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유적(2)
“일단은 출발하지. 주의한다고 하긴 했지만……. 우리가 유적을 발견했다는 정보가 새어 나갔을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겠지.”
적룡대 대주, 플레이나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녀의 말에 주위 용병들이 곧바로 부지런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미 준비를 마쳐두고 의원의 합류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두 소년이 멀뚱히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용병계에서도 상위에 드는 인물들이라 그런지 움직임이 신속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준비를 마친 일행이 여관을 나섰다.
* * *
일행은 이내 펠라키 산맥으로 진입했다.
레인과 로엘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방에서 유적이 발견될 만한 곳이라면 이곳밖에 없긴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소년은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길, 이전에도 지나갔던 것 같은데.”
“최근에 지나갔었지, 아마.”
두 소년은 설마설마하며 일행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얼마 전 산사태로 인해 지반이 무너져 내린 장소에 최종적으로 다다르자 할 말을 잃어버렸다.
“…….”
“……여기냐.”
로엘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전에 몬스터들과 난전을 벌였던 그곳이었다.
보안을 위해 지금까지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용병들을 이끌고 이곳까지 온 적룡대 대주가 제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 이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묻혀 있던 유적의 흔적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것을 우리가 발견했지.”
“…….”
“일단 말해두겠지만,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우리도 알지 못한다.”
“미리 정찰해 두지 않은 겁니까?”
“어쩔 수 없었다. 외부인이 들어서고 나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입구가 폐쇄되는 장치를 발견했으니. 자세한 것은 유적 내부로 진입해 봐야 알 수 있겠지.”
용병들이 저마다 고개를 살짝 끄덕여가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없네.”
“이게 뭐야.”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힘 빠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년이 두 명.
대주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두 소년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다지 집중해서 들을 마음이 들질 않았다.
“유적이라고 하면 뭔가 조금 더 극적이고 신비감 있게 발견되는 줄 알았어.”
“아니 뭐,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경험하니 굉장히 맥 빠지네.”
사실 두 소년에게나 긴장감 없는 전개지, 최초 발견자인 적룡대 대원은 유적을 발견하고 굉장히 흥분했었다. 발견 이후 며칠 동안 계속해서 잠을 설쳤을 정도로.
대원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알리고 모두와 함께 그것을 축하했다. 거기에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신속하게 은폐하기까지. 그녀에겐 그 당시의 일이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반면 안 그래도 부족한 두 소년의 감수성은 그냥 말라비틀어져 버렸지만.
“-일단 포지션은 그렇게 정하기로 하고, 진입한다.”
대주는 짧게 할 말을 마치고 곧바로 일행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필요한 전력은 충분히 갖췄다.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일지라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충만했다. 진입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기다려라! 금은보화!”
“이번엔 확실하게 한몫 챙겨서 용병 생활 청산하고 그녀에게 고백하겠어.”
“흐흐흐흐, 이 몸이라고 유물을 얻고 영웅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긴장을 덜려는 것인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인지. 여기저기서 용병들이 주절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엘은 그것을 둘러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나만 불안한가.”
“?”
“무슨 전쟁영화의 조연들이 죽기 전날에 내뱉는 대사 같은 게 난무하고 있는데.”
“뭔 소리야?”
레인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 * *
유적의 입구는 석문이었다.
그그그그긍.
일행이 석문을 통과해 내부로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마찰음과 함께 멀쩡히 열려있던 입구가 석벽으로 가려졌다.
빛이 차단되고 사방이 어둠에 잠식되었다. 곧바로 횃불이 만들어져 몇몇 사람들의 손에 들렸다.
혹시 퇴로를 확보할 수 있을까 싶어 석벽을 부수려 시도하는 이들이 몇 명 있었으나, 금세 무산되었다.
벽은 항마(降魔)의 기운이 집적된 물건이었다. 마나를 이용한 공격은 모두 무용지물. 마법도, 오라도 통하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초일류 검사라도 오라가 깃들지 않은 검으로 저만한 두께의 석벽을 잘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법사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일행은 안쪽으로 조심스레 진입했다. 적룡대 소속 특기자들이 함정이 있지는 않은지 앞서서 살피며 지나갔다. 그녀들은 함정 찾기와 함정 해체의 스페셜리스트.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 그녀들은 특기자 용병임에도 정찰과 같은 부분에선 그다지 능력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대원 중 초감각의 소유자인 초일류 검사가 3명이나 존재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들이 S클래스 용병대의 대원으로서 당당히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이외의 부분에서 그녀들이 모든 특기자 용병들 중 톱 클래스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이 발견해내지 못하는 함정 따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무래도 입구 근방에는 함정을 따로 설치해두지 않은 듯해.”
특기자 대원의 보고에 대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은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해 입구에 가장 많은 함정이 설치되기 마련인데……. 오래된 유적이라 함정이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무력화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아. 아예 함정이 설치되었었던 흔적 자체가 없어. 이 유적을 만든 인물은 애초부터 입구에 함정 따위 설치하지 않았던 거야.”
“……흐음.”
함정 해체 스페셜리스트의 단언. 입구 근방에 애초부터 함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할 터였다.
플레이나는 턱을 손에 괴고 잠깐 고민에 잠겼다.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겠지. 유적 제작자가 애초에 보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거나…….’
그녀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유적 내부가 입구에 함정을 설치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거나.’
어쩐지 후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원래 세상일이란 것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 마련이니까.
“……꿀꺽.”
그녀가 가만히 서서 고민하는 모습을 남성 용병들이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그녀가 일행의 리더이기에 주시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그것은 이유가 되지도 않았다. 용병들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가 정말로 매력적인 여인이기 때문이었다.
적룡대는 그 실력으로도 유명하지만, 단원 하나하나가 빼어난 미인이라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적룡대 대주는 올해로 삼십 대 중반의 성숙미 넘치는 여성이었다. 얼굴과 몸매 중 어느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는.
이 세계의 기준으로는 이미 혼기를 한참이나 놓친 노처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수많은 남성 용병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동안이기도 했고.
그런 그녀가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고민하는 모습은 뭇 남성 용병들의 마음을 요동시키기에 충분한 위력이 있었다.
비단 그녀만이 아니라 대원 하나 하나에게 따라붙는 용병들의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많았다. 적룡대원들은 그것이 익숙한지 내심 유쾌하지 않음에도 태연한 신색을 유지했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으.”
적룡대의 막대 플로라는 가장 최근에 적룡대의 대원이 된 인물이었다.
그것도 다른 대원들처럼 여러 용병단을 전전하다가 온 것이 아니라, 인맥을 통해 용병계 입문과 동시에 단번에 적룡대원이 된 경우였다. 적룡대의 대주가 그녀의 친척이었던 덕분에.
그렇다고 그녀가 다른 대원들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의 선천적인 이능의 힘은 굉장히 강력해서, 한 번이라도 그녀의 힘을 견식한 이들은 절대 그녀를 폄하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비교적 최근에 용병이 된 만큼 경험이 적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주위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오는 시선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선배 대원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플로라는 그제야 조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조금이나마 마음을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눈이 우연히 두 소년에 머물렀다. 일행 중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이들은 저 두 소년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시선이 갔다.
“……?”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넌 지금 와서 뭘 또 먹고 있냐.”
“꿀빵. 오늘 여관을 나오면서 노점에 들러 미리 몇 개 사뒀었지.”
이상하게도 두 소년에게선 전혀 긴장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한 소년은 넉살도 좋게 무려 유적에서 한가롭게 군것질을 하고 있었다.
“보다 보니까 배고프네. 더 없어?”
“없어. 이게 마지막.”
“그럼 그거 절반만 떼어줘.”
“싫어.”
작금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한가로운 대화. 플로라는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옅게 웃고 말았다. 어쩐지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후우.”
그녀가 숨을 고르며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몸을 풀었다.
그녀의 포지션은 앞으로 만들 진형의 중앙. 첫 유적탐사인 만큼 위험도가 높은 선두나 후미에 배치되지는 않도록 배려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이능의 힘은 진형 한가운데에 위치하더라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
참고로 그녀가 맡은 역할 중에는 두 소년 의원의 보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의원이다 보니 당연한 수순으로 안전도가 높은 진형 중앙에 배치되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진형 중앙에 위치한 플로라가 보호하게 된 것이다.
“긴장하지 말고. 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집중해야지.”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듯 심호흡과 함께 결의를 다졌다.
* * *
일행은 진형을 갖추고 유적 안쪽으로 진입했다.
선두에는 단장과 두 특기자 대원이, 후위에는 두 검호가 위치했다. 그리고 나머지 용병들이 중앙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었다.
어둠에 잠식된 입구와 이어진 공동을 지났다. 공동을 나서자 환한 빛이 일행의 눈을 찔렀다.
“이게 무슨?!”
안쪽의 정경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일행은 말을 잊었다. 레인이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길 만든 놈은 정신이 완전히 돌아버린 녀석이거나 취향이 상당히 독특한 녀석이겠군.”
유적 내부엔 수많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었다. 가히 밀림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외부에서 빛을 끌어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다만-
“저건 분명 내가 아는 식물인 것 같은데. 분명 파리지옥이겠지?”
로엘이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근데 왜 저리 커.”
스케일이 달랐다. 로엘이 알고 있는 파리지옥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거대했다. 인간 한둘 정도는 한입에 삼켜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은, 더 이상 ‘파리’지옥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주변은 온통 그런 식물들로 가득했다. 이곳이 지하 유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동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거대식물.
그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들은 분명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들이었다. 문제는 그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해 누가 보기에도 식인이 가능해 보인다는 것.
“어째 안 좋은 느낌은 비껴가질 않는군.”
적룡대 대주 플레이나가 머리가 아픈지 검지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일행 모두가 주변의 압도적인 광경에 위압되어 할 말을 잊었다.
수많은 함정을 돌파하고, 유적에 자리 잡은 몬스터와 가디언들을 퇴치한 뒤, 보물이 감춰진 비밀의 방을 찾아내는. 흔히 영웅의 일대기에 나오는 유적탐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광경.
이야기 속의 그것과 같은 유적탐사를 기대하던 중인들은,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현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야, 저기, 저기 좀 봐.”
그런 중인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일이 벌어졌다.
거대한 식물들만큼 거대한 벌레가 나타나 허공을 배회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파리였다. 인간보다도 거대한 동체를 지니고 있어 그저 파리라고 폄하하기엔 힘들 듯싶었지만.
파리가 유혹하듯 뿜어져 나오는 냄새에 이끌려 파리지옥 위에 안착했다. 로엘은 그 뒤에 벌어질 일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져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콰직-!
섬뜩한 소리와 함께 파리지옥의 입이 닫혔다. 닫힌 입가 사이사이의 틈으로 그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본래의 조그마한 크기였다면 전혀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크기가 크기인 만큼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
“우웩.”
그리고 이어진 끔찍한 광경에 모두가 몸서리를 쳤다.
거대한 파리가 내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 파리를 소화 시키기 위해 산 채로 녹여버리다시피 하는 파리지옥.
그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산전수전 다 겪은 적룡대원들마저도 노골적으로 눈가를 찌푸렸다. 플로라를 비롯한 몇몇 용병들은 한쪽에서 헛구역질을 내뱉기도 했다.
모두가 그렇게 굳어있을 때.
“모두 자기 위치를 지켜라. 진입한다.”
대주가 지시를 내렸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일행의 체력이 온전한 지금 바로 움직이는 게 좋겠지.”
이어진 그녀의 말에 모두가 수긍했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아가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었다.
진형을 갖춘 탐사대가 풀숲을 헤치고 전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