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동행(2) (53/249)
  •  53화. 동행(2)

     조그마한 마차 한 대가 관도를 질주했다. 중형 마차와 그 마차를 호위하는 일행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뒤따랐다. 그야말로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거리상으로 보면 양측이 하나의 일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가깝다. 그러나 전방의 마차와 후방의 마차는 단 한마디의 말도, 사인도 주고받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내달리기만 할 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레인은 애써 뒤따르는 이들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뭐가 어떻든,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간밤에 쌓인 피로를 조금이라도 더 몰아내기 위해 심법을 운용했다. 약 한 시간여의 운공 끝에 졸음운전을 하지 않을 정도까진 피로를 풀어낼 수 있었다.

     기지개를 켜며 크게 하품을 한 번. 품에서 육포 조각을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어제 포식한 덕분인지 오늘은 흑아가 배고프다 보채진 않았다.

     빠르게 뒤쪽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단조롭다. 그저 관도, 그리고 몇몇 나무들뿐. 또다시 스멀스멀 무료함이 찾아왔다.

     그렇게 레인이 나른한 얼굴로 가만히 마차를 몰던 중이었다.

     어느새 다시 찾아온 졸음에 고개를 끄덕끄덕 기울이던 레인이 살짝 눈을 치떴다. 그가 전방을 주시하며 잠을 몰아내기 위해 목을 뿌득뿌득 꺾었다.

     이내 일단의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미 새벽에 한 차례 조우했던 오크와 고블린의 무리였다.

    ‘더 있었던 건가?’

     하긴 겨우 백여 마리라니 의아하긴 했다. 적다고는 볼 수는 없지만, 관도 근방에 자리 잡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밀어버리기엔 많이 부족한 숫자였다.

     아무래도 마을을 침공하기 위해 연합했던 몬스터들이 지금은 무리별로 다시 흩어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는다.

    “식사할 수 있겠네. 흑아.”

     레인이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림자가 살짝 일렁였다. 기분 좋다는 듯.

    “검 좀 꺼내줘.”

     그림자에서 얇은 줄기 하나가 뻗어 나왔다.

     달칵.

     문을 열고 마차 안쪽으로 들어간 줄기가 검을 휘감아 끌어내려는 순간.

    “아니다. 그냥 둬. 필요 없을 것 같으니까.”

     레인이 뒤쪽을 곁눈질하며 말을 번복했다. 검은 줄기가 멈칫거렸다.

    “하아!”

    “이럇!”

     직후, 마차 양옆을 한 무리가 쏜살같이 스쳐 지나갔다. 뒤쪽에 따라오던 기사들이었다.

     레인이 시선을 뒤로 돌렸다. 시선이 마주친 귀족 소녀가 빙긋, 하고 웃음 지었다. 레인이 한 차례 혀를 찼다.

    “아무래도 식사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림자가 잘게 흔들렸다. 슬프다는 듯.

     * * *

     기사들은 질풍같이 내달려 몬스터를 도륙했다.

     강력하기로 이름 높은 펠라키 산맥의 몬스터도 아니고, 육중한 대형 몬스터도 아니었다. 몬스터 무리는 전혀 그들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기사들의 검에 선명한 검기가 맺혔다. 빠르게 전투를 마무리짓기 위해 체내에 축적한 오라를 아낌없이 소모했다.

     그로 인해 연출되는 압도적인 무용. 보호받는 입장에서는 든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왜들 저리 오버하는지 모르겠군. 요인 호위가 목적이면 항시 여력을 남겨둬야 하지 않나?’

     정작 레인은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그들을 보았지만.

     사실 기사들이 오버한 이유는 예기치 않게 일행 아닌 일행이 되어버린 레인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모시는 아가씨의 독단행동으로 결국 함께 이동하게 되었지만 레인은 호위기사들에게 있어 경계 대상이었다.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주의시켜둘 필요가 있었다.

     쉽게 말해 힘을 과시해 경외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심어주려 한 것이다. 그다지 효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그렇저럭 볼만하긴 하네.’

     레인은 마차를 세우고 적당히 육포를 씹으며 전투를 구경했다. 그 얼굴에 긴장하는 기색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레인이 그저 그런 촌뜨기였다면 기사들의 무력시위에 동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초일류 검사. 기사들을 발아래로 볼 정도의 실력자다.

     눈높이가 다르면 보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다른 법. 기사들의 행동은 오히려 레인이 그들을 낮잡아보게 만들었다.

    ‘흠.’

     원래 불구경과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는 법. 레인은 한가롭게 흑아에게 육포를 던져주며 기사들이 몬스터들을 도륙하는 장면을 구경했다.

     뒤쪽의 귀족 소녀 일행 또한 기사들의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다만 그쪽은 레인과는 달리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 *

     대기하던 병사들이 도륙된 몬스터들의 시체를 처리했다.

     먼저 부산물을 습득했다. 그리고 나머지를 한곳으로 모았다.

     적당히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어 마차가 달릴 길을 확보했다. 치우기만 해도 길을 확보하는 데엔 문제가 없지만, 관도 근방이니 귀찮더라도 제대로 묻어야 했다. 그것이 관례니까.

     시체가 썩어 악취가 발생되거나 역병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치였다.

     레인은 볼을 긁적였다. 생소한 광경이었다.

     펠라키 산맥에서는 저런 식으로 시체를 묻은 적이 없었다. 어차피 근처의 몬스터들이 몰려들어 살점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니까. 한가롭게 매장 따위를 하고 있을 여유가 없기도 했고.

     그런데 관도는 사정이 달랐다. 제대로 뒷정리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좋은 것을 배웠다.

    ‘흑아가 먹어 치우게 하면 편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귀족 소녀가 물어왔다.

    “어땠나요?”

    “굉장하더군요.”

     레인은 마음에도 없는 말로 기사들을 치켜세워주었다. 그리고 묵례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름 예의를 차린 것이지만 소녀의 수행원들은 탐탁지 않은 얼굴을 했다. 너무 성의가 없다 여긴 것이다.

     아무래도 레인과 귀족 소녀 일행이 이번 일의 경중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레인의 입장에선 굉장히 가벼운 일이었으니까.

     수행원들은 레인이 어린데다 평민이라 예의를 모른다며 저들끼리 조용히 험담을 주고받았다.

    ‘쯧.’

     저들 딴에는 소리를 죽인다고 애쓴 모양이지만 레인의 귀엔 다 들렸다.

     마차는 다시 관도를 내달렸다. 그리고 아무런 장애나 마찰 없이 여관이 있는 다음 마을에 도착했다.

     * * *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레인은 적당히 여관을 물색했다.

     여관을 정한 뒤 마차를 마구간에 맡기고 건물 내로 들어섰다. 1층을 식당으로, 나머지 층을 숙소로 운영하는 여관이었다.

     레인은 곧바로 음식 주문부터 했다. 벼르고 있었던 차였기에 상당한 분량을 주문했다. 식탐이 많은 사람이 현금까지 풍족하니 거침이 없었다.

    ‘……뭐야?’

     막 음식 주문을 마친 그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귀족 소녀 일행이 뒤따라 여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레인이 선택한 여관은 싸구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고급스럽지도 않았다. 솔직히 귀족이 이용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귀족 소녀 일행은 레인과 같은 여관에 들어섰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저들의 오지랖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

     레인이 애써 표정을 다잡는 와중, 귀족 소녀가 자연스레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뒤따르던 수행원들이 살짝 인상을 썼다.

     이내 기사들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동석했다. 병사들은 적당히 다른 테이블에 흩어져 자리 잡고 앉았다.

    “식사까지 같이할 생각이십니까?”

    “뭐 어떤가요. 우연히 같이 다닐 뿐이라도 일행은 일행인데요. 식사 정도 같이하는 것쯤이야.”

    “…….”

     딴엔 맞는 말이었다. 상대방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일행이 각자 식사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밑반찬이 세팅되었다.

    “…….”

     이내 레인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보통 밑반찬이 나오면 일반인은 본 메뉴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것을 깨작거리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귀족가의 일원이라서인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저쪽은 잘만 집어먹고 있는데.’

     다른 병사들은 편하게 잘도 집어먹고 있건만, 이 테이블은 대체 뭔가. 그야말로 엄숙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였다.

     특히 눈앞의 귀족 소녀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조차 묘한 기품이 있었다. 그것이 병약한 모습과 그럴싸하게 어우러졌다. 한 마리 고고한 학 같았다.

     레인은 불편한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마음 같아선 정갈하게 놓인 밑반찬들을 팍팍 집어먹고 싶었다. 차마 그러진 못했지만.

    “그러고 보니 의학 쪽에 관계가 있는 분이신 것 같은데…….”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것인지, 귀족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예?”

    “아닌가요? 마차에서 상당히 짙은 약향(藥香)이 나길래 그럴 거라 생각했거든요.”

     상당히 주의력이 좋은 소녀였다. 그런 건 또 언제 알아보았단 말인가.

    “예, 뭐. 나름 의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레인의 긍정에 소녀가 빙긋, 하고 웃었다.

    “제가 그런 쪽엔 조금 예민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쪽 방면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보니.”

    “그렇군요.”

     레인의 대답은 다소 성의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툭툭 끊어졌다.

     수행원들은 그것이 못내 언짢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상대가 어리고 평민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굉장하네요. 저보다도 어려 보이는데. 그 나이에 의원이라니.”

    “흉내만 내는 정도입니다. 치켜 올려 주시니 부담스럽군요.”

     레인은 그답지 않게 겸양을 떨었다. 속이 느글거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이것도 일종의 훈련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제가 그쪽 분야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약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알겠던데요.”

    “신경 쓰실 정도로 대단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닙니다.”

     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영약은 무인이 아닌 이들에겐 그리 효용이 없는 물건이었다.

    “식사 나왔습니다!”

     마침 점원이 주문한 요리를 날라 왔다. 테이블에 요리가 세팅되었다. 일행의 주의도 그쪽으로 돌아갔다.

     레인은 기다렸다는 듯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이번에도 귀족 소녀 일행 때문이었다.

     그들은 식사 전에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그들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리곤 격식 있게, 음식 씹는 소음 한 번 흘리지 않고 식사를 했다.

     그런 종류의 식습관을 경험해 본 적 없는 레인은 급격히 식욕을 잃었다. 당최 분위기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유난히 자신의 음식 씹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역시나 귀족 소녀의 모습은 독보적이었다. 그야말로 품위 넘치는 식사. 이쯤 되자 레인은 자신이 지금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인지 살아있는 예절 교습서를 보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결국 레인은 주문한 음식을 채 반도 다 먹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일행에게 묵례한 뒤 곧바로 개인실에 틀어박혔다.

     그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예 음식을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주문했다. 그것을 쩝쩝 소리 내가며 흡입했다.

     그가 고깃점을 입으로 밀어 넣으면서 결심했다.

    ‘앞으로는 절대 저 치들과 같이 식사하지 않겠어.’

     * * *

     달빛만이 세상을 아스라이 비추는 밤. 레인은 조용히 여관을 나섰다.

     그가 곧바로 상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은 뒤였다. 그나마 아직 영업 중인 식료품 상점 하나를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몇 안 남은 고기류를 전량 매입, 그것을 들고 숙소로 향했다. 흑아의 식사거리였다. 낮에 식사를 챙겨주지 못한 탓에 결국 지출을 감수하게 되었다.

    ‘도망칠까.’

     레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귀족 일행 몰래 야반도주해버릴까 하고.

    ‘쯧.’

     문제는 목적지가 같다는 것이었다. 귀족 일행의 최종 목적지는 뻔했다. 분명 하슨 백작가일 터.

     결국은 다시 볼 수밖에 없는 얼굴이었다. 만약 도망쳤다가 다시 재회하게 되면?

    ‘생각하기도 싫은 불편한 분위기가 형성되겠지.’

     별수 있나. 당분간 조금 참는 수밖에. 레인이 내심 로엘의 얼굴을 떠올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잡다한 생각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기던 중, 레인은 숙소 근방의 골목길에서 의외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그 귀족 소녀였다.

     어쩐 일인지 수행원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감을 돋워 주변을 훑었지만 걸려드는 감각이 없었다. 그녀 혼자만 덩그러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굉장히 아련했다. 레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잠시 주시했다.

     그러나 이내 관심을 거두기로 했다. 아무래도 대하기 불편한 상대였다.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레인이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을 때였다.

    “흐윽.”

     귀족 소녀가 갑자기 가슴팍을 붙잡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하아, 하아.”

     상체를 구부린 채 숨을 몰아쉰다. 그녀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진정이 되었는지 힘이 빠진 모습으로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닦아냈다.

    ‘뭐지?’

     본의 아니게 그 장면을 지켜보게 된 레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