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습격(2)
“쳐라!”
“죽여라!”
로브인들이 손짓했다. 그러자 몬스터들이 산개하며 귀족 소녀 일행을 향해 돌격했다.
“큭, 전투에 대비하라!”
기사가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기사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이미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반드시 마차를 지켜내야 한다!”
기사가 이를 악다물며 검을 강하게 그려 쥐었다. 손에 들린 검 표면으로 검기가 일렁이듯 피어올랐다.
* * *
테이머(tamer).
짐승, 혹은 몬스터를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는 마법사들을 칭한다.
이들은 짐승이나 몬스터를 기르며 그들과의 교감을 높이고, 수없는 마법적 조치를 통해 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테이머에게 길러진 짐승, 혹은 몬스터는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그 주인의 명령을 따른다. 그것이 설사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해도.
본래라면 인간을 따르지 않을 흉성 넘치는 존재를 길들인다는 것. 단지 그것만으로, 테이머는 강대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테이머가 다루는 몬스터는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테이머가 그저 지배력만을 행사할 리 없으니까.
다루는 몬스터의 신체를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요, 매일 적당한 운동을 유도함으로써 힘을 기르게 한다. 각종 마법적인 조치로 종족적 한계치를 뛰어넘게 만들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일반적인 몬스터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장비’를 장착시킨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부리는 몬스터는 통상적인 몬스터의 몇 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흐압!”
오우거 한 개체를 정면으로 맞이한 기사가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워어어억!
거대한 풀 플레이트 아머(full plate armor : 금속전신갑주)로 전신을 감싼 오우거가, 역시 거대한 클레이모어(claymore : 양손 검의 일종)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쾅!
기사가 검에 오라를 실어 공격을 받아냈다. 그러나 곧바로 압도적인 질량에 떠밀려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아무래도 오라의 유무로 인해 검의 손상으로만 치자면 오우거 쪽이 손해였다. 그렇지만 워낙에 거대한 무기라 피해를 입혔다고 보긴 어려웠다.
타고난 신력으로 휘둘러진 4미터짜리 대검엔 조그마한 실금이 생겼을 뿐. 기사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더군다나 힘의 차이가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충격이 거의 기사 쪽으로 몰려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오라 운용 능력을 지닌 정도로는 전혀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크으.”
기사가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오우거를 향해 달려 나갔다. 계속 뒤쪽으로 밀리면 진형을 무너뜨리게 된다. 일단 자신의 위치를 사수해야 했다.
쾅! 쾅! 쾅!
연속으로 들리는 소음.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라기보다는 바위와 바위가 충돌하는 것에 가까운 둔중한 음량. 기사가 또다시 뒤쪽으로 주르르 밀려났다.
그냥 상대하기도 버거운 대형 몬스터가 제대로 장비까지 갖춘 채 덤벼드니 속수무책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몬스터들을 저지하고 있는 동료들 또한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쏴라!”
“눈을 노려라!”
병사들이 기사들의 뒤쪽에서 활을 쐈다. 마법사가 마차 지붕 위에서 마법으로 엄호했다.
그러나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화살도, 마법도 몬스터들이 입고 있는 갑주에 맞고 튕겨져 나왔다. 인간이라면 무게 때문에라도 걸칠 수 없을 터인 두꺼운 강철 갑주가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려버리고 있었다.
“뭐 이런 황당한.”
아무리 봐도 상황을 타개할 방도가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
병사들은 눈과 같은 드러난 부분을 노렸지만, 애초에 상대가 반사신경이 인간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몬스터였다. 화살 따위에 당해줄 턱이 없었다.
결국 좌측에서 트롤을 맞이해 응전하던 기사가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워어어어어억!
트롤이 무기도 버려두고 육탄 돌격을 감행했다. 너무나도 무방비한 모습으로.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행하지 않았을 공격방식.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달려드는 상대에게 기사는 반사적으로 온 힘을 다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이내 상대가 트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절망했다.
검은 판금 갑옷을 꿰뚫고 트롤의 가슴 한복판에 박혀 들어갔다. 그러나 트롤은 그 특유의 무시무시한 생명력으로 그것을 견뎌내 버렸다.
트롤은 그대로 밀고 들어가 기사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통째로 짓눌러버렸다. 안 그래도 거대한 동체인데 갑주까지 더해져 그 무게가 굉장했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공격수단이었다.
기사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결말을 맞이했다. 이내 트롤이 신형을 일으키자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변모한 기사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으.”
“우욱!”
당연하게도, 사망한 기사가 방어하던 쪽의 진형이 크게 흔들렸다. 트롤이 진형 안쪽으로 파고들기 위해 날뛰고, 대경한 병사들이 기를 쓰고 이를 막아섰다.
고급 전력인 기사의 부재로 인해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전력이 부족한 것은 둘째치고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사망자가 속출했다. 줄어든 병사만큼 전력이 부족해져 진형이 더 크게 흔들렸다.
콰앙!
“커헉!”
오우거를 상대하던 기사 하나가 시시각각 무너져 내려가는 진형에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무리한 검격을 날리다 두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거대한 검면에 복부를 허용하고 말았다.
다행히 검날에 베인 것은 아니었기에 즉사는 면했다. 그러나 더 이상 전력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다.
갈비뼈가 우수수 부러져버린 기사가 귀족 소녀가 탑승한 마차 근방까지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혼절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마차에 타고 있던 귀족 소녀가 목격했다.
“…….”
끼익.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귀족 소녀가 걸어 나왔다.
“아, 아가씨!”
“위험합니다! 마차 안에서 대기해 계십시오!”
“아뇨. 지금의 상황에 숨어 있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겠죠.”
병사들이 급히 소리쳤지만, 소녀는 완고하게 고개를 저었다. 병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드시 막아내 보이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마차 안에 숨어 계십시오!”
“아뇨. 그러지 않겠습니다.”
소녀는 기사들의 염려 가득한 외침에 재차 단호한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그녀의 올곧은 시선이 전면을 향했다.
소녀의 출현에 로브인들이 눈을 빛냈다. 양측의 시선이 교차했다.
“오호. 저 아가씨가 이번 타깃인가보군.”
“외견적인 특징이 전해 들은 바와 일치한다. 확실해.”
습격자들은 저들끼리 무언가 쑥덕거리더니 이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소녀는 한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뒤, 그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제가 순순히 당신들에게 잡혀간다면.”
“아가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소녀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그녀의 말을 짐작한 기사들이 대경해 소리쳤다.
“여기 있는 제 일행의 안전을 보장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소녀는 질문을 끝까지 이어갔다.
“호오.”
로브인들 중 하나가 감탄사를 발했다. 실로 모범적인 자기희생이 아닌가. 그런 것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다.
로브인은 약간 장난스러운 어조로 소녀의 질문에 답했다.
“그쪽에서 알아서 신병을 넘기려고 한다면야 그러지 못할 것도 없지. 쓸데없이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되니 우리 쪽에도 나쁘지만은 않은 이야기고.”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아가씨!”
소녀가 처연한, 동시에 조금 안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곧바로 호위 기사들이 피를 토하듯 소리쳐 만류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로브인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적당히 장단을 맞춰 줬더니 신파극을 벌이고 앉았군. 안 됐지만, 목격자를 살려두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너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
로브인은 킬킬 웃으며 뒷말을 덧붙였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 같고.”
로브인의 비웃음에 소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놀림 받았음을 깨닫고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얼굴 한번 반반하군. 분명 살려서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
“오랜만에 재미 좀 보겠군.”
“저만한 미인이 어디 흔한가. 이런 때 실컷 즐겨둬야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이젠 음담패설까지 주고받는 로브인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귀족 소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로브인들이 그런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킬킬거렸다.
그러던 와중, 소녀가 눈을 크게 떴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갑작스런 등장 때문에.
우두커니 서서 연신 눈을 깜박이는 소녀. 로브인들은 그런 소녀의 모습을 겁에 질려 몸이 굳은 것이라 여겼다.
한 로브인이 그것을 조롱하는 말을 내뱉으려 했다. 바로 뒤쪽, 귓전에서 들려온 앳된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아서 그런데, 네가 설명 좀 해 주지.”
“……!”
아무리 생각해도 동료의 목소리는 아니다. 전혀 모르는 목소리다.
그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한 가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여기 있는 전원의 이목을 가볍게 속이고 배후를, 그것도 지근거리에 해당하는 위치를 점했다는 것.
로브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여섯 로브인 전원이 당황했다.
로브인들은 귀족 소녀의 수행 병력을 치러 나선 몬스터 네 개체를 제외한 두 개체를 근처에 배치해 둔 상태였다.
몬스터들의 오감은 인간의 그것을 초월한다. 특히 동물의 형태를 가진 몬스터일수록 감각이 탁월하다.
테이머들을 보호하고 있는 두 몬스터는 미노타우로스. 상당히 뛰어난 감각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그 몬스터들이 소년이 스스로 기척을 드러내기 전까진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려 동물형 몬스터의 감각을 가볍게 속이고 접근한 상대라는 말이었다.
“일단 저것들은 좀 멈추고. 정신 사나운데.”
소년, 레인이 말했다.
‘저것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테이머들은 곧바로 이해했다. 귀족가 일행을 공격 중인 몬스터들을 뜻하는 것이리라.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테이머들이 곧바로 그 말을 따르진 않았다. 그러자 레인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죽여버린다?”
섬뜩.
그 목소리를 들은 테이머들의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심지어 귀족 소녀 일행들까지 몸을 움츠렸다.
테이머들이 다급히 손짓해 몬스터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 레인의 모습을 확인했다.
“…….”
다만 레인에게 완전히 뒤를 붙잡힌 한 명만은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뒤돌아선 이들은 처음엔 레인의 외양에 놀랐다. 그리고 다음으론 뿜어져 나오는 섬뜩하기 그지없는 기운에 공포에 질렸다.
그것은 음험한 기운을 바탕으로 마법을 발현하는 그들에게조차 끔찍하게 느껴지는, 그런 기운.
테이머들로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기운은 한때 중원의 모든 무림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자의 무공에서 기인한다. 무려 천마신교(天魔神敎)의 주인이 되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그런 무공에서.
그것은, 천마기(天魔氣).
만마의 군주이자 마도 무림의 정점인 천마(天魔). 그 잔혹한 군주가 발산하는 기세. 만인을 굴복시키는 지배자의 기운.
터무니없는 악의(惡意)를 접한 테이머들이 숨을 들이켰다. 마치 고양이를 마주한 쥐 마냥 두려움에 떨었다. 개중에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는 자도 있었다.
“귀, 귀인은 누구십니까.”
“그건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지.”
로브인의 물음에 레인이 같잖다는 듯이 답했다. 그의 시선이 로브인들을 한 번씩 스치고 지나갔다. 그 시선을 마주한 로브인들이 재차 몸을 떨었다.
“질문은 내가 해. 너희는 그저 대답만 하면 돼.”
“크윽.”
로브인들을 압박하는 악의가 한층 더 짙어졌다. 한 로브인이 견디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
레인이 여유로운 얼굴로 주위를 한차례 돌아보았다.
몬스터들의 공격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병사와 기사들이 차례차례 시야에 들어왔다. 레인의 눈이 점차 가늘어져 갔다.
“이, 이익!”
그 무방비한 모습에 한 로브인이 기회라고 판단했다. 레인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자였다.
그가 손가락을 들어 레인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몬스터, 미노타우로스가 돌격 자세를 잡았다.
촤악!
그리고, 로브인의 목이 공중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