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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유적(9) (46/249)

 46화. 유적(9)

 일행은 신형을 추스른 후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컨트롤 룸을 찾아냈다.

 컨트롤 룸이라고 해서 뭐 엄청난 장소는 아니었다. 이 유적을 건설한 마법사의 전용 실험실로 추정되는 공간이었다.

 살아남은 특기자 적룡대원이 유적 입구 개폐장치를 찾아냈다. 일행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참고로 최종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살아남은 자는 전부 합쳐 11명에 불과했다. 적룡대 다섯, 레인과 로엘, 그리고 용병 넷.

“이젠 돌아갈 수단만 찾으면 되겠군.”

 플레이나는 컨트롤 룸에 이곳 유적 내 키메라들을 통제할 모종의 수단이 존재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갈 길이 굉장히 험난할 것이기에.

 일행이 바쁘게 움직였다. 가디언을 쓰러뜨렸으니 이젠 이곳도 안전지대라고 할 수 없었다. 언제 식물들과 곤충들이 들이칠지 몰랐다.

“아!”

 결론적으로, 키메라들을 통제할 수단은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그치들을 물리칠 방법은 찾아낼 수 있었다.

 로엘이 발견한 일지에 그들을 피할 방법이 적혀 있었다. 일지는 고대에 작성된 것임을 증명하듯 룬 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유적의 주인이 특수한 방법으로 조제한 물약을 몸에 바르기만 하면 되었다. 일지에는 유적 내 생명체들이 그 물약의 향을 극도로 기피해 접근조차 꺼려 한다고 적혀 있었다.

“한숨 돌렸군.”

“정말로요.”

 적룡대 일동이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룬 어도 읽을 줄 아는구나.”

“지인에게서 조금 배웠습니다.”

 로엘은 빙긋 하고 웃었다.

“네가 탐사대에 합류해서 정말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돌아가는 길이 고달팠을 뻔했어.”

 현재 일행엔 마법사가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전부 사망한 탓이었다. 룬 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로엘뿐이었다.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건물 내부는 안전지대라고 적혀 있네요.”

“안전지대?”

“제가 룬 어를 완벽하게 익힌 게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종의 장치가 되어 있어서 키메라들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하네요. 건물 밖을 돌아다니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오!”

 일행이 재차 환호했다. 드디어 제대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됐다.

 여담이지만, 일지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이 유적을 만든 이는 식물과 곤충의 생태를 조사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학자라는 모양이었다.

‘무슨 파브로도 아니고.’

 로엘이 지구의 곤충학자를 떠올리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스케일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 유적은 그가 말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제작했다는 듯했다. 그 자신이 키메라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뛰어난 마법사였기에 제작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참고로, 그 당시엔 각종 식물과 곤충이 구획마다 정리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를테면 동, 식물원과 같은 형태로.

 레인이 기감으로 찾아낸 바위들은 각각의 곤충과 식물들에 대한 설명과 길을 잃지 않기 위한 표시가 새겨져 있는, 일종의 표지판이었다. 마법적인 처리가 가미된.

‘그랬던 유적이 제작자가 세상을 떠난 뒤로 유적이 수천 년간 방치된 건가. 각 키메라들을 나누던 구획도, 경계도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 거고.’

 그렇게 지금의 기묘한 생태계가 형성되기까지 이르렀을 터였다.

“어쩐지 유적 한번 더럽게 괴상하더라니.”

 로엘의 말을 전해 들은 플레이나가 툴툴거렸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네요.”

 일지의 내용에 의하면, 식물과 곤충 중 절반 이상은 특수한 방법으로 크기만을 거대하게 만든 것인 듯했다. 모종의 이유로 크기만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나머지를 키메라로 대체한 것이고.

“듣기만 해도 섬뜩하네.”

 이 대목에서 일행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만일 유적 내 생명체들 중 반수가 보통의 식물, 곤충이 아니었다면. 혹은 그것들마저 전부 키메라였다면.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터였다.

 키메라는 겉모습만을 유사하게 만드는 데 치중한 결과물이라는 대목 또한 일행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일지의 내용대로라면, 일행은 일지의 주인이 키메라의 성능에는 관심이 없었던 작자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작정하고 보안을 위해 만든 키메라는 오직 하나, 가디언뿐이었다고 하니까.

 * * *

“찾았다!”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지에 적인 물약을 찾아낼 수 있었다. 물약을 발견한 것은 살아남은 네 용병 중 하나였다.

 물약은 보존 계통 마법진이 새겨진 상자 속에 여러 병 들어있었다.

 로엘은 그 상자를 보고 픽 하고 웃었다.

‘그냥 겉모양이 상자일 뿐이지, 실상은 냉장고로군.’

 사실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하지 않게 유지시킨 물품인 만큼 냉장고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성능의 제품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유물이라 할 수 있었다.

 별 게 유물이 아니었다. 고대의 일상 생활용품이야말로 훌륭한 유물이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능을 유지하는 마법진이 새겨진 물품이었다. 당연히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게 높을 터.

 마법진은 놀랍게도 신의 금속이라는 아다만타디움을 뽑아낸 실을 이용해 그려진 것이었다.

 참고로 아다만타디움은 먼 옛날 이미 고갈되어버린 금속이었다. 대륙 어디에도 이 금속을 캐낼 수 있는 광산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물품은 마탑에 고가로 팔아넘길 수 있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고대의 마도 공학이 관련되었다고만 하면 그 물품의 종류가 무엇이든 눈에 불을 켜고 사들이니까.

 일행은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물로 짐작되는 모든 물품을 챙겼다. 작은 구슬에서부터 성인 남자보다 거대한 가구도 있었다.

 키메라들과의 교전을 피할 수 있으므로 굳이 짐을 가볍게 할 필요가 없었다. 가능한 한 모두 챙겨갈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물품들의 부피가 너무 크다 보니 그것을 한데 엮어 묶을 밧줄이 다량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건물 내엔 밧줄도, 그것을 대체할 물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저와 레인이 나가서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그 문제로 모두가 고민에 잠겨 있자 로엘이 나섰다.

“응? 어떻게 하려고?”

 플레이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별것 있나요. 바깥에 넘쳐 나는 게 식물들인데. 줄기를 적당히 뽑아내면 웬만한 밧줄보다 훨씬 튼튼할 테죠.”

“위험하지 않겠어?”

“잊어버리신 것 같은데, 방금 전에 그 위험을 없앨 물약을 찾아냈잖아요?”

“아.”

 좌중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몇 명 더 같이 가는 게 좋겠군.”

“그렇게 다 같이 몰려갈 필요는 없겠죠. 보셨겠지만, 저나 레인은 발이 상당히 빠르니 다녀오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것도 그런가.”

“차라리 여러분은 그 시간 동안 남아서 건물 내부를 한 번 더 둘러봐 주시는 게 좋겠어요.”

“그래. 고맙다.”

“그럼 다녀올게요.”

“너희들의 실력은 잘 알지만, 그래도 조심해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로엘이 레인을 끌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일행의 얼굴에 고마워하는 기색이 어렸다. 실상 로엘의 행동은 밧줄을 구하는 데에만 그 의미가 있지 않았다.

 일지의 내용이 사실인지, 물약의 효과는 확실한지. 그것을 직접 확인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대충 눈치를 보아하니 그것을 모르고 자진해서 나선 것도 아니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 * *

 건물을 나서 주위를 돌아본 로엘은 살짝 놀랐다. 그새 주위 경관이 상당히 바뀌어 있었다.

 가디언을 쓰러뜨린 탓이었다. 가디언의 영역은 이제 더 이상 불가침지대가 아니었다. 온갖 곤충들과 식물 줄기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건물 바로 앞쪽까지.

 천만다행이게도 물약의 효과는 유효했다. 키메라들은 두 소년을 피해 다녔다. 그것을 확인하고서야 로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왜 이런 일을 자진해서 하겠다고 나서? 의견만 내고 다른 사람한테 맡겨도 되잖아.”

 레인이 귀찮은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하품을 내뱉으며 물었다. 로엘이 혀를 찼다.

“하여간, 이래서 머리가 나쁜 놈은 안 된다니까.”

“뭐가 어째?”

“잘 들어. 이곳에는 수많은 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아까 읽은 일지의 내용에 따르면, 그중 반수는 키메라고 나머지 반수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크기만을 거대화시킨 보통의 식물이지.”

“?”

 레인이 그게 뭐 어쨌기에 그러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통상적으로 존재하는 식물’이란 구절이지.”

“……?”

“심지어 이 유적은 생겨난 지 수천 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

 레인은 미간을 찡그리며 뜻 모를 소리만을 내뱉는 로엘을 바라봤다. 로엘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맞대응했다.

“너 최근에 영초를 구하려고 매일같이 산을 올랐잖아. 시간은 촉박한데 목표치를 채우려면 멀었다고 매일같이 투덜댔고.”

“……!”

 여기까지 듣고서도 모르면 그건 바보다. 레인이 눈을 크게 떴다.

“무려 수천 년이나 수많은 식물이 자생해온 유적이니, 분명 어딘가에 영초가 하나쯤 있겠지. 그것도 크기가…….”

 로엘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레인이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영초, 그것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 영초가 이곳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레인을 극도로 흥분시켰다.

 하나라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수백 수천 개의 영단을 제조,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잠시도 지체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야 인마! 그래도 일단 식물 줄기도 챙길 생각은 해야…… 눈곱만큼도 들을 생각이 없군.”

 이미 레인은 점으로 보일 정도로 멀어진 상태였다.

 로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 *

 일행은 일단 유적 내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에 떠나기로 했다. 전원이 극도로 지친 상태라 어쩔 수가 없었다.

 유적에 진입하고 지금까지 식사조차 하지 못했다. 연달아 벌인 교전으로 체력도, 정신상태도 만신창이였다.

 동료의 죽음에 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이도 있었다. 이 상태로 유적을 나서 하산하는 것은 무리였다.

 로엘로선 다행이었다. 제멋대로 폭주한 레인이 돌아오질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영약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터였다.

 일행에게는 레인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약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적 내에 쉽게 구할 수 없는 종류의 약초가 자생하고 있음을 알아냈기 때문이라고. 일단 거짓말은 아니었다.

 일단 두 소년이 의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일행은 가볍게 납득해 주었다. 사실 한참 준비 중인 식사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듣지도 않았지만.

 일행이 식사를 마치자 유적 내부가 어둑어둑해졌다. 바깥의 빛을 모종의 방식으로 끌어오는 시스템이라 바깥에 밤이 찾아오면 유적 내부도 마찬가지로 밤이 찾아왔다.

 일행은 어둠과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모닥불을 지피고, 그 주위에 적당히 퍼질러진 자세로 휴식을 취했다. 각자 마음을 추스르고, 무기를 점검하고, 얻은 유물을 확인했다.

 몇몇은 혹시 어딘가에 더 있을지 모를 유물을 찾아 다시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추가적인 소득은 없었지만.

 로엘은 여전히 혼절해 있는 플로라의 곁을 지켰다.

 일단은 이 자리의 유일한 의원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이 자식은 왜 안 와.”

 레인은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식사도 않고 계속해서 싸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흥분한 모양이었다.

 로엘이 앉아있는 옆자리로 적룡대주, 플레이나가 다가와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플로라는 좀 어때?”

“괜찮습니다. 기력을 소진했을 뿐이니. 얼마 있지 않아 깨어날 겁니다.”

“깨어나면 잘 돌봐줘. 그 녀석, 동료의 죽음을 경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분명 힘들어할 거다.”

“그런 것을 왜 제게 부탁하시는 건가요.”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가?”

 플레이나는 짓궂게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상당히 눈치가 빠른 위인이었다.

“…….”

 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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