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스콜피온(2)
사실 레인은 눈앞의 종업원이 조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조직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
일개 점원이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주점을 관리하는 인원 전원이 조직의 구성원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사실 척하면 척이라고. 대충 그럴 거라 예상은 했다. 전생에 이런 놈들을 오죽 접해봤어야지. 대충 보기만 해도 견적이 나왔다.
“너 이 새끼, 뭐야. 당장 안 꺼져!”
종업원이 짜증스런 기색을 감추지 않고 소리쳤다.
조직에 원한을 가진 이들은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그는 눈앞의 소년 또한 그런 피해자들 중 하나일 것이라 여겼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직에 원한을 가지고 찾아온 인물이 하나일 거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뭘 그리 두리번거려?”
레인이 같잖다는 얼굴로 내뱉었다.
종업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레인이 발로 그의 복부를 걷어차 버렸다.
“크아악!”
걷어차인 사내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내기가 실린 발길질이었다. 위력이 상당했다. 사내는 한쪽 테이블에 처박혀 기절했다.
“뭐, 뭐야!”
“으악!”
갑작스런 폭력 사태에 손님 대부분이 겁을 집어먹었다.
그 와중에 레인의 뒤를 따라, 가게에 들어선 로엘이 품속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것을 천장으로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주점의 천장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렸다.
손님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주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압도적인 소음. 방대한 음량에는 사람의 공포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로엘은 적당히 분위기를 봐서 소리쳤다.
“모두 꼼짝…… 아니, 이게 아니지.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손님들은 당장 이곳에서 나가!”
내기를 실은 외침이 주변으로 쩌렁쩌렁하게 퍼져나갔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
손님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로엘의 일갈에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며 주점 밖으로 도망쳤다. 두 소년은 몇 걸음 옆으로 물러나 길을 터줬다.
손님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주점이 조용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가게 종업원들이 이를 갈며 두 소년에게 눈을 부라렸다.
레인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로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쓸데없이 화려한 쇼맨십을 해.”
“한 번쯤 해 보고 싶었거든. 강도 역할.”
“……강도?”
“그런 게 있어.”
로엘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와중에도 주점에 남은 이들은 두 부류. 경각심을 가지고 무기를 챙겨 든 스콜피온의 조직원들과 술에 취한 몇몇 용병들이었다.
“너 뭐야! 이 새끼야!”
용병 중 하나가 검을 뽑아 들고 호기롭게 외쳤다.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꺼져.”
레인이 흥미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사내를 살짝 곁눈질하던 시선조차 금세 거둬들였다. 너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러자 검을 뽑아 든 용병이 버럭 화를 냈다.
“뭐야?!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가!”
용병은 일그러진 얼굴로 분노를 표출하며 검을 레인에게 겨눴다. 레인은 용병을 돌아보지도 않고 경고했다.
“죽기 싫으면 검 치워.”
결국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용병이 레인에게 달려들었다. 검을 든 팔을 뒤로 젖혔다가 레인의 가슴께를 향해 힘차게 찔러 들어갔다.
레인은 살짝 검을 피한 후 용병의 발을 올려 찼다. 용병이 허공을 한 바퀴 빙글 휘돌았다.
레인은 허리에 걸린 검을 검집째로 뽑았다. 그리곤 등부터 바닥에 떨어진 용병의 목젖을 겨냥해 찍어버렸다.
“끄륵.”
용병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기절했다. 레인이 입가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용병을 다른 용병들이 있는 방향으로 걷어찼다.
“이 녀석 데리고 꺼져.”
용병들은 순순히 레인의 말을 들었다. 더 이상 쓸데없는 호기를 부리진 않았다.
술김에 덤벼드는 것도 상대가 어지간할 때의 이야기다. 원래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놈치고 자신보다 강한 이 앞에서 격분하는 사람이 없는 법.
용병들마저 주점에서 빠져나가니 이젠 정말로 두 소년과 스콜피온 관계자들만이 남았다.
어느새 식칼부터 망치까지 다양한 무기를 빼 들고 진형을 갖춘 점원들. 그들을 쭉 둘러본 레인이 핫, 하고 웃었다.
“자. 어느 놈부터 족쳐줄까.”
* * *
스콜피온의 보스인 잭슨은 굉장히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요 몇 달간 공들인 일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에는 한 여인의 머리칼이 붙들려 있었다. 머리채를 붙잡혀 예까지 끌려온 여인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흐흐. 무드가 좀 깨지긴 했지만, 상관없겠지.”
방금 전 부하 녀석이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보고해온 것을 그대로 내쫓은 상황이었다. 겨우 두 명 정도는 알아서 처리하라며. 그런 것보다는 전리품을 감상하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지금은 지저분해져서 그렇지, 여인은 사실 굉장히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일곱 살 난 딸아이를 가진 어미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후후.”
잭슨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이 아름다운 미망인을 손에 넣기 위해 요 몇 달간 얼마나 공들여 공작을 펼쳤던가.
처음 그녀를 봤을 때,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딱 봐도 가정 형편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디서 그런 기품이 흘러나오는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고백해버리고 난 이후였다. 결론적으로 거절당했고.
한동안 그답지 않게 실의에 빠졌다. 그러나 이내 추악한 본성이 고개를 들었다.
고민할 것 없이 그냥 늘 하던 대로 해버리면 되지 않은가. 뭐가 어찌 됐든 손에 넣기만 하면 그만이 아닌가.
그리고 결국 지금에 이르렀다. 교묘하게 지워진 빚. 그리고 지속적으로 가해져 오는 압박, 협박. 강인했던 그녀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잭슨은 입가에 비열한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진작 내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좋았잖아. 안 그래?”
“…….”
“나는 너를 갖고. 너는 내 아내가 되어 호의호식하고. 덩달아 딸년도 부족함 없는 삶을 구가하고. 얼마나 좋아?”
여인이 입술을 피나도록 깨물었다. 세상에 어느 어미가 아이에게 범죄자를 아비라고 소개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싶을까. 잭슨의 발언은 순전히 그 자신의 입장만을 반영한 개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지. 넌 기회를 놓쳤다. 앞으로는 내 노예로서 충실한 삶을 살게 될 거다.”
“흑.”
여인은 잭슨의 조롱에 최대한 반응하지 않으려 애썼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이쪽의 절망하는 모습임을 잘 아니까. 그것은 그녀 나름의 저항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마지막 반항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잔인한 발언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비열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 담긴 발언. 여인은 더이상 표정을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얼굴에 완연한 절망이 드리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발언에는 딸아이의 이름이 몇 차례나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 정도 벌은 받아야지? 날 그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었으니까.”
“무슨 그런 억지를!”
그야말로 악랄하기 그지없는 계획. 잭슨은 여인을 완벽하게 굴복시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작정이었다.
여인의 얼굴이 더 이상 핏기가 가실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질렸다. 잭슨은 그것을 즐거운 심정으로 감상했다.
“흐으윽. 흑.”
여인이 결국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뭐야.”
그 순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난입했다.
“뒷골목 조직을 이끄는 것치곤 상당히 실력 있는 인물이라기에 그래도 뭔가 특출난 게 있는 녀석인가 했더니.”
한 소년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선가 뜯어낸 듯한 천 조각으로 손에 잔뜩 묻은 피를 닦으며.
그가 오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잭슨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냥 하반신에 뇌를 지배당한 놈이었나.”
* * *
시간을 되돌려, 15분 전.
주점의 조직원들을 정리하고 지하로 진입한 레인은 입구를 로엘에게 맡겨두고 곧바로 보스를 찾아 나섰다. 머리부터 족칠 생각이었다.
놈이 위치한 곳을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냥 눈에 띄는 조직원 하나를 붙잡고 고문해 알아냈다.
꼴에 의리를 지킨답시고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지 않겠다던 조직원은 단 10분 만에 태도를 바꿨다. 아니, 10분이나 버틴 것이라고 해야 할까.
시답잖은 조폭 간의 의리 놀음에 상당히 심취한 위인이었다. 그래 봐야 몇 군데 좀 부수고 피부 좀 벗겨내니 원하는 정보를 전부 토해냈지만.
그렇게 보스의 소재를 파악하고 걸음을 옮기던 레인은 일순 눈살을 찌푸렸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저열하고 저급한 내용이 담긴 목소리가 한참 활성화된 청각기관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에.
레인은 지체하지 않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문을 열었다. 그리곤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누구냐!”
불쾌한 목소리의 주인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레인은 혀를 찼다.
“생긴 것도 지랄 맞네. 괜히 거절당한 게 아니구만.”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소년이 폭언을 쏟아내자 잭슨이 당황한 와중에도 분노를 터뜨렸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어디서 개가 짖나.”
“너 이 개……!”
마주 욕설을 내뱉으려던 잭슨의 몸이 굳었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막대한 기파에 저도 모르게 위축된 것이다.
‘뭐, 뭐야?!’
근원지는 눈앞의 소년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잭슨은 찬물을 끼얹은 듯 확 하고 정신이 들었다.
그는 곧바로 명확하게 상황을 인지했다.
‘엿 됐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서 생각지 못했는데, 이곳은 아지트 가장 안쪽에 위치한 자신의 방이었다. 수많은 조직원이 거주하는 아지트의!
그런 곳에 웬 본적 없는 소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해답은 명확했다.
상대의 외견이 어린 소년이라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방심하고 말았다. 외견 따위 마법으로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것에 불과하거늘.
애초에 상대가 등장했을 때 곧바로 비밀통로를 이용해 달아났어야 했다. 평생을 이쪽 업계에 몸담아온 자신이 이런 실수를 저지를 줄이야.
여인이 당황한 얼굴로 잭슨과 소년을 번갈아 보고 있는 가운데, 잭슨이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여기선 더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상황이 악화될 터.
일단 견제를 목적으로 품속의 단검을 꺼내 소년에게 내던졌다. 오라를 듬뿍 실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리곤 곧바로 한쪽 벽면으로 이동해 비밀통로를 열었다.
무려 마법적인 조치가 되어 있는 통로였다. 한 사람이 통과하면 곧바로 입구가 폐쇄되게 되어 있었다.
잭슨의 시선이 아주 잠깐이지만 여인에게 머물렀다. 아쉬워하는 감정이 듬뿍 담긴 시선에 여인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시선을 거둔 잭슨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와드득!
그의 발등 위로 진각이 내리 찍혔다.
“크아아아악!”
어느새 이만큼 가까이 다가온 것일까. 소년이 잭슨의 발등을 자근자근 밟고 있었다.
“악! 아아악!”
아예 짓뭉개져 버린 발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잭슨은 목이 터져라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그런 그의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
“만악의 근원은 이건가?”
레인이 가볍게 중얼거리며 잭슨의 중심부 위에 발을 얹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잭슨이 눈을 크게 떴다.
“허, 허억! 잠, 잠깐만!”
“뭐.”
“그, 그것만큼은! 제발!”
레인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여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레인답지 않게 처음 보는 상대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딱히 갑자기 없던 예의가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듣고 싶은 답변이 있어 살짝 과장스럽게 행동하고 있을 뿐.
“······?”
“이 녀석에게 사정을 봐달라고 부탁한 적, 있습니까? 그게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간에.”
“이, 있지.”
“그때 이 쓰레기가 뭐라고 답했는지 좀 들었으면 싶군요.”
여인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러더니 이내 표독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내가 그걸 들어줘야 할 이유가 있나? 그렇게 말했지.”
잭슨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레인이 그를 돌아보며 핫, 하고 웃었다.
콰득.
“끄어억!”
비통한 신음을 내뱉은 잭슨이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그렇게, 두 개의 세계가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