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유적(3)
레인과 로엘은 진형 중앙에 위치한 채 가만히 일행을 따라나섰다. 식물 군락 내부로 들어서자 거대한 그림자에 의해 빛이 차단되었다.
“…….”
일행이 말없이 주변을 경계하는 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소리라고는 식물을 밟으면서 나는 발소리나 주변의 거대 곤충, 벌레들이 내는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런 잡초들조차 거의 사람 키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했다. 이를 헤치며 전진해야 했기에 일행이 나아가는 속도는 느렸다.
일행이 어느 정도 전진했을 때, 우려했던 첫 교전이 벌어졌다.
“!”
앞서서 수풀을 베어내며 전진하던 플레이나가 잠시 움찔하더니 일행에게 경고했다.
“이쪽으로 접근 중인 생명체가 있다! 굉장히 빠르게 접근하고 있으니 서둘러 태세를 정비해!”
용병들이 긴장하며 손에 들린 무기에 힘을 주고 플레이나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풀숲을 헤치고 거대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 사마귀다.”
한 용병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낫을 연상시키는 두 앞다리를 앞세우고 여섯 개의 뒷다리로 몸을 지탱한 채 걸어오는 거대한 곤충은 분명 사마귀였다.
키에에에에에-!
사마귀는 일행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포효를 내질렀다.
“어라, 사마귀가 저렇게 울었던가.”
“저게 진짜 사마귀일 리가 있냐. 분명 겉모습만 본뜬 키메라겠지.”
레인의 의문을 로엘이 간단하게 해소해주었다. 식물들은 어떨지 몰라도 눈앞의 사마귀는 분명 키메라였다. 사마귀의 뒷다리는 본래 여섯 개가 아니라 네 개니까.
“일단 얼마나 위험한 녀석인지 시험해 보자고.”
곧바로 달려드는 사마귀의 전면에 위치한 용병. 그가 가만히 중얼거리며 검세를 취했다. 놀랐을지언정 겁을 먹고 움츠러들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애초에 일행은 최소 A급 이상의 용병들만 모인 최정예 전력. 전원이 최소 검기를 다루는 것이 가능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만큼 경험도 풍부했고.
검기가 듬뿍 실린 검과 사마귀의 앞다리가 맞부딪쳤다.
까앙!
“우왓-!”
용병이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미, 미친!”
그가 욕설을 내뱉었다. 일개 곤충의 앞다리가 검기에 베여나가지 않을 줄이야.
심지어 앞다리의 울퉁불퉁한 굴곡에 검을 고정시켜 통째로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일개 곤충이 한쪽 앞다리만으로 검과 사람을 한꺼번에 들어 올린 것이다.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용병은 곧바로 상황을 판단하고 손에서 검을 놓았다. 그가 몸을 한 바퀴 휘돌며 땅에 착지하자, 사마귀의 머리가 곧바로 그를 따라붙었다.
키메라임을 증명하듯 괴기스러운 이빨이 촘촘히 박힌 머리. 용병이 기겁하며 몸을 앞쪽으로 날려 피했다.
“도와!”
“덤벼들어!”
다른 용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먼저 격돌한 용병에게 사마귀의 정신이 팔린 새에 측면으로 접근해 검기가 실린 검을 휘둘렀다.
서걱!
절단음과 함께 사마귀의 다리가 여럿 잘려 나갔다. 그러자 사마귀가 중심을 잃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버둥거렸다.
“이 녀석, 앞다리를 제외하면 그리 단단하지 않아!”
“측면을 노려라!”
용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사마귀의 양 측면을 점해 검격을 날렸다. 이미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을 잃은 사마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난 상처에서 정체불명의 액체를 흘리며 목숨을 잃었다.
첫 교전을 지켜본 플레이나가 중얼거렸다.
“일단 별문제 없이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군.”
다른 개체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이런 녀석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없어서 아직 걱정은 좀 됐다. 그래도 일단 다행이었다.
플로라도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차하면 보호해주기 위해 두 소년의 앞쪽에 서서 전황을 주시하고 있었던 그녀였다. 사실 경험이 적은 만큼 조금 과도하게 긴장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휴우.”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고 있던 때. 뒤쪽에서 감사 인사를 전해오는 한 소년.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엘이었다. 플로라가 자신들을 지켜줬음을 알고 예의를 차린 것이었다.
“아니······.”
플로라는 별것 아니라고 말하려다 저도 모르게 말끝이 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소년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말을 걸어온 소년의 얼굴이 생각보다 훨씬 준수했다.
솔직히 아직 어리다는 점만 빼면 그녀의 취향에 가까웠다.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크음. 그게 내가 맡은 일인 걸.”
그녀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괜히 한차례 헛기침을 내뱉었다.
* * *
일행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생각보다 습격이 잦았지만, 모두 무난하게 격파했다. 적룡대 대원들이 초감각을 이용해 최대한 교전을 피하고 있기도 했고, 달려드는 벌레들을 물리칠 무력적인 여건도 충분했다.
사마귀부터 시작해서 각종 벌레와 곤충들을 맞이해야 했다.
심지어 그중에는 노린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곤충에 대해 무지한 한 용병이 아무 생각 없이 검격을 퍼부으려 한 것을 로엘이 기겁해서 말리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렇게 전진하고 있던 와중, 한 용병이 옆의 동료와 잡담을 나눴다.
“그러고 보니, 목적지가 어디인 거야? 이렇게 무작정 돌아다니기만 하는 거야?”
“아마 어딘가에 있을 ‘컨트롤 룸’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이 계속 돌아다녀야 하겠지. 이 유적은 좀 특수하니까.”
보통의 유적이라면 길을 찾기 위해 고생하진 않는다. 유적이란 것이 알고 보면 초고대, 혹은 고대 마법사들의 ‘거처’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보통 사람은 ‘거처’를 만들 때 길을 잃기 쉽게 설계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론 유적을 수호하는 가디언이나 입구에 설치된 함정에 고생할 뿐이지 이런 황당한 상황은 겪지 않는다.
“이 유적을 만든 놈은 대체 뭘 하는 놈이었을까.”
“놈인지 년인지 모르겠지만 절대 제정신 박힌 녀석은 아니었겠지.”
“확실히 고대 마도 문명이 대단하긴 했나 봐. 현시대 마법사들의 역량으론 이런 장소를 만드는 게 절대 불가능할 텐데.”
“누가 아니래.”
그들의 대화를 주워들은 주위 용병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피해!”
후미에 위치한 적룡대 부대주의 외침. 그 직후에 일이 터졌다.
“으악!”
단말마와 함께 한 용병이 하늘로 끌려 올라갔다. 거대한 잠자리가 사내를 순식간에 낚아채고 하늘로 날아오른 것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만큼 그 기동성은 지금까지 교전한 그 어떤 곤충들과도 비교를 불허했다. 눈 깜빡할 새 동료가 납치되어 끌려가는 모습에 용병들이 숨을 삼켰다.
“플로라!”
“아, 네!”
적룡대주의 외침에 플로라가 곧바로 반응했다.
키에에에!
그와 동시에 거대한 잠자리가 허공에 우뚝 정지했다. 아니, 정확히는 허공에 고정된 채 발버둥 쳤다. 용병들이 그 광경에 플로라에게 경탄의 시선을 보냈다.
“저게 말로만 듣던…….”
“최상위 이능력자의 힘!”
아주 간혹 선천적으로 이능의 힘을 타고나는 이들이 있다. 플로라는 그런 이능의 소유자였다.
드물게 무언가의 이유로 체내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마나가 축적된 채 태어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이 숙주에게 이롭게 작용하면 ‘축복’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라고 불렸다.
‘저주’를 타고난 이들은 어미의 배 속에서 곧바로 유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태어난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거나 평생 무언가 병을 짊어지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았고.
비정상적으로 체내에 축적된 마나가 숙주의 신체 균형을 무너뜨린 케이스였다. 별다른 치료 방법도 없는 데다 산모마저 위험해지는 일이 많아 그야말로 저주라는 표현이 알맞았다.
축복의 경우엔 숙주에게 강력한 이능의 힘을 부여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테면 특정 신체 부위에 비정상적으로 마나가 축적되어 있어 그 부위로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던가 하는.
플로라는 그런 축복을, 그것도 최상위 이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 힘은, ‘염력(念力)’.
키에엑! 끼에에에에에엑!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잠자리가 허공에서 붙들려 일행이 위치한 곳으로 강제로 끌어 내려졌다. 기성을 내지르고 온몸을 뒤틀면서.
“호오.”
“오오.”
초감각을 가진 두 소년은 느낄 수 있었다. 플로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기파의 흐름을. 그들은 재미있는 것을 본다는 듯 감탄사를 흘렸다.
용병들이 정신을 다잡고 각자의 병기를 쥐었다. 잠자리가 지면에 가까워지면 곧바로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어? 으, 으악!”
그 와중에 진형 외곽에 위치한 한 용병이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이미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 있던 중인들이 곧바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명을 내지른 용병이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상태로 떠 있었다. 발목에 식물의 넝쿨이 둘둘 감겨있었다.
“도, 도와줘!”
용병이 검을 휘둘러 넝쿨을 잘라내려 했지만, 자세도 불안정할뿐더러 계속해서 신형이 흔들려서 번번이 실패했다.
그 와중에 넝쿨은 그를 한쪽으로 옮겨가려 들었다. 분명 그를 집어삼킬 본체가 있는 곳일 터.
지체하지 않고 적룡대 대주가 바닥을 박찼다. 단번에 용병이 위치한 높이에 다다를 정도로 강렬한 도약. 그녀의 검에 선명한 검기가 맺혔다.
콰욱!
단숨에 넝쿨을 베어내려 했지만 섬유질이 생각보다 질겼다. 그녀의 검격은 줄기를 반쯤 베어내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그녀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귀찮게 하는군!”
그녀가 체내의 오라를 폭사시켰다. 순간적으로 검에 눈부신 광채가 감돌았다. 그것은 얼마 전 레인이 선보였던 것과 같은 ‘검강’.
푸른빛이 감도는 강기가 사출되었다. 강기는 전방으로 뻗어 나가며 궤도에 걸린 모든 것을 깔끔하게 잘라낸 후에야 소멸했다. 가히 필살기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격.
“어, 으, 으악!”
그녀는 곧바로 중심을 잃고 떨어져 내리는 용병을 가볍게 안아 들었다. 이어서 주변의 식물들을 여러 차례 박차고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착지했다.
어딘가의 동화 속 왕자님이 공주를 안아 든 것만 같은 자세. 그녀의 품에 안긴 용병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붉게 달아올랐다.
용병은 급히 땅에 내려서더니 크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주위 용병들이 그를 놀리듯 휘파람을 불었다.
플레이나가 곧바로 외쳤다.
“본격적으로 이쪽을 노리고 모여드는 녀석들이 나타났다! 방금 전 공중에서 확인한 바로는 그 숫자가 최소 다섯!”
“!”
“일일이 제자리에서 상대할 수는 없으니 진형을 유지한 채로 이동하며 맞이한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부상자를 돌보기는 힘들 것 같으니 알아서 주의하도록!”
보통의 유적이라면 중간중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태세를 정비할 수 있는 구간이 있기 마련이었다. 없으면 함정을 해체한 공간에 그런 공간을 만들면 그만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곳에는 그럴 만한 곳이 없었다. 무조건 계속해서 움직여야 했다. 그야말로 끔찍한 유적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거대 잠자리에게 붙들렸다 구출된 용병이 붙들렸던 어깨를 주무르며 투덜거렸다.
“이거야 쉴 시간도 없군. 이러다 컨트롤 룸을 발견하기도 전에 체력이 먼저 고갈되겠어.”
그 뒤쪽에서 레인이 로엘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무래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럴 것 같지?”
“쯧. 아까 거기서 그대로 따라오느라 무기도 못 챙겼건만.”
“난 챙겨왔지. 배낭 속에 넣어뒀던 걸 그대로 들고 왔거든.”
“의료 봉사를 하러 나오는데 그런 건 왜 챙겨 나왔는데?”
“유비무환이니까.”
“난 어째야 하나.”
“뭘. 검 없이도 잘만 싸우면서.”
“그래도 있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정 뭣하면 빌려서 쓰던가.”
일행이 속도를 높였다. 두 소년 또한 걸음걸이를 한층 빠르게 했다.
* * *
원래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신의 영역에 다른 생명체가 침범하는 것에는 민감하기 마련이다.
이 유적 내의 생명체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어느 기점을 넘어가면서부터 안 그래도 잦던 습격이 더욱 잦아졌다.
용병들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와 곤충들이 내는 괴성이 끊임없이 귀를 어지럽혔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교전에 용병들이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와중, 용병 하나가 단단한 외피에 둘러싸인 곤충의 육탄돌격에 팔이 부러졌다. 뼈가 살을 찢고 바깥으로 튀어나왔을 정도로 심각한 중상이었다.
“크윽!”
용병은 신음을 억누르며 두 소년 의원을 찾아갔다. 일행 중 의원은 레인과 로엘 둘뿐이니 용병에겐 실력이 의심스럽건 어쨌건 선택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