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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홈리스(Homeless)(1) (32/249)


 32화. 홈리스(Homeless)(1)



 그렇지 않아도 산사태가 일어났을 정도로 지반이 불안정한 장소였다. 이미 한 차례 지반이 무너진 후라고 해도 이만한 충격을 주면-쿠에에에에!


 키이이이이이!


 -상당한 규모의 인공 재해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했다. 몬스터들이 절규를 내지르며 아래로 달아났다.


 콰르르르르르르르!


 두 번째 산사태가 일어났다. 이번엔 레인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재해였기에 범위가 한정적이었다.


 우왕좌왕하던 몬스터들도, 필사적으로 도망가려던 몬스터들도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져 내려오는 흙더미에 휩쓸려 비탈길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것을 지켜보는 일행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이 일격으로 퇴로가 확보되었기에.


“진형을 쐐기 형태로 변경합니다! 선두는 레인이, 선두 보조는 제가!”


“좌, 우측은 용병분들이! 기사 분들은 후방을!”


“지금부터 최대한 빠른 속도로 산맥을 벗어날 생각이니, 뒤처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로엘이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연속된 지시에 일행이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갖췄다.



 * * *



 채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일행 전원이 무사히 산을 벗어날 수 있었다.


 중간중간 몬스터와 충돌하기도 했지만, 로엘이 주의를 끌고 레인이 단숨에 숨통을 끊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정리했다. 별다른 위기는 맞이하지 않았다.


 일행은 하산하는 내내 두 소년의 능력에 놀라워하기 바빴다. 급기야는 기사들마저 두 소년을 대하는 태도가 조심스러워지기에 이르렀다.


 레이나는 몇 번인가 힐끗힐끗 레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가 마주치기라도 할 새라 황급히 거두곤 했다. 그것을 눈치챈 로엘은 레인과 그녀를 번갈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부상자도, 낙오자도 없이 모두가 영지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 * *



 결론적으로 의뢰는 취소되었다.


 원래 용병업계 의뢰라는 게 의뢰주가 유리한 입장인 것이 당연한 법. 의뢰가 취소된 시점에서 용병들이 수령할 수 있는 의뢰 대금도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의뢰주가 항상 제멋대로 의뢰를 취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용병 길드에서 부당한 의뢰 취소를 엄금하고 있으니. 취소하더라도 위약금을 지급해야 하는 제도가 정착되기도 했고.


 그러나 이번 일은 그 예외에 속했다. 용병들이 제 역할을 다 수행하지 못해 의뢰주가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까.


 용병들은 내심 불만이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해산했다. 불만을 터뜨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 와중 예외가 있다면 레인과 로엘이었다. 두 소년에겐 제대로 의뢰 대금이 지급될 예정이었다. 거기다 조만간 다시 산에 오를 테니 동반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정작 의뢰주를 보호하는 임무 이외의 것은 하나도 수행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만한 활약을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


 사실 이번 일로 인해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쌓인 레인은 의뢰를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로엘이 선수를 쳐서 승낙해 버렸다.


 새로운 조건의 의뢰는 그 보수가 이전에 비에 현격히 높은 것은 물론이요, 이쪽이 불편함을 느낄 요소가 전혀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의뢰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소년이 의뢰를 받아들인 것이 내심 기쁜 것인지 레이나가 상기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수시로 시선이 레인 쪽으로 향하는 게 눈에 띄었다.


 로엘은 얼굴이 살짝 붉어진 그녀와 레인을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레인도 관심이 있는 눈치였지.’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잘만 하면 두 사람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


 레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내심 그의 반응을 기대하고 말을 붙였던 레이나는 살짝 실망스러운 눈빛을 했다.


“크음.”


 기사 중 리더로 보이는 인물이 헛기침으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이참에 말해두자면, 두 분 이외의 용병은 고용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예. 검호씩이나 되는 인물이 호위해준다면 여기서 더 인원이 늘어나야 할 이유가 없겠죠. 솔직히 말해서 낭비입니다.”


 로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세계에서 ‘검호’라 불리는 실력자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이후로 의뢰 대금은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한 번에 지급하겠다느니, 산맥 진입 루트는 어느 쪽으로 잡았다느니 하는 자잘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리되었다.


“그럼 의뢰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고.”


“?”


 갑작스레 진지한 얼굴로 운을 떼는 기사. 로엘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가능하시다면 저희가 머무는 숙소로 함께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구해주신 은혜에 대한 답례를 드리고 싶습니다.”


‘답례?’


 사례를 하는데 왜 숙소에 초대하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귀족들의 통상적인 사례가 원래 상대를 자신의 거처에 초대해 대접하는 것이었다. 저들에겐 그것이 평범한 일이리라.


 귀족 저택은 아니더라도 지금 이들은 고급 여관의 별채를 통째로 빌린 상태. 용병 두 사람을 대접하는 데엔 부족함이 없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그건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로엘은 쓴웃음을 지으며 완곡히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저들이 이쪽을 초대하려는 의도는 뻔했다. 보은을 빌미로 이쪽을 영입하려는 것일 터.


 특정 귀족 가문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일개 용병에 불과한 검호. 거기에 열셋에 불과한 나이. 잘만 하면 백작령에 소속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분명 밑바탕에 깔려있을 터였다.


 실패하더라도 일단 찔러나 보려는 심산. 설사 영입하지 못하더라도 미래가 밝은 인재와 미리 우호 관계를 다져둬서 나쁠 것이 없었다. 저들이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저희에게도 일정이 있는지라.”


 로엘은 영업용 미소를 내보이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기사들의 얼굴에 역시나 하는, 실망스러운 기색이 살짝 드러났다.


“아쉽군요.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라도 환영하겠습니다.”


 기사는 노련하게 재고의 여지를 남기며 답변했다.


 그렇게, 분위기는 자리를 파할 때까지 나쁘지 않게 흘러갔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레인과 로엘은 서로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산에서 갈등을 빚었던 일이 아직 앙금으로 남아 있는 탓이었다.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참을 그렇게 걷던 와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로엘이 레인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내심 무거운 공기가 불편했던 레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엘이 먼저 사과하려고 한다 여긴 것이었다.


‘마음이 불편하겠지.’


 로엘의 주장은 결국 예견했던 위험을 초래했다. 본인도 불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러나 그가 딱히 큰 잘못을 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 레인은 사과를 적당히 받고 오늘의 일을 무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레인의 귀에 들려오는,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힐난하는 어조의 목소리.


“방금 전에 산에서 보인 네 모습은 여러모로 실망이었다. 레인.”


“뭐?”


 레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왜, 내가 사과라도 할 줄 알았어?”


“······.”


“표정만 봐도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겠군.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


“그때도 말했지만, 그 상황에선 그게 최선의 판단이었어.”


 로엘은 후, 하고 숨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판단력이 흐려졌던 건 너지. 괜히 네가 이성을 잃고 기분대로 날뛴 덕분에 자칫했으면 사망자 몇 명 나오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뻔했어. 알아?”


“뭐?”


“비탈길로 쓸려 내려간 용병들, 그들은 당연히 내가 구하러 갔어야 했어.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높은 네가 일행을 지켰어야 했다고. 단순히 사람을 찾아올 뿐인 일은 내가 맡는 편이 효율적이니까.”


“…….”


“네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뛰쳐나간 통에 의뢰주가 죽을 뻔했어. 요행히 네가 시간에 맞춰서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다면 지금쯤 줄초상을 치르고 있어야 했을 거야.”


 만약 레이나 하슨이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했다면?


 무려 귀족 자제의 죽음이었다. 당연히 큰 파장이 일 터였다.


 말이 없는 레인에게 로엘은 계속해서 힐난을 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 판단은 옳았어. 이 발언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


“…….”


“합리적인 판단이 꼭 옳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레인이 으르렁거렸다. 로엘은 그것엔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세운 삶의 지침 중에 이런 게 있지. 대가 없는 선의는 베풀더라도 대가 없는 손해는 감수하지 말라. 이 두 가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달라. 정확히 뭐가 다른지 알겠어?”


“……?”


“후자의 경우엔 타인이 나를 호구로 여기게 되거든.”


 로엘이 킬킬 웃었다. 호선을 그리는 입술과 달리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


 레인이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로엘이 자신의 전생을 빗대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한동안 눈싸움이 벌어졌다.


 잔뜩 날카로워진 감정을 고스란히 표출하는 두 소년.


 결국 먼저 시선을 거둔 것은 레인이었다. 속으로 욕설을 삼키고 있는 것이 뻔히 보였다.


 로엘은 내심 코웃음을 치며 그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 * *



 그렇게 둘의 감정 대립은 절정으로 치닫…… 지 못했다.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장면 때문에.


“······어?”


 로엘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야?”


 그것은 뒤따라온 레인 또한 마찬가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어디 갔어?”


 -집이 사라져 있었다.


 비유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집이 사라졌다.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인지 집터가 온통 검은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이전엔 집이었던 것의 잔해들이 바닥을 굴러다니며 눈을 어지럽혔다. 충격적인 광경에 두 소년이 황망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집터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하트 무늬 밀랍으로 밀봉된 편지. 로엘은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편지를 집어 내용물을 거칠게 꺼내 들었다.



[친애하는 로엘, 레인에게.]



 이런 서두로 쓰인 편지에는 작금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 상세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온갖 마법적인 전문용어와 미사여구로 포장된 설명문.


 쓸데없는 부분을 제외하고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마법 실험을 하다가 폭발을 동반한 사고를 일으켰다.]


[절대 고의가 아니었음을 믿어주길 바란다.]


[나는 마탑으로 되돌아가도록 하겠다. 이다음에 다시 보게 된다면 반드시 빚을 갚도록 하겠다.]


[다시 보게 될 때도 건강하기를.]



 편지 내용을 확인한 후, 로엘은 격렬하게 분노했다.


“파르엘! 너 이 빌어먹을 새끼!”


 뒤늦게 편지를 확인한 레인 또한 격노했다.


“어디로 내뺀 거야! 이 민폐 덩어리 마법사 놈!”


 하루 동안 쌓이고 쌓인 울화가, 방금 전 말싸움으로 절정으로 치달았던 감정이 두 소년과 함께 있는 동안 그다지 마각을 드러내진 않았었지만, 사실 파르엘은 마탑에서도 손꼽히는 괴짜였다. 주위 동료, 선배 마법사들이 전부 손을 내젓는 문제아.


 그 문제아로서의 일면이 하필 레인과 로엘이 집을 비운 사이에 드러나 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파르엘은 마탑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고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사고가 일어난 장소는 그의 사소한 실수 정도는 간단히 무마시키는 것이 가능했던 마탑이 아니었다.


 두 소년의 거처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그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파르엘은 도주했다. 신속하게.


 로엘이 급히 잔해 한구석을 뒤적였다. 다행히 이전에 제작한 특수 지하실은 멀쩡했다. 그 이외에는 모두 날아가 버렸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동안 모아온 재산이!”


 로엘이 절규를 내뱉었다. 하필 금고를 지하실에서 꺼내뒀던 게 화근이었다.


 파르엘이 집을 지키고 있으니 도둑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겼건만, 오히려 그 본인이 문제를 일으킬 줄이야.


“그동안 모아온 영약이!”


 레인은 더욱 절규했다. 그 또한 영약을 지하실에 보관해 두지 않았다.


 애초에 이 세계엔 영약의 가치를 알아보는 인간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것을 지하실에 숨겨둘 필요성도 없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그동안 모아온 영약을 전부 잃어버릴 줄이야.


 분노에 찬 고함을 터뜨리던 두 소년은 끝내 낙담한 표정으로 지면에 주저앉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맺힌 감정의 골은 이 일로 인해 서로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흐지부지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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