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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각자의 길(2) (49/249)


 49화. 각자의 길(2)



 로엘은 정비 시간 동안 무기 제작에도 열을 올렸다.


 계기가 된 것은 가디언과의 일전. 가진바 무기의 화력이 부족해서 분진 폭발이라는 기책을 사용했던 그때.


 로엘은 생각했다. 총기 외에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무기를 제작할 필요가 있다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수류탄이었다.


 물론 수류탄 또한 화약을 필요로 하는 물건이었다. 심지어 총기와는 달리 공기를 압축시킴으로써 화약을 대체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마력을 이용했다.


 화약을 이용한 폭발로 수많은 파편을 비산시키는 원래의 수류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안전핀을 뽑는 대신 강한 충격을 줌으로써 뇌관을 작동시키는 방식이었다.


 안전핀 따위로 안전성을 장담하기는 무리였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뇌관이 건드리는 것은 압축된 마력 덩어리였고.


 한마디로 안정성도, 사용 조건도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열화품. 짧은 시간 내에 만든 물품의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열화품임에도 제작을 위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법진 구축부터 시작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폭발 위험이 있는 물건이라 더더욱 고생했다.


 그러나 위력은 확실했다. 파편이 비산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폭발이 일어나는 수류탄이었다. 아니, 마력탄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래도 짧은 시간 내에 만든 것치곤 쓸 만하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이전에 로카인과 함께 소총을 제작했을 때 진작 제작을 궁리했던 물건이었다. 다만 급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나중으로 미뤄뒀던 것을 이제야 제작한 것이었다.


 화르르르륵!


 사위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총격과 동시에 몸을 빼낸 로엘에게까지 그 열기가 전해졌다.


 한 타이밍 늦게 자리를 벗어난 레인은 후폭풍에 살짝 휘말렸다. 흔들리는 신형을 고정시키기 위해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몇 차례 몸을 굴렀다.


“후.”


 레인은 이내 바닥에 길게 족적을 남기며 신형을 멈출 수 있었다. 그가 한 차례 숨을 골랐다.


 겉모습으로만 보면 낭패를 당한 쪽이 레인인 것만 같다. 그가 온통 흙투성이가 된 반면, 로엘은 깔끔한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그 반대. 평온한 얼굴의 레인과 달리 로엘의 얼굴은 살짝 찌푸려진 채였다. 나름 회심의 일격을 날렸는데 전혀 피해를 입히지 못한 탓이었다.


 레인의 대응이 너무 좋았다. 조금의 지체도 없이 몸을 빼냈다. 그렇게나 자세가 무너진 상태였는데도. 눈앞에서 다 잡았다 여겼던 상대가 달아나고 있었음에도.


‘경험인가.’


 나름 심리적인 부분까지 고려한 공격이었는데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쉽게 파악되어 버렸다. 전생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수없이 겪었던 것이리라.


“보기좋게 당했네.”


 레인이 옷에 묻은 흙은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그렇게 거리를 좁히려고 애를 썼건만 다시 원점이 됐다.


“너무 쉽게 피해서 의욕이 꺾인 참이다. 괴물 같은 녀석.”


 로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력탄의 최대 단점은 역시 일회용이라는 점이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완성된 물건도 세 개뿐. 그중 한 개는 방금 사용했다.


 두 개가 남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이미 레인이 마력탄의 존재를 알아차려 버렸으니까. 더 이상은 조금의 틈도 내보이지 않으리라.


“자. 끝을 내야지.”


 레인이 사납게 웃으며 검을 겨눴다. 보아하니 이젠 더 이상 숨겨둔 패도 없는 듯싶었다. 대련을 마무리 지을 때가 되었다.


 로엘은 그런 레인을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항복.”


“……뭐?”


“항복이라고. 이젠 승산이고 뭐고 없으니까. 대충 원하는 바는 다 이루기도 했고.”


“너 인마.”


“이 이상은 몸을 험하게 굴리게 될 것 같아. 그러니 포기.”


 레인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로엘의 옷과 자신의 옷에 번갈아 시선을 주었다. 깔끔한 로엘의 복장과 흙투성이가 된 자신의 복장이 명확히 대비를 이뤘다.


“야 이 치사한 자식아.”


 레인이 저도 모르게 그렇게 내뱉고 말았다. 이기긴 이겼는데 어쩐지 진 기분이었다.



 * * *



 두 사람의 대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플로라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분명 저 두 사람이 13살이었지?”


 보통 13살이면 일반인은 검을 손에 쥐어본 적도 없을 나이다. 귀족가 자제라면 한참 기초를 다지고 있을 시기고, 검가의 후계자라면 한참 실력이 물이 오르고 있을 시기다.


 그런데 저 두 소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웬만큼 경지에 오른 대가들조차도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로 굉장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감이 안 잡히네. 나중에 저 둘이 성인이 되면 대체 어느 수준까지 성장하게 될지.”



 * * *



 이후 로엘은 중재자 역할을 맡아준 플로라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와 함께 데이트를 즐겼다.


“여긴 처음 와 보는데 맛이 상당히 괜찮네요.”


 내성 안쪽의 고급 식당에 자리 잡은 두 사람. 로엘이 고기를 한 점 썰어 입안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러네. 가격은 비싸지만, 확실히 돈값을 하는 것 같아.”


 플로라가 입안의 요리를 삼키며 로엘의 말을 받았다.


 자작령에 거주하는 로엘도 처음 와보는 식당이었다. 굉장히 값이 비싼 곳이기 때문. 이번에 유적을 털어 금전 사정이 넉넉해졌기에 조금 사치를 부리고 있는 중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


“왜 굳이 레인과 대련을 한 거야? 너희 두 사람은 가진 힘의 종류가 완전히 다르잖아. 그런 식으로 우열을 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녀의 말이 옳았다. 검사와 마법사가 실력의 우위를 논하지 않는 것처럼, 레인과 로엘이 가진 힘 또한 우열을 논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로엘이 손에 들린 포크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그래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뒤처지지 않으려면.”


“흐음?”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저희 두 사람에겐 특별한 비밀이 있거든요.”


“아니, 자세히 말하고 자시고 간에. 그냥 평범하게 제삼자의 시선으로 봐도 너희는 특별해. 그야말로 괴물이지.”


“괴물이라뇨.”


 로엘이 쓴웃음을 흘렸다. 이내 그가 표정을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오래잖아 갈라질 겁니다. 저희들.”


“그렇게 말했었지.”


“그래서 확인해 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다시 만나게 됐을 때 그 녀석이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도저히 감도 잡히질 않는지라.”


“으음…….”


“그래서 직접 경험하고 어느 정도 데이터를 얻으려고 한 거예요. 앞으로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기 위해서.”


“그걸 꼭 확인해야 해? 너는 그냥 네가 위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아냐?”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친한 사이일수록 우열이 갈리고 나면 관계가 어긋나기도 한다. 플로라는 그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방금 그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레인이죠. 전 그렇게 못해요. 그런 성격이니까.”


“그렇구나…….”


 전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플로라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오늘 광장 앞에서 공연이 벌어진다고 하던데. 같이 보러 가실래요?”


“응. 가자.”



 * * *



 플로라와 함께 공연을 즐기고 돌아온 로엘은 레인이 여관에 남겨 둔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리 좀 구하러 간다.]


 두서없는 말이지만 로엘은 알아들었다. 방 안에 예의 그 거대한 영약이 없었다. 아마 그 영약을 환단으로 조제하기 위해 필요한 넓은 장소를 구하러 간 것이리라.


“후.”


 할 일도 없는데 수련이나 하기로 했다. 침상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우선 생사공의 운용. 체내 혈도를 따라 꼼꼼하게 기운을 순환시켰다. 평소의 방만한 내력 운용과는 달랐다.


 전신의 탁기를 몸 밖으로 밀어낸 후, 다른 심법을 운용했다. 얼굴 부근에서 집중적으로 내력이 운용되는 심법. 즉, 성형공을. 이건 절대 빼먹을 수 없었다.


 정성 들여 운공을 마쳤다. 가만히 눈을 뜨니 어느새 레인이 돌아와 있었다. 테이블에 무언가를 세팅하고 있는 중이었다.


“뭐 해?”


“아, 일어났냐.”


“어.”


“둘이서 한잔하자고.”


 뭔가 하고 보니 술이었다. 제법 값이 나가는 술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몇 가지 간단한 안주도.


“파티 벌인지 얼마나 지났다고.”


 로엘이 피식, 하고 웃었다. 지난날 적룡대와 함께 생환 파티를 벌였던 일을 언급하며.


 그날, 두 소년은 거의 배가 터지도록 맥주를 위장에 부어 넣었었다. 취기야 내력 운용으로 날려 보내면 되니 고주망태가 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거랑은 또 다르지. 둘이서 이야기 좀 하자고.”


“뭐야. 작별 전에 분위기라도 내자고?”


“비슷해.”


“아직 날짜도 상당히 남았는데 뭘 벌써…….”


“안 돼. 당장 내일부터 환단 제조하러 틀어박힐 거야. 술 마실 시간이 지금밖에 없어.”


“그러냐.”


 로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레인과 마주 보고 앉았다. 곧바로 술잔이 오갔다.


“가서 잘해라. 그놈의 성격 좀 죽이고.”


 로엘이 먼저 운을 뗐다.


“글쎄. 봐서.”


“봐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 지랄 맞은 성격 무조건 뜯어고쳐라. 이젠 제자도 들인 놈이.”


“왜 이리 과민하게 반응해?”


“너 혼자 손해 보고 사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제자까지 휘말려 들게 하지 말란 얘기야.”


 뭔가 레이나를 위하는 것만 같은 말인데 묘하게 울분이 담겨 있었다. 레인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왜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심정이 드는 거지.”


“네가 내 엄마냐.”


 로엘이 불안한 눈길로 레인을 응시했다. 레인이 혀를 찼다.


“제국이라.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 만날 때까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이번엔 레인이 운을 뗐다.


“뭘 새삼스레.”


“아니. 기분이 묘해서.”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두 사람이다. 막상 이렇게 헤어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연락 정도는 주고받자고.”


“그래.”


 레인이 새로운 술병을 개봉했다. 그것을 각자의 잔에 따랐다.


“쓸데없는 내용 빼고 근황 보고만 해. 남자끼리 편지를 주고받을 생각을 하니 닭살이 다 돋네.”


“마침 같은 생각을 하던 차다. 적당히 생존 신고만 하자고.”


 두 소년이 잔을 부딪치며 킬킬 웃었다.


 로엘이 잔에 담긴 술을 쭉 들이켰다. 쓴맛을 기대했는데 예상외로 달았다.


“오. 이거 뭐야. 상당히 맛있는데?”


“비싼 거니까.”


“크. 돈이 좋긴 좋네.”


“일일이 따라서 마시기도 귀찮네.”


 레인은 술병 하나를 통째로 들고 병나발을 불었다.


“야야. 그게 뭐 하는 짓이냐.”


“아무래도 좋잖냐. 격식 따위 개나 주라지.”


“일단 같이 마시는 사람도 있는데.”


“뭘 굳이 예의까지 차려야 하는 상대라고.”


 아예 고개를 젖히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레인. 로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


“너 마탑 들어가면 그놈은 꼭 족쳐라.”


“물론.”


 로엘이 섬뜩하게 웃었다. 마주 보는 레인 또한 입가에 비슷한 웃음을 띠었다.


 그 뒤로 소소한 잡담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지났네.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 날로부터 8년은 되지 않았나?”


“벌써 그렇게나 시간이 흘렀군.”


“막 기억을 각성했을 당시만 해도 하수도를 돌아다니며 일했는데. 우리 많이 출세했네.”


“한 놈은 귀족가에 영입되고, 한 놈은 마탑에 입문하고. 확실히 출세하긴 했지.”


 두 사람은 서로 함께한 시간을 말로써 풀어내며 추억을 공유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떨 때는 웃고, 어떨 때는 분노했으며, 어떨 때는 혀를 찼다.


“아, 다 떨어졌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세 술이 동났다. 레인이 술병 입구에 맺힌 몇 방울의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다가, 이내 입맛을 다시며 병을 내려놨다.


“더 사 올까?”


“아니. 이쯤에서 멈추자. 더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정리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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