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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마탑 입문(1) (61/249)
  •  61화. 마탑 입문(1)

     마탑. 수많은 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 드넓은 제국에도 몇 존재하지 않는 강대한 기관.

     로엘은 로카인을 따라 그런 마탑 내부로 들어섰다. 그러자 주위에서 곧바로 소요가 일어났다.

    “탑주님이다!”

    “어? 그런데 옆에 있는 꼬마는 누구지?”

    “보아하니 탑주님이 데려온 것 같은데, 설마?”

    딱히 보호자나 후견인도 없어 보이는, 대충 봐도 평민임을 알 수 있는 소년. 그런 소년을 탑주가 직접 데리고 왔다. 그렇다면 분명- 

    “자질을 알아보고 픽업해 오신 건가?”

    “오? 그럼 저 녀석도 탑주님의 제자야?”

     소요는 금세 소란으로 번졌다. 안 그래도 후계자 경쟁으로 마탑이 한참 시끄러운 상황. 새로운 얼굴이 그 대열에 합류할지도 몰랐다. 관전자 입장에선 굉장히 흥미로운 상황이지 않은가.

    “저렇게들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로카인이 짓궂은 표정으로 로엘에게 물었다.

    “곤란하네요.”

    “곤란하다?”

    “후계자 경쟁이 한창이라 했었죠. 쓸데없이 견제 같은 걸 받아서 앞으로의 활동에 제약이 걸리는 건 사양하고 싶은데…….”

    “이전에도 생각한 것이지만, 특이하구나. 탑주 자리에 눈곱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다니.”

     분명 탑주라는 자리는 매력적이다. 그 자리에 뜻이 없다고 해도 사람인 이상 기회가 생기면 갈등을 하는 게 정상이다. 미약하게든 강하게든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로엘에겐 그게 없다. 일말의 반응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게 꼭 탑주라는 자리에 미련이 없는 것이라기보단…….

    ‘탑주라는 자리 자체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단 말이지. 대체 무슨 미래를 그리고 있는 건지.’

     로카인은 흥미롭다는 듯, 로엘을 내려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에이. 제가 무슨 수로 이미 단단히 입지를 세워 뒀을 선배들과 경쟁을 하나요. 빨리 포기하고 제 갈 길 가는 게 낫죠.”

    “말은 잘하는구나.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로 그 이유인 건 아닌 듯싶다만.”

    “그럴 리가 있나요.”

     로엘은 빙긋 웃는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혹시 가능하다면 빠른 시일 내에 후계자분들과 대면시켜주실 수 있나요? 소문에 살이 붙기 전에 미리 화근을 제거하고 싶은데.”

    “굳이 그럴 필요 있겠느냐?”

    “이런 문제는 빠르게 처리할수록 좋은 법입니다. 뭣 하러 시간을 끄나요. 갈등의 소지만 커지게.”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아이 같지 않단 말이지. 가만 보면 속에 나이 먹은 학자라도 들어찬 것 같아.”

    “들켰네. 어떻게 아신 건가요?”

    “됐다 이 녀석아. 늙은이와 농담 따먹기 따윌 해서 무슨 재미를 보겠다고.”

    “농담이 아닙니다만.”

     두 사람은 주위의 시선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평온한 얼굴로 가볍게 잡담을 주고받았다.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로엘의 모습에 주위 사람들이 동요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은 이내 승강기 앞에 도달했다.

    “엘리베이터?”

    “무슨 소리냐?”

    “혼잣말입니다.”

     마탑은 초고층 건물인 만큼 계단만으로는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마력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승강기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 놀라지 않는구나. 보통 처음 이걸 본 사람은 감탄하든 놀라든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거늘.”

    “하하. 놀랐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죠.”

    “그런 게 아닌 것 같다만.”

     로카인이 미심쩍은 표정을 했다. 로엘은 그저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그것을 슬쩍 흘렸다.

    “오셨습니까. 탑주님.”

     그런 와중, 뒤쪽에서 가느다란 미성이 들려왔다. 마찬가지로 승강기에 탑승하기 위해 왔다가 로카인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오.’

     그야말로 한 장의 화폭을 보는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인사를 건네 온 인물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여인이었다.

    “엘리제더냐.”

    “예. 탑주님.”

     길게 기른 은빛 생머리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심홍색 눈동자.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황금 비율 몸매. 잡티 하나 없는 피부에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 얼굴.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결정체.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아마 미의 여신이 강림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못 보던 얼굴인데, 이쪽은?”

    “이 녀석 말이냐? 자질이 괜찮아 보이기에 내가 데리고 왔다.”

     그녀의 질문에 담긴 미약한 경계심을 로엘은 곧바로 알아챘다. 그녀가 차기 탑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제자’들 중 하나라는 사실 또한 어렵잖게 유추해냈다.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한 그녀였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로엘은 곧바로 빙긋 웃는 얼굴로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상대가 경계심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도록.

    “이번에 바엘른 마탑에 입문하게 된 로엘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꾸며낸 웃음이지만 겉보기로는 조금도 티가 나지 않는다. 엘리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변했다.

    “엘리제 파르테인이라고 해.”

    “파르테인이라면 혹시…….”

    “그녀는 나와 같은 가문 출신이다. 그렇다곤 해도 그녀가 마탑에 입문하기 전까진 얼굴도 알지 못했다만. 일단 공식적으로 내 제자다.”

     로카인이 살짝 끼어들어 설명했다. 사족이지만, 그는 방계 출신이라 가문과의 관계가 소원한 편이었다.

    “이제 막 마탑에 입문한지라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잘 부탁해.”

     넉살 좋게 웃으며 재차 인사를 건네는 로엘. 엘리제 파르테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인사를 받았다.

     * * *

     이후 로엘은 로카인을 따라 마탑 중층부에 위치한 숙소 구역으로 들어섰다. 엘리제는 상층부에 위치한 자신의 개인 실험실로 향한다며 따로 움직였다.

     곧 로카인의 부름에 달라온 관리자를 통해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풀 수 있었다. 역시 마탑 내 숙소라고 할까. 그다지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그 뒤론 딱히 일정이 없었기에 로카인과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냈다.

    “마법은 내일부터 가르치도록 하마. 그러고 보니, 어느 방면으로 나아갈지 길은 정했느냐? 기본적인 원소 마법이야 내게 배워도 상관없지만, 따로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스승을 구해야지.”

    “아. 그 부분 말인데요. 딱히 배우고 싶은 마법이 없어서요. 원소 마법도 그렇고.”

    “다른 건 몰라도 원소 마법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 배우지 않을 수가 없을 텐데? 혹시……”

    “예. 제가 관심 있는 분야는 마법진 쪽입니다.”

    “호오, 특이한 데 관심을 두는구나. 아니, 네가 제작한 그 무구들을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가.”

    “…….”

     로엘은 빙긋 웃는 얼굴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렇다면 딱히 스승을 구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겠군. 그 분야는 독학으로 익혀야 하는 비중이 높으니까. 기본적인 것쯤이야 내가 가르칠 수 있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건 악수(惡手)입니다.”

    “크음.”

    “아직 완전히 내려놓지 않으셨으니 물러드리겠습니다.”

    “…….”

     로엘의 양보에 로카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손을 뒤로 뺐다.

    ‘빚은 이런 사소한 데서부터 지속적으로 지워 놓는 거지.’

     고심하고 있는 로카인을 바라보며 로엘이 빙긋 웃었다. 조만간 가르침을 받을 상대에게 점수를 따 놔서 나쁠 것이 없었다.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로엘은 거대한 원탁이 놓여 있는 방으로 입장했다. 입장과 동시에 쏟아지는 시선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제 자리를 찾았다.

     이 자리는 차기 탑주 후보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말이 친목 도모지 실상은 자신의 실적을 내세우는 자리로 전락한 지 오래이긴 하지만.

     로엘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로카인의 호출 때문이다. 이전에 로엘이 부탁한 자리 마련을 초대라는 방식으로 처리해준 것이었다.

     참고로 이 자리엔 로카인도 참여한다. 친목 도모회가 싸움 직전까지 내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그가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일단 방관자의 입장을 벗어나진 않지만.

     사실 친목회가 실적을 내세우는 자리로 변질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 모양만이라도 친목 도모라는 취지에 걸맞게 되었기에 따로 제지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렇게까지 관심 주지 않아도 되는데.’

     로엘은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을 담담히 흘려 넘겼다. 미소 띤 얼굴로 완벽하게 감정을 숨겼다.

     주위 사람들은 가늘게 뜬 눈으로 그에게서 무언가 정보를 얻어내려 했지만, 그다지 소득을 얻진 못했다. 되려 여유로운 얼굴로 주위를 훑는 로엘에게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제자가 자리에 착석했다. 정적이 이어지길 잠시, 로엘이 손을 번쩍 들었다.

    “괜찮다면 제 소개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괜찮을까요?”

     친목회인 만큼 따로 규칙이나 격식이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부담 없이 손을 들 수 있었다.

     제동을 거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최근 탑주가 직접 데려온 소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알아서 자신을 소개하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우선 제 이름은 로엘이라고 합니다. 성은 따로 없습니다.”

     성이 없다는 것은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임을 뜻했다. 곧바로 어디선가 피식,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엘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들으셨겠지만, 어쩌다 보니 탑주님과 인연이 닿아 이번에 마탑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

    “일단 미리 선언해두려고 합니다. 저는 탑주 자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딱히 경계하실 것 없습니다.”

    “!”

     평탄한 자기소개에 이어진 갑작스런 선언. 모두가 허를 찔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당히 이야기를 유도해 의도를 캐물으려 했던 일부 제자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도 이걸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전 탑주 자리를 노리지도, 특정 인물을 지원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후 철저한 관전자 입장을 고수할 생각입니다. 이상입니다.”

    “킥.”

    “이건 또 특이한 녀석이군.”

     원탁에 둘러앉은 제자들의 얼굴이 각양각색으로 물들었다.

     어떤 이는 조소했고, 어떤 이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이는 흥미롭다는 얼굴을, 어떤 이는 애초부터 관심 없었다는 듯 무료한 얼굴을 했다.

     그들 중 한 소년이 입가에 짙은 비웃음을 그렸다. 그가 한껏 깔아보는 시선으로 로엘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왜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그렇게 늘어놓고 있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가장 제게서 듣고 싶은 말이 이것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글쎄, 딱히? 네가 무슨 영향력이 있다고 우리가 궁금증을 가지겠어? 자의식이 너무 과한 것 아니야?”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입장은 명확하게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로엘은 가볍게 그것을 흘렸다. 상대도 딱히 이쪽에 반감을 가져서 그런 것이라기보단 떠보려는 의도가 강했을 터. 이 정도면 충분한 대응이었다.

    ‘감정에 휩쓸려서 중립선언을 깰 타입은 아니군. 어려 보여서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소년, 카른은 이런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최소한 당장 자신에게, 더불어 자신의 세력에 방해 요소로 작용하진 않을 듯싶었다.

     방금 전엔 영향력이 없다느니 뭐니 하며 깔보듯 말했지만, 그거야 현재의 이야기일 뿐이다. 상대는 무려 탑주가 직접 영입한 인물. 어떤 비범한 일면이 있을지 모른다.

     하다못해 적대 세력에 가담하는 것만으로도 신경에 거슬릴 존재다. 그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했으니 일단 경계심이 상당히 낮춰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겉으로는 코웃음 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남몰래 안도하고 있었다. 딱히 세력 구도 변화에 신경을 쏟을 필요가 없어졌다.

     카른은 더 이상 로엘을 몰아붙이지 않고 가만히 물러났다. 입가의 비웃음은 지우지 않았지만.

     곧바로 다른 제자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번엔 흥미 어린 시선을 보내오던 소녀였다. 대충 보아하니 플로라와 비슷한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카른. 남에게 면박을 주기 전에 적어도 자기소개 정도는 하는 게 어때? 그래도 초면인데.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지.”

     그녀는 먼저 카른에게 핀잔을 주는 것으로 서두를 끊었다. 그 말에 카른이 코웃음을 쳤다.

    “안녕? 나는 메이엘. 메이엘 플루비나라고 해. 마탑에 입문한 건 7년 전이야.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엔 나름 윗줄을 차지하고 있어.”

     그녀의 발언에 여기저기서 들리지 않게 혀를 찼다. 그러나 딱히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이 자리의 모두는 이미 그녀의 성격을 여러 차례 겪은 이들이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사실 그녀의 말에 틀린 점이 없기도 했다. 그녀는 차기 탑주 자리를 노리는 열한 명의 제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유력한 인물로 꼽히는 넷 중 하나였다.

    “일단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탑주 자리에 관심이 없다는 걸 보니 이미 진로를 명확하게 결정한 것 같다?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무슨 계통 마법을 배울 생각이야? 희망하는 스승은 누구고?”

     실상 다른 제자들이 묻고 싶었던 말을 대변하는 질문이었다.

     상대가 쓸 만한지 그렇지 않은지. 적으로 돌아서면 위험할지 그렇지 않을지. 그것을 알아보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가 마법의 계통, 그리고 스승의 성향이다.

     상대가 아무리 포기 선언을 했다고 한들 가치가 있다면 주위에서 이용하려 들지 않을 턱이 있나. 미리 상대에 대해 알아두려 드는 것이 당연했다.

     주위의 시선을 담담하게 웃는 얼굴로 받아넘기며, 로엘이 답했다.

    “희망하는 계통은 공방 관련 마법입니다. 희망하는 스승은 딱히 없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주위 소년 소녀들이 하나같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시선을 피해 로카인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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