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홈리스(Homeless)(2) (33/249)


 33화. 홈리스(Homeless)(2)



 산사태가 일어나 백작가 인물들과 호위 용병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었던 그 장소. 그곳에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근방에서 몬스터 사냥을 하던 용병대였다. 특이하게도 이 용병대의 구성원은 전부 여성. 그것도 전원이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근래에 이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난 모양인데.”


“사람이 있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네.”


“설마. 어떤 운 없는 인간이 하필 산사태가 일어난 시점에 여기 있었으려고.”


 그녀들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시시덕거렸다. 그런 운 나쁜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이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여성 용병 일행은 주위를 적당히 살피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고 했다.


“어? 저건?”


 용병대에서 특기자의 역할을 맡은 한 용병이 어느 지점을 살피더니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녀의 표정은 의아함에서 놀라움으로, 놀라움에서 희열로 바뀌었다.


 그녀는 이곳이 펠라키 산맥이라는 것도 잊고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유적이다!”



 * * *



“으음, 역시 넘어오지 않는군.”


“그 두 소년은 나이에 맞지 않게 노련미가 묻어나온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있었지요. 안 될 거라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하긴, 그 정도의 인재가 쉽게 틈을 보일 리 없지요. 세상일이 그렇게 쉬울 리 있겠습니까.”


“그것도 그런가?”


 자리를 파한 후에 몸을 씻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시 모인 기사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모시고 있는 백작 영애, 레이나는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오늘 일은 정말 위험했지요.”


“확실히. 자칫했으면 기사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할 뻔했으니.”


“전력이 부족했다기보단 재해에 의한 사고였지만······.”


“그 두 소년이 아니었다면 확실히 전멸했겠지. 그러고 보니, 그 둘은 애초에 그러한 상황을 예견한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무려 검호씩이나 되는 실력자니까요. 우리와는 감각으로 전달받는 정보가 차원이 다르겠죠.”


“당시에 그들이 탐색 전문 용병과 갈등을 빚은 이유도 그와 관련이 있겠군요.”


“그것도 모르고 단체로 비난을 해댔으니. 이것 참, 직접 쓴소리를 내뱉은 것도 아닌데 괜히 찝찝한 기분이야.”


 기사들이 쓴웃음을 흘렸다. 사실 자신들도 은연중에 그 분위기에 동조하고 있었으니까.


 잡담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쉽군. 영입할 수만 있다면 백작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텐데…….”


“우리 영지에는 검호급 이상의 실력자가 없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아무리 충분한 대우와 높은 지위를 보장해준다고 해도 그쯤 되는 실력자가 굳이 시골 영지에 거취를 정하려 들 턱이 없으니.”


 한 기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기사들의 지휘를 맡은 인물, 크레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영지는 풍족하긴 했지만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고로 출세한 인간은 정비되고 볼거리 많은 도시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하기 마련이었다. 하다못해 영지를 가진 귀족들조차 영지를 대리인에게 맡기고 수도에 거주하곤 하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지나간 일을 아쉬워해서 어쩌겠나. 앞으로 친분이라도 잘 다져두면 되겠지.”


 크레일이 이야기를 그쯤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을 때.


“실례합니다.”


 별채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익히 알고 있는 여관 지배인의 목소리도. 크레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소년 두 명이 기사님들을 뵙길 청하고 있습니다. 레인과 로엘이라고 하면 알 거라고…….”


“정말인가!”


“예..”


 크레일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다른 기사들과 시선을 나눴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화색이 만연한 좌중의 인물들을 본 지배인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당장 그들을 이리로 안내해 주게.”


“알겠습니다.”


 지배인은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물러났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이미 호의를 거절했던 주제에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다시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언제 찾아오시든지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로엘과 크레일의 격식 있는 인사가 오갔다.


 레인은 한 발짝 뒤에 서서 볼을 긁적였다. 떨떠름한 감정이 가득한 얼굴로.


 레이나 하슨은 두 소년이 다시 찾아왔다는 말에 부랴부랴 단장을 마치고 내려와 그들을 맞이했다.


 가죽 갑옷 차림이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한 평상복 차림인 것이 눈에 띄었다.


“사실, 방금 전엔 제 독단으로 여러분의 제안을 거절했었는데 말이죠.”


 로엘이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귀갓길에 레인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의견이 다르더군요.”


 사실 돌아가는 길엔 싸웠다. 그들이 염치 불고하고 다시 이들을 찾은 까닭은 당장 머물 집도, 먹을 음식도, 가진 돈도 없기 때문이었다.


 입이 찢어져도 사실대로 말하진 못하지만.


“결례가 되겠지만, 조금 신세를 졌으면 싶습니다.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크레일은 두 사람을 환영했다. 아니, 알았다고 하더라도 환영했겠지만.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자리의 장인 레이나가 빙긋 웃으며 두 소년을 환대했다. 레인이 마지못한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


 레인은 고민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잠깐 가만히 응시했다. 갑작스럽게 노골적인 시선을 받게 된 레이나가 저도 모르게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렇게 된 거.”


 레인은 스스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내가 굳이 이곳으로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한 건 너 때문이다. 레이나 하슨.”


“예?”


 레이나가 눈을 껌뻑였다.


 말을 꺼낸 당사자인 레인 본인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사실 레인이 다시 찾아온 주된 이유는 집이 날아갔기 때문이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말이 완전히 거짓인 것은 또 아니었다.


 주변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아…….”


 레이나는 갑작스런 고백(?)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는 발언. 그리고 그 발언을 한 당사자는 자신이 꿈꾸던 강함을 가진 소년이었다.


 솔직히 말해 낮에 있었던 일로 인해 레인을 완전히 동경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그녀였다. 그런 상대가 갑자기 묘한 분위기를 형성시키는 발언을 해오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데.”


 레인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주위 인물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의 입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입꼬리를 실룩이는 이도 있었다.


“듣고서 조금 불쾌할지도 모르겠지만.”


 한쪽에서 그럴 리가 있겠냐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기사가 하나. 둘이 이어지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여튼 다 좋다.


 무려 검호가 아닌가. 그것도 차후 검성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압도적인 자질을 가진 인재.


 모두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뒷말을 기다리는 가운데, 레인이 말을 이었다.


“내게 무술을 배울 의향이 있나?”


 모두의 기대가 순식간에 와장창 깨져나갔다.


 한껏 긴장하고 있던 레이나의 얼굴이 멍청하게 풀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들어서일까.


“아무래도 연하에게 제자가 될 생각이 있느냐는 말을 들으면 불쾌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겠지.”


“아, 아뇨!”


 레이나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가까스로 상황을 인지한 그녀는 핑핑 돌아가는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조금 당황한 것뿐, 절대 싫은 건 아닙니다.”


 그녀는 횡설수설하며 말을 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라 당황하긴 했지만, 싫을 턱이 없었다.


 무려 초일류 검사가 스승이 되어주겠다 자처하고 나선 상황. 검술에 심취한 그녀로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옆에서 참상(?)을 지켜본 로엘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런 광경이 연출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처음 봤을 때 알아차렸는데, 네겐 특별한 재능이 있다. 제대로 키워줄 사람만 있다면 확실하게 개화할 재능이.”


“재능이요?”


 그녀가 당황스런 기색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재능이 모자라진 않지만 그렇다고 유달리 뛰어나지는 않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눈앞의 소년이 내린 평가는 의외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과분한 것이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지. 내게 맡기면 확실하게 성장하게 해줄 수 있다. 최소 세인들이 ‘검호’라고 부르는 수준 이상으로.”


“?!”


 레이나는 물론 주변 기사들 모두 숨을 죽였다.


 초일류라는 타이틀은 하나의 로망이었다. 모든 무인들이 꿈꾸는 경지. 그 경지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 경지를 확언하는 인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허풍이라고 보기도 뭐한 게, 그 본인의 실력부터가 초일류였다. 마음이 크게 동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좋습니다. 초일류 검사의 지도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크레일이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계산을 끝마쳤다.


 레인의 이야기는 이쪽에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검술에 목마른 레이나에게 좋은 것은 물론이요, 눈앞의 천재 검사를 백작가의 가신으로 끌어들이기가 상당히 쉬워질 터.


 레인이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제삼자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는데.”


 크레일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상대의 의중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일은 레이나는 물론 레인에게도 중요했다. 무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가지려는 것이니까. 거기에는 다른 이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가르침을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레이나는 결심이 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황 중에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결론을 내렸다. 그녀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물론 레인은 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있어 스승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재였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지나친 ‘천재성’이었다.


 그는 그 경지임에도 불구하고 레이나와 ‘동년배’였다. 더군다나 ‘이성’이기까지. 그런 그가 레이나의 스승이 된다면 이후 그녀를 따라다닐 추문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임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국 제안을 승낙했다. 아무래도 직접 그의 무위를 눈으로 확인한 것이, 그 강렬한 인상이 아직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음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는 귀족식 예법이었다. 스승이 기사인 경우엔 제자의 어깨에 검을 올리고 연을 맺었음을 선언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적당히 좋은 말로 분위기를 잡아주면 되었다.


“……?”


 물론 레인은 그런 것 모른다. 귀족의 예법 같은 것엔 완전히 무지했다.


 그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변의 기사들이 그 기색을 알아채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로엘은 재차 이마를 짚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이미 자세를 취했는데 그냥 일어나기도 뭣하다고 생각한 레이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세를 유지했다.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격려라든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이라든지. 적당히 아무 말이나 하면 돼.”


 보다 못한 로엘이 살짝 끼어들어 조언했다. 레인은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아챘다.


“…….”


 레인이 침음을 흘렸다. 이런 상황이 처음인 만큼 상당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잠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한다고 좋은 말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결국 레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간결하기 짝이 없는 인사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렇게 레인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첫 제자를 들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