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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각자의 길(1) (48/249)
  •  48화. 각자의 길(1)

     유물 판매 등의 일이 일단락된 후, 두 소년은 무사 생환을 기념하는 조촐한 파티를 벌였다.

     별건 아니고, 대량의 치킨을 튀겼다. 맥주도 충분히 준비했다. 애초에 두 소년의 자축에 치킨이 따라붙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유물 판매 대금을 정산하러 찾아온 적룡대원들이 그 자리에 끼어들었다. 그 탓에 치킨이 빠르게 동나 버렸다.

    “젠장.”

     레인은 투덜대며 다시 재료를 사러 나섰다. 플레이나를 비롯한 적룡대원들이 부족하다며 성화를 부렸기 때문.

     참고로 누가 재료를 사러 가는 인물은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로엘이 낄낄거리며 레인을 약 올렸다. 플레이나가 합세했다. 다른 적룡대원들이 쓴웃음을 지었다.

     되돌아온 레인의 손엔 돼지고기가 잔뜩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치킨은 잡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밑준비가 너무 오래 걸리므로 가볍게 구워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로 대체한 것이다.

    “우우!”

    “왜 치킨이 아닌 거냐!”

     치킨을 기대하고 있었던 적룡대원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레인이 야유를 한 귀로 흘리며 로엘에게 고기를 건넸다. 로엘은 그것을 주방으로 가지고 가 적당히 조리해서 가져왔다.

     참고로 주방은 여관 주인에게 팁을 주고 빌려 썼다. 여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때는 아침과 저녁뿐. 점심시간엔 얼마든지 주방을 빌릴 수 있었다.

     질펀하게 술판이 벌어졌다.

     두 소년은 미성년자였으나 그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며 술잔을 빼앗지 않았다. 되려 용병이라면 이 정도는 마셔야 한다며 권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적룡대의! 그리고 두 소년의 앞날을 위하여!”

     적룡대주의 선창.

    “위하여!”

     우렁찬 후창이 뒤따랐다.

     * * *

     레인과 로엘은 한동안 정비 시간을 가졌다.

     우선, 레인은 캐내 온 영약에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이후 단환으로 제조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외의 시간엔 훈련을 하고 정령과의 교감을 높이는 데 힘썼다. 훈련이야 늘상 하던 일이었고, 정령과의 교감은…….

    “먹어라. 흑아.”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기분 좋다는 듯.

     눈앞에 있는 것은 오크의 시체. 방금 막 사냥한 녀석이다. 참고로 현재 위치는 몬스터들이 들끓는 산의 중턱이었다.

     아무래도 정령과의 교감에 대한 것은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정확히는, 인간에겐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었다. 원체 정령술사의 숫자가 적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레인은 편리했다. 그 자신의 정령이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명확했으니까.

     스르륵.

     그림자에서 검은 줄기가 여러 가닥 뻗어 나와 오크의 시체를 감쌌다. 동시에 그림자의 크기가 불어나며 시체 아래까지 범위를 불렸다.

     오크의 시체는 늪에 빨려 들어가듯 그림자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말 그대로 먹힌 것이다.

     핏방울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해진 대지를 내려다보며 레인이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림자는 제자리도 되돌아온 상태였다.

    ‘흑아에게 있어선 단순한 식사겠지만, 때에 따라선 유용할지도 모르겠군.’

     이를테면 흔적을 지우는 데에 이용한다든지.

     기분 좋은 포만감이 전해져 왔다. 흑아와는 심령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레인은 하산하기 전까지 흑아를 데리고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로엘은 먼저 무기를 수리했다. 이번엔 완전히 망가지거나 한 무기는 없었기에 적당히 손보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새로운 무기도 하나 개발했다.

     무기 수리를 마친 뒤엔 컨디션을 만전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영약 하나를 더 섭취하고 레인에게서 전수받은 무공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며 가다듬었다.

     중간에 찾아온 플로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광장을 따라 걷기도 하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군것질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로엘은 운공을 하며 여관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오늘을 위해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었다. 수차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이내 방문을 열고 레인이 들어섰다. 로엘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그를 맞이했다.

    “왔냐?”

    “어.”

    “별일 없었고?”

    “있을 턱이 있나.”

     별 의미 없는 안부 인사를 건넸다. 예상대로 시큰둥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레인.”

     로엘은 자세를 바로 하며 레인을 응시했다. 지금부터가 본론이었다.

    “?”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부탁? 뭔데?”

    “대련 좀 해 주라.”

    “뭐?”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헤어지기 전에 적어도 한번은 해봐야지.”

    “…….”

     레인은 지그시 로엘을 응시했다. 로엘이 담담하게 시선을 받아냈다.

     사실 레인에게 있어선 조금 의외인 제안이었다. 대련 자체는 별달리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우열이 너무 명백한데.’

     결과가 너무 뻔했다. 로엘도 여러모로 무력 수준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아직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분명 가진 능력의 특수성이라는 측면에선 로엘 쪽이 더 윗줄이라 할 수 있었다. 유적에서의 전투를 통해 그것은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그뿐. 일대일 대련이라 가정했을 때, 레인이 질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기동성이 가장 중요한 로엘의 전투법은 더 높은 기동성을 지닌 레인에게는 통용되지 않을 테니까.

     레인의 생각을 읽었는지 로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딱히 이기고 지는 것은 상관없어.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할 뿐이지.”

    “무슨 소린지 잘은 모르겠다만, 대련 정도면 문제 될 것 없지.”

     레인은 뒷목을 긁적이며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 * *

     레인과 로엘은 대련 장소를 자작성 서측 평야 지대로 잡았다. 주변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에 마음껏 날뛰어도 상관없는 장소였다.

    “왜 저 여자가 저기 있어?”

    “내가 불렀어.”

     로엘의 요청으로 플로라가 참관인을 맡았다. 혹시라도 대련이 너무 과열되는 경우 중재를 맡아주기로 했다.

    “여차하면 잘 부탁드릴게요.”

     로엘이 빙긋 웃는 얼굴로 플로라에게 말했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시작할까.”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소년.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서로를 응시하며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포션은 충분히 준비해 뒀다. 두 소년 모두 의술에 능통하기까지 했다. 웬만큼 부상을 입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선공은 로엘이 날렸다.

     타타타타타탕!

     손에 들린 것은 연사용 소총. 연속적으로 소음이 울렸다.

     저격용 소총은 챙겨오지도 않았다. 차분하게 적을 요격할 용도로 사용해야 하는 그 무기는 이번 대련에 어울리지 않았다. 분명 속도전이 될 테니까.

     레인이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탄환이 그 잔상을 수차례 꿰뚫었다.

     로엘은 곧바로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애초부터 견제를 목적으로 한 공격이었다. 가능한 한 거리를 벌려야 했다.

     물러나면서 사격.

     타타탕!

    “!”

     마침 모습을 드러낸 레인이 탄환을 일일이 검으로 베어 무력화시켰다. 가히 달인의 기예.

     하지만 움직임이 주춤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 그 틈에 로엘이 더욱 거리를 벌렸다.

    “뭐야. 꼭 내가 여기 나타날 걸 알고 쏜 것 같다?”

    “정확한 위치는 특정할 수 없지만, 대충 그즈음일 거라 생각했지.”

     두 소년이 함께해온 시간은 상당히 길었다. 레인을 가장 오래, 그리고 자세히 지켜본 이는 로엘이었다. 이 정도도 못 해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타타타타타타타탕!

     레인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연속해서 탄환이 날아들었다. 레인이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회피. 회피. 회피. 회피. 회피.

     직접 겪어보니 탄환이 날아드는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긴장의 끈을 놓았다간 순식간에 공격을 허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레인이 탄환 하나를 갈라내며 중얼거렸다.

    “요는 술래잡기인가.”

     레인이 지근거리까지 접근하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러니 로엘은 끝없이 견제하며 거리를 벌린다. 레인은 견제를 뚫고 로엘을 쫓는다. 술래잡기라는 표현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단순 속도 면에선 레인이 앞서겠지만, 압도적인 차이까진 아니었다.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도망칠 수 없지만도 않았다.

     레인이 진각을 밟았다. 그로 인한 충격을 추진력 삼아 신형을 내쏘았다. 로엘이 측면으로 물러나며 총격을 날렸다.

     철컥.

    “쯧.”

     탄환이 바닥났다. 로엘이 재빠르게 탄창을 갈아 끼웠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사이에 상당한 거리를 따라 잡혔다. 그로 인한 압박감이 생각보다 막대했다.

     곧바로 격발.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급한 마음에 조금 과하게 탄환을 낭비했다. 그래도 약간의 견제는 되었다. 로엘이 한 차례 숨을 골랐다.

    “후.”

     충분히 챙겨왔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탄환의 개수는 한정되어있었다. 거기다 탄창을 갈 때마다 거리가 줄어들기까지.

     이런 식의 낭비는 좋지 않았다. 로엘이 머릿속으로 남은 탄환의 개수를 계산하며 긴장감을 다스렸다.

    “!”

     그러던 와중, 로엘이 급히 훌쩍 신형을 띄워 뒤로 물러났다. 레인이 검을 내던져 공격해온 것이다.

     검이 방금까지 로엘이 있던 자리 바닥에 푹 하고 꽂혔다. 로엘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가운데, 레인이 검을 회수할 생각도 않고 돌진해왔다.

    “이런.”

     생각지 못한 공격에 거리가 더 줄어들었다. 로엘이 급히 신형을 날렸다.

    “뭐가 저렇게 빨라?”

     정신없이 평야 지대를 누비는 두 소년. 플로라의 눈이 핑핑 돌아갔다. 솔직히 너무 빠른 움직임이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일단 로엘 쪽이 일방적인 열세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유효한 공격 수단이 없으니 당연했다. 그래도 상당히 잘 버티고 있었다.

    “힘내! 로엘!”

     그녀가 양손을 입가에 삼각형 모양으로 댄 채 소리쳤다. 중재자인 주제에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고 있었다.

     * * *

     총성이 연속해서 울려 퍼졌다. 다만 한 발도 유효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모든 탄환이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촤악!

     어느새 검을 회수한 레인이 전면으로 날아든 탄환을 검으로 갈랐다. 탄환이 절반으로 갈라져 레인의 양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로엘이 입술을 짓씹으며 뒤로 몸을 빼냈다.

     이미 상당히 거리가 좁혀진 상태였다. 초반에 벌려뒀던 거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레인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로엘을 밀어붙였다. 단지 그뿐이건만, 로엘은 이루 말 못 할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흡사 맹수에게 쫓기는 초식동물의 심정이 이러할까.

     철컥.

     또다시 탄환이 떨어졌다. 로엘은 빠르게 소총에서 탄창을 분리했다. 기다렸다는 듯 레인이 가속해서 달려들었다.

     로엘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레인은 로엘이 새로운 탄창을 장착하기 전에 끝을 볼 요량이었기에 최고 속도로 내달렸다.

     로엘이 품속에 집어넣었던 손을 꺼냈다. 그런데 그 손에 들린 것은 탄창이 아니었다.

     탕! 탕!

     레인이 훌쩍 신형을 날렸다. 로엘이 급한 김에 권총을 들고 격발한 것이다.

     레인은 가볍게 대지에 내려섰다. 그리곤 이어지는 총성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접근했다. 그래 봐야 권총. 연사용 소총만큼 수월히 견제가 가능한 무기가 아니었다.

     로엘은 어찌어찌 권총으로 레인을 견제해가며 탄창을 갈아 끼우는 데 성공했다.

     타타타타타타탕!

     이미 두 소년 사이의 거리가 열 걸음 정도로 좁혀진 상태였다. 로엘은 급한 마음에 곧바로 소총을 쏴 갈겼다. 그러나 레인은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 슬라이딩으로 회피해 버렸다.

     로엘이 당황했다. 견제가 통하지 않은 탓에 거리가 완전히 좁혀져 버렸다.

    “잡았다.”

    레인이 말했다. 이만큼 거리가 좁혀졌으면 견제도 힘들 터. 분명 로엘도 이 이상은 방도가 없을 거라고, 그렇게 판단했다. 그런데- 

    “······.”

     로엘이 갑작스레 씩 하고 웃었다. 그 표정을 목도한 레인은 직감적으로 그에게 무언가 수가 있음을 알아챘다.

     로엘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타원형 물체였다. 크기는 대충 주먹 절반 정도일까.

     곧바로 탄환이 날아들었다. 레인을 향해서가 아닌, 방금 내던진 타원형 물체를 향해서. 그와 동시에 로엘이 몸을 뒤로 날렸다.

    “!”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몰아닥쳤다. 그것을 느낀 레인이 혀를 차며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자세를 바로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일단 추격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했네.’

     타이밍이 굉장히 공교로웠다. 짐작건대 로엘은 이쪽이 자세가 무너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이라.

     꽈아아아아아아앙!

     강렬한 폭발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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