입성했다. 참고로 공방은 마탑의 지하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

     승강기를 통해 자신의 작업실이 위치한 층에 도달한 로엘은 곧바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받아내게 되었다. 그가 공방 마법사가 되길 희망했음은 이미 마탑 내에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었다.

    “어디 보자. 내 작업실은…….”

     로엘은 곧바로 약도를 살피며 자신의 개인 작업실을 찾았다. 주위에서 부러움과 질시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좋겠네, 아주.”

    “들어오자마자 개인 작업실을 제공받았다며? 탑주님이 데려왔다고 하더니 제대로 편애받고 있구만.”

     불평이 섞인 발언도 있었지만 로엘은 무시했다. 편애받고 있는 게 사실이기도 했고.

     애초에 곧바로 개인 공방을 내줄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수락받은 자신이 이상한 것일 터. 불만이 생겨나더라도 할 말 없긴 했다.

    ‘……?’

     한참 길을 가로질러 자신의 작업실을 찾던 로엘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이쪽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것이다.

     한 사내가 이쪽을 향해 쭉 걸어오고 있었다. 시선은 어색하게 옆으로 돌아가 있었지만, 상대의 목적이 자신임을 로엘은 곧바로 눈치챘다.

     거리가 줄어들고, 사내와 로엘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타이밍 맞춰 로엘이 살짝 신형을 틀었다.

    ‘엇?’

     어깨를 약하게 부딪치려 했던 사내가 상체가 앞으로 살짝 기울어진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버렸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로엘이 피해버린 탓에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 민망한 자세가 형성되어 버렸다.

    “…….”

    “푸흡.”

     사내의 성격을 익히 아는 주위 마법사들은 애초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목격하게 된 진귀한 광경. 몇몇이 참지 못하고 웃음소리를 흘렸다.

     로엘이 살짝 웃는 얼굴로 사내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곤 그대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담담한 대응에 오히려 사내의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올랐다.

    “젠장.”

     사내의 목적은 로엘에게 무안을 주는 데 있었다. 낙하산 주제에 당연하다는 듯 특혜를 받고 있는 신입을 약간 곯려주려 한 것이다.

     사실 사내는 신입이 개인 공방을 부여받는다는 내용을 통보받고 곧바로 상부에 따져 물었던 인물이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특혜를 받는 낙하산이 나타나면 다른 이들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내는 그것을 이유로 들어 결정을 취소해줄 것을, 취소가 안 된다면 보류라도 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다못해 끝내 개인 공방을 내주더라도 최소한의 시간은 들여 단계를 밟고 올라가게 하는 게 옳았다. 적어도 사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그냥 신경 쓰지 말라는 전언뿐. 당연한 말이지만, 사내가 그 답변을 곱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첫날부터 로엘에게 시비를 걸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쯧. 쓸데없이 반사신경이 좋은 녀석이잖아.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가 혀를 차며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되레 무안을 산 탓에 그대로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힐 요량이었다.

    “······.”

     로엘이 멀어져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슬쩍 곁눈질했다.

     그가 개인 작업실을 요구했을 당시, 로카인은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을 겪을지 모른다고 우려를 표했었다. 마탑은 자존심 강한 마법사들이 한데 모이는 장소니까.

     그럼에도 로엘은 시간을 들여 입지를 높이기보다 곧바로 작업실을 건네받는 길을 택했다. 그 시간에 실적을 올려 불만을 잠재우는 쪽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로엘 자신이라면 가능하다 여겼다. 아니, 애초에 설비만 제대로 갖춰지면 바로 제작에 들어가려 했던 물건이 수두룩했다.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뭐, 탑 내에서 저렇게 대놓고 적개심을 표출하려 드는 녀석은 아마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그리 호의 어린 시선은 못 받겠지.’

     로엘은 이내 다시 시선을 약도 쪽으로 돌렸다.

     * * *

     공방은 단체 작업장과 개인 작업장으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공방 마법사들은 단체 작업장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주문받은 물량을 소화하고, 남는 시간에 자신의 연구에 매진한다.

     그리고 일부 마법사들은 개인 작업장을 가진다. 이들은 특수한 물품의 개발을 성공한 이력이 있거나 마탑에 상당한 기여를 한 이들, 혹은 지위가 높은 이들.

     개인 작업장은 가진 마법사들은 일단 의무적인 주문 물량 제작에서 자유롭다. 그들은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동안엔 물품 제작에 열 올리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연구에 매진할 뿐.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공방 마법사들이 개인 작업장을 갖기를 희망한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음은 물론이요, 애초에 갖춰진 설비가 다르다. 로엘이 질투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참고로 마탑은 원형 구조물이다. 공방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 중앙에 단체 작업장이 있고 개인 작업장이 바깥쪽을 빙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로엘은 단체 작업장 외곽을 따라 자신의 개인 작업장을 찾는 중이었다.

    ‘35호실, 36호실. 아 찾았다. 37호실.’

     이내 그는 자신에게 배속된 작업장을 발견했다. 한데 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것도 아는 얼굴이었다.

    ‘분명 차기 탑주 후보자 중 하나였던…….’

    “이제 오는구나. 로엘이라고 했던가?”

    “기다리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칼벤 씨.”

     상대측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로엘이 반사적으로 입가에 미소를 드리우며 답했다.

    “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거야?”

    “물론입니다.”

    “의외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다지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니었을 텐데.”

     칼벤은 그 모임에서 로엘 다음으로 말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애초에 탑주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탑주 후보’라는 칭호로부터 비롯되는 영향력이 필요했기에 그 무리에 끼어 있었던 것뿐.

     사실 굉장한 인물이었다. 그리 경쟁에 힘을 쏟지 않았는데도 실적만으로 3중에 속했으니까.

     실상 그가 탑주 자리에 관심이 있고, 공방 마법사가 괄시받지만 않았다면 틀림없이 강세를 자랑했을 터였다.

     물론 로엘은 이런 사정은 모른다. 그가 공방 마법사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가 자신에게 흥미 어린 시선을 보내오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

    “사실 인사나 하러 왔어. 공방에 온 걸 환영한다고.”

    “공방 관계자셨나요?”

    “어. 직분도 꽤 높은 편이야.”

    “그럼 제 선배시네요.”

    “그렇지. 앞으로 잘 부탁해.”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칼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지나가듯 말했다.

    “보아하니 그렇게 환영받진 못하는 분위기던데.”

    “그렇죠.”

     로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 네가 평범한 방식으로 공방에 입문한 건 아니니까.”

    “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그리 좋게 생각하지는 않아. 그렇다고 아주 나쁘게 보는 건 또 아니지만.”

    “…….”

    “그래서 지켜볼 생각이야. 네가 개인 공방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탑주님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겠지?”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 찔러 들어오는 질문. 로엘은 태연하게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다.

    “탑주님이 직접 픽업해 온 데다가 편애받기까지. 분명 그만한 자질이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그걸 증명해 줬으면 좋겠어. 실적으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응원할게. 네가 확실한 실적만 낸다면 다른 녀석들이 널 보는 시선도 완전히 바뀔 거야.”

     칼벤의 생각은 간단했다.

     공방의 위상을 높여줄 인물의 합류라면 그 대상이 설사 낙하산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반대로 실적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낙하산은 용납할 수 없다. 단지 그뿐이었다.

    “예.”

     어찌 보면 압박하는 말이었지만, 로엘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을 뿐. 칼벤이 피식 웃으며 인사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열심히 해야겠네.’

     로엘은 자신에게 지급된 열쇠로 문을 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공방 내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칼벤과 같은 생각이리라.

    ‘실적을 낸다면 그래도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겠지만, 만일 그러지 못하면…….’

     로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신감이 가득 찬 미소였다.

     그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작업실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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