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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습격(4) (58/249)
  •  58화. 습격(4)

     노숙은 의외로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레인은 그저 대접을 받는 입장이었으니까.

     불을 피우는 것에서부터 식사를 마련하는 일까지. 전부 병사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니 굉장히 편했다.

     물론 마을에서 숙소를 잡고 휴식을 취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노숙에 비할 바 또한 아니었다. 얼마 전 혼자 노숙을 했었던 것에 비하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덕분에 레인은 부상자를 돌보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오래 걸리지 않아 그 뒤론 가만히 휴식만 취하면 되었고.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식사였다. 그저 육포만을 뜯었던 지난번 노숙과는 다르게 제대로 조리된 뜨끈한 수프를 맛볼 수 있었다.

     불침번 외엔 모두가 잠드는 저녁 시간도 마찬가지. 병사들은 그를 배려해서 따로 전용 모닥불을 피워줬다. 근처에 푹신한 풀을 깔고 동물 가죽을 덮어 간이 침상까지 만들어주었다.

     물론 불침번을 설 필요도 없었다. 병사들이 알아서 다 서 주겠다고 했으니.

     그렇다고 해서 레인이 마냥 편하게 잠든 것만은 아니었지만.

     레인은 그 어떤 사람을 마주할 때도 마지막까지 일말의 경계심을 무너뜨리지 않고 대하는 습성이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된 귀족 소녀 일행을 완전히 신용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갈수록 동조율이 더욱 높아져 가는 전생의 기억 탓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멀리서 느껴지는 몬스터의 기척만으로도 잠에서 깨어났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레인은 한 가닥 감각의 끈을 풀어둔 채 얕게 잠들었다. 아마 아침까지 살짝 잠에 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게 되리라.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 * *

     다음 날 아침.

     이제는 모두 제 컨디션을 찾은 귀족 소녀 일행과 레인은 다시 관도를 내달렸다.

     채 점심이 되기 전에 마을에 도달했지만 지나쳤다. 대충 밤이 되기 전에 그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듯싶어 들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일단은 되도록 ‘그들’의 영향권이 된 자작령에서 멀어질 생각이었다.

     수행원들은 긴장한 기색으로 계속해서 주위를 경계했다. 이미 한 차례 습격을 받았고, 상당한 피해를 입었던 터라 자연히 기세가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루 종일 심력을 소모한 것이 무색하게도 적습은 없었다. 간간이 소형 종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이외엔 검을 뽑을 상황조차 생기지 않았다.

     레인은 그 와중에 퇴치한 몬스터의 사체를 흑아에게 먹였다. 귀족 소녀 일행이 그 광경을 보고 흠칫했지만, 레인은 이젠 그들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일행은 무사히 목적한 마을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짐을 내려놓고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놈들이 굳이 목격자 걱정이 없는 관도를 두고 다음 날이면 떠날 마을에 잠입해 일행을 공격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노숙과 강행군으로 지친 일행은 충분한 식사와 잠으로 체력을 보충했다.

     그래도 일단 최소한의 인원은 돌아가며 귀족 소녀가 머무는 방 앞을 지키긴 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것이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심지어 열흘이 지난 후에도 똑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이즈음에는 일행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어졌다. 이미 자작령과는 상당한 거리가 벌어진 데다 놈들이 전혀 모습을 드러낼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당연했다.

     일단 호위병들인 만큼 행동 강령에 따라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분위기가 조금 나태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딱 그즈음에 두 번째 습격을 받았다.

     * * *

     필리언 자작령과 클리튼 백작령을 지나 막 클럼프 자작령으로 접어들 때였다. 주변은 구릉지대로, 그다지 볼거리는 없는 지루한 구간이었다.

     관도 앞을 가로막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수행원들은 일순 이전의 로브인들과 같은 무리인가 싶어 경계심을 높였다가, 이내 김이 샌다는 듯 피식 웃었다.

     관도 한가운데에 서서 일행을 맞이한 이들은 다름 아닌 산적의 무리.

     쓸데없이 거대한 무기와 난폭한 흉터가 가득한 상체. 거기에 가죽조끼만을 걸친 야성적인, 혹은 민망한 차림새. 심지어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까지. 산적임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산적 정도는 이쪽을 조금도 막을 수 없다. 일행의 긴장이 빠르게 풀어졌다.

     일행이 산적 일당 앞쪽 10여 미터 정도를 남겨두고 마차를 멈췄다. 산적들이 어깨에 걸머지고 있던 무기를 일제히 그려 쥐었다.

    “이놈들! 감히 네놈들이 본 자작가의 행차를 방해하는 것이냐!”

     선두에 위치한 기사가 그들에게 위압적으로 소리친다.

    “…….”

     묘하게도 상대측에선 전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무시당했다고 여긴 것인지 기사가 인상을 찌푸리고 재차 소리치려고 했다. 그 순간, 레인이 갑작스레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더니 기사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레인은 기사가 위치한 곳에 도달하자마자 곧바로 발을 굴러 진각을 밟았다.

     쾅!

     지축이 흔들렸다. 충격을 받은 땅이 움푹 패여 들어갔다.

     기사가 타고 있는 말이 겁을 집어먹고 날뛰었다. 그것을 진정시키느라 기사가 진땀을 뺐다.

    “무, 무슨 일입니까?”

     오라까지 동원해가며 힘으로 억지로 억눌러서야 겨우 말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기사가 레인에게 물었다. 레인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헉!”

     레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내린 기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레인이 짓밟은 바닥으로부터, 붉은 얼룩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땅속에 생명체가 숨어 있었다가 해를 당하기라도 한 듯.

    “땅 아래로 자유롭게 오가는 능력이라. 이것도 마법인가?”

     레인이 중얼거렸다.

    “이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상할 정도로 ‘마법사’가 많은데.”

     기감에 걸려든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 분명 그들, 그러니까 이전의 로브인들과 같은 조직에 속한 놈들이다.

     거기다 이번에도 마법사로 추정되었다.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만난 놈들의 세력 구성원 전원이 마법사였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기사가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말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것을 레인이 저지했다.

    “하마(下馬)하지 마. 몇 놈이 더 있으니까.”

    “예, 옙!”

     기사에게 주의를 주고 앞쪽을 보니, 산적들이 상당히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레인은 그들을 잠시간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산적들을 전면에 배치해서 시선을 돌리고, 마법사들이 바닥으로부터 기습을 가한다. 그런 계획을 짠 모양이군.’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동료가 당한 탓인지 상당히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음이 기감으로 파악되었다.

    ‘그건 그렇고, 산적들까지 자신들의 행사에 동원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니 무언가 더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가장 먼저 이 녀석들을 본 곳도 폭력조직이었지. 상하관계였던 것 같았는데, 저 녀석들과도 그런 건가?’

     레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직’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듯싶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들의 세력은 단순히 암흑조직뿐 아니라 각종 폭력 관련 세력을 총괄, 그리고 지배한다고 보면 되는 건가?’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 그런 듯싶었다.

    “쯧.”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자니 발아래서 느껴지는 기척이 한층 더 부산스러워졌다.

     레인은 곧바로 신형을 이동, 일리나가 타고 있는 마차 근방에서 재차 진각을 밟았다. 역시나 땅이 움푹 내려앉고 그 자리로부터 피가 배여 나왔다.

    “쳇!”

    “젠장!”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나머지 마법사들이 산적 쪽에서부터 솟아 올라왔다.

    “대체 네놈은 뭐냐!”

     마법사 중 하나가 레인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역시나 완전한 검은색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또 검은 로브인가. 개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들이군.”

     레인은 질문에 대한 답변 대신 비웃음을 흘렸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눈앞의 산적들에게 주의가 쏠려 마법사의 기습에 대해선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모른 채 당했더라면 상당히 위험했을 터.

     다행히 초감각을 가진 초일류 검사의 존재로 인해 이쪽의 피해는 없다. 아니, 상황은 오히려 피해를 본 것은 로브인들 뿐.

     일단 전력적으로 우위라는 판단이 서자 일행은 빠르게 동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제대로 방위를 선점해 적을 경계했다.

     반면, 로브인들의 경우엔 동요가 컸다.

     그들의 마법은 특별하다. 땅속을 통해 움직이기에 상대의 인식을 벗어나 행동하기에 용이하다. 이만큼 기습에 효과적인 마법이 드물다.

     대지 계열 마법의 아류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마법은 간파당하지만 않는다면 웬만한 기사 정도는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 강력한 것이다.

     몰래 땅속에서 다가가 기습적으로 상대의 발목을 붙잡고 땅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땅을 굳혀버리면 그것으로 끝.

     단지 그것만으로 기사씩이나 되는 고급 전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이 이들의 전투법.

     그런데 그것이 원천봉쇄 되었다. 그저 한 소년에 의해.

    ‘목표’인 소녀를 확보해야 하는데,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대체 어디서 저런 녀석이 튀어나와선…….”

    “앞서 테이머 조가 실패했다고 했었지. 그것도 저 녀석 때문인가?”

    “보아하니 그런 것 같은데.”

     로브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후우.”

     반면 레인은 김이 샌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정보를 얻긴 글렀군.”

     앞서 테이머들에게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들이 속한 세력은 점조직이다. 가장 상대하기 귀찮은 타입.

     그렇지만 점조직이란 조직 형태는 조직을 감추는 데에는 용이해도 한계 또한 명확하다. 대표적인 한계가 조직 구성원들 간의 신속한 정보 공유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고.

     눈앞의 로브인들을 보니 딱 그 짝이었다. 딱 보니 가지고 있는 정보라곤 ‘테이머들이 임무에 실패했다’ 정도인 듯했다. 그 이상의 정보를 가졌다면 저렇게 어정쩡한 전력으로 덤벼들었을 턱이 없다.

     레인은 노골적으로 실망스럽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미끼를 던졌는데 송사리만 몰려든 꼴이군.”

    “이 건방진 꼬맹이가!”

     곧바로 반발해오는 로브인. 그러나 레인은 그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적어도 중간 간부 정도는 걸려들길 바랐는데.”

     쓸데없이 방대한 조직인 모양이다. 저런 하부 조직원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확실하진 않으니 일단 잡아 족쳐서 정보를 빼내긴 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기대치가 확 낮아져 버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젠장! 쳐라!”

     로브인들이 산적들에게 명령했다.

    “읏?”

     산적들은 그 명령을 받고 곧바로 달려들지 않고 우물쭈물했다. 딱 봐도 소년은 위험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덤벼들었다간 개죽음을 당할 공산이 컸다.

    “당장 공격하지 못해! 아니면 내 손으로 네놈들을 먼저 죽여주마!”

     로브인의 협박까지 듣고서야 산적들이 주춤주춤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브인들이 일제히 땅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레인은 그것을 지켜보며 코웃음 쳤다. 뭘 노리고 있는지 뻔하다. 산적들이 먼저 덤벼들면 빈틈을 노려 이쪽을 공격해올 셈이겠지.

     레인이 몸을 날렸다. 그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좌중의 인물들에겐 갑작스레 꺼지듯 사라진 것으로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

    쾅-!

     산적들이 혼비백산해서 뒤쪽을 돌아보았다.

     대체 언제 배후로 돌아간 것일까. 분명 몇 초 전만 해도 자신들의 앞쪽에 있던 인물인데.

     소년은 또다시 진각을 밟고 있었다. 바닥에서 뭉클뭉클 피가 배여 나왔다.

    “우선 멋대로 이탈하려는 놈부터 잡고.”

     정보를 상부에 전하기 위함인지, 다른 로브인들과 달리 뒤쪽으로 빠지는 기척이 있기에 먼저 짓이겼다. 그리고 로브인 일동에게 경고했다.

    “말해두겠지만, 너희가 달아날 수 있는 곳은 없다.”

     레인은 핫, 하고 웃었다.

     * * *

     산적들이 전원 나가떨어지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로브인들은 끝까지 격렬하게 저항했다.

     두어 명이 추가로 희생되고 나자, 로브인들은 결국 땅속으로 숨어드는 것을 포기했다. 그들은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후 오로지 레인을 향해서만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토창(Soil Spear)>.

     네 로브인의 일점사. 땅에서 솟아난 원뿔형의 흙색 창이 일제히 레인에게 날아들었다.

     로브인들이 사용 가능한 마법 중 가장 강력한 종류의 것. 강한 대신 효율성이 극히 떨어져 몇 번 사용할 수 없는 비기였다.

     네 개의 흙창이 회전하며 날아든다. 그 속도는 시위를 떠난 화살만큼이나 빠르고, 그 위력은 바위를 부술 정도로 강력했다.

     그것을, 레인은 일견 가벼워 보이는 발놀림으로 모두 가볍게 회피했다. 실상은 상승의 보법을 사용한 것이지만, 로브인들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맙소사!”

    “저렇게 간단히?”

     적중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하다못해 받아치기라도 한다면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소년은 그 생각을 비웃듯 한정된 좁은 방위 내에서 발을 몇 차례 놀린 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회피해버렸다. 그야말로 전의를 한없이 깎아내리는 광경.

    “공격방식 한번 쓸데없이 정직하기는.”

     그저 직선 궤도로 날아올 뿐인 공격이라니, 차라리 3류 애송이의 검격이 더 위협적일 듯싶었다. 가진 힘도 별것 없는데 활용법도 별로였다.

    “역시, 글러 먹었어.”

     암만 봐도 이놈들은 간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약하다. 적어도 이전에 테이머들에게서 들은 놈들의 조직 규모를 생각하면 이 수준으론 간부 역을 수행하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이 마법사들에게서 정보를 얻기는 힘들 듯했다.

    “딱히 쓸모도 없을 것 같고. 그냥 한 명만 남기면 되겠지.”

     검신에 강렬한 기운이 맺혔다. 찬란한 백광이 검에 덧씌워졌다.

     섬(閃).

     촤악!

    “히익?”

     참격. 단숨에 세 로브인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남은 로브인 하나가 완전히 겁을 집어먹고 질린 듯한 목소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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