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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스콜피온(3) (37/249)
  •  37화. 스콜피온(3)

     레인은 잭슨을 대침으로 구속해두고 방을 나섰다. 그리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조직원들을 보이는 족족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보스의 주도 아래 체계적으로 진형을 짜고 상대를 압박해도 모자랄 판에 우왕좌왕하며 무작정 덤벼들거나 달아나고 있는 조직원들. 스콜피온 아지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평정되고 말았다.

     시간이 부족한 탓에 모든 조직원들을 러츠와 같은 방식으로 처분할 수는 없었다. 그건 수고가 너무 크게 드니까. 대신 보이는 조직원들마다 팔다리를 분질러 놓았다.

     반면, 수뇌부로 보이는 이들이 있으면 족족 끌고 갔다. 그리곤 보스가 기절해 있는 방에 처넣었다.

     한편, 로엘은 조직원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이따금 돌파하려 드는 이들에겐 연사용 소총을 난사했다.

     조직원들은 연속적인 굉음이 울림과 동시에 동료가 피를 뿜으며 무너져 내리는 광경에 제대로 겁을 집어먹었다.

     온전한 시체가 없었다. 숭숭 구멍이 뚫린 시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게 만들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대체 무슨 방법으로 동료를 살해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것. 미지(未知)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로엘은 조직원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족족 방아쇠를 당겼다. 그럴 때마다 시체가 한 구씩 늘어났다.

     로카인에게 받아낸 아티펙트 덕에 명중률이 높아졌다. 탄환도 넉넉히 챙겨왔다. 거칠 것이 없었다.

     중간에 간부로 보이는 조직원 하나가 호기롭게 달려들었다. 손에 들린 검에서 완연한 검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타타타타타탕!

     근접하게 두면 위험할 것 같아서 아직 거리가 있을 때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갈겨버렸다. 상대는 애석하게도 검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역시 현대인이라면 칼보다는 총이지.”

     로엘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살인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담담한 느낌이었다.

     아마 전생의 기억에 기인한 것이리라.

     그 당시 로엘은 수많은 병기를 개발했다.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세상의 그 어떤 살인마보다 많은 이들을 간접 살해했을 터였다.

     죄책감에 몸서리쳐지는 감각은 그때 이미 경험했다. 그 감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되었고. 그것이 현생의 의식까지 이어진 것일 터. 심지어 눈앞의 조직원들은 명백한 악인이었다.

    “…….”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스콜피온의 악행이 기록된 자료를 접하며 눈살을 찌푸렸던 자신이건만. 그때와 지금의 감정이 굉장히 상반되게 느껴졌다. 로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괴리감이 느껴졌다. ‘남의 일’과 ‘자신의 일’은 이렇게나 다른 것일까.

     그러고 보면 기억과의 동화율이 상당해진 듯싶었다. 딱히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은 여전했기에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아니.

    “……무슨 괴물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만은 아닐지도.

     * * *

     끊임없이 이어지던 소음이 잦아들었다. 아지트 내부가 고요해졌다.

     모든 조직원이 정리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직은. 레인이 잠시 숨 좀 고를 겸 간부들을 심문하기 시작한 탓이었을 뿐.

    “자, 이제 대화를 할 시간이군.”

     문답 무용으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어 놓은 이가 할 말은 아니다. 끌려온 간부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는 거냐! 치안청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렇게 되면 너도 끝장이야!”

    “치안청?”

    “그래!”

     그러고 보니 관청과 결탁했다고 했던가. 그나저나 일반인의 고혈을 빨아먹고 성장한 조직의 간부인 주제에 치안청을 들먹이다니, 웃기는 놈이었다.

    “상관없어. 네가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뭐?”

     이쪽 세계의 생리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뒷골목 조직과 관청의 협력관계 따위,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을 때나 유지되는 법.

     스콜피온은 오늘 안에 완전히 무너진다.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습격으로 하룻밤 만에 무너진 조직. 그 복수를 위해 치안청이 발 벗고 나선다? 그야말로 난센스라고 할 수 있었다.

     제구실을 할 수 없게 된 조직 따위 분명히 버림받는다. 장담할 수 있었다.

     원래 관청 놈들이 다 그렇다. 언제 뇌물을 받았냐는 듯 싹 입을 씻고 이들을 외면하겠지.

    “일단 넌 시끄러우니까 좀 닥치고 있어.”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꽥꽥 소리를 내지르던 간부의 목덜미에 대침 하나가 박혀 들었다. 더 이상 입을 놀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다른 간부들이 그 광경에 마른침을 삼켰다.

    “자, 질문을 해 볼까. 그전에 잠시만.”

     레인은 그들의 앞에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았다. 여유로운 얼굴로 손 위에 대침을 얹고 빙글빙글 돌리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그가 잠시간 무슨 질문을 할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간부들의 피를 마르게 하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직에서 관리하는 사업장 명단을 읊으라느니.

     사업 관련 장부는 어디에 꿍쳐놨냐느니.

     지금까지 벌어둔 돈은 또 어디에 쟁여놨냐느니.

     하나같이 조직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는 질문들. 당연하게도 간부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레인은 핫, 하고 웃었다.

     인체 어느 부위를 어떻게 자극하면 어느 정도의 고통을 받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고문이라면 웬만한 전문가들도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능숙하게 행할 자신이 있었다.

     전생에 수많은 무림인들에게서 무공 구결을 빼내면서 단련한 기술들. 이런 놈들에게 써먹기엔 과분하다고 여겨질 것들이었다. 오늘 그것들을 원 없이 사용하게 될 듯싶었다.

    ‘얼마나 버티려나.’

     손 위에서 굴리던 대침을 ‘탁’하고 붙잡으며 레인은 생각했다.

    ‘음?’

     그러던 와중, 그의 시선이 한 간부에게로 향했다. 상대의 눈동자에 아직까지도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뭐지?’

     이상했다. 이 상황은 그들에게 일말의 희망도 주어지지 않은, 최악의 상황. 그 와중에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이는 별로 없다. 있다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바보이거나, 아니면 따로 믿는 구석이 있거나.’

     레인은 혹시나 싶어 감각을 활성화시켜보았다.

    ‘!’

     기감을 동원했음에도 그 기척이 흐릿하게 느껴지는 인물이 하나. 그리 멀지 않은 뒤쪽에서 이쪽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적어도 무공은 아니었다. 레인이 처음 느껴보는,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지워진 기척.

    ‘마법?’

     그래 봐야 빈민가를 활동 범위로 삼는 폭력 조직 주제에 마법사가 관련되어 있다니, 의외였다. 아니, 그러고 보니 비밀통로도 마법진이 그려진 물건이었던가.

    ‘로엘은 괜찮을지 모르겠군.’

     마법사가 한 명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대인전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로엘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상대방의 기척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레인은 일단 모르는 척 계속해서 여유로운 모습을 가장했다.

     한 걸음이면 맞닿을 정도까지 거리가 줄어들고, 상대가 팔을 들어 올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무기를 쥐고 이쪽을 겨냥하는 듯했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기척이 짙어졌다.

     레인은 상대가 팔을 내리찍는 타이밍에 맞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쥐고 있던 대침을 그대로 상대의 팔 관절에 찔러 넣었다.

     푹.

    “윽?!”

     당혹스런 신음.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인 팔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서는 습격자. 집중이 흐트러져 마법이 깨졌는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레인은 여유로운 표정 그대로 뒤돌아 앉아 습격자를 마주 보았다. 어느새 새로 꺼내 든 몇 개의 대침을 손 위에 얹고 요령 좋게 빙빙 돌리며.

    “이런 별 볼 일 없는 폭력 조직에 이만큼이나 자신의 기척을 지울 수 있는 실력자, 그것도 마법사가 관여해 있다니 별일이군.”

    “…….”

    “이들과 무슨 관계인지 설명해 줬으면 하는데.”

    “…….”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모습이 드러난 사내는 레인을 노려보며 다시 은신 마법을 발현하려 했다.

    “동작 그만.”

     레인이 선언과 동시에 손을 떨었다. 순식간에 주요 관절에 박혀 드는 대침들. 사내가 균형을 잃고 무너져 무릎을 꿇었다.

    “크윽.”

     사내가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렸다. 방해받은 탓에 마법은 발현되지 않았다.

    “질문에 답하진 않을 생각이겠지?”

    “…….”

     레인은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내는 레인을 적개심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시선이 교차한 채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뭐, 좋아.”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레인이었다.

    “천천히 가자고. 저쪽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곳을 완벽하게 정리한 후에 느긋하게 알아내도 상관없겠지.”

     레인은 사내에게 몇 개의 대침을 더 박아 넣었다. 그렇게 사내가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도록 조치해놓고 방을 나섰다.

     가는 김에 아직까지 무사한 조직원들을 죄다 박살 내며 나아갔다. 적어도 앞으로 다시는 조직 생활 따위는 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기감을 동원해 숨어있는 자들까지 모조리 찾아냈다.

     그렇게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 로엘이 위치한 입구 근방까지 다가갔다.

    “정말로 한 놈이 더 있었군.”

    “의도치 않게 죽여 버렸는데.”

     바닥에 있는 몇몇 시체들 사이에 방금 전 제압해둔 마법사와 같은 복장을 한 자가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기감에 이상한 기척이 걸려들길래 일단 쏴버렸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시체가 나타나 쓰러지더라고.”

    “흐음.”

     레인 잠시 무릎을 굽히고 앉아 시체를 살폈다.

    ‘응?’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체내에 축적된 기운이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굉장히 난잡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마법사도 비슷한 기운을 품고 있었지.’

     어찌 보면 혼원공으로 축적된 내력과도 비슷했다. 상당히 음험하고 불쾌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러는 너는 다 끝냈어?”

     로엘의 질문에 레인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깔끔하게 정리했지.”

    “빠르네.”

    “익숙하니까.”

     두 소년은 완벽하게 정리된 아지트 내로 들어서 잭슨의 방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 곳곳에서 조직원들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로엘이 주위를 둘러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전부 팔다리를 분질러 놓은 거야?”

    “이 정도는 해야지.”

    “쯧쯧, 이놈들도 제명에 죽기는 글렀군.”

     폭력과 협박으로 점칠된 삶을 살아오며 원한 관계가 쌓일 대로 쌓인 인물들이 단체로 병신이 되었다. 이들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까. 어렵잖게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레인은 붙잡아 둔 조직 두목과 그 친위대, 그리고 의문의 마법사를 심문했다.

     그 과정을 뒤에서 지켜보던 로엘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이내 견디지 못하겠는지 방을 나서 다시 입구로 되돌아가 버렸다.

     관절을 뒤틀고, 생살을 저미고, 침으로 체내의 온갖 통점을 자극하는 악랄하고 집요한 고문이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끔찍한 비명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모든 정보를 얻어낸 레인이 방을 뒤로하고 나섰다. 고문을 견디지 못해 필요한 정보를 모조리 뱉어낸 방 안의 인물들은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된 뒤였다.

     레인과 로엘은 얻어낸 정보를 이용해 비밀금고를 털고, 각종 고리대금 장부를 전부 불태웠다. 그 후엔 아지트를 나서 조직이 관리하던 각종 사업장을 습격했다.

     자잘한 술집이나 노점은 그냥 두기로 했다. 그것들마저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부 습격하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듯했기에.

     대신 인신매매 업소, 성매매 업소 등은 남김없이 쓸어버렸다. 각종 이유로 끌려와 있던 이들에겐 충분한 돈을 쥐여주고 해방시켰다.

     모든 일을 마치고 여관으로 되돌아온 두 사람은 적당히 휴식을 취했다. 그 와중 레인이 마법사를 고문해 얻은 정보를 로엘에게 전했다.

    “그 마법사들, 알고 보니 조직으로부터 상납금을 받아다 윗선에 전달하는 운반책이었던 모양이더라고.”

    “운반책? 마법사를 겨우 운반책으로 써먹는다고?”

    “들어보니 크고 작은 수많은 조직들로부터 상납금을 받는 상위 세력이 있고, 그 세력의 규모가 상당히 방대한 모양이더라고. 인재가 넘쳐나서 겨우 운반책으로 마법사들을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게 가능한가?”

    “의외로 가능해. 돈이 있는 곳엔 사람이 꼬여 들기 마련이니까. 그게 더러운 돈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지.”

     레인이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볍게 답변했다. 로엘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악의 세력을 무너뜨렸더니 사실 그 배후에 더한 힘을 가진 세력이 도사리고 있었다니. 무슨 소설 속 이야기도 아니고.”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일단 미뤄왔던 일을 해치웠으니 치킨이나 뜯자고.”

    “오. 좋은 생각인데. 먼저 가서 주방 좀 빌리고 있을게.”

     두 사람은 일단 뒷일에 대한 걱정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하루 종일 움직이느라 피로가 쌓인 몸에 휴식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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