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유적(4)
이런 종류의 부상에는 곧바로 포션을 들이부어선 안 된다. 적어도 부러진 뼈는 제대로 맞추고 조치를 취한 후에 포션을 사용해야 했다.
치료 가능 여부의 문제가 아닌 효율성의 문제였다. 골격을 맞춰두고 포션을 사용하면 한 병으로 끝날 치료건만 주먹구구식으로 들이부었다간 포션 네다섯 병까지 소모하게 되니까.
앞으로 얼마나 포션을 필요로 하게 될지 모르는 유적 내에서 함부로 낭비를 저지를 수는 없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일개 용병에게 포션은 부담스러운 가격을 자랑하는 물건이었고.
두 소년의 근처에서 염력으로 전황 곳곳에 지원을 하던 플로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용병의 팔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아무래도 비위가 상하는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레인이 용병의 상세를 살피더니 로엘에게 물었다.
“네가 할래?”
“어.”
로엘은 곧바로 배낭에서 조그마한 목함을 꺼냈다. 곧바로 뚜껑을 열고 안에 담긴 세침 몇 개를 손에 쥐었다. 그것을 주저하지 않고 용병의 팔 곳곳에 꽂아 넣었다.
“뭐, 뭘 하는 거냐!”
용병이 기겁해서 로엘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것을 미리 예상한 레인이 용병의 어깨를 붙잡고 지그시 눌렀다. 용병은 마치 바윗덩어리에 짓눌린 듯한 느낌에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멈춰야만 했다.
‘무, 무슨 놈의 힘이…….’
“엄살 부리지 말고 가만 있어. 치료하는 거니까. 그거 몇 개 박혔다고 안 죽어.”
레인의 말에 용병은 입술을 깨물며 몸에 힘을 풀었다.
치료 과정이 돌팔이 같건 어쨌건 의원은 이 둘뿐이었다. 선택지가 없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전황이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빠르게 치료하지 못하면 짐 덩이가 될 뿐이니까.
로엘은 사내의 팔에 몇 개의 세침을 더 꽂아 넣었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출혈이 멎었다.
“!”
로엘은 사내가 놀란 표정을 짓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뼈를 맞추는 작업에 착수했다.
용병은 로엘이 경고 한 번 없이 곧바로 뼈를 맞추려 들자 기겁했다. 앞으로 찾아올 고통을 대비해 입을 앙다물었다.
우드득.
뼈 맞추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바로 근처에 있던 플로라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사내는 다른 이유로 놀랐다. 어쩐 일인지 고통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탓이었다.
비교하자면 문턱에 새끼발가락이 부딪친 정도의 고통이랄까. 통증이 상당하긴 했지만 입은 부상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다.
용병의 시선이 새삼 팔뚝 이곳저곳에 꽂힌 세침들로 향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침들로 인해 고통이 경감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문득 두 소년이 빈민가 사람들에게 ‘신의’라고 불리느니 어쩌느니 했던 것이 어쩌면 과장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계세요.”
로엘은 어느 정도 골격을 맞춘 뒤, 사내의 팔에 손을 댄 채 내력을 불어넣었다.
치유의 공능을 지닌 내력이 특정 혈도를 따라 휘돌며 용병의 체내에 축적된 오라와 공명했다. 자연 치유력이 일시적으로 수십, 수백 배 높아지도록.
체내의 오라가 의지를 부여하지 않았음에도 제멋대로 움직이는 그 기묘한 감각에 용병이 살짝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로엘은 기운을 거두어들인 후 곧바로 용병의 팔에 포션을 부었다.
자연치유로도 나을 수 있게 할 수 있지만, 지금 일행이 위치한 곳은 유적의 내부였다. 당장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전력이 되도록 해줘야 했다. 비싸더라도 포션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이내 용병은 완벽하게 치유된 자신의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더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오.”
솔직히 최소 흉터는 남을 줄 알았다. 최악의 경우엔 영구적인 장애가 생길 것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생각과 전혀 달랐다.
생사의법에 포션이 더해지니 그 시너지 효과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사실 포션이 비싼 만큼 로엘 본인도 처음 시도해 본 일이라 조금 놀랐다. 약초술은 사용하지도 않았는데도 결과가 최상이었다.
로엘이 세침을 회수해 목함 안으로 갈무리하자 용병은 감사 인사를 전하고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와아. 실력이 대단하구나.”
치료 과정을 전부 지켜본 플로라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로엘에게 말을 건넸다.
“아뇨, 뭐. 치료가 잘 돼서 다행이네요.”
로엘이 영업용 미소를 그리고 그녀의 말을 받았다. 플로라는 어쩐지 그 미소에 마음이 흐트러져 저도 모르게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뒤로 십 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로엘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직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나?”
방금 전의 용병을 제외하면 아직까진 큰 부상자가 나오진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균형도 머지않아 깨질 듯했다. 인간의 체력은 유한하니까.
“포션은 충분히 챙겨온 듯싶고. 당장 죽는 사람이 속출하진 않겠지.”
방금 전 용병과 같이 특수한 부상을 입지 않는 경우엔 의원의 도움조차 필요 없었다. 그냥 포션만 들이부으면 해결될 터.
“슬슬, 나서야 하려나.”
로엘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을 풀었다.
* * *
일행은 계속해서 악전고투했다.
일행 중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하고 있는 이를 꼽으라면 플로라가 그러했다. 다른 키메라나 거대식물은 검호급 실력자들이 나서면 대부분 커버가 가능했지만-캬아아아악!
-비행형 곤충을 베이스로 한 키메라들만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동체임에도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비행형 키메라들은 순식간에 용병들을 낚아채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기 일쑤였다. 그것만은 적룡대의 초일류 검사들조차 완벽하게 커버할 수가 없었다.
그 비행형 키메라를 전적으로 커버하는 것이 플로라의 이능의 힘. 그녀가 없었다면 이미 전황은 상당히 악화되었을 터였다.
레인과 로엘에게 추가로 찾아온 부상자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은 전부 레인이 치료했다. 로엘이 슬슬 장비를 점검한다며 레인에게 떠넘겼기 때문이었다. 치료받은 용병들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레인의 실력에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전황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키익!
한참 사투를 벌이는 용병 하나를 붙들고 날아오르려던 말벌 한 개체가 플로라에게 붙잡혀서 먹잇감을 놓쳤다. 말벌은 무형의 힘에 붙들린 채로 허공에서 격하게 몸을 비틀었다.
붙잡혔던 용병은 주위 다른 용병들의 도움을 받아 별다른 부상을 없이 자신의 위치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벌이 문제였다.
모든 종류의 힘이 그렇듯이, 플로라의 능력은 무한히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해서 무리해왔던 플로라가 집중력을 잃고 말벌을 놓치고 말았다.
말벌은 허공을 몇 차례 선회했다. 그러더니 자신을 붙든 무형의 힘의 주체가 플로라임을 알았는지 곧바로 그녀에게 독침을 앞세우고 날아들었다.
플로라는 입술을 깨물고 염력을 집중했다. 날아드는 말벌의 전면에 보이지 않는 막을 생성했다.
쾅! 쾅! 쾅!
말벌은 그 막에 몇 번이나 몸통을 부딪치며 집요하게 플로라를 노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주의가 느슨해진 틈을 탄 적룡대 부대주의 검격을 허용했다.
결국, 말벌은 토막이 나서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 했던가, 곧바로 말벌 다섯 마리가 추가로 습격을 가해왔다. 방금 전 말벌이 허공에서 몇 차례 선회했던 것이 사실은 동료를 부르는 행위였던 것이었다.
“플로라, 왼쪽!”
어린 신입 대원인 만큼 다른 대원들이 항시 플로라를 신경 써주고 있던 차였다.
적룡대 대주를 비롯한 세 여검호는 이변을 감지하자마자 잠시지만 자신이 맡은 자리를 이탈했다. 그리곤 날아드는 말벌들을 향해 각자 검강을 폭사시켰다.
끼이이이이이!
키아아아악!
일격필살의 검격 세 줄기가 날아드는 말벌 다섯 중 셋을 격추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남은 말벌이 둘. 아무래도 뭉쳐있지 않고 각각 거리를 두고 날아드는 말벌들을 단번에 여럿씩 처리하는 것은 무리였다.
살아남은 말벌들은 이내 플로라가 생성한 무형의 장벽을 부수고 날아들었다. 힘의 대부분을 소진한 탓에 방벽이 약해진 탓이었다. 가볍게 돌파되고 말았다.
플로라는 입술을 깨물고 한 마리씩 처치하기 위해 염력을 집중시켰다.
으지직!
왼쪽으로 날아들던 말벌 하나가 무형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거체가 통째로 짓눌린 형상으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키아악!
남은 말벌이 그 틈을 타 거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읏!”
반응할 시간이 모자랐다. 플로라는 급한 대로 자신의 전면에 염력으로 방벽을 형성시켰다. 그러나 급조한 만큼 염력을 충분히 집결시키지 못해 방어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말벌의 독침과 무형의 방벽이 충돌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말벌의 돌진이 저지되었다.
그러나 그뿐. 플로라는 자신이 생성한 방벽이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가는 중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방벽이 뚫리는 데까진 깜박할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터. 그 후에 벌어질 일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플로라!”
플레이나가 급히 지원을 위해 검강을 형성시켰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
검 표면으로 무시무시한 기파가 몰려들어 응축되었다. 그녀가 그것을 사출시키기 위해 검을 쥔 오른손을 한껏 뒤로 당겼다.
그리고 그보다 한발 빠르게.
타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소리, 육편이 비산하는 소리가 울렸다.
“……?”
플로라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머리가 박살 난 말벌이 돌진하던 힘을 잃고 염력 방벽에 밀려나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쓸 만하네.”
레인이 신무기의 위력에 감탄사를 흘렸다.
“헉?”
용병들이 놀란 표정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플로라가 저도 모르게 일행의 시선을 따라 로엘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로엘이 늘상 짓는 그 미소와 함께 물었다.
“괜찮나요? 다친 곳은 없고?”
“아, 으, 응,”
플로라가 더듬거리는 어조로 대답했다. 로엘이 곧바로 플로라가 있는 곳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이제부턴 저도 가세할게요. 상대할 적이 겹치지 않게 어떤 녀석들을 노릴 것인지 그때그때 제게 말해주세요. 나머지는 전부 제가 처리할 테니.”
“어, 어?”
플로라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되었는지 로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로엘은 빙긋 웃어 보인 후, 곧바로 상대를 찾아 총구를 겨눴다. 손에 들린 것은 저격용 소총. 왼손으로 총신을 지탱하고 오른손을 방아쇠에 걸었다.
저격용인 만큼 확실히 조준경까지 만들었다. 조준경을 통해 이쪽으로 접근하는 대형 잠자리의 머리를 조준, 격발했다. 곧바로 울리는 굉음.
탕-!
소리가 울렸다 싶은 순간 잠자리의 머리가 통째로 터져나갔다. 플로라는 먼저 굉음에 놀라고 곧이어 이어진 결과에 더욱 놀랐다.
그녀의 눈이 한껏 크게 떠졌다.
* * *
이번에 로엘은 로카인에게 파르엘의 괴행을 성토하며 한 가지 아티펙트를 뜯어냈다. 현재 팔목에 장착 중인 다소 평범해 보이는 팔찌를.
팔찌의 효능은 손 떨림 보정, 안구 보정, 집중력 향상. 본래 마탑의 공방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물건으로 그리 대단한 아티펙트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세밀한 작업을 해야 할 일이 많은 공방 마법사들을 말 그대로 조금이나마 보조하기 위한 물건. 그러나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은 아니므로 마탑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 아티펙트가 로엘의 손에 들어가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얼마 사용해보지도 않은 총기로 정확한 사격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덕이 컸다.
“하핫!”
적룡대 대주가 쾌활하게 웃었다.
“그냥 신원 불명의 꼬마 의원인 줄 알았더니.”
유쾌하기 짝이 없는 오산. 한 명의 전력이라도 아쉬운 판국에 저만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 가세해 주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한 명이 더 있었지. 그 녀석은?”
그녀는 시선을 옮겨가며 다른 한 소년을 찾았다.
그러다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소년은 그녀의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아무리 로엘이라는 소년의 강렬한 인상에 시선을 빼앗겼다지만, 그녀는 초일류 검사였다. 그녀가 일개 의원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후위보다는 전위가 상대적으로 불안해 보여서 이쪽에 가세하려는데. 문제 될 것은 없겠지?”
언제 봤다고 나이도 어린놈이 반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일이 지적하기엔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플레이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소년, 레인이 가볍게 손을 털며 앞으로 나섰다.
실상 전위가 후위에 비해 위태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후위는 초일류 검사 두 명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는 반면에, 전위는 플레이나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던 차였다.
레인은 사마귀 한 마리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특기자 적룡대원에게 다가갔다. 그녀 또한 상당한 실력자였다. 검기를 두른 검을 휘둘러 차분히 키메라를 막아내고 있었다.
레인이 그녀에게 접근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예비용 검을 한 자루 더 등에 메고 있었기 때문.
레인은 적당히 거리가 좁혀지자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그 반동으로 튀어 올라 사마귀의 턱을 걷어찼다.
내력이 듬뿍 실린 발길질에 사마귀의 머리가 통째로 뽑혀 허공으로 치솟았다.
끼이이이이이이이-!
끔찍한 소음이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